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리튬이온 2차전지 시장에서는 폴리머 전지를 중심으로 한 유형별 경쟁의 바람이 불면서 각형과 원통형의 2강 구도가 무너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2차전지 유형별 경쟁을 통해 향후 경쟁 구도 변화 및 시장 전망을 살펴본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리튬이온 2차전지는 2000년대 들어 납축전지, 니켈-카드뮴 전지, 니켈-수소 전지를 앞지르면서 세계 2차전지 시장의 확고한 주력으로 자리잡았다. 리튬이온 2차전지는 그 형태와 전해질의 특성에 따라 원통형 리튬이온 2차전지(이하 원통형), 각형 리튬이온 2차전지(이하 각형), 폴리머 리튬이온 2차전지(이하 폴리머 전지)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원통형은 노트북컴퓨터를 중심으로 시장을 형성하였고, 각형은 휴대폰, 디지털 카메라 등을 중심으로 리튬이온 2차전지의 최대 시장을 확보하였다. 반면, 폴리머 전지는 PDA 등 넓은 면적의 2차전지가 필요한 영역에서 주력 전원으로 채택되었으며, 휴대폰용의 일부 모델에서 각형 대비 10~15% 수준의 시장을 차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최대 수요 시장인 휴대폰에서 각형과 폴리머 전지의 경쟁 판도에 변화가 나타날 조짐이 보여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유럽의 한 유력 휴대폰 기업인 S사는 2004년도 2차전지 조달에 있어 같은 규격의 각형과 폴리머 전지를 동시에 사용할 계획이다.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30mm, 48mm(3048 계열)이며 두께가 4mm 대인 각형 및 폴리머 전지를 내년 상반기부터 자사 휴대폰 모델들에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각형 전지만을 고집해왔던 또 다른 휴대폰 기업도 각형의 주력 모델인 가로 34mm, 세로 50mm(3450 계열), 두께 3mm 대의 폴리머 전지를 내년부터 사용할 계획으로 있다.
휴대폰용 2차전지 시장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은 그 동안 유형별로 수요 시장이나 규격 등이 사실상 구별되어 왔던 2차전지 시장이 유형간 경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시발점으로 평가된다. 또한 이는 상황 전개에 따라 2차전지 시장내 판도뿐 아니라 기업간 경쟁 양상도 크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2차전지 유형별 경쟁의 현황과 배경, 향후 전망 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각형, 원통형의 2강 체제
리튬이온 2차전지 시장의 유형별 구성을 보면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수량 기준으로 각형과 원통형이 각각 55%와 35%를 차지하며 2강 체제를 구축해 왔다. 원통형의 경우 직경이 18mm, 길이가 65mm인 18650 계열이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한 가운데 노트북컴퓨터의 주력 2차전지로 자리매김하였다. 노트북컴퓨터용 2차전지 시장에서 각형이나 폴리머 전지는 Toshiba의 슬림형 등 제한적인 영역에서만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일부 규격의 원통형은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 등에 사용되고 있으며, 니켈-카드뮴 전지나 니켈-수소 전지가 독점하던 전동 공구 등의 시장도 엿보고 있다.
