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 / 황인숙
내 귀는 네 마음속에 있다
그러니 어찌 네가 편할 것인가
그리고 내게
네 마음밖에 그 무엇이 들리겠는가
「종소리-----거짓말」부분 / 황인숙
자, 닿았는가
그대 상처의 뿌리에 내 손이 닿았는가
그리고 그때 그대
어떻게 아물 수 있겠는가.
희망 / 황인숙
어제가 좋았다
오늘도 어제가 좋았다
어제가 좋았다, 매일
내일도 어제가 좋을 것이다
「비 」부분/ 황인숙
거대한, 첩첩의, 비의 장벽으로
광활해지는
내 작은 방, 의 내밀함이여
「막다른 골목」부분 / 황인숙
문은 헤맨다
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토록 완강하게
그는 문을 흔들고 있다
문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는 부술 듯이 문을 두드린다
난 몰라. 널 모른다구! 알고 싶지도 않고
방금 젊지 않은 이에게 / 황인숙
너는 종종 네 청년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나는 알지
네가 켜켜이 응축된 시간이라는 것을
네 초상들이 꽉꽉 터지도록
단단히 쟁여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지나온 풍경들을 터지도록
단단히 쟁여 지니고 날아다니는 바람이
너라는 것을
그 때 너는 청년의 몸매를 갖고 있었다
희고 곧고 깨끗한
아, 청량한 너의 청년!
그 모습은 내 동공 안쪽
뇌리에 각인돼 있고
내 아직 붉은 심장에
부조돼 있다.
* 너는 '방금' 늙었다.다르게 말해서 네 늙음은 이제 갓 잡아올린 생선처럼 싱싱하다.네가 품은 주름은 "네 초상들"을 쟁여 넣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너는 네 모든 이전의 초상들, 풍경들을 품고 단단히 응축되었다. "꿈에 나는/거울을 본다/젊고 아리답다!/(...]/그러다 잠이 깨면/거울을 본다/젊어서 뭐 할 건데?"(꿈들) 젊어서 뭐
하겠는가? 세상이 꿈이고 그림자인데. 아리따워서 뭐 하겠는가? 늙음이란 게 이미 그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것인데. 노인은 그렇게 감정"과 행위"와 "잠"과 "기억"과 "욕망"과 "생"과 '흔적'의 서민이다(노인. ). 노인이 그 모든 것을 품은 보통 사람이라는 뜻이다.
「밤, 안개 속으로」 부분 / 황인숙
홀연히 너를 만나도 좋겠는데
무연하기만 해라, 우리는
나는 콧노래를 부른다
거울을 향해 걷는 듯
끊임없이 나인 듯한 것들이
마주 걸어와
나를 투과한다
무연"은 무연(無緣)이면서 무연(憮然)이다. 너를 만나고 싶었으나. 우리는 인연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멍하니 있었을 뿐이다. 건너편에서 많은 이들이, 수많은 네가 걸어왔으나 사실은 "끊임없이 나인듯한 것들"이었다. 그들은 너이면서 나의 분신들이다. 이것이 나무와 새의 왕복 운동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붙박였거나 떠돌았는데, 어느 쪽이든 다른 쪽을 포괄하지 못했다. 나는 갈라졌고,갈라진 서로에 대해서. 거울을 대한 것처럼, 권태를 느꼈다. "아는 사람이나 우연히 만나면, 아니!/누구고 마주칠까. 지겹다..... 어디로.."(진공) 이 분신, 이 아바타, 이 도플갱어는 지겹고 무섭다.
자신의 도플갱어를 본 사람은 곧 죽는다고 한다. 다른 나라는 거.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그 공포가, 바로 내가 살아 있음을 증거한다.
(-----)
자명한 산책 / 황인숙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금빛 넘치는 금빛 낙엽들
햇살 속에서 그 거죽이
살랑거리며 말라가는
금빛 낙엽들을 거침없이
즈려도 밟고 차며 걷는다
만약 숲 속이라면
독충이나 웅덩이라도 숨어 있지 않을까 조심할 텐데
여기는 내게 자명한 세계
낙엽더미 아래는 단단한, 보도블록
보도블록과 나 사이에서
자명하고도 자명할 뿐인 금빛 낙엽들
나는 자명함을
퍽! 퍽! 걷어차며 걷는다
내 발바닥 아래
누군가가 발바닥을
맞대고 걷는 듯하다
황인숙은 이 세계를 "자명한 세계"라 불렀다. 스스로 밝은 이 세상 아래에, 흐릿하고 어두운(그림자는 본래 어둡다) 또 다른 내가 발바닥을 맞대고 걷"고 있었다. 우리는 황인숙이 "여기"와 "거기" 사이의 왕복 운동으로 세상을 설명했음을 보았다. 그 각각의 자리를 대표하는 주체가 나무와 새였으며, 나와 다른 나였다. 나는 나 자신과 다른
나(혹은 너)를 왕복하며, 자명한 세상과 자명하지 않은 세상을 두루 겪었다. 네가 나의 변체라고 해서, 시인이 그려 보인 세계를 단순히 유아론의 산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그 반대다. 실제로 시인이 하고 싶었던 말은, 모든 분열과 분리 뒤에 그것들을 끌어안거나 통합하는 또 다른 힘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럿으로 갈라졌지만, 그것은 나를 분열증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이타로 이끈다. 세상은 여러 겹으로 나뉘었지만, 그것은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게 아니라 풍요롭게 한다.
(---)
서쪽 창에 의자를 놓고 / 황인숙
나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그린 것일까?
이지러진
잠결의 낙서
모든 것의 바로 그것인
그림자.
이 시를 황인숙의 시론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시작에 대해 두 가지 대답을 내놓는다. 이것들은 "잠결의 낙서"여서 "이지러진" 것이다. 이 세상이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내 무의식에 조응하여 일그러진 꿈의 산출물이라는 얘기다. 나는 "모든 것 자체가 아니라 모든 것의 "그림자"를 그렸다. 그런데 그 그림자가 바로 "모든 것의 바로 그것"이었다. 실체가 아닌 그림자가, 분신이,
바로 그 실체였다는 얘기다. 나는 도플갱어의 꿈이었으며, 도플갱어는 나의 꿈이었다. 거듭 말하자. 나는 사로잡힌 나고 너는 나를 벗어나 떠도는 나다
*권혁웅 비평집, <미래파> 도플갱어의 꿈 -황인숙의 시세계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