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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강즉절(太剛則折)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 쉽다는 뜻으로, 나무도 사람도 마냥 강하기만 하면 부러지기 쉽기 때문에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太 : 클 태(大/1)
剛 : 단단할 강(刂/8)
則 : 곧 즉(刂/7)
折 : 부러질 절(扌/4)
출전 :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
천지의 기운이 화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나니 화한다는 것은 음양이 고르다는 것이다.
天地之氣, 莫大於和, 和者, 陰陽調.
낮과 밤의 나누어짐으로 인해 만물이 생겨나는데, 춘분에 생하고 추분에 열매를 맺으니 낳고 열매 맺음이 반드시 정묘하게 화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
日夜分, 而生物, 春分而生, 秋分而成, 生之與成, 必得和之精.
그러므로 성인의 도는 너그럽되 엄숙하고 엄하되 온화하며 부드럽되 곧고 엄격하되 어질다.
故聖人之道, 寬而栗, 嚴而溫, 柔而直, 猛而仁.
지나치게 굳세면 꺾이고 지나치게 부드러우면 힘이 들어가나니, 성인은 강유를 겸비하여 자신을 바르게 함으로써 도의 근본을 얻는다.
太剛則折, 太柔則卷, 聖人正在剛柔之間, 乃得道之本.
태강즉절(太剛則折)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 쉽다는 말이다.
연세 좀 드신 분들은 최인규(崔仁圭)라는 사람을 다 알 것이다. '3·15 부정선거의 원흉(元兇)'이라는 것을.
1958년 3월부터 내무부 장관(지금의 행정자치부 장관)을 맡아 1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부정선거를 총기획하고 실행해 자유당 소속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과 이기붕(李起鵬) 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최고의 공훈을 세운 사람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야당 후보 조병옥(趙炳玉) 박사가 갑자기 서거하는 바람에 당선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는 것이었다. 그때 야당 후보는 장면(張勉)이라 이기붕은 상당히 위험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당선을 위해서 최인규를 선거를 총괄하는 내무부 장관에 임명한 것이다.
최인규는 조직적인 부정선거에 공무원과 경찰을 총동원하고, 심지어 조직폭력배를 대거 동원했다. 투표 당일 기표소 안에 경찰이 지키고 서서 자유당에 찍는지 안 찍는지 감시를 했고, 개표소로 투표지함을 싣고 가는 동안에 투표지함을 중간에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한 날 오후부터 시위가 일어났다. 그는 발포명령을 내려 학생들을 죽게 하고, 또 공산주의자로 몰았다. 얼마 뒤 사표를 내고 국회의원 일만 전념하겠다고 결심했지만, 4·19 이후 체포되어 마침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가 설치며 부정선거를 지휘할 적에 아는 이들이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고 충고했으나 자기를 알아 준 대통령에게 충성하기 위해서 더 설쳤다. 대통령의 말이라면 "지당(至當)하신 말씀입니다"고 하며 분별없이 무조건 따랐기에 별명이 '지당장관'이었다. 최인규 때문에 이 대통령은 부랴부랴 하와이로 망명하고, 이기붕 일가는 자살하고, 자유당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1979년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야당인 신민당 총재가 되었다. 그 이전의 총재와 달리 사사건건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게 강하게 저항하여 대통령을 계속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 차지철(車智澈) 경호실장 등이 김영삼 제거작전에 들어가 무리한 수를 써서 김영삼의 야당 총재직과 국회의원직을 박탈하였다.
9월 29일에 국회에서 제명했는데 곧바로 부산, 마산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한 달도 안 된 10월 26일 박 대통령은 그의 가장 심복으로 여겼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金載圭)에 의해 처참하게 시해되었다. 차지철 때문에 박 대통령이 시해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淸)나라의 학자이자 대신인 증국번(曾國藩)은 그의 아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천지의 도리는 단단함(剛)과 부드러움(柔)이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라, 한 쪽도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부드러우면 쓰러지고,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
요즈음 추미애 장관이 하는 조치는 너무 강한 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의 마음에 들게 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하는 일이 이치에 맞는지 역사의 흐름에 맞는지를 반드시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단단한 쪽으로만 치달려서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강함과 유연함의 조화
태강즉절(太剛則折),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 쉽다는 말이다. 나무도 사람도 마냥 강하기만 하면 부러지기 쉽기 때문에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숲속의 갈대와 고무나무가 서로 자기가 더 강하다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고 있었다. 고무나무는 갈대를 보고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쓰러지는 네가 무슨 힘이 있느냐"며 비난했다.
마침 갈대가 반박하려 할 때 갑자기 강풍이 불어왔다. 갈대는 허리를 굽히고 바람에 몸을 맡겨 뿌리가 뽑히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람에 꼿꼿이 맞선 고무나무는 뿌리째 뽑혀버렸다.
고무나무는 왜 쓰러진 것일까? 강풍에 맞설 용기는 있었지만 유연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대는 유연함이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사람의 인성을 흑백 논리로 말하면 강함과 유연함 이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 따라서 강함을 추구해야 하는가 아니면 유연함을 지녀야 하는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져진 화두이기도 하고 성공 처세술의 미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람들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녀들의 내면에 담겨진 강함과 유연함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이름으로 한 시대의 어울림과 조화로움에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
유연함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것이지만 그것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후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증가하는 지식의 물결속에서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바쁜 생활로 교류와 소통이 단절되어 서로 간에 생기는 거리감, 이런 저런 가정사로 더해지는 스트레스 등이 우리를 많이 힘들게 한다.
이런 것들을 견디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이도 있고, 자살로 현실을 도피하는 이도 있다. 이러한 비극이 생겨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이 문제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바탕에는 자신을 향한 신뢰와 유연함 부족 아닐까 싶다.
