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0일 이준석과 개혁신당 공동대표를 맡았던 이낙연은 새로운미래 당사에서 합당 철회를 선언했다. 이어 1시간 만에 이준석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 결렬을 재확인했다.
그동안 양측은 선거 운동·정책 권한 위임과 배복주의 입당 및 공천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했는데 이견이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이낙연은 합의 결렬 선언 전날인 지난 2월 1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새로운미래’를 정당 등록했다.
이낙연은 기자회견 이후 기자들과 만나 “저는 (개혁신당에) 개별 입당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탈당도 없다”고 했다.
‘제3지대 빅텐트’를 주장했던 새로운선택(금태섭·류호정)과 원칙과상식(이원욱·조응천)은 개혁신당에 그대로 남았다.
양측이 대립각을 세웠던 ‘선거 지휘권’에 대해 이들은 사실상 이준석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월 19일 최고위원회의에 이준석에게 선거 캠페인과 선거 정책 결정권을 위임하는 안건이 올라오자 이낙연과 김종민은 반발하며 회의장을 떠났지만 이준석을 비롯해 양향자, 금태섭, 조응천은 찬성표를 던졌다.
양향자에 따르면 합당 시 정한 비공개 합의문에는 ‘너무나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최고위원 표결로 결정한다’는 내용과 ‘3 대 3일 때는 법적 대표인 이준석이 결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양향자는 “새로운선택·새로운미래·원칙과상식 다 있는 자리에서 합의한 내용”이라며 “김종민이 그때 아니라고 했어야지 지금 와서 최고위원회의 하다가 반대하니 다른 사람들은 의아하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는 사안을 어떻게 결정할지 미리 합의한 것은 이 같은 갈등 상황을 예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 김용남도 지난 2월 18일 김종민의 기자회견을 두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합의문에 적혀 있다. 이견이 있을 때는 최고위원회에서 다수가 표결로 결정하도록 했다”며 “이견을 좁히지 못해 월요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다수결로 표결을 하기로 한 상황에서 왜 기자회견을 자청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태섭·조응천은 왜 이준석을 택했나
민주당 출신의 금태섭과 비명계였던 조응천은 이념적으로 보수인 이준석보다 이낙연과 가까울 것으로 예상됐다. 김종민도 그렇게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은 지난 20일 기자회견 이후 기자들과 만나 “김종민이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사안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금태섭·조응천 의원님께서 의견 한번 밝혀보십시오’라고 말씀하셨는데 두 분이 찬성 의견을 밝히신 다음에 퇴장했다”며 “김종민이 어떤 의도에서 두 분의 의견을 강하게 물으셨는지 모르지만 저희는 모든 세력의 의견이 다 나온 상태에서 표결 절차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금태섭·조응천의 선택에 대해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수도권 선거를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낙연보다는 이준석이 1%라도 더 필요하다”며 “이낙연 쪽은 충청도와 호남 선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다르다”라고 했다.
금태섭은 서울 종로구에 출사표를 던졌으며 이원욱과 조응천은 각각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화성시을과 남양주시갑에 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광주 서구을이 지역구인 양향자는 ‘K반도체 벨트’를 위해 경기 용인시갑에 출마한다.
양향자는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선거가 얼마 안 남은 절박한 상황에서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야 하는데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면서 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특히 저를 비롯해 금태섭, 이원욱, 조응천 등 지역구를 뛰고 있는 사람에겐 정말 힘든 일이었다”면서 차라리 당이 깨진 것이 홀가분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개혁신당의 관계자들 중에서도 독자노선을 가게 된 것이 “오히려 잘됐다”는 입장이 적지 않다. 천하람은 한 라디오방송을 통해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지부진한 상황을 길게 가져가는 것보다는 명확하게 의사결정 구조를 정리하고 빠른 속도로 정책이라든지 메시지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 오히려 불행 중 다행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자강론’를 펼쳤던 양향자는 새로운미래가 떨어져나갔지만 이준석과 한국의희망의 합당만으로도 여전히 시너지가 남아있다는 입장이다. “우리가 합당한 것은 함께했을 때 시너지가 났기 때문이다. 정당을 삼각형으로 그려보면 각 꼭짓점에 ‘비전과 가치’ ‘세력’ ‘언론’이 있다. 한국의희망은 비전과 가치가 분명했고, 이준석은 세력과 언론에 있어 압도적 영향력이 있다. 그래서 합의가 된 거다. 공학적 세력 교합이나 합종연횡은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지금이 그런 상황을 보여준다.” 새로운미래와는 시너지가 나지 않는 관계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로운미래와의 시너지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이 지난 1월 30일~2월 1일 조사해 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합당 전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는 각각 3%의 정당지지율을 보였다. 그런데 지난 2월 9일 통합 선언 이후 같은 여론조사기관에서 지난 2월 13~15일 조사해 16일에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는 개혁신당 지지율은 4%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합당 이후에는 기존 개혁신당 지지자들의 탈당이 이어지면서 이준석에게 고민거리를 안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한 듯 이준석은 이낙연과 결별한 후 곧바로 ‘기존 지지층 잡기’에 나섰다. 지난 21일 진행된 최고위원회의에서 개혁신당은 제3지대 합당 선언 이후 탈당한 당원을 대상으로 복당 불허 기한을 없애는 안건을 의결했다.
