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산 숲길로 들어
주중에 칠석과 처서가 지난 팔월 하순 일요일이다. 자연학교는 평일과 주말 구분이 없는 연중무휴라 날이 밝아오기 전 이른 시각 등굣길에 올랐다.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서늘해지긴 해도 한낮은 더운지라 오전에 반나절 산행을 다녀올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아침 첫차로 운행하는 버스를 타려고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정류소에서 삼정자동 가는 버스를 기다리니 운행 노선은 달라졌다.
나보다 먼저 와 버스를 기다리던 한 아낙은 첫새벽에 어딘가로 일을 나가는 걸음인데 거기로 가는 노선의 번호가 사라졌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내가 타는 버스로 시청 근처 정우상가 건너편으로 나가 차를 갈아타십사고 일러주었다.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탔더니 중앙동에서 잠시 창원대로로 나갔다가 다시 주택지구로 돌아와 삼정자동 유니온빌리지 아파트단지 근처에서 내렸다.
불모산 숲길과 용제봉으로 드는 등산로를 찾아 데크를 따라 오르니 맞은편 안민고개와 장복산 산등선으로는 낮은 구름과 안개가 걸쳐져 있었다. 등산로와 인접한 삼정자동 마애불상 앞에 조성된 꽃밭은 칸나와 해바라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꽃들이 화사했다. 불심이 깊은 한 할머니가 꽃을 가꾸고 새벽마다 주변을 청소한다고 들었다. 나는 마애불상 앞으로 다가가 손을 모으고 나왔다.
불모산과 용제봉 숲으로 드는 등산로는 아침 산행을 나선 이들이 더러 지나쳤다. 부러움을 살만큼 건강과 금실을 자랑해도 될 듯한 중년 부부가 동행인 경우도 있고 나처럼 홀로 나선 이도 있었다. 나는 무릎이 온전하지 못해 빠르게 걷지 못해 뒤따라오던 이들을 다수 앞세워 보내기도 했다. 농바위를 지나면서 벌초 시즌이 다가옴을 느꼈는데 우리 집안은 오는 주말 예정하고 있다.
농바위는 세워둔 장롱처럼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100년 전 계해년에 유의미한 내용을 남겨 놓았는데 기미년 삼일운동 직후였다. 50년 전 계획도시 출범으로 지금은 사라진 불모산동 원주민이었던 15 성씨 45인이 성묘계를 조직해 선대의 묘소 위치를 바윗돌에 새겨 놓았다. 용제봉과 불모산 일대 산등선에 그 당시 불리던 지명들이 한자어로 기록되어 향토사 연구 자료가 된다.
농바위와 평바위를 지나 상점령과 불모산 숲길로 가는 갈림길에서 용제봉으로 향했다. 올여름 영지버섯을 찾아내느라 장마 기간과 한더위에 몇 차례 용제봉 숲으로 들었다. 날씨가 무더웠지만 그때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 숲속에서 삼림욕을 누리고 영지버섯을 채집한 성과를 거두었다. 숲을 빠져나가기 전 맑은 물이 흐르는 인적이 없는 계곡에서 알탕을 즐기며 더위를 잊고 나왔다.
이제는 더위가 가셔 알탕은 고사하고 탁족도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계곡에 가로 놓인 목책 교량을 건너기 전 등산로를 벗어나 숲으로 들었다. 여름 끝자락 남겨진 영지버섯이 있을까 봐 숲을 누벼볼 참이었다. 벌초를 다녀가지 않은 무덤을 몇 기 지나면서 자색으로 물든 영지버섯을 한 무더기 찾아냈다. 영지를 채집하는 선행주자가 다녀가면서 눈에 띄지 않아 남겨진 이삭일 듯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섞여 자라는 혼효림 숲을 한동안 누비면서 끝물 영지버섯을 몇 조각 더 찾아냈다. 산비탈을 내려서니 희미한 길이 보였는데 등산로가 아니고 성묘객이 다녀가는 흔적인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래서 낫과 갈퀴를 손에 든 벌초객 둘이 올라왔다. 내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인 두 사내는 당연히 형제일 듯했다. 인사를 나누며 성씨를 물어봤더니 청주 송 씨라고 했다.
나는 숲을 빠져나가 계곡에서 배낭을 벗어두고 모자의 옷에 붙은 거미줄을 정리하고 이마의 땀을 씻었다. 아침에 들어왔던 등산로를 빠져나가면서 몇몇 지기들에게 카톡으로 농바위와 영지버섯 사진을 날려 보냈다. 농바위 각자가 궁금해 회신이 온 이가 있어 앞서 언급한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줬다. 집 근처로 와 반송시장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농협 마트에 들러 시장을 봐 왔다. 23.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