삶의 유연함은 어떤 도전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나약한 인생을 강하게 만들어내는 영양제이기도 하다. 사회 안팍에서 여러 가지 요동이 심한 요즘, 지도자들의 성숙하고 절제된 언어와 바르고 부드러운 리더십이 절실해 진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긴다
以柔克剛 – 司馬懿의 策略
치열한 쟁패전이 벌어졌던 삼국(魏, 蜀, 漢)시대 때 사마의는 유일하게 제갈량(諸葛亮)과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는 그를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사마의가 제갈량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책략가였음은 '삼국귀진(三國歸晉; 삼국은 결국 진나라로 돌아갔다)' 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증명해주고 있다.
'진서(晉書)'에서는 사마의를 '웅대(雄大)한 전략(戰略)과 결단성(決斷性), 그리고 용맹(勇猛)'을 겸비한 인물이라 평가하고 있다. 남송(南宋)의 진량도 "사마의가 없었다면 위(魏)나라의 천하통일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사마의는 '두 임금의 부탁으로 세 왕조를 보좌'하면서 그 탁월한 재능을 과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가 사용한 권모술수(權謀術數)의 일부는 지금까지도 현실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모략(謀略)에 능할 뿐 아니라 선견지명이 있었으며, 일을 처리할 때도 경직되지 않고 시기에 맞게 운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의 모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고, 음으로 양을 대처하며, 굽히는 것으로 펼 때를 구한다(以柔克剛, 以陰克陽, 以屈求伸)'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이 원칙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을 뿐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제왕의 위업을 물려주었다.
'노자(老子)'에는 "지극한 부드러움은 천하의 지극한 견고함도 깨드릴 수 있다"고 했다. 물방울이 떨어져 돌에 구멍을 뚫는 것이 그 실례다. 그러므로 노자는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함이라 한다(守柔曰强)"고 말했던 것이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기 위해선 우선 조급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빠른 기간 내에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방법은 반드시 '음(陰)으로 양(陽)을 대처하는' 방법이 보조되어야 한다. 양(陽)이란 이미 드러난 것을 가리키고, 음(陰)이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양자는 직접 대립하지 않고 오랜 기간 잠재적인 갈등을 거쳐 시기가 성숙했을 때만 공개적인 대결로 나타난다. 이때는 일반적으로 음(陰)이 압도적인 위치에서 양(陽)을 격파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음극양(以陰克陽; 음으로 양을 극복한다)'이 이루어진다.
'이유극강(以柔克剛)'이나 '이음극양(以陰克陽)'은 실제로 운용될 때는 모두 '이굴구신(以屈求伸; 굽힘으로써 펼 때를 구한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약한 자가 자신의 불리한 처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모험을 한다면, 그 결과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 되고 만다. 이때 필요한 것은 냉정하게 시기를 판단한 뒤에 먼저 부드럽고 나약한 모습으로 나서는 것이며, 다음에는 암암리에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시적인 굴욕을 참는 일이다. 그리하여 모든 조건이 성숙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시기가 되면, 일거에 상대를 격파해 애초의 목표를 달성한다. 사마의의 성공 비결은 정치적인 권모술수를 실천하면서 이러한 점을 잘 운용했다는 점이다.
논어(論語)에서 '중용(中庸)이 최고'라는 표현으로 처음 나타난 중용은 모택동(毛澤東)에게서 '공자(孔子)의 가장 큰 발견이자 공헌'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이른다.
중용의 원칙이란 '매사에 선입견을 갖지 않는다(執中)'와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알맞은 방법을 채용한다(行權)'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집중(執中)과 행권(行權)'이라는 중용의 원칙에 통달하면 승리의 기쁨을 얻지만, 그렇지 않으면 실패의 쓴 맛을 보게 된다.
'중용의 원칙'이 상업, 전쟁, 관직생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로 운용된 사례를 살펴보고, 거기에서 도출된 여러 문제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중용의 역할을 구체적, 입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면서, 중용을 가르쳐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채근담(采根譚)'을 추천한다.
진정한 강함
진정한 강함은
닫힌 강함이 아니다.
단순한 강함은
한바탕 강함이 아니다.
진정한 강함은 섬세함이다.
철저한 자기 절제력이다.
안의 깊음으로 불의에 강함이다.
부드러운 강함이고 열린 강함이고 복잡성을 품어낸 강함이다.
진정한 강함은 비록 작아도 여려도
생을 두고 끝까지 정진하는 것이다.
흔들려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 박노해의 '겨울이 꽃핀다' 중에서 -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긴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은 결코 한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일회성이 아닙니다. 일생에 걸친 싸움입니다. 흔들려도 끝까지 가는 고독한 싸움입니다. 진정한 강함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나옵니다.
철학자 중에서 부드러움의 힘을 처음 말한 것은 노자일 것이다. 노자의 무위자연 철학의 바탕은 도를 근본으로 하는데 그 도를 이루는 실체는 비움과 부드러움이다.
노자는 도덕경 36장에서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물은 부드럽고 약하다. 하지만 물은 바위를 뚫고 천길 땅속을 헤집는다. 물만큼 외유내강한 것도 드물다. 부드럽고 약해 보이지만 단단하고 굳센 것이 물을 이길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물의 성질을 품는자는 부드러운 태도를 가진다. 부드러운 태도는 여유와 느긋함 없이는 나올 수 없다. 아울러 부드러움은 겸손과 유연함의 결과다.
사람들은 강한 것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세상을 지배하고 강한 것은 굳세고 단단하다. 하지만 굳센 것은 더 큰 굳센 것과 맞부딪칠 때 꺽이고 부러진다. 강한 것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강성한 것은 언제나 꺽이기 마련이다.
반면에 부드러운 것은 약하다. 약한 까닭에 잘 휘어지고 부러지지 않는다. 물은 장애물을 만나면 에돌고 천천히 휘감아 나간다. 그를 애써 힘으로 이기려 들지 않는다. 이게 물의 덕성이다.
