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죠..
춘추 75세에
처음으로
무대에 출연하여 노래한 가수...
옛날 옛적
간날 갓적에
공연무대에도 방송에도 나타나지 않아
얼굴없는 가수로 소문났던 사람이 있었다던데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비내리는 호남선을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해운대 엘레지를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알아도 갠찬코ㅎ~
몰라도 갠차나요.ㅋ~
英浩의 노래
감독 조정호
출연 도금봉, 허장강, 김진규
개봉 1958.09.19
기생 도금봉은 사랑하는 김진규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뭇사나이들의 가슴에 안기며 웃음을 판다. 그 사이 김진규는 유학까지 마친 후 법관이 되고, 도금봉은 화류계에서 살아온 삶에 보람을 느낀다. 하나, 그는 배신을 하고 양가집 규수를 아내로 맞으며, 도금봉은 야속한 인정에 오늘도 탄식을 술잔에 띄운다.
[그대는 돌아왔건만 1958.09.19 Returned Lover 감독 : 조정호, 출연 : 김진규 - 도금봉 - 허장강 ] 다음 영화에서 拔萃발췌
그대는 돌아왔건만(영호의 노래) - 손인호
1958
반야월 작사, 황문평 작곡
0
가사
어머님 무덤앞에 마지막 작별을 하고
떠나던 철둑 길에 목을 놓고서 울었지
한에 맺힌 가슴이라 눈물을 삼켜가면서
기어이 성공하리 피끓는 사나이 결심
백사장 모래밭에 나란이 마주 앉아서
강물을 바라보며 속삭여 보던 내 사랑
믿어주오 믿겠어요 그 맹서 살아있건만
어찌타 님만 가고 나홀로 울어야 하나
손인호 孫仁鎬 (본명: 손효찬 (孫孝贊) , 1926년 5월 6일 ~ 2016년 7월 16일)는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로, 종교는 개신교(장로회)이다.
영화녹음기사로 195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한양녹음실에서 대표기사로 활동했다.
1926년 일본제국령 조선 평안북도 창성군 (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 날 한때 평안북도 벽동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훗날 수풍댐 건설로 인하여 고향이 물에 잠기자 1938년에 만주국 신징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해방 후 귀국하였으며, 1946년 관서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심사위원의 권유로 인하여 월남하였다. 이어 KPK 악단에서 가수 생활을 했고, 한국 전쟁 체제를 전후해 녹음기사로 전업하였다. 그러다가 1954년 작곡가 박시춘에게 <나는 울었네>, <숨쉬는 거리> 두 곡을 받아 취입, 크게 히트시켰다.
(*가수로 정식 데뷔하기 전인 영화녹음기사 시절에 나화랑의 <함경도 사나이>가 최초의 취입곡으로 밝혀진 바 있다.)
이후 그는 "신세기 레코드"를 거쳐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비 내리는 호남선>을 발표하였고, 계속 <울어라 키타줄>, <사랑찾아 칠백리>, <하룻밤 풋사랑>, <이별의 성당고개> 등을 히트시켰다. 1957년 말에 도미도레코드로 이전, <한많은 대동강>,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이별의 부산항>, <청춘등대>, <향수의 블루스>, <동백 꽃일기>, <남원땅에 잠들었네>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었고, 빅토리레코드에서 <해운대 엘레지>를 발표하여 크게 히트시켰다. 1960년대 중반까지도 <돌아가자 남해 고향>, <한 많은 명사십리> 등을 취입하여 히트시켰다.
손인호는 1950년대부터 영화 녹음기사와 가수활동을 병행 하였으나 단 한차례도 가수로서 무대에 서거나 방송이나 매체에 출연한 바 없이 오로지 음반 취입만으로 가수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얼굴 없는 가수로 알려져 있었다. 그의 또 다른 직업인 영화 녹음기사로서의 직업에 충실하기 위함이었고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그의 부인이 심하게 반대하였다고 한다.
(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이선자씨는 손인호씨와 1955년 봄 무렵 사진중매로 결혼하였는데........ 문화공보부에서 대한뉴스를 전담하는 능력있는 녹음기사로만 알고 그가 노래하는 것은 몰랐단다. 대중가요, 딴따라를 무척 싫어했던 이씨가 신혼시절이던 1956~57년 어느날 밤 (녹음차 밤에 출근하던 남편의 제안으로) 들은 것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남편의 노래를 처음 듣게 된 신곡 '하룻밤 풋사랑'~~~. 기실 손인호는 이전에 이미 '나는울었네', '비내리는 호남선'을 히트시킨 유명한 톱 가수였었다. 그런 사실을 그의 부인 이선자씨만 몰랐을지도 모른다ㅎ~)
그런 그가 TV에 최초로 출연한 것은 영화 녹음기사 일에서 은퇴후 오랜 세월이 지난 2001년, 그의 나이 75세 때이다.
