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또 상제께서는 때로 금산사의 금불을 양산도(兩山道)라고 이름하시고 세속에 있는 말의 양산도와 비유하기도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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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대순전경초판> 에는 없는 구절이다. 다는 찾아보지 않았지만, '강증산-조정산' 을 연원의 맥으로 주장하는 단체의 경전에만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단체의 兩山 은 <증山> 과 <정山> 이다.
(1) 증산과 정산의 관계
또 "나의 공부종필의 참뜻을 다시 한번 말하리라. 구천무극주님께서 친히 9년공사로써 도수를 짜 놓으셨으니 그것은 체(體)요, 원리니라. 나는 도로써 용(用)하여 만수도인을 만들어 기르고 무극 • 태극의 창도를 함이니 이 실로 무극의 정(定)에서 생겨난 태극 진리의 기동도수니라. 그러므로 나의 공부는 도를 어떻게 믿고 배우고 닦고 행하라는 진법이니 솥이 있어야 시루를 쓰는지라, 이로써 증정지도(甑鼎之道), 증정지덕(甑鼎之德), 증정지교(甑鼎之敎), 증정지학(甑鼎之學), 증정지수(甑鼎之修), 증정지화(甑鼎之化)가 성취됨이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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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께서 성사와 당신의 관계를 규정해 놓았은데, 군더더기가 없다. 또한 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이야기해놨다고 보여진다.
(참고) 태극진경의 다른 구절들
상제님께서는 창원역을 출발하신 후 처음에는 망명 준비의 과로로 피곤하셨으나 미시(未時)경, 대전(大田) 부근에 임어하셔서는 정신이 상쾌하시고 기운이 충천하신 중에 마음공부를 조금도 늦추지 않으시니라. 이때 홀연히 일광(日光) 같은 용안에 황금색 용포의 신인(神人) 한 분이 현현(顯現)하셔서 우레 같은 음성으로 하명하시기를 "내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노라. 그대는 삼계의 진주(眞主)니 이는 막중한 천기(天機)라. 그대가 나의 도통(道統)을 이어 치천하도수(治天下度數)로 무극대운(无極大運)의 대공사를 성취하되, 내 명교(命敎)를 받들어 태극(太極)의 진법(眞法)을 용(用)하면 무위이화(無爲而體)로 광구 삼계(匡救三界) 하리라. 그대의 호는 정산(鼎山)이니 나와 그대는 증정지간(甑鼎之間)이며 이도일체(以道一體)니라. 나는 구천의 천존상제로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이 말씀에 정신이 더욱 활연하셔서 이 신인이 바로 진리의 당체이신 구천상제이심을 깨닫는 동시 "봉천명(奉天命)"의 도열(道悅) 속에 몸소 "태극진주(太極眞主)"임을 대오 자각(大悟自覺)하시고 삼계(三界)를 광구(匡救)하실 각오를 마음속에 맹세하시니라.
"구천 상제님의 일은 무극대운이요, 나의 일은 태극대도(太極大道)이므로 오도가 지금까지는 무극대운의 '기초동량도수(基礎棟樑度數)'였으나 금후로는 태극의 '기동도수(機動度數)'니라. 그러므로 증산 상제님과 나는 '무극과 태극의 관계'며 '증정지간(甑鼎之間)'이니 도로써 일체(一體)니라." 하시니라.
이해 4월 봉천명일 치성 후에 참례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내가 지난 기유(己酉 : 도기 원, 서기 1909)년 이날 천명과 신교를 받들어 모신 이래 벌써 사십유오년(四十有五年)이라. 그동안 창도 · 포덕에 전력한바 이에 어언 이순(耳順)이니 그대들이 나를 신종(信從)하고 또 헌공함을 가상히 여기노라. 증산 상제님께서 '나와 그대는 증정지간(甑鼎之間)이라.' 하시고 또 '이도일체(以道一體)니라.' 하셨으므로 상제님의 도호 '증산(甑山)'에 이어 나를 '정산(鼎山)'으로 하셨느니라. 상제님께서는 무극주로서 재천(在天)하시고 나는 태극주로서 재인(在人)하니, 체용(體用)은 둘이 아니요, 하나니라." 하시니라.
(2) 그대의 호는 정산(鼎山)이니
눈여겨봐야 할 곳 중 하나는 바로 이 부분이다.