물과 마찬가지로 풀은 얼마나 유약한가? 풀은 약하지만 거센 바람이 휘몰아쳐도 부러지지 않는다. 태풍에 부러지는 것은 단단하고 큰 나무들이다. 풀은 태풍에도 끄떡없는데... 그것은 풀이 태풍에 맞서지 않는 까닭이다.
세찬 바람이 불면 약한 풀은 조용히 몸을 낮게 숙인다. 풀이 그렇듯 모든 부드러운 것들은 만물을 제압하는 강한 힘에도 꺽이는 법이 없다. 이렇듯 부드러움이 진정한 강함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평론가이며 사상가, 시인, 법학자로서 유명한 에머슨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어느 날 오후, 에머슨은 책을 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아빠! 좀 도와주세요. 송아지가 말을 안 들어요."
아버지가 쳐다보니 아들이 송아지하고 씨름하는지 끙끙 대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 에머슨이 송아지를 외양간으로 넣으려고 애썼지만 송아지는 막무가내로 말을 듣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일어나 아들 곁으로 다가가 고삐를 힘껏 당겨 보았다. 그러나 송아지는 꿈적도 하지 않고 오히려 도리질을 쳤다. 혼자는 할 수 없어서 아버지가 말했다. "에머슨! 네가 뒤에서 밀어보렴, 아빠는 앞에서 잡아당길게."
에머슨이 뒤에서 밀고 아버지는 앞에서 다시 당겨 보았지만 송아지는 앞발로 버티며 기를 쓰고 나아가질 않으려 했다. 부자는 지쳐 힘이 빠지는데 오히려 송아지는 난폭해져만 가고 있었다. 에머슨과 아버지는 송아지를 원망하며 기진맥진하여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던 나이 많은 하녀가 달려 나오더니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송아지 입에 살며시 물려주는 것이었다. 부자는 의아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토록 난폭해하며 따라오지 않으려 버티던 송아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젖을 빨듯이 하녀의 손가락을 빨기 시작하면서 온순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녀는 손가락을 송아지에게 물린 채로 뒷걸음질치면서 외양간으로 향했다. 송아지는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외양간으로 들어갔다. 부자지간에 힘을 합해 외양간에 몰아 넣으려 했던 것을 하녀 혼자서, 힘도 안 들이고 해낸 광경을 보고 어린 에머슨은 큰 감명을 받았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부자를 향해 늙은 하녀는 웃으며 말했다. "억지로 송아지를 몰려고 하면 안 됩니다. 어미 소가 송아지를 사랑하는 인자한 마음처럼 부드럽게 마음을 열고 이끌어 주어야 하지요."
후에 에머슨은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무력이 진정한 힘이 아니라 사랑과 온유가 더 큰 힘이라는 사실을."
그 후 에머슨은 목사로 활동하면서 문학적 철인으로 추앙받으면서 미국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세상에는 힘보다는 지혜로운 요령이 필요한 일들이 많다. 나를 앞세우는 무력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진정성 있는 마음이 중요한 경우가 훨씬 많다.
바람에 곧은 나뭇가지는 맥없이 부러지지만, 힘없이 흔들리는 갈대는 구부러지기만 하지 잘 꺾이진 않는다. 이렇듯 세상 이치는 부드러움이 강함보다 오히려더 강한 빛을 발한다.
자녀 훈육도 마찬가지이다. 말을 안 듣는다고 화를 내며 힘으로 자녀를 키우려 하면 오히려 자녀에게 반항심만 키우는 꼴이 된다. 아이들이 커 가는 데 있어 사랑과 온유, 깊은 관심과 배려심 만큼 좋은 것은 없다.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
노자(老子)는 스승의 병이 깊자 마지막 가르침을 청했다. 스승은 자신의 입을 벌려 노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내 혀가 있느냐?"
"있습니다."
"내 이빨은 있느냐?"
"스승님의 치아는 다 빠지고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는 다 빠지고 없는데 혀는 남아 있는 이유를 아느냐?"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빠져 버리고, 혀는 부드러운 덕분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 아닙니까?"
"바로 그것이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것, 물방울이 바위를 뚫고 나무가 쇠를 닳게 하는 이치, 천하만사의 이치가 다 그러하고, 그것이 세상사는 지혜의 전부이니라. 이제 더 이상 너에게 줄 가르침이 없구나."
어느 누구의 입 안에나 다 들어 있는 세상사는 지혜, 그러나 우리가 놀리는 이 짧은 세치의 혀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딱딱함보다는 부드러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부드러움으로 모든 이를 안아보면 어떨까요?
후일 노자는 물을 칭송한 부드러움의 사상을 강조하였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上善若水)." 또한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다. 그러나 단단하고 힘센 것을 물리치는데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 莫之能勝)."
사람이나 초목이나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진다.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노자는 훗날 사람들이 힘만 숭상할 것을 미리 간파했음인지, 간단명료한 한마디를 덧붙여 놨다.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강함이다(守柔曰强)."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
노자는 '유약겸양부쟁(柔弱謙讓不爭)'의 덕을 설파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비굴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부드러움은 강한 것을 이긴다'는 필승의 방책이다.
버드나무 가지가 눈사태에도 부러지지 않듯 노자는 유연함을 생명의 상징으로 보았다. 그리고 유연함의 극치를 추구하여 자연스러운 흐름과 모든 고정된 형태를 부정하는 경지에 이른다.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굳고 센 것을 꺾는 데 물보다 더 뛰어난 것 또한 없다. 이는 물이 철저하게 약하기 때문이다. (제78장)
천하에서 가장 부드럽고 약한 물이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쇠와 돌을 마음대로 부린다. 형태가 없는 것은 도저히 파고들 틈도 없는 그 어떤 곳이라도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제43장)
형태가 없는 것을 '무'라 한다. 이 무의 움직임을 '무위(無爲)'라 한다. 노자의 승부사로서의 진면목은 무위로 이기는 것을 가장 높이 산다는 데 있다.
