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계원(玉階怨)
玉階生白露(옥계생백로)-옥섬돌에는 벌써 흰 이슬이 내리고
夜久浸羅襪(야구침라말)-밤 깊어 명주 버선에 추위가 스민다.
却下水精簾(각하수정렴)-방에 들어와 수정 발을 내리고서
玲瓏望秋月(영롱망추월)-곱고 환한 가을 달을 바라본다.
이백(李白)
옥섬돌(玉階)에는 흰 이슬 가을 달에 임의 얼굴
위의 당시(唐詩)는 이백(李白)의 “옥섬의 원망(玉階怨 옥계단)”이라는 제목 시다.
지금 MBC 드라마에서 “구암 허준”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필자가 시청한 드라마 내용에는
허준이 선조(宣祖)의 후궁인 공빈김씨(恭嬪金氏)의 오라버니 김병조의 반위(反胃위암)와 구안와사(口眼喎斜안면신경마비)를 치료하면서 선조(宣祖)가 치료기한을 약속하라는 다짐에 “5일”을 약속한다.
선조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는 “궁중에는 희언(戱言 실없는 말)”이 없다고 경고한다.
희언(戱言)은 궁중의 관례(慣例)대로 “손목을 절단”하는 형벌이
행해진다.
실로 치료가 안될시 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한편 이런 줄도 모르는 허준의 아내 다희는 집에 오지 못하는 허준이 갈아입을 옷을 보내면서 위의 가을 이슬에 차갑게 비치는 섬돌 “섬돌의 원망(玉階怨)”이라는 이백(李白)의 당시(唐詩)를 하얀 손수건에 수(繡)를 놓는다.
이백의 “옥계원(玉階怨)” 시가 드라마의 장면과 잘 조화되고 시가 너무 아름다워 여기에 옮겨 본다.
곁들여 아래 내용은 역시 MBC에서 1999년 11월 29일부터 2000년 6월 27일까지 방영된 “허준”드라마“이다.
그때 필자가 응모(應募)한 “시청자 소감”을 쓴 한 부분이다.
그때 당(唐)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시가 너무 아름다원 소개한다.
삼적사에서 대창풍(나병) 환자를 보살피며 그들의 내면고통에 같이 우는 허준과 예진 아씨의 장면이 나온다.
곧이어 허준은 내의원 취재 시험을 보기 위해 삼적사를 떠나 서울로 향한다.
드라마 장면은 석양 무렵에 먼 길을 떠나는 허준의 외로운 모습과
전송하는 예진 아씨의 처연(悽然)한 장면이 나온다.
이어서 내레이션을 통하여 당나라의 대표적인 유미주의적(唯美主義的)이며 당대 수사주의문학(修辭主義文學)의 극치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랑시인 이상은(李商隱)은의 잔잔한 시가 흘러나오면서
허준은 해지는 산등성이에서 예진 아씨가 준 편지를 읽는다.
무제(無題)
八歲偷照鏡(팔세투조경)-여덟 살 때, 거울을 몰래 들여다보고
長眉已能畵(장미이능화)-눈썹을 길게 그렸지요.
十歲去踏青(십세거답청)-열 살 때, 나물 캐러 다니는 것이 좋아서.
芙蓉作裙衩(부용작군차)-연꽃 수놓은 치마를 입었습니다.
十二学彈筝(십이학탄쟁)-열두 살 때, 거문고를 배웠어요.
銀甲不曾卸(은갑부증사)-은갑(銀甲)을 손에서 놓지 않았지요.
十四藏六親(십사장륙친)-열네 살 때, 곧잘 부모님 뒤에 숨었어요.
悬知犹未嫁(현지犹미가)-남자들이 왜 그런지 부끄러워서.
十五泣春風(십오읍춘풍)-열다섯 살 때, 봄이 까닭 없이 슬퍼서
背面秋千下(배면추천하)-그넷줄 잡은 채 얼굴 돌려 울었답니다.
이상은(李商隱)
『당나라 시인 이상은의 시에, 열다섯 살 때 봄이 까닭 없이 슬퍼 그넷줄 잡은 채 얼굴 돌려 울었다는 싯귀절이 있습니다. 제 나이 열다섯이 되던 해에 그 시를 읽고 혼자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삼적사 산등성이에 지는 해를 등지고
삼적사로 돌아오는 병자들을 보면서 메마른 갈대를 부여잡고 웁니다.
제 미력한 의술로 그들의 운명을 나눌 수 없음이 안타까울수록
허의원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집니다. 허의원께서 가는 길이
진정 병자를 긍휼히 여기는 심의(心醫)가 되기 위한 여정이라면
저는 진심을 다해 내의원 입격을 기원하겠습니다.
예진 올림』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