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
직접 실측하여 일러스트로 그린 도면이라 실제 면적과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이 집은 2002년에 준공된 전용면적 45.12m2의 오래된 빌라예요. 거실 없는 구조로 주방, 큰방, 작은방, 화장실 그리고 2개의 베란다로 구성되어 있어요.
수리 Before
집의 민낯을 만나다
이 집에서 5년간 생활하셨던 전 주인분의 짐이 모두 빠진 후 마주한 집의 민낯은 실로 당황스러웠어요. 결로 현상때문에 덕지덕지 붙인 단열 벽지들과 모서리마다 넓게 뿌리 내린 곰팡이, 그리고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곳의 구조물을 보는 순간 '이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게다가 계약 전 집을 보러 왔을 때는 형광등 탓에 집이 밝다고 느꼈는데, 대낮에 집의 모든 등을 끄니 해가 전혀 들지 않는 어두 컴컴한 동굴 같은 집의 현실을 마주해버렸죠.
수리 After
곰팡이 가득한 집이 아빠의 사랑이 담긴 깨끗한 집으로
운 좋게도 저희 아빠께서 청년 시절 건설 현장에서 일을 배우셨고, 집 고치는 솜씨가 좋으셔서 저희 신혼집도 손수 고쳐주셨어요. 케케 묵은 곰팡이를 락스로 전부 닦아내고 하수구를 꽉 막고 있던 담요 같은 머리카락 뭉치들을 빼내고 친환경 페인트로 집의 모든 벽과 천장을 깨끗하게 칠해 주셨어요. 결혼 준비로 바빴던 제가 거들었던 것은 페인트를 칠하기 전에 테이핑 작업이 전부예요. 자 그럼, 본격적으로 집들이를 시작해 볼게요.
거실 Before
사진에 보이듯이 서로 다른 벽지가 각 벽을 덮고 있었고, 창문에는 뽁뽁이 스티커가 전체적으로 붙어 있었어요. 베란다에는 바닥과 벽 전체에 곰팡이가 가득했고 보일러 배관은 다 찢어져 자칫하면 누출 사고로 이어질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어요.
거실 After
저희 집에는 거실이 없기에 과감하게 큰방의 문을 떼고 거실처럼 쓰고 있어요. 처음에는 소파와 티비만 있는 공간이었지만 남편 생일 때 제가 컴퓨터를 선물하면서 소파 옆 공간에 컴팩트한 책상을 두어 작은 업무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집의 모든 벽이 콘크리트 벽이라 못질을 하려면 전용 드릴과 칼블럭 작업을 필수로 해야 했어요. 커튼 걸이를 어떻게 하나 고민했는데 '안뚫어고리'라는 신세계가 있더라고요. 내구성이 어떨까 걱정했는데 1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문제없이 튼튼하게 커튼을 달고 있네요.
문을 떼어낸 부분에 패브릭 가리개를 두었어요. 집에 처음 놀러 오는 손님들마다 이자카야 들어오는 기분이라고 하시네요. ㅎㅎ
결혼 전부터 티비는 무조건 세리프!를 외쳤던 저였어요. 셋탑박스와 전선은 티비 뒤 벽에 선반을 설치해 깔끔하게 올려두었어요. 거실은 손님들이 왔을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라서 트롤리에 보드게임과 사진 앨범 등 즐길 거리를 수납했어요.
거실에서
티비를 보면서 식사할 때는 접이식 테이블을 펼쳐서 소파 다리에 등을 기대고 먹어요. (한국인 국룰!)
모니터 뒤에는 리무버블 스티커를 이것저것 붙여서 귀엽게 꾸며봤어요.
무프레임 아치 전신거울은 1년 전 오늘의집에서 구매한 제품인데 브랜드가 없어졌나 봐요. 찾아도 안 나오네요. 책상 밑으로 본체와 지저분한 전선들이 보이는 게 싫어서 이케아 행주로 가렸어요. 이케아 행주는 만능입니다.
결혼 전, 친구들과 예비 신랑의 합작으로 깜짝 파티도 했고 이 작은 거실에서 만든 즐거운 추억들이 많네요.
거실 베란다
거실 베란다 바닥을 수놓고 있던 곰팡이를 모두 제거하고 방수 페인트로 벽과 천장을 칠했어요. 집주인 분이 남기고 간 원목 선반에 계절 지난 신발과 잡동사니를 보관하고 있어요. 낡은 보일러가 보기 싫어서 압착 커튼봉을 설치하고 테이블보를 걸어 주었어요.
오래된 빨래 건조대를 철거하고 화이트 톤의 알루미늄 건조대를 설치했어요. 건조기가 있다 보니 크게 쓸 일은 없겠지만 아예 없으면 또 곤란할 것 같더라고요.