'鼎山' 은 도주께서 스스로 지은 도호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부분은 <또 '이도일체(以道一體)니라.' 하셨으므로 상제님의 도호 '증산(甑山)'에 이어 나를 '정산(鼎山)'으로 하셨느니라.> 에서 알 수 있듯이 "성사께서 도주께 내려주신 도호" 라는 뜻이다.
성사께서 도주께 도호를 내려주었듯이, 도주께서도 다음 진인에게 도호를 내려주게 준다.
(3) 다음 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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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조회석상에서 임원들에게 하문하시기를 "그대들 가운데 호(號)를 가진 사람이 있느냐?" 하시므로 모두 "아직 없나이다." 하고 아뢰니 "도인은 본시 자호(自號)가 있을 수 없고 그 사람의 품격과 포부에 맞게 장상(長上)이 지어 내리는 법이나, 그대들의 기국이 어떠한지 보리니 각기 호를 지어 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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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박한경은 충광(忠光), 임규오는 요산(樂山), 박중하는 태헌(太仚), 유철규는 풍산(豊山), 신상철은 초표(楚豹), 김영하는 춘담(春潭), 오영식은 백일(白日), 오치국은 청파(靑波), 권동흠은 덕포(德飽)라고 지어 올리니 상제님께서 감하시고 "모두 호의 기품(氣稟)이 아니로다. 한경의 충광은 아직 문을 못 찾은 격이고, 규오의 요산은 요산, 저산이니 못쓰겠으며, 철규의 풍산도 도호가 아니니라. 중하의 태헌과 상철의 초표는 넘치거나 천한 격이고, 영하의 춘담은 작은 격이며, 치국의 청파는 비록 조부의 유언이라 하나 내가 너희 팔자도 모두 뜯어고쳤는데 어찌 쓰며, 더구나 영식의 백일은 네 위에는 사람이 없는 격이니 너를 누가 지도하랴?" 하시니라. 그 후에 영식이 "저는 토암(土庵)으로 하겠나이다." 하니 윤허하지 않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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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너희 자작(自作)이 모두 호로서 부적(不適)하니 내가 사호(賜號)하리라. 한경은 우당(牛堂)이라 하고, 금현과 상철은 오미당(午未堂)과 청음(靑吟) 중에서 수의하여 나누어 쓰라." 하시니라. 이날 오후에 상철은 오미당, 금현은 청음으로 하기로 정하고 아뢰니 "금현은 호에 대한 상식이 있으니 청음은 철규에게 주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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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조회에서 다시 호에 관한 말씀을 하시고 규오에게 건월당(建月堂)이란 호를 내리시니 황감하게 받드니라. 상제님께서 또 "내가 생각하기에 신묘한 글자는 날 출(出)자니 양산(兩山)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는 산(山)자를 넣은 호는 못쓰느니라." 하시므로 금현이 "그 출자를 저에게 주시옵소서. 출재(出齋)로 하겠나이다." 하고, 최해창도 "저는 출암(出庵)으로 하겠나이다." 하니 윤허하시니라. 며칠 뒤에 "중하는 청농(靑農), 윤섭은 청룡(靑龍), 용화는 청헌(靑軒), 치국은 청당(靑堂), 이용직은 청인(靑仁), 영하는 청원자(靑源子), 이갑성은 토헌(土軒), 조호선은 청음(靑陰)으로 하라." 하시고 그밖에 몇 임원에게 사호하시며 "그대들이 아직은 호를 쓸 때가 아니니 간직하고 있으면 후일 도호로 쓰이게 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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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께서는 재밌는 분이기도 하시다. 아무 생각없이 읽어나가면 별다른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도인은 본시 자호(自號)가 있을 수 없고 그 사람의 품격과 포부에 맞게 장상(長上)이 지어 내리는 법> 이라고 말씀하시며, 이어 스스로 도호를 지어보라 하고, 지어오자 촌평을 하시고 나서, 사호(賜號)를 끝낸 후 중요한 한마디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은 아래와 같다.
"그대들이 아직은 호를 쓸 때가 아니니 간직하고 있으면 후일 도호로 쓰이게 되리라."
나는 이 부분이 우당께서 말씀하신 "천부적인 신성성이며 연속성" 이라 생각한다. 우당께서는 도주께서 하신 나머지 말씀에 관해서도 심심유오 하지 않으셨을까 싶다.
(4) 나머지 부분
나머지 부분은 도주께서 다음 진인에게 내려주신 지침이나 다름없다.
공통사항
1) 내가 생각하기에 신묘한 글자는 날 출(出)자니 양산(兩山)이 아니냐?
2) 그러나 너희는 산(山)자를 넣은 호는 못쓰느니라.