훌륭한 무사는 힘을 드러내지 않고, 잘 싸우는 사람은 성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며, 잘 이기는 사람은 함부로 다투지 않고, 남을 잘 부리는 사람은 늘 남에게 겸손하다.
(제68장)
능동적인 것보다 수동적인 것이 중요하다. 이 가르침을 지키면 나아가도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주먹을 휘둘러도 휘두르는 것같이 보이지 않으며, 적을 쳐도 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무기를 들어도 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제69장)
노자는 이처럼 '무'를 활용한 승리야말로 병법의 궁극으로 쳤다. 승부란 무조건 이긴다고 좋은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투쟁을 피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서도 안 되고, 상대에게 패배의 굴욕감을 주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하여 상대도 모르게 승리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했다.
움츠리게 하고 싶으면 먼저 펴게 해 주고, 약하게 만들고 싶으면 먼저 강하게 해 주며, 멸망시키고 싶으면 먼저 융성하게 해 주고, 빼앗고 싶으면 먼저 주어라.
(제36장)
늘어날 만큼 늘어났으면 줄어드는 것이 도리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에 이기는 것은 이런 자연의 법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 '무위자연(무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식 승리법은 약자들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강자가 계속 강자이기 위해서도 잊어서는 안 되는 마음가짐이었다.
큰 나라는 강의 하류와 같아서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니 천하의 '여자'라 할 수 있다. 여자는 손을 뻗지 않고도 남자를 마음대로 부린다. 큰 나라가 스스로 겸양하면 작은 나라가 저절로 따르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겸양하면 큰 나라는 스스로 작은 나라를 받아들인다.
큰 나라는 모든 나라를 수용해 모든 사람을 잘살게 하기를 원하며, 작은 나라도 큰 나라의 그늘 아래 있기를 바란다. 서로의 이해관계는 일치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큰 나라가 먼저 겸양해야 한다.
(제61장)
무위로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무위로 다스리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 노자의 정치철학의 핵심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다스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살펴보기로 하자.
최고의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는 백성이 군주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 다음으로 좋은 군주는 백성이 군주를 공경하며 찬양한다. 그 보다 하수는 백성이 두려워하는 군주이며, 최악의 군주는 백성들에게 경멸 당한다.
군주는 백성의 자연스러운 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 뛰어난 군주는 함부로 명령하지 않고, 만사를 백성에게 맡겨 둔다. 그리하여 잘살게 되면, 백성은 그저 군주의 공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리 된 줄로 안다.
(제17장)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노자가 전하고 싶은 말은 '대책 없이 있어라'는 것이 아니다. 군주가 어떤 시책을 세웠는지 조차 의식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통치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 이상적인 지도 방식은 농부의 작업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농부는 농작물을 잘 키우기 위해 밭을 갈고 성장을 방해하는 원인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 다음 일은 자연에 맡기고 조급해하지 않는다. 농작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흙 속의 돌멩이와 잡초, 해충 등은 인간의 간사한 지혜와 그 지혜로 인해 끝없이 비대해지는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옛 성인은 백성을 영악하게 만들지 않고, 우둔하고 소박하게 만들었다. 백성이 영악하면 정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묘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가 흔들린다. 나라를 크게 일으키려면 간사한 꾀를 부리지 말고 무위의 정치를 해야 한다.
(제65장)
위정자가 재능을 중시하지 말아야 백성들은 다투지 않고, 귀한 물건을 중시하지 말아야 도둑이 생기지 않으며, 탐욕을 부리지 말아야 백성의 자연스러운 본성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제3장)
백성들의 마음에서 욕망을 없애고, 대신 육체는 편하게 하는 것. 이것이 성인이 나라 다스리는 법이다.
이 부분을 두고 노자가 우민정치를 주장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노자에게 그런 측면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의 사상은 결코 위정자가 백성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우민정치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위정자들이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여 자신의 배를 채우기 때문이다. 백성이 반항하는 것은 그들이 술책을 부려 억압하기 때문이다. 백성이 목숨을 잃는 것은 그들이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
(제75장)
천하에 금기가 많으면 백성이 가난해지고, 통치자가 지략이나 권모술수를 많이 쓰면 쓸수록 세상은 어둡고 혼란스러워지며,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불행한 사건은 더 많이 일어나고, 법률이 정비되면 될수록 범죄는 늘어난다.
(제57장)
2천 수백 년 전의 말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경쟁 사회의 정신적 피폐와 기술 문명의 발전에 따른 환경 파괴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자기가 자기임을 주장하지 않는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한층 격렬해지는 생존 경쟁의 장에서 인간은 어떻게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까? 그 길은 단 하나, 현세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에서 벗어나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라고 노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모두 의욕에 넘치지만, 나는 멍하니 모든 것을 잊고 있다. 나는 어리석어 무엇 하나 분별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명민하지만, 나는 도리에 어둡고 어리석다. 나는 정처 없이 출렁이는 바다이며, 그냥 스쳐 가는 바람이다. 사람들은 모두 유능하지만, 나는 우둔하고 촌스럽다. 나 홀로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자연이라는 어머니 품에 안기리라.
(제20장)
노자가 말하는 '나'라는 주체성은 세상 사람들이 한결같이 나아가는 길이 아니다. 바다처럼 형체도 없이 출렁이고, 무작정 부는 바람처럼 어떤 세속적 개념으로 잡을 수 없는 자유의 주체성이다.
천지는 영원하다. 그것은 자기가 자기임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도 이와 같다. 사람 앞에 서려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사람 앞에 설 수 있다. 내 몸을 잊었기에 오히려 내 몸을 온전히 한다.
(제7장)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르게 말해 자신을 자연에 맡기고 때의 변화에 순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유자재로 변화할 수 있는 주체성을 지닌 인간은 번뜩이는 지혜의 빛과 의지의 불꽃을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 노자는 너무 넓어서 어떤 관점으로도 포착하기 힘든 인격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았다.