각형 전지의 경우 3450과 3048 계열의 규격이 전체 시장의 45%와 3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3450 계열은 2001년 말 전체 각형 물량의 25% 정도를 차지했으나, 이후 매년 10% 가량씩 늘어 왔다. 3048 계열의 비중은 2000년과 2001년에는 50% 대를 유지하였으나, 2002년부터는 3450 계열의 강세로 점차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두 종류의 규격에서는 일부 두께 3mm 초반 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각형의 리튬이온 2차전지였다. 폴리머 전지는 다양한 규격과 두께를 구현해 낼 수 있는 장점을 지녔으나, 가격 등 여러 측면에서 각형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면서 휴대폰 등 주요 수요 시장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유형별 경쟁의 도화선, Sony
이러한 리튬이온 2차전지 시장의 2강 구도에 맞서 유형별 경쟁에 불을 붙인 기업은 리튬이온 2차전지를 최초로 상용화한 Sony이다. Sony는 사업 초기에는 각형, 원통형 전지에 치중하였으나, 1999년부터 각형을 포기하고 원통형과 폴리머 전지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였다. 2003년 현재 Sony는 원통형과 폴리머 전지 시장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2003년 초 Sony는 다양한 규격이 난무하는 폴리머 전지가 결국에는 각형의 주력인 3048과 3450 계열로 수렴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으며, 각형과의 본격적인 경쟁을 예고하였다. 실제 Sony는 3mm대 후반의 3450 계열과 4mm대 3048 계열의 폴리머 전지를 내년 몇몇 휴대폰 기업들에 공급할 계획이다. 더군다나 Sony는 현재 각형 최대 물량의 모델인 5mm대 3450 계열에 대응하는 폴리머 전지를 2004년 초 공급을 위해 개발 및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폴리머 전지의 용량이 1,000mAh 이상의 수준으로 각형의 동일 규격에 비해 10%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각형 3450 계열의 최대 위협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Sanyo, MBI 등 각형을 주도하는 기업들조차도 향후 Sony의 행보와 폴리머 전지 시장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정도이다.
폴리머 전지 급부상의 배경
이렇게 리튬이온 2차전지 시장에서의 입지가 약했던 폴리머 전지가 각형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급부상한 배경으로 우선 수요 기업 측면에서 전지의 성능이나 안전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수요 기업이 요구하는 휴대기기 전원으로서의 조건은 디자인, 용량, 안전성, 가격 등의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휴대폰의 경우 컬러 디스플레이 확대, 멀티미디어 서비스 제공, 카메라폰의 증가 등에 따라 전력 소요량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현재 휴대폰에 사용되는 2차전지의 용량은 600~800mAh의 수준이나 2~3년 내 900~1,000mAh 이상이 주류를 이룰 전망이다. 게다가 휴대폰의 디자인을 고려할 때 고용량의 전지때문에 두껍게만 만들 수도 없는 실정이어서 휴대폰용 전지의 용량 측면에서 각형과 폴리머 전지의 경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피당 전지 용량은 Sony의 폴리머 전지가 Sanyo의 각형에 비해 평균 14% 가량 높았다. 실제 판매되는 휴대폰용 3450(두께 3.8mm) 모델의 경우 각형이 630~680mAh의 용량을 담을 수 있으나, 폴리머 전지의 경우 720mAh 이상까지도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미 각형과 폴리머 전지가 경쟁 체제에 돌입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또한 용량 향상과 맞물리면서 최근 휴대폰의 폭발 사고가 빈번해짐에 따라 안전성 측면에서 우수한 2차전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실제 세계 1위 휴대폰 기업인 Nokia의 경우 언론에 발표된 폭발사고만도 올들어 4회 이상이며,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한다면 이보다 두 배 이상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품 및 기기의 안전성은 수요 기업이 부품 조달에 있어 가장 비중있게 고려하는 항목이다. 이에 따라 구조적으로 각형이나 원통형보다 안전한 2차전지로 평가받는 폴리머 전지가 부상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왔다.
다음으로는 폴리머 전지의 가격 경쟁력 향상을 들 수 있다. 폴리머 전지의 원재료비는 전해질, 포장재 등 구조적인 측면의 이점 때문에 각형 대비 10~15%만큼 저렴하다. 이러한 재료 원가 측면에서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수율이 저조하고 규모의 경제 효과 또한 부족하여 각형과의 가격 경쟁이 힘들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폴리머 전지 기술이 발달하고 생산 규모 및 참여 기업이 확대되면서 본격적인 가격 하락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폴리머 전지의 가격이 각형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떨어졌다. 1999년에만 해도 폴리머 전지의 평균 가격이 각형의 두 배 수준이었으나 2003년에는 불과 15% 가량 비싼 수준으로 되었다. 이제는 폴리머 전지가 가격 면에서도 각형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폴리머 전지 기업들이 과충전을 막는 보호회로를 최소화하고 양/음극 재료를 개선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향후 가격 하락폭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Sony Ericsson과 같은 휴대폰 기업은 궁극적으로 폴리머 전지가 가장 저렴한 리튬이온 2차전지가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전략적으로 폴리머 전지를 채용하고 있다. 더구나 중국 폴리머 전지 기업인 ATL은 주요 공정을 자동화하고 저렴한 중국산 재료를 사용하여 최근 자사의 주력 모델에 대해 각형 평균 대비 20~30% 저렴한 셀당 1달러 중반대의 가격을 수요 기업에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폴리머 전지 기업뿐 아니라 각형 생산 기업까지 긴장시키고 있다.
