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에서 五體投地란 불법승 삼보께 예를 올리는 형식으로 양팔굽, 양무릎, 이마 이 다섯군데를 땅에 대면서 절하는 것을 말한다. 오체투지는 자기자신을 지극히 낮추고 아만을 꺾고 下心하는 것을 배우는 것인 동시에 성인과 스스로의 참나인 자성불에 대한 공경을 표하는 것으로 불교의 중요한 修行法으로 자리매김하고있다.
일본에서 태어나면서부터 팔다리가 없었고 이후 팔다리가 몇센티미터 자랐을 뿐이라는 장애인이면서도 긍정적인 생각과 생활태도로 고난을 극복하고 와세다학교 정치학부에 진학한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몇년 전 간행된 책 오체불만족에서 말하는 오체는 양팔,양다리, 머리를 포함한 몸통을 말하는 것이므로 불교에서의 오체는 그 의미가 다소 다른 것이다
과거 중국 六祖 慧能대사의 고명을 듣고 찾아온 어느 승려가 절을 하는데 머리가 땅에 닿지않는 것을 보고 "자네는 머리를 땅에 닿게하지 않게 절을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하니 "저는 법화경을 3000독하였습니다."하고 스스로의 아만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인체의 다섯부분을 땅에 닿게하는 五體投地禮는성인과 참나에 대한 지극한 공경의 표현인 것이다.
이 글을 쓴 동양화가 한 경혜님은 태어나서 얼마 뒤 돌부터 심한 뇌성마비를 앓아서 다섯 살때까지도 걷지 못하고 기어다니고 한살 아래 동생에게 업혀다닐 정도였다. 아버지는 대학을 나왔으나 의료보험도 안되는 당시 사정에 경혜의 사흘치료비면 한달 월급이 다나가곤하는 현실에 적응이 안되어 술과 폭력으로 가족들을 다스렸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이혼한 후 경혜와 연년생인 동생 경아를 데리고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이끌어갔다. 어머니 마음에 특히 첫째 딸에 대해서 저자의 표현대로 마음에 대못이 박혀있었음은 어쩔 수 없었으리라.
경혜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열이 몹시나고 驚氣를 하고해서 병원에 갔을 때 살 가망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어머니가 등에 아이를 업고 아이가 죽더라도 性徹스님을 친견해보고 죽으라고 해인사 백련암을 찾아가 어머니와 아이 각 삼천배를 하게되었다. 몸조차 제대로 못가누는 경혜에게는 그냥 주저앉아서 머리만 땅에 닿으면 1배로 쳐주었다. 경혜가 3일에 걸쳐 삼천배를 다하고 암자로 기어가다시피 올라가니 성철스님이 계셨는데 경혜가 묻길 "큰스님 저 언제 죽어요?"하니 "오늘 죽어라."하였다.
그때까지도 절하고 있던 어머니가 있던 아래 法堂으로 내려가서 어머니께 큰스님이 오늘 죽으라고 했다고하니 그럼 어디서 죽을까 여쭤보라해서 다시 올라가서 여쭈니 "그래 니 어디서 죽을래?"하는 말에 어린 꼬마가"고마 여기서 죽을랍니다. 어차피 49재도 여기서 해야되고..." 이 소리를 듣고 스님이 다소 당황하는 표정으로 어머니에게 내려가서 "니 아 와카노?" 하니 어머니는"스님이 시작했으니 스님이 책임지이소."하는 말에 性徹스님이 "그라마 가시나야 니 오래살아라. 매일 천 배하면서..알았제?" 이렇게하여 경혜의 22년간에 걸친 하루도 거름없는 천배정진은 시작되었다.
성철스님은 저자에게 인생의 큰 전기를 마련해주고 이후 매주 토요일마다 백련암을 찾아가서 절을 할 때 뵈면서 저자에게 끝없는 감화를 주고 인생의 장애를 극복하게해준 마음의 큰 기둥이자 스승이었다.