부부침실 Before
집주인 분이 살 때는 딸아이 방으로 쓰였던 작은방도 스트라이프 무늬의 두꺼운 단열 벽지가 붙어 있고 벽에는 곰팡이와 손때가 가득했어요.
부부침실 After
벽과 천장, 베란다까지 모두 페인트를 새로 칠했어요. 서향 집이라 한여름에 잠시 해가 지나는데 그 순간이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이 집에 살면서 해가 잘 드는 집에 사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꼈어요.
침실 가구들은 모두 월넛 색상으로 통일했어요. 묵직한 원목 가구가 주는 따뜻함이 정말 좋아요.
빔프로젝터는 집들이 선물로 받았는데 거실에 티브이가 있어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가끔씩 침대에 누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색다른 느낌이에요. 사진에 있는 애니는 요즘 최애 [귀멸의 칼날] 이예요. (유곽편 방영 중인 거 모르시는 분 없죠?!)
저의 작은 브랜드에서 2022년 달력도 출시해 봤어요. 원목가구를 좋아하다 보니 문구 소품을 만들 때도 취향이 반영되더라고요.
화장을 거의 안 하는 편이고 서랍장 위를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어서 화장품은 모두 서랍 안에 보관하고 있어요.
침실 베란다 Before
짜잔, 이 집의 가장 큰 반전 포인트는 침실 베란다예요. 옛날 집이라 베란다 면적이 보기보다 큰데요, 베란다를 그저 베란다 용도로 사용하면 창고가 돼버릴 것 같아서, 바닥에 타일 카펫을 깔고 작은 책상을 두어 저만의 작은 작업실로 꾸몄어요
침실 베란다 After
꽃무늬 빈티지 커튼과 라탄 조명 갓으로 스타일링했어요.
식물이 주는 에너지는 대단해요.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공간을 가득 채워주거든요. 해가 들지 않는 서향 집이라 다양한 아이들을 떠나보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주는 몇몇 아이들이 저와 함께하고 있어요. 대표적으로는 몬스테라, 제나두 셀렘, 테이블야자 등이 있어요. 아, 박쥐란과 선인장 친구들도 잘 견뎌주고 있네요 :)
소장 중인 패브릭 제품들은 자리를 바꿔가며 여기저기 스타일링하고 있어요. 커튼 하나로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되는 것, 이런 소소한 즐거움 때문에 집을 가꾸는 게 아닐까요?
벽면에는 제가 그린 그림이 잔뜩 붙어 있어요. 남이 그린 그림보다 내 그림이 더 좋더라고요. 자기애가 강한 걸까요?
작업실에서는 외주 디자인 업무를 하기도 하고, 브랜드에서 런칭한 제품들을 촬영하거나 포장 업무를 하고 있어요.
한 가지 단점이라면.. 겨울에 너무 춥다는 거. 외벽이라 외풍도 심하고 단열이 전혀 안되는 느낌이에요. 최근에 히터를 장만했지만 누진세 폭탄이 우려되어 자주 켜진 못하고 있어요 🤣
주방 Before
현관과 바로 이어지는 주방도 벽면 가득 곰팡이가 있었고 2년 전 교체했다던 싱크대도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주방 After
최대한 손을 대지 않고 원하는 느낌을 낼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큼직큼직한 타일부터 가려야겠다고 생각되어 타일 시트지를 붙여, 조금 더 따뜻한 느낌을 주었어요. 그 외에는 주방 집기와 가전을 스틸 소재로 통일하고 나무색 창틀과 몰딩에 맞춰 식탁과 의자 등 큼직한 가구들을 원목 가구로 배치해 전반적으로 포근한 주방을 완성했어요.
기존 설치된 십자가 모양 형광등만으로는 어두운 느낌이 들어 콘센트형 조명을 식탁 위 천장에 설치했어요. 식탁 위 액자 속 일러스트는 직접 그린 그림들로 싫증이 날 때마다 새로운 그림으로 교체하고 있어요.
신혼집이다 보니 결혼 준비를 할 때 소중한 사람들이 선물해 준 가전제품들이 주방을 든든히 채우고 있어요. 가장 먼저 들였던 엘지 냉장고는 저의 혈육인 엄마아들이 선물해 줬고 전자레인지와 정수기는 시어머니께서, 밥솥은 6명의 든든한 친구들이 집들이 선물로 준 두둑한 현찰로 장만했어요. 혼수를 가족과 지인들이 하나 둘 채워주다 보니 이 집에 더욱더 애정이 샘솟는 것 같아요.
치워도 티가 안나는 싱크대 위 모습이에요.
필로티 2층이라 주방 창문으로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 일이 종종 발생해서, 얇은 소창 원단으로 바란스를 만들어 창틀에 붙였어요. 사생활은 보호하지만 너무 답답하지 않아서 만족스러워요.
