■2020년6월9일(화)■
(베드로후서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ㅁ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후서 참고) 베드로 후서는 베드로가 순교 당하기 직전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략 AD 64년 경으로 본다. 이 서신서의 목적은 잘못된 신앙 사상에 대한 지적과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당시에 두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바울의 율법에서의 자유를 오해한 집단들의 반윤리적 사상과 주님의 재림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였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올바른 도덕적 생활은 구원받은 자의 당연한 결과다. 어떤 논리로든 방탕함에 대해서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그것은 궤변일 뿐이다. 그리고 재림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필수 신앙이다.
(묵상/벧후 1:1-4)
◆ 보배로운 믿음을 믿음을 받음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1)
나의 믿음은 나에게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가?
오늘 본문은 우리가 보배로운 믿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말씀한다.
이미 우리는 '보배로운 믿음'의 실체를 경험하고 있다. 천국을 바라게 되었고,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확신하게 된 것은 우리가 교육에 의해 세뇌된 것이 아니다. 성령이 임하시면서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양심의 고백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역할을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히 11:1)라고 했다. 과연 보배로운 믿음을 내게 주심으로써 우리는 하늘의 상을 바라게 되었고, 보지 못한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확고히 믿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주신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곧 율법으로 사는 삶에서 믿음으로 사는 삶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들어서 저 쪽으로 옮길 수 있다고 하셨다(마 17:20).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 겨자씨보다 작을 리는 없다. 이제 내게 산을 옮길만한 그런 파워가 있는 셈이다. 내가 이것을 사용하지 않고 산다면 수 억의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돈이 없다고 생각하여 끼니를 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멍청한 삶이 될 것이다.
내게 있어서 태산과 같이 억누르는 염려나, 정욕이나, 무거운 짐이 있으면 믿음으로 옮겨보자. 그리고 믿음에 의해서 이런 것이 옮겨지는 것을 체험하고 나면, 우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알게 될 것이다. 율법적인 삶이 죄를 좋아하지만 억제하고 있는 이중적인 갈등의 삶이라면, 믿음으로 사는 삶은 죄를 혐오하게 됨으로써 멀리하게 되는 그런 경지다.
◆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심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3)
개역성경의 이 번역은 너무 어렵다. 현대어 성경은 이것을 풀어서 잘 번역해놓았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지니신 위대한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생활을 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선한 품성도 우리에게 나누어주십니다"
우리가 받는 모든 복의 출발점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짐에 따라 우리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지식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동일한 말을 하였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 3:8)
모든 경건한 신앙선배들도 동일한 말을 한다. 그리스도를 깊이 알수록 우리는 그를 닮아가게 된다. 그리스도를 묵상하라. 그를 우리 삶의 규례로 정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이다. 문자에 매여있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로 붙잡고 신앙생활을 해야한다.
◆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4)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하는 것, 그리스도의 재림,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자들은 세상에서 삶의 방향과 가치관이 정해진다. 장차 나타날 영광을 위하여 기꺼이 현재의 고난을 감수한다. 육신을 따르지 않는 것도 고난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장차 나타날 영광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것이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것이다.
나는 믿음으로 주의 얼굴을 보리니, 아침에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