저자의 절수행법도 성철스님이 몸소 실행하시고 그 방법을 이르셨듯이 입으로는 백팔대참회문을 외우고 마음은 부처님을 생각하며 몸으로는 몸을 굽히고 자신을 낮춰 성철스님이 직접 그려주신 일원상앞에서 정성껏 절을 하는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장애인들은 다른 사람의 동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단지 불편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 다르지않다는 이해와 관심이 필요한 것이었다. 심한 장애로 인해 말도 제대로 못하고 팔다리도 제대로 못가누면서도 매일 천배정진을 하였지만 자라면서 계속 이어지는 주위사람들의 놀림과 무관심과 외로움은 경혜에게 몹시나 가슴아픈 경험들이었다. 항상 정상인들과 동떨어져서 생활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멸시당하는 아픔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기 힘든 것이었다. 어느날 초등학교를 같이 입학해서 항상 같이 있으면서 곁에서 많은 도움을 줬던 동생없이 집으로 가는 길에 동네 아이들에게 대책없이 돌세례를 맞고 돌아와서 울면서 절을 하면서 제발 아이들이 돌던지지말게 해달라고 빌었다고하니 그 고통스런 심정을 알만하였다.
매일 계속되는 정진과 어머니의 자식을 좌절하고 세파에 꺾이는 장애아가 아닌 자신의 힘으로 당당히 서는 인격체로 키우기위해서 특수초등학교가 아닌 일반 초등학교에 넣은 교육을 포함하여 생활하 나하나에 스스로 서도록하는 교육덕에 찢어진 헝겊조각 엮어놓았던 것 같았던 경혜의 몸과 마음도 조금씩 바로 잡혀가고 두뇌도 중학교 진학해서 어느 정도 지난 후에는 정상인에 가깝게 되어가고 있었다.
경혜에게 절은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는 것과도 같이 자연스러운 생활 그자체였으며 살아가게하는 에너지였고 장애를 극복하고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는 근본원동력이었다. 어릴 때는 어리고 성치않은 몸에 1000배를 하려면 거의 하루 종일 절에 매달려야할 때도 많았으므로 다른 아이같이 절하지않고 놀 수는 없을까 꾀도 나곤 하였으나 시간이 지날 수록 경혜의 생활의 일부가 자연스럽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孟母같은 어머니의 배려에 의해서 중학교 진학때에 경남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게되고 고등학교진학은 처음으로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동생보다 일찍 대학진학해서 언니로서의 모습을 가지겠다는 생각으로 포기하였지만 몇 개월만에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하게된다.
대입을 위해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사람들과 사회에 대해서 마음을 열도록 노력하며 책을 읽고 절을 하는 생활이었고 미대에 들어갈 꿈을 키웠지만 아직 성치못한 몸때문에 실기시험에서 데생을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할 수 밖에없었고 실기에 합격하더라도 장애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져서 3번 연속 불합격의 고배를 마시게되었다. 결국 다른 관심분야인 경영학과에 진학하게되었지만 미술공부는 계속하며 그 과를 졸업하였고 학교다니면서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없었던 터라 졸업하는 날 밤12시를 기해서 목숨을 건 첫번 째 만배 백일 기도를 하게된다.
하루에 자는 시간 몇 시간과 먹는 시간 잠시를 빼놓고는 온종일 절에 매달려야하며 온갖 고통과 인간육체와 정신의 극한을 맛보는 만배정진을 매일 면서 40여일이 지났을 때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달아 차라리 죽어버리려는 생각으로 미리 구해놓았던 약을 먹었으나 주위에서 지켜주던 어머니가 팥물을 먹이고 몹시 혼냄과 동시에 격려를해서 그 지옥같은 고비를 넘기고 만배 100일 기도를 회향하게 된다.
이후 다른 전공의 최고경영자과정과 비견되는 홍익대의 미술수강과정을 다니다가 홍익대 미대의 다른 전공자의 미술대학 학점이수과정을 마치고 홍익대 미대대학원에 진학해서 미술의 이론과 실기를 좀 더 수준높게 공부하였고 대학시절 경영학과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통틀어 국전 입선5번, 특선2번을 하게되고 현재는 대학원 졸업을 하였다.
홍익대 미술학과를 다니면서 MBC 방송국의 실크로드 체험기행을 다녀온 후 같이 동행한 사람의 비디오에 찍힌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 생각하듯이 거의 완전한 정상인의 모습이 아닌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실의에 빠져 다시 한 번