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든 막장이었네
가는 곳마다 벽이 서 있었지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희뿌연 새벽 출근길에도
보이는 모든 것이 벽이었고
보이는 모든 곳이 굴이었네
모두가 잠든 밤
내 몸 늑골 어느께
발파 구멍을 찾아 더듬네
터트려야 할 가장 큰 벽은
깨져야 살아날 광맥이었지
시를 읽기 전에 "시만 아는 나에게"라는 제목으로 쓴
<시인의 말>을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계약직 특수교육지도사로 십여 년 넘게 장애아이들을 보아왔다. 특수교육은 말이 쉽지 자칫 특수학대가 될 수도 있어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내가 본 자폐 소년은 저만의 세상에서 누굴 미워하지도 않았고 불행하지도 않았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아주 해맑고 행복했다. 그들을 괴롭히는 건 오히려 세상 다수가 옳다고 만든 틀이었다.
나도 자폐아다. 오래전부터 그러했지만 이젠 시만 아는 자폐아로 살아간다."
정지민 시인의 아버지는 광부였습니다.
그런 연유로 시인은 도계 탄광촌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막내딸이 시인이 되는 것은 광부였던 아버지의 꿈이었다지요. 막내딸이 마침내 시인이 되었지만, 마침내 시집을 냈지만, 광부였던 아버지는 막장보다 더 깊은 곳으로 떠난 지 오래라지요. 그래도 그곳에서 시인의 아버지는 기뻐하실 겁니다.
막내딸도 이제 어엿한 광부, 시를 캐는 광부가 되었으니, 아버지도 그곳에서 자랑스러워 하실 겁니다.
정지민 시인의 첫 시집 상재를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세상의 단단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그런 시편들을 펼쳐 나가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