도를 터득한 사람은 말이 없다. 말이 많으면 도를 모르는 사람이다. 감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욕망의 문을 닫는다.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마음의 엉킴을 풀어 헤친다. 자신이 뿜어내는 눈부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풍진 세상과 어우러진다(和其光, 同其塵).
이것을 현동(玄同)이라 한다. 그러므로 현동에 이른 사람을 보면, 친밀하게 대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이롭게 해야 할지 해롭게 해야 할지, 존경해야 할지 경멸해야 할지 사람들은 가늠하지 못한다. 외부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대하다.
(제56장)
인간이란 자연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노자 철학의 토대는 인간이란 자연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각에 있다. 따라서 인간적 지혜의 이상적 형태는 만물을 지배하는 자연 법칙을 인식하고 거기에 따르는 것이다. 그는 자연을 변화하는 실체로 파악하고, 우주 만물의 변화 속에서 일정한 법칙을 찾아낸다.
그 법칙이란, 모든 현상의 배후에 깔려 있는 시공을 넘어선 본체와 그 운동 원리이다. 그 본체를 그는 '도'라고 했다. '도'는 '무(無)'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지각을 넘어선 어떤 것이다.
도는 한정될 수 없는 본체이므로 '무'라 할 수밖에 없지만,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제약된 현상, 곧 만물로 나타나므로 '유'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무는 극소를 나타내고, 유는 극대를 나타내므로 도는 소(小)이면서 대(大)이다.
이처럼 도는 모든 대립을 통일하는 존재이다. 우주의 모든 현상은 도 안에 포괄되는 대립 관계의 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결코 한정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무는 늘 유로 바뀌려 하고, 유는 늘 무로 바뀌려 한다. 이렇게 대립하고 서로 전환하려는 운동이 도의 법칙이다.
대립 상태를 내포하면서, 그 대립적인 것으로 바뀌려 하는 것이 도의 운동이다(反者, 道之動). 늘 소극을 지키려 함으로써 한없이 적극으로 통한다. 그것이 도가 작용하는 형식이다(弱者, 道之用). 만물도 그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유’, 곧 현상 일반에 도달한다. 그 유의 근원을 더 파고 들어가면 '무'라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에 이른다.
(제40장)
서로 대립하는 것의 상호 전환 과정이 무한히 반복됨으로써 끝없는 생성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노자의 자연관이다. 그러나 인간은 지각에 사로잡혀 대립하는 것의 일면만을 고집함으로써 자연의 변화에 어긋나는 작위의 마음을 일으키게 되고, 그 결과 끝없는 미망(迷妄)에 빠지는 것이다.
책 속의 명문장
道可道, 非常道.
진정한 도는 절대 불변의 고정된 도가 아니다. 만물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다. 진정한 인식은 사물을 늘 변화 속에서 파악한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고만 생각할 뿐, 아름다움이 곧 추악한 것임을 모른다. 모든 대립적인 개념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구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물의 일면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는 안 된다.
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기르면서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낮은 곳으로 향한다. 이 물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功遂身退, 天之道.
공을 세우면 뒤로 물러서는 것이 하늘의 도리이니, 끝까지 올라가면 이제 남은 것은 내려가는 일뿐이다. 성공했다고 그 지위를 끝까지 지키려 하다가는 재앙을 부를 따름이다.
大道廢, 有仁義.
사람들이 인이니 의니 하게 된 것은 무위자연의 대도가 사라지고 작위(作爲)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뒤부터이다. 도덕이 필요 없는 세상이야말로 이상적인 사회이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만족하고 물러설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고, 오래 지탱할 수 있다.
大巧若拙, 大辯若訥.
진정한 기교는 치졸해 보이고, 진정한 웅변은 어눌하게 들린다. 모든 진실은 작위를 버리고 자연의 길을 따르므로 오히려 진실되게 보이지 않는다.
노담은 춘추시대 말기의 현자로, 공자에게 가르침을 준 적이 있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이라고 한다.
초(楚)나라 출신으로, 주나라 왕실에 소속되었으나 주나라의 덕이 쇠약해지자 함곡관을 떠나 행방을 감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실존했음을 뒷받침할 만한 문헌 자료가 없어 우화적 존재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며, 설령 그의 존재를 긍정한다 해도, '노자'라는 책의 저자가 그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노자'는 '노자서(老子書)' 또는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이라고도 부른다. 그 용법이나 문자들을 보건대, 전국시대 이후의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상적으로는 전국시대의 양주(楊朱), 송견(宋銒), 윤문(尹文), 전병(田騈), 신도(愼到), 장주(莊周)와 같이 훗날 도가(道家) 로 분류되는 학파의 설이 혼재하는 것으로 보아, 주로 도가에 속하는 사람들의 사상을 집약하고 체계화해 노담이라는 이름에 가탁한 것으로 보인다.
'도'를 체현한 성인만이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정치론은 이윽고 법가의 설과 결탁해 군주 독재 체제의 확립에 기여했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싸우지 않고 이기는 원리를 설파한 군사론은 '손자'의 병법과 연관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오늘날 통용되는 '노자'는 후한 시대에 성립한 것으로 보이는 하상공(河上公) 주석본과 위(魏)나라 왕필(王弼)의 주석본이다. 1973년에 마왕퇴(馬王堆)에서 발굴된 '노자' 고사본 2종류는 전한(前漢) 초기나 그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현존하는 텍스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인데, 내용은 위의 2가지 주석본과 별 차이가 없고, 다만 상편과 하편의 순서가 반대로 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현대 중국에서는 노자가 달성한 변증법적 인식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사상 전반은 귀족 계급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라 비판해 왔으나, 비림비공(批林批公; 린뱌오林彪와 공자를 비판한 것) 운동 이후로는 그 사상의 병가적 또는 법가적인 측면을 평가하게 되었다.
