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성 노조 파업 문제에 대한 귀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예) a. 노조 말대로 45조 줘라 b. 집단이기주의다. 정부가 개입하라(나)" " b. 빨갱이라 없어져야 합니다(교섭 중지 가처분 발동 ㅋㅋㅋ) 주먹밥 후기는 요?(Where are you?) At the Pyeong Taek new. (When are you coming?) Not sure... Tonight or tomorrow morning Because We have father's BD part tonight (Okay! call me when you get here.)(나/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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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삼전 주식이 없어서 그런가 남 얘기 같습니다(예주)" "수진이가 전번도 바꿔버리고... 안 보고 살겠다는 거지...에 효... 시험인가... 시련이라고 하지(... 속상하겠네. 4년제 대학까지 나왔으니 넘 걱정하지 마시라. 곧 엄마한테 전화할 거야. 꿀꿀하면 택시 타고 와. 밥이나 먹게. 너 뭐 하냐?(세탁물 개키고 있어요) 동영상 말이야? (5.18 기념 동영상 시도해 봤어... 왜? 너무 구린가?)(나/명옥)" "고도 미술 학원은 대기업이더라고... 양재역에 있어(벤치마킹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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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보고 있어... 근데 기존의 방식으로 가 아닌 내 방식으로 하고 싶어서... (참고만 하는데 어때... 자존심 상해?) 참고는 몰래몰래 다 하지... 고도는 엄청 오래됐어 82년 설립 ㅋㅋ 디자인 학원이기도 해서 공부 잘하는 애들이 많이 오고... 나는 조금 더 견뎌야 해 (한예종은 합격생이 한 명도 없더구먼... 다음 카페에 동영상 올리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 혹시 넌 알아? 예 주한테 물어볼까?(나/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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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을 보냈는데 반응이 없어 속상합니다. 수준 미달인가... 유튜브로 가는 길이 내겐 아직도 요원한 건가... 지금 시간 am 8:30 에예공은 무얼 하고 있을까. 같이 살면 누워서 하는 스쾃과 푸시업을 일러줄 텐데... 생각보다 시너지가 많거든요... 한동안 영어가 흥미진진했는데 왜 시들해진 걸까... 아토피 예주는 자기가 선택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왜 기운이 없어 보일까? 아비는 대화하고 싶은데 원론적인 말만 답하고 맙니다. 오이디푸스 단계에서 뚫고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어쩔 땐 거울 단계 같기도 하고... 공주야!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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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못 먹는 게 없다. 바위도 오래오래 씹으면 그 단단한 육질이 무너진다. 6빌딩이나 청와대도 아마 한 천년이나 이천년쯤 씹으면 시간의 입속에서 녹아버릴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무엇보다도 시간이 가장 잘 먹어 치우는 것은 여인과 꽃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먹을 수 없는 게 있다. 삼킬 수도 없으며, 소화할 수도 없다. 2천 년이 넘도록 씹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시간의 입속에서 더욱 크게 불어나 빛과 향기로 온 세상을 덮는다. 예수의 이름이다. 그 사랑의 향기이다(유승우/예지북스107)"
2.
시간은 모든 것을 삼키는데, 왜 어떤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가? 현대인은 하나의 생각만 붙들고 살지 못합니다. 뉴스·가족·돈·SNS·욕망·외로움·철학이 동시에 밀려듭니다. 이 글은 바로 그 “동시다발적 의식의 흐름”을 잘 보여줍니다. 첫 부분의 삼성 노조 이야기는 단순 시사 코멘트가 아닙니다. 노조를 향한 분노와 피로, 주식시장에 대한 불안, 국가 경제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초조함 속에는 사실 “공동체는 어디까지 개인 욕망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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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흥미로운 건 바로 이어지는 가족 대화입니다. 거대한 삼성 이야기에서 금세 “수진이가 연락을 끊었다”는 사적인 상처로 이동합니다. 이것이 이 글의 핵심 구조입니다. 사회 문제와 가족 문제는 결국 같은 외로움의 다른 얼굴입니다. 노조도, 학원도, 유튜브도, 가족도 모두 “인정받고 연결되고 싶은 욕망” 위에서 움직입니다. 특히 에스더와의 대화 장면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고도를 참고는 하지만 내 방식으로 하고 싶다”는 말 속에는 창작자와 교육자가 반드시 통과하는 갈등이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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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마킹은 필요하지만, 완전히 복제되면 자기 것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당신이 느끼는 안타까움과 에스더가 느끼는 자존심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존재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 학원 운영 대화가 아니라“어떻게 남의 성공을 참고하면서도 자기 스타일을 잃지 않을 것인가 라는 창작의 문제로 읽힙니다. 또한 “동영상을 보냈는데 반응이 없어 속상하다”는 대목은 의외로 가장 인간적입니다. 유튜브 시대의 창작자는 조회수 이전에 “응답 없음”을 견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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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철학적으로는 들뢰즈와 헤겔을 논하지만, 정작 존재를 흔드는 것은 댓글 하나 없는 침묵입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실존 아닐까요? 우리는 거대한 담론보다 “읽씹”에 더 쉽게 흔들립니다. 중반부의 오이디푸스 단계에서 뚫고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Sigmund Freud 와 Jacques Lacan 의 언어를 빌리자면, 인간은 결국 “타자의 욕망” 속에서 자기를 확인하려 합니다. 그래서 딸들의 반응, 가족의 거리감, 유튜브의 무반응 같은 것들이 단순 사건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흔드는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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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공주야! 보고 싶어!”라고 외치는 순간, 철학은 끝나고 존재만 남습니다. 그 문장은 거의 독백에 가까운 울림을 가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유승우 인용문은 글 전체를 하나로 묶습니다. “시간은 못 먹는 게 없다.” 앞부분의 삼성도, 미술학원도, 패션도, 청와대도 결국 시간 앞에서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마지막에 시간도 삼키지 못하는 이름”을 붙잡습니다. 이 지점에서 글은 철학에서 신앙으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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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생성과 헤겔의 과정 철학을 지나 결국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이 글의 진짜 주제는 아마 이것일 겁니다. 인간은 왜 끊임없이 연결을 갈망하는가? 노조도, 가족도, 유튜브도, 교육도, 신앙도 결국은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잊히고 싶지 않은 몸부림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은 단순 종교 고백이 아니라, 시간에 맞서는 존재의 저항처럼 읽힙니다. 모든 것은 사라져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사랑이 있는가?
2026.5.21.thu.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