개별사항 ( 다음 진인이 '우당' 이라면? )
1) 한경의 충광 (忠光) 은 아직 문을 못 찾은 격이고
(참고)
8. 상제께서 최창조의 집에서 종도 수십명을 둘러 앉히고 각기 세 글자씩을 부르게 하시니라. 종도들은 천자문의 첫 글자부터 불러오다가 최덕겸(崔德兼)이 일(日)자를 부를 때 상제께서 말씀하시니라. “덕겸은 일본왕(日本王)도 좋아 보이는가 보다” 하시며 “남을 따라 부르지 말고 각기 제 생각대로 부르라”고 이르시니라. 이튿날 밤에 상제께서 덕겸으로 하여금 담뱃대의 진을 쑤셔 내되 한번 잡아 놓치지 말고 뽑아서 문밖으로 버리게 하시니 그는 말씀하신 대로 진을 바깥에 버리자 온 마을의 개가 일시에 짖는도다. 덕겸이 신기하게 느껴 “어찌 개가 일제히 짖나이까”라고 여쭈니 상제께서 가라사대 “대신명(大神明)이 오는 까닭이니라.” 그가 “무슨 신명이니까”고 여쭈니 상제께서 “시두 손님이니 천자국(天子國)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 오나니라”고 일러주셨도다.
10. 김창여(金昌汝)가 동곡에서 살았는데 여러 해 동안 체증으로 고생하던 중 어느 날 상제를 찾아 자기 병을 보아주시기를 애원하니라. 상제께서 그를 평상 위에 눕히고 배를 만지면서 형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글을 읽게 하였더니 창여는 체증으로부터 제생되었도다.
調來天下八字曲 淚流人間三月雨
葵花細枕能補袞 萍水浮踵頻泣玦
一年明月壬戌秋 萬里雲迷太乙宮
淸音鮫舞二客簫 往劫烏飛三國塵
22. 상제께서 어느 날 고부 와룡리에 이르사 종도들에게 “이제 혼란한 세상을 바르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도다. “황극신은 청국광서제(淸國光緖帝)에게 응기하여 있도다. 하시며 “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겨오게 될 인연은 송우암(宋尤庵)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시작되었느니라” 하시고 밤마다 시천주(侍天呪)를 종도들에게 염송케하사 친이 음조를 부르시며 “이 소리가 운상(運喪)하는 소리와 같도다” 하시고 “운상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군왕의 길이로다. 이제 황극신이 옮겨져 왔느니라”고 하셨다. 이 때에 광서제가 붕어 하였도다.
39. 상제께서 공사를 행하실 때 대체로 글을 쓰셨다가 불사르시거나 혹은 종도들에게 외워 두도록 하셨도다.
天下自己神古阜運回
天下陰陽神全州運回
天下通精神井邑運回
天下上下神泰仁運回
天下是非神淳昌運回
佛之形體仙之造化儒之凡節
道傳於夜天開於子 轍環天下虛靈
敎奉於晨地闢於丑 不信看我足知覺
德布於世人起於寅 腹中八十年神明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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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4개의 구절을 염두에 두고 도주님 말씀을 모셔왔다는 것은 말씀드려야겠군요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AjMx16nkE3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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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빼먹었군요^^
19. 금구 수류면 평목점(金溝水流面坪木店)에서 정괴산(丁槐山)이라는 자가 집안이 가난하여 주막의 술장사로 겨우 호구하면서 매양 상제를 지성껏 공양하더니 상제께서 어느 날 우연히 주막에 들렀을 때 괴산이 상제께 올리려 고 개장국을 질솥에 끓이다가 질솥이 깨어지므로 그의 아내가 낙담하여 울고 섰거늘 상제께서 측은히 여기셔서 쇠솥 하나를 갖다 주었더니 이로부터 그의 가세가 날로 늘어났도다. 그 후에 그가 태인 방교(泰仁方橋)에로 이사하게 되자 그 쇠솥을 수류면 환평리(環坪里) 정동조(鄭東朝)에게 팔았더니 이로부터 괴산은 다시 가난하게 되고 정동조는 도리어 살림이 일어나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 솥을 복솥이라 불렀도다.
종단대순진리회는 큰 판입니다 이 큰 판에 명함도 못 내미는 분들이 종통을 받았다고 주장을 하고싶은 것인지 참~궁금합니다 빙빙돌리질 마시고 현재의 종통을 누가 받으셨나요? 매사에 항상 본인만 뛰어나신다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