▶️ 太(클 태)는 ❶지사문자로 大(태), 泰(태)와 통자(通字)이다. 크다는 의미의 大에 점을 찍어 더 크다는 것을 나타낸 글자로 크다를 뜻한다. ❷지사문자로 太자는 '크다'나 '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太자는 大(큰 대)자에 점을 찍은 것으로 '심하다'라는 뜻을 위해 만든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太자는 大자보다 더 크거나 심한 것을 뜻하기 위해 파생된 글자이지만 쓰임에 있어 두 글자의 차이를 구별하기란 어렵다. 고대에는 大자나 太자를 구별 없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大자와 太자는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간혹 太자가 '매우 심하다'와 같은 부정의 의미를 전달하는 때도 있지만 긍정적인 단어도 많기에 이 두 글자의 쓰임을 딱히 구별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太(태)는 성(姓)의 하나로 ①크다 ②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 ③통하다 ④처음, 최초 ⑤첫째 ⑥콩(콩과의 한해살이풀) ⑦심히, 매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비(丕), 클 개(价), 클 우(俁), 클 엄(俺), 클 위(偉)이다. 용례로는 세상이 무사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며 환란이나 질병 등이 없이 평안함을 태평(太平), 천지가 비롯된 무렵을 태시(太始), 천지개벽 이전의 혼돈하던 때를 태소(太素), 한 왕조의 첫 대의 임금을 태조(太祖), 절반이 지남을 태반(太半), 아주 오랜 옛날을 태고(太古), 매우 좋음이나 썩 아름다움을 태가(太佳), 험하고 높은 재를 태령(太嶺), 매우 재촉함 또는 매우 촉박함을 태촉(太促), 높고 먼 하늘을 태공(太空), 너무 지나침이나 아주 심함을 태과(太過), 굵은 털실을 태사(太絲), 가장 뛰어난 것을 태상(太上), 너무 심함을 태심(太甚), 너무 한도에 지나침을 태람(太濫), 콩기름으로 콩에서 짜낸 기름을 태유(太油), 껍질 빛깔이 검은 콩을 흑태(黑太), 어질고 착한 임금이 다스리는 태평한 세상을 일컫는 말을 태평성대(太平聖代), 아주 오랜 옛적 시대를 일컫는 말을 태고시대(太古時代), 세상이 평화롭고 안락한 때를 일컫는 말을 태평연월(太平烟月), 너무 세거나 빳빳하면 꺾어지기가 쉬움을 일컫는 말을 태강즉절(太剛則折), 천하가 태평할 때는 이를 지적하여 말할 만한 형상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태평무상(太平無象), 가뭄에 콩 나듯 한다라는 뜻으로 일이나 물건이 드문드문 나타난다는 말을 한시태출(旱時太出), 어리석어서 모든 일에 아무 걱정이 없이 지냄을 비웃는 말을 만사태평(萬事太平) 등에 쓰인다.
▶️ 剛(굳셀 강)은 ❶형성문자로 㓻(강)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岡(강; 단단하다)으로 이루어졌다. 쉽게 굽거나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칼이, 전(轉)하여 강하다는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剛자는 '굳세다'나 '강직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剛자는 岡(산등성이 강)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산등성이 자체가 우직하고도 강직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剛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剛자에 있는 刀자는 왜 있는 것일까? 剛자의 갑골문을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갑골문에 나온 剛자는 网(그물 망)자와 刀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이것은 그물망이 '견고하다' 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칼로 그물을 찢는 것이 아니라 칼에도 찢기지 않는 그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금문에서 부터는 발음을 위해 网자 가 岡자로 바뀌면서 지금은 剛자가 '강직하다'나 '굳세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剛(강)은 ①굳세다 ②강직(剛直)하다 ③억세다 ④단단하다 ⑤성(盛)하다(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한창이다 ⑥강철(鋼鐵) ⑦강일(剛日: 일진日辰의 천간天干이 갑甲, 병丙, 무戊, 경庚, 임壬인 날) ⑧임금 ⑨수소(소의 수컷) ⑩양(陽) ⑪바야흐로 ⑫굳이 ⑬겨우 ⑭조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굳셀 간(侃), 굳셀 건(健),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부드러울 유(柔)이다. 용례로는 마음이 곧고 뜻이 굳세며 건전함을 강건(剛健), 성품이 단단하고 빳빳함을 강견(剛堅), 성품이 단단하고 꿋꿋함을 강경(剛勁), 과단성 있게 결단하는 힘을 강단(剛斷), 금속성의 물질을 잡아 당기어 끊으려 할 때 버티는 힘의 정도를 강도(剛度), 물체의 단단한 성질을 강성(剛性), 굳세고 용감함을 강용(剛勇), 굽히지 않는 굳센 의지를 강지(剛志), 성미가 깐깐하고 고집이 셈을 강퍅(剛愎), 굳센 창자의 뜻으로 굳세고 굽히지 않는 마음을 비유하는 말을 강장(剛腸), 매우 단단하여 결코 파괴되지 않음 또는 그러한 물건을 금강(金剛), 성질이 야무지고 단단함을 견강(堅剛), 곁으로 보기에는 순하나 속마음은 굳셈을 내강(內剛), 성품이 편협하고 강퍅함을 편강(褊剛), 날쌔고 굳셈을 용강(勇剛), 지극히 강직하여 사악에 굴하지 않음을 지강(至剛), 의지가 굳고 용기가 있으며 꾸밈이 없고 말수가 적은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강의목눌(剛毅木訥), 마른 나무에서 물을 내게 한다는 뜻으로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없는 것을 내라고 억지를 부리며 강요하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강목수생(剛木水生), 강하고 부드러움을 아울러 갖춤을 일컫는 말을 강유겸전(剛柔兼全), 스스로의 재능과 지혜만 믿고 남의 말을 듣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강려자용(剛戾自用), 겉으로 보기에는 부드러우나 속은 꿋꿋하고 강함을 이르는 말을 외유내강(外柔內剛), 속은 부드럽고 겉으로는 굳셈을 이르는 말을 내유외강(內柔外剛), 겉으로 보기에는 유순하지만 속마음은 단단하고 굳셈을 이르는 말을 내강외유(內剛外柔), 겉으로는 굳게 보이나 속은 부드러움을 이르는 말을 외강내유(外剛內柔), 유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으로 약한 것을 보이고 적의 허술한 틈을 타 능히 강한 것을 제압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능승강(柔能勝剛), 또는 유능제강(柔能制剛), 꾸밈이 없이 성실하고 굳세고 씩씩함을 일컫는 말을 실질강건(實質剛健), 너무 세거나 빳빳하면 꺾어지기가 쉽다는 말을 태강즉절(太剛則折), 부드러운 것으로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이유극강(以柔克剛) 등에 쓰인다.