폴리머 전지의 가세로 2강에서 3강 체제로
현재의 리튬이온 2차전지를 대체할 만한 차세대 2차전지 시스템의 등장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에 2차전지 시장의 유형별 주도권 다툼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특히 세 유형 중 가장 발달된 형태라 할 수 있는 폴리머 전지의 성장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여, 현재 확립된 각형과 원통형의 2강 체제가 폴리머 전지를 포함한 3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 나아가서는 각형을 폴리머 전지가 대체하는 새로운 2강 체제 확립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시되고 있다.
노트북컴퓨터용 시장은 기기의 형태가 슬림형이나 초소형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현재의 원통형 중심으로 성장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슬림형 노트북컴퓨터가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폴리머 전지 채용도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폴리머 전지는 또한 각형에 비해 용량이나 디자인 유연성 등의 측면에서 우위에 있어 원통형의 유일한 경쟁 상대로 평가받고 있다.
직사각형 모양의 2차전지를 선호하는 휴대폰 등의 수요 시장에서는 각형과 폴리머 전지의 본격적인 자리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휴대폰 등의 주력 모델로 굳어진 3450 계열과 3048 계열에서 이러한 현상이 뚜렷해질 것이다. 2004년을 시작으로 하여 폴리머 전지의 각형 시장에 대한 잠식 속도가 빨라지겠지만, 당분간은 수요 기기의 고급화 진전 속도에 따라 두 유형의 시장 내 입지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등 고급 휴대폰의 비중을 감안할 때 2005년까지는 폴리머 전지의 비중이 최대 30%를 넘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후 수요 기기에 각종 고급 서비스가 상용화될 경우 폴리머 전지의 비중은 50% 이상으로도 높아질 수 있을 전망이다.
이러한 유형별 판도 변화는 기업간 경쟁 양상에도 일대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현재 세 가지 유형 중 55%의 비중을 차지하는 각형 시장에서의 세계 1위 기업인 Sanyo가 전체 리튬이온 2차전지 시장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유형별 경쟁의 결과로 폴리머 전지가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다면 기업 순위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 경우 폴리머 전지를 주도하는 기업들이 전체 리튬이온 2차전지 시장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각형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Sanyo, MBI, BYD 등의 기업들은 물량과 가격 공세를 통해 폴리머 전지를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각형 공급 기업들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쳐 각형 시장에서 살아남는 기업들은 선두권의 소수 기업들로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폴리머 전지에 대한 대응 양상은 기업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 향후 향방이 주목된다(<표> 참조).
국내 기업들, 선두권 도약의 기회
2차전지 기업이 수요 기업에게 새롭게 전지를 공급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가까이 소요된다. 이러한 상황과 최근의 유형별 경쟁을 감안할 때 리튬이온 2차전지 시장에서는 향후 2~3년 내 대략적인 기업간 경쟁 구도 재편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각형과 원통형의 경우 성장 초기에 이미 주도 기업들이 결정되다시피 한 점은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폴리머 전지 시장 내 기업간 경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Sanyo, Sony, MBI 등 일본 기업과 중국의 BYD로 이루어진 리튬이온 2차전지의 선두 그룹은 각 유형별 시장에서 명실상부한 수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폴리머 전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최근의 리튬이온 2차전지 시장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한다면 국내 관련 기업들에게는 선두권 진입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SKC, 코캄엔지니어링 등 일부 기업들은 폴리머 전지에 편중된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선두권 일본 기업들을 바짝 따라붙은 LG화학, 삼성SDI 등의 기업들은 원통형, 각형, 폴리머 전지 사업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각각의 사업 및 고객 구조를 기반으로 하여 국내 관련 기업들은 폴리머 전지 기술의 선개발 및 출시, 공급 대응력 강화, 고객 개척 등 측면에서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