기존에는 탈당 후 최대 1년간 복당이 불가능했지만 합당 과정에서의 소통 미흡을 인정해 즉시 복당을 허용한 것이다.
복당 불허 기간 없애며 기존 지지층 잡기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기존 개혁신당 지지층 10명이 합당 후 떠났다면 통합 결렬 후 돌아오는 사람은 3~4명 정도일 것”이라며 “핵심 지지층인 2030 남성이 이준석에 대해 어느 정도 충성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내홍으로) 이준석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유권자들이) 알게 됐다”며 “개혁신당이 3~5%를 얻고 비례대표 1~2석 가져간다면 선방한 것”이라고 전망했다.
‘천아용인’ 중 한 명이었던 김용태는 합당 철회가 “이준석과 이낙연 모두에게 잃는 게 많은 선택이었다”며 “정치는 게임이 아닌데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각자 얻는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들이 이준석에게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했을 텐데 전술적인 정치로 실망한 국민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비례대표 결정 권한을 두고 개혁신당 내부에서 정파 간 갈등이 또 생길 것이고, 결과적으로 개혁신당은 총선 끝나고 국민의힘으로 들어오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우영 교수도 이번 사태 과정에서 드러난 이준석 리더십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책사형이 리더를 지향하다 보니 지금 같은 리더십이 나온 것이다. 리더는 구체적인 디테일에는 조금 어둡지만 큰 얘기를 한다. 그런데 이준석은 작은 이익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 하나하나를 승부처럼 여긴다. 깨알 같은 디테일은 가지고 있는데 ‘으쌰으쌰’가 안 되는 것이다.
이번 일로 신뢰가 깨졌기 때문에 총선 이후에도 사람을 모으고 세력을 형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인에게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작은 그릇’ 된 이준석 리더십의 한계
물론 제3지대 통합 정당이 분열 없이 그대로 갔다면 이준석의 ‘지도자 역량’은 재평가됐을 수 있다.
장우영 교수는 “개혁신당의 경우 이질적인 정체성이 연대하는 어려운 실험이기 때문에 잘하면 승부를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통합이 파기되면서 개혁신당은 기존의 ‘틈새정당’ 전략으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마이너 정당은 일종의 틈새정당으로, 양당제의 균열이 굉장히 커서 유권자가 피로감을 느낄 때 그 틈새에 일시적으로 등장하는 정당을 말한다. 이같이 전형적인 작은 그릇으로 가버리면 이준석은 대정당의 오너가 절대 될 수 없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이번 사건으로 이준석은 외연 확장이 어렵다는 걸 보여줬다”며 “통합의 길을 가겠다고 빅텐트를 만들어놓고 (이준석이) 자신의 이득을 위한 길을 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혁신당이라는 당명을 쓰는 대신 이낙연이 총괄선대위원장을 맡기로 한 것이 합의 정신인데 어떻게 표결을 통해서 바꿀 수 있나. 이는 정치적 신의나 도리를 깨버린 것이다. 최고위원회의 중간에 이낙연이 나갔다면 회의를 중단시키고 나가서 만나야 했다.”
한 개혁신당 관계자도 이준석을 두고 “대중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면 작게 시작했더라도 점점 크게 만들 방법을 고민해야지 오히려 잘게 쪼개는 건 맞지 않는 방향”이라며 “정치적 커리어라는 측면보다는 인생의 커리어가 짧았다는 단점이 부각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다”라고 했다. 그는 “큰 그릇을 깨고 작은 그릇으로 가는 상황에서 각자의 그릇이 담는 양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이낙연의 이해득실에 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김형준 교수는 통합 결렬이 새로운미래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낙연은 호남이라는 지역 기반이 있다. 더 나아가서 민주당에서 탈당하는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 길게 보자면 세력을 모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준석과 같이 있을 때는 민주당을 나가는 친문이 이낙연 쪽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미래로 갈 수 있는 여건이 생긴 것이다. 이낙연은 사실 개혁신당에 간 것이 제일 큰 패착이다.”
반면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국무총리, 집권당 대표, 대선 후보를 거친 이낙연이 추구하는 가치도 다른 상황에서 묻지마 통합을 하고, 이를 소화하지 못한 채 결국 갈라서면서 명분과 실리를 다 잃어버렸다”며 “당장 기호 3번 싸움에선 이낙연이 이준석을 이길 가능성이 높지만 민주당에서 탈당한 의원들이 신당에 온다고 해도 당선될 확률은 낮다”고 했다.
이준석과 헤어진 이낙연은 앞으로 ‘진짜 민주당’ 논쟁을 통해 ‘반명(반이재명)’ 노선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은 지난 2월 20일 합당 철회 기자회견에서 “도덕적·법적 문제에 짓눌리고, 1인 정당으로 추락해 정권 견제도, 정권 교체도 어려워진 민주당을 대신하는 ‘진짜 민주당’을 세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장우영 교수는 “이낙연은 이재명의 민주당은 사당, 가짜 민주당이며 김대중·노무현을 정식으로 이어받은 오리지널 민주당은 ‘내가 하겠다’며 민주당 복원운동 방식으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