2001년 6월11일 가요무대 특집프로(얼굴없는가수 손인호)에 아들인 가수 손용식(본명 손동준)과 함께 출연하여 아들이하룻밤 풋사랑을 부르고 그도 자신의 히트곡을 부르며 뒤늦게 가수로서 방송활동을 시작하였고 가수들의 모임에도 활발히 참석하는 등 연예인으로서의 활동을 하다가 2016년 소천하였다(향년 90세).
첫댓글 손인호?
영호의 노래도 처음 들어보지만
사연 많은 가수이군요
예전에는 가수들이 모질게도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떠난 비운의 가수들이 많은가 봅니다
요즈음도 성공하는 가수는 1%도 안된다고 합니다
음악공부 하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요 ~^^
공부 ㅎ
부지런하신 벼리님은
참 부지런합니다.
예전에
근면 성실
좌우명처럼 떠들다가
늦잠은 왜 그리 잘도 잤던지...
책 펴놓고 딴 생각이나...
우직하게 한 길을 가는 게 맞는데...
손인호나 벼리님이나
부럽습니다.
미남 이시네요...
손인호씨 ...첨들었어요.
박식 하시네요..
구세대 분들
오랫 사연 스토리도
하시구요...
박식?
ㅎ 허잡하죠. 구질 박재기...
몰라도 전혀 상관 없는 흘러간 물레방아ㅅ간 사연~~~
노래하는 사람 ㅎ
손인호 노래 모르면 헛노래한 거네요 ㅋ
참 특이한 생을 살다간
독특한 사람입니다.
그 부인이 올백 중매 사진보고 기생오래비 같다고 기절했다는...
딴따라인 줄 모르고 유능한 녹음기사라고
혼인했다는...
안령하세요 수샨님,'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 부디 마니 행복하서유.
굳모닝,
제가 흘러간 옛날 노래를 좋아해서
가요무대를 자주 보기 때문에 손인호 가수의 옛날 노래를 들은적이 있는데
개인 신상 이력은 몰랐는데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함니다
역시 노래는 정겨운 정다운 우리 마음 고향 정서에 맞는
옛날 흘러간 가요가 구성지고 구수하고 좋아요 후후껄껄
들을수록 마음이 안정 진정 조용 고요 평안 평온 차분 평화로워 짐니다
불멸의 명곡 감상 잘 들었 습니다 감사함니다
기만 응용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무엇이든 관심을 갖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면
더욱 정감이 갈 것입니다.
손인호님은
참 특이한 인생 스토리를
독특하게 써내려가신 분입니다.
가요를 좋아하시는 응용님,
자주 납시어 이약 나누면 둏아요. ㅎ
인생이 어찌 파란만장이
없겠냐 만은
손인호 가수의 구성진 노래
레코드에나 라디오에서 자주 들었고
그의 노래를 좋아 했답니다.
그런데 좋아님은 세계나 국내 가수를 막론하고
백과사전을 보는 것 같아서 잘 보고 느낌니다.
나의 집안에도 최고의
인기 가수는 아니지만
많고 많은 신예 가수들
틈바구니에서
제 밥벌이는 하고 다니고
TV조선에서도 살고있는 집을 취재해서 가끔 방영을 합니다.
우리집에서 태어나서
하도 울고 해서
당시에 가수 한명숙씨가 노란샤스 사나이로
인기를 누릴때.
한학자이신 아버지가 문중항렬자를 따라 이름을 짓겠다고 하시는것을
제가 자형요 저 울보 이름을 한명숙이라고 지어주소
하고 권했더니
그대로 받아들여
한명숙으로 고교시절에
끼를보여
교장선생님의 권유로
서울예대를 졸업하면서 KBS 탤런트 11기로 드라마 단역으로
몇편에 출연하더니
가수로 전향하여
이름도 예명을 한혜진으로
첫곡이 서울의 밤 그 후
갈색추억. 너는 내 남자를 불러 지 밥벌이는
하고 다닙니다~
손인호 가수의 일대기에
내 생질녀의 이야기만
장황하게 썼네요~ㅎ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한혜진 가수의 외숙 알천님,,,
참 귀한 인연, 귀한 분이십니다.
생질녀를 작명하신 그 선견지명...
워쩐지 노래 잘 한다 했네요.
서울의 밤
갈색추억~
"외삼촌 고맙습니다 지어주신 이름 값 꼭 하겠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