▶️ 則(법칙 칙, 곧 즉)은 ❶회의문자로 则(칙/즉)은 간자(簡字), 조개 패(貝; 재산)와 칼 도(刀; 날붙이, 파서 새기는 일)의 합자(合字)이다. 물건을 공평하게 분할함의 뜻이 있다. 공평의 뜻에서 전(轉)하여 법칙(法則)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則자는 '법칙'이나 '준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則자는 貝(조개 패)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則자의 금문으로 보면 貝자가 아닌 鼎(솥 정)자가 그려져 있었다. 鼎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솥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鼎자는 신성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則자는 이렇게 신성함을 뜻하는 鼎자에 刀자를 결합한 것으로 칼로 솥에 문자를 새겨 넣는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금문(金文)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이 솥에 새겨져 있던 글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솥에는 어떤 글들을 적어 놓았을까? 대부분은 신과의 소통을 위한 글귀들을 적어 놓았다. 신이 전하는 말이니 그것이 곧 '법칙'인 셈이다. 그래서 則(칙, 즉)은 ①법칙(法則) ②준칙(準則) ③이치(理致) ④대부(大夫)의 봉지(封地) ⑤본보기로 삼다 ⑥본받다, 모범으로 삼다 ⑦성(姓)의 하나, 그리고 ⓐ곧(즉) ⓑ만일(萬一) ~이라면(즉) ⓒ~하면, ~할 때에는(즉)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많은 경우에 적용되는 근본 법칙을 원칙(原則),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을 규칙(規則),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을 법칙(法則), 법규를 어긴 행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규칙을 벌칙(罰則), 법칙이나 규칙 따위를 어김을 반칙(反則), 표준으로 삼아서 따라야 할 규칙을 준칙(準則), 어떤 원칙이나 법칙에서 벗어나 달라진 법칙을 변칙(變則), 변경하거나 어길 수 없는 굳은 규칙을 철칙(鐵則), 법칙이나 법령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헌칙(憲則), 행동이나 절차에 관하여 지켜야 할 사항을 정한 규칙을 수칙(守則), 기껏 해야를 과즉(過則), 그런즉 그러면을 연즉(然則), 그렇지 아니하면을 일컫는 말을 불연즉(不然則), 궁하면 통함을 일컫는 말을 궁즉통(窮則通), 서류를 모아 맬 때 깎아 버릴 것은 깎아 버림을 일컫는 말을 삭즉삭(削則削), 가득 차면 넘치다는 뜻으로 모든 일이 오래도록 번성하기는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만즉일(滿則溢), 남보다 앞서 일을 도모(圖謀)하면 능히 남을 누를 수 있다는 뜻으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남보다 앞서 하면 유리함을 이르는 말을 선즉제인(先則制人),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다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임전훈을 이르는 말을 필사즉생(必死則生),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임전훈을 이르는 말을 필생즉사(必生則死), 오래 살면 욕됨이 많다는 뜻으로 오래 살수록 고생이나 망신이 많음을 이르는 말 이르는 말을 수즉다욕(壽則多辱), 달이 꽉 차서 보름달이 되고 나면 줄어들어 밤하늘에 안보이게 된다는 뜻으로 한번 흥하면 한번은 함을 비유하는 말을 월영즉식(月盈則食), 말인즉 옳다는 뜻으로 말 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언즉시야(言則是也), 잘못을 하면 즉시 고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함을 이르는 말을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남을 꾸짖는 데에는 밝다는 뜻으로 자기의 잘못을 덮어두고 남만 나무람을 일컫는 말을 책인즉명(責人則明), 너무 성하면 얼마 가지 못해 패한다는 말을 극성즉패(極盛則敗), 예의가 지나치면 도리어 사이가 멀어짐을 일컫는 말을 예승즉이(禮勝則離),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면 시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겸청즉명(兼聽則明), 예의가 너무 까다로우면 오히려 혼란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예번즉란(禮煩則亂), 너무 세거나 빳빳하면 꺾어지기가 쉬움을 일컫는 말을 태강즉절(太剛則折), 세상에 도덕이 행해지면 즉 정의로운 사회가 되면 나아가서 활동함을 일컫는 말을 유도즉현(有道則見), 논밭 따위의 등급을 바꿈을 일컫는 말을 나역등칙(那易等則), 만물이 한 번 성하면 한 번 쇠함을 일컫는 말을 물성칙쇠(物盛則衰), 죽어서 남편과 아내가 같은 무덤에 묻힘을 일컫는 말을 사즉동혈(死則同穴), 달이 차면 반드시 이지러진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성하면 반드시 쇠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월만즉휴(月滿則虧), 꽉 차서 극에 달하게 되면 반드시 기울어 짐을 일컫는 말을 영즉필휴(零則必虧), 물건이 오래 묵으면 조화를 부린다는 말을 물구즉신(物久則神), 물이 깊고 넓으면 고기들이 모여 논다는 뜻으로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히 사람들이 따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수광즉어유(水廣則魚遊), 충성함에는 곧 목숨을 다하니 임금을 섬기는 데 몸을 사양해서는 안됨을 일컫는 말을 충칙진명(忠則盡命), 예의를 잃으면 정신이 흐리고 사리에 어두운 상태가 됨을 이르는 말을 예실즉혼(禮失則昏), 물의 근원이 맑으면 하류의 물도 맑다는 뜻으로 임금이 바르면 백성도 또한 바르다는 말을 원청즉유청(源淸則流淸), 무엇을 구하면 이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구즉득지(求則得之), 자기가 남보다 먼저 실천하여 모범을 보임으로써 일반 공중이 지켜야 할 법칙이나 준례를 만듦을 이르는 말을 이신작칙(以身作則), 새가 쫓기다가 도망할 곳을 잃으면 도리어 상대방을 부리로 쫀다는 뜻으로 약한 자도 궁지에 빠지면 강적에게 대든다는 말을 조궁즉탁(鳥窮則啄), 짐승이 고통이 극도에 달하면 사람을 문다는 뜻으로 사람도 썩 곤궁해지면 나쁜 짓을 하게 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수궁즉설(獸窮則齧) 등에 쓰인다.