밥솥은 사용하지 않을 땐 키친크로스로 가려두어요. 몇가지 패브릭 소품으로 인테리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점이 참 재밌어요. 올스텐 식기건조대는 입주 초에 구매했어요. 큰 면적을 차지하지만 잘 샀다고 생각하는 아이템이에요.
신혼집에서 지낸 지 3개월 되던 때에 카페장을 구입했는데, 그제서야 주방이 완성된 느낌이더라고요! 아 참, 저희 집 가구들은 거의 90% 이상 오늘의집에서 구입했어요. 한동안 정말 열심히 사댔죠. (후후)
카페장 아래 수납공간에는 짠, 이렇게 저희 부부의 유일한 주류 취미인 와인이 보관되어 있어요. 둘 다 술을 즐겨 하진 않아서 연애 5년 동안 같이 술 한잔했던 날도 없었던 것 같아요. 결혼 준비를 하면서 지인들 초대도 자주 하고 둘만의 시간을 자주 갖다 보니 음식과 함께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와인의 매력에 포옥 빠져 버렸답니다. (물론 많이 마시지도 못하지만요 ㅎㅎ)
카페장 우측으로는 자동 휴지통과 공기청정기, 그리고 청소기와 분리수거함을 두었어요. 분리수거함 옆으로는 신발장이 있답니다.
화장실과 주방 사이에 벽 공간이 있었는데 어떻게 채울까 하다가 낮은 책장을 놓았어요. 책장 서랍에는 책과 잡동사니를 수납하고 선반에는 취향이 담긴 소품들을 전시했어요. 초반에는 기분 따라 바꿔주곤 했는데 이제는 귀찮아져서 한동안 같은 모습으로 유지 중이에요.
오래된 인터폰이 보기 싫어서 무인양품 손수건으로 가려줬는데 가성비 좋아요. 화장실에서 씻고 나와서 바로 쓸 수 있도록 스킨케어 제품과 핸드로션도 올려 두었어요.
욕실 Before
욕실은 이 집에서 제일 곤란했던 공간이에요. 리모델링을 하자니 잠깐 지낼 전셋집이고, 그냥 살자니 누렇게 바랜 호텔식 세면대와 곳곳이 녹슨 세면 자재들은 손도 갖다 대기 싫었어요. 욕실 역시 우리 집 숨은 고수.. 능력자 아빠가 직접 세면대를 철거하시고 새 세면대를 설치해 주셨어요. 오래된 변기 커버도 비데로 교체하고 무엇보다 녹물이 줄줄 흐르던 샤워기도 전부 철거 후, 제가 부모님과 함께 살 때도 즐겨 사용하던 해바라기 수전을 설치해 주셨어요.
욕실 After
천장도 묵은 때와 누수 흔적으로 얼룩덜룩했는데 욕실용 페인트로 깔끔하게 칠해 주시고 몰딩과 천장 자재 사이 벌어진 부분도 실리콘으로 깔끔하게 보수해 주셨어요. 유리 선반도 설치하고 휴지걸이와 수건 걸이까지 싹 새 걸로 교체했어요. 수납장은 코팅이 다 벗겨질 정도로 낡고 부식됐었는데 네이비 컬러의 시트지를 붙여 시크한 수납장으로 위조(?) 했어요.
부족한 수납공간은 수납장 옆면에 부착하는 틈새 선반으로 해결했어요.
현관
현관이에요. 신발장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별도로 구입해야 했어요. 천장까지 꽉 채우면 집이 답답해 보일 것 같아 필웰의 낮은 신발장을 두었는데 저희 부부가 신발 욕심이 많아서 수납공간은 턱없이 부족해요 ^^; 그래서 지난 계절의 신발들은 모두 베란다에 보관하고 있어요. 중문이 없어서 현관문을 열면 바로 주방 내부가 훤히 보였어요. 파티션을 둘까 하다가 쉬폰 포스터를 천장에 달았더니 비칠 듯 말 듯 은근하게 가려줘서 답답해 보이지 않고 좋더라구요.
신발장 위에는 외출 시 필요한 물건들과 거울을 두어 나가기 전에 간단한 점검을 할 수 있어요.
현관 바닥도 오래된 타일이라 흉측했는데. 조각 타일을 깔아주니 청소기로 치울 수도 있고 겨울철 냉기도 덜 올라오는 것 같아서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현관 문에는 원래 두툼한 스펀지 단열재가 붙어 있었어요. 그도 그럴게 현관에서 들어오는 외풍이 장난 아니거든요. 하지만 저는 추위보다 못생긴 현관을 더 참을 수 없는 인간이라, 모두 걷어내고 아빠가 예쁜 초록색 페인트를 칠해 주셨어요. 초록색 현관 문에 우산꽂이와 마스크 걸이를 붙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