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봉에 해 뜨거든 외 1편
-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아리랑
강중훈
(레지스탕스 청년과 그의 연인은 카테리니 행 기차를 타기로 약속했지. 그들이 함께 떠나기로 한 11월의 어느 날, 만나기로 한 기차역에 사랑하는 청년을 여인은 기다리지, 출발할 기차 시간은 다가오고 그러나 청년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지, 비통한 심경의 여인은 혼자 기차에 오르지. 홀로 떠나는 여인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는 청년, 억압받는 민중을 외면 못한 청년, 카테리니행 기차에 차마 오를 수 없는 그는 그래서 홀로 노래 부르지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누가
이 길을
찾아 나서라 했을까
이 길 따라가면
구할 수 있다 했을까
가다가 엎드리면 얻을 수 있다 했을까
어두운 밤길
찾으며 물으며
산길 물길 헤쳐 여기까지 왔구나
이제 저 돌다리 하나
조심스레 건너면 ‘앞바르 터진목 모래밭’*
그립 던 그대 뜨거운 손 맞잡을 수 있겠지
아니지, 더는 욕심내지 말기야
여기서 우리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것 맺고 이룬 것이거늘…
그대 향한 새벽 횃불 저렇게 붉게 타고 있는데
열렬히 열렬히 마중하는 여인
그 멀고 먼 길 찾아 물어 물어 아침해
목숨 걸고 여기까지 왔음을…
*Mikis Theodorakis : 그리스의 혁명투사이자 작곡가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제주성산포 4·3 학살터
호찌민 부루*
외과 의사가 칼을 든다
몇 조각인지 헤아릴 수 없는 뼛조각들이 잘려나간다
잘려 나간 물음표들이 흩어진다
그림자라 부르는 부정의 칼끝이 자꾸만 무디어진다
잘려 나간 빈자리
돌아 누울 수 없도록 무궁화꽃이 진다
이별의 눈물이 너덜너덜한 실밥으로 감춰졌다 떨어진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떠나야겠지
쏘아 올린 이별의 파편도 굴절되어 삼각 다리 밑으로 떨어지겠지
떨어져 나간 그곳으로 봉함된 건 오로지 간절함뿐
이제 완성되나보다 싶으면 솔직히 떠나야 하는 것
네가 늘어놓은 수술대 위의 칼과,
꽉 다문 어금니와
잊히다 남은 너와 나의 수다스런 상처는
사이공 강변으로 떨어져 흩어지다가
돌아 누울수록 무궁화꽃은 피고
이별의 눈물은 너덜한 실밥으로 감춰졌다 떨어진다
*단군의 아들이며 하백의 딸과 혼인하여 낳은 아들(단군기와 제왕운기)
강중훈
1941년 일본오사카에서 출생, 1993 한겨레문학 등단
시집 가장 눈부시고도 아름다운 자유의지의 실천 외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상 한국농민문학작가상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