▶️ 折(꺾을 절, 천천히 할 제)는 ❶회의문자로 摺(절)의 간자(簡字)이다. 斤(근; 날붙이, 자르는 일)과 재방변(扌=手; 손)部의 합자(合字)이다. 옛 모양은 풀이나 나무를 자르는 모양이었으나 나중에 모양이 닮았기 때문에 艸은 재방변(扌=手)部로 쓰고 뜻도 손으로 꺾는다는 것으로 변하였다. ❷회의문자로 折자는 '꺾다'나 '깎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折자는 手(손 수)자와 斤(도끼 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折자는 手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손'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갑골문에 나온 折자를 보면 도끼로 나무를 두 동강 낸 모습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折자는 이렇게 나무를 동강 낸 모습으로 그려져 '꺾다'나 '부러지다'라는 뜻을 표현했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잘린 나무가 手자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折(절, 제)는 ①꺾다 ②값을 깎다, 할인하다 ③꺾이다, 부러지다 ④타협하다 ⑤결단하다, 판단하다 ⑥꾸짖다 ⑦따지다, 힐난하다, 헐뜯다 ⑧자르다, 쪼개다 ⑨찢다 ⑩일찍 죽다 ⑪밝은 모양 ⑫제단(祭壇) 그리고 ⓐ천천히 하다(제) ⓑ편안한 모양(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굽힐 굴(屈), 굽을 만(彎), 꺾을 좌(挫), 굽을 왕(枉), 에돌 우(迂)이다. 용례로는 하나를 둘로 똑같이 나눔 또는 그 반을 절반(折半), 어느 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것과 저것을 취사하여 그 알맞은 것을 얻음을 절충(折衷), 물건을 교환할 때 그 값을 나누어 수량을 정함 또는 물건의 값을 깎음을 절가(折價),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든 자를 절척(折尺), 가지째 꺾은 꽃을 절화(折花), 구부려서 끊음을 절단(折斷), 부러져 떨어져 나감을 절락(折落), 갈비뼈가 부러짐을 절륵(折肋), 부담하여야 할 구실 가운데서 일부를 면제함을 절면(折免), 칼국수를 절면(折麵), 밥값으로 쳐서 셈함을 절반(折飯), 방향을 돌리어 꺾음을 절방(折方), 긴 것을 잘라서 짧은 것에 보태어 알맞게 맞춤을 절보(折補),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한 고통을 일컫는 말을 절골지통(折骨之痛), 쳐들어 오는 적을 물리친 충의의 신하를 일컫는 말을 절충지신(折衝之臣), 마른 나무를 꺾어 낙엽을 떨어낸다는 뜻으로 일이 매우 쉬움을 이르는 말을 절고진락(折槀振落), 솥발을 부러뜨려 음식을 엎지른다는 뜻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소인을 쓰면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만듦을 이르는 말을 절족복속(折足覆餗), 나뭇가지를 꺾는 것과 같이 쉽다는 뜻으로 대단히 용이한 일을 이르는 말을 절지지이(折枝之易), 아홉 번 꺾어진 양의 창자라는 뜻으로 꼬불꼬불한 험한 길 또는 세상이 복잡하여 살아가기 어렵다는 말을 구절양장(九折羊腸), 백 번 꺾여도 휘지 않는다는 뜻으로 실패를 거듭해도 뜻을 굽히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백절불요(百折不撓),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도 많이 모이면 수레의 굴대를 구부러뜨릴 수 있다는 뜻으로 아무리 적은 힘이라도 일치 협력하면 강적에 대항할 수 있다는 말을 군경절축(群輕折軸), 흐르는 물도 겨울철에 얼음이 되면 쉽게 부러진다는 뜻으로 사람의 강유의 성질도 때에 따라서 달라짐을 이르는 말을 동빙가절(凍氷可折), 술통과 안주를 놓은 상에서 적의 창 끝을 꺾는다는 뜻으로 공식적인 연회에서 담소하면서 유리하게 외교 활동을 벌임을 이르는 말을 준조절충(樽俎折衝), 가지가 크면 줄기가 부러진다는 뜻으로 지족이 강대하면 종가가 쓰러진다는 말을 말대필절(末大必折), 한창 자라는 나무는 꺾지 않는다는 뜻으로 앞길이 창창한 사람을 박해하지 말라 혹은 잘 되어 가는 일을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의 말을 방장부절(方長不折), 난초가 꺾이고 옥이 부서진다는 뜻으로 현인이나 가인의 죽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난최옥절(蘭摧玉折), 북두칠성처럼 꺾여 구부러진 모양과 뱀이 기어가듯 꼬불꼬불한 도로나 수류 등의 모양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두절사행(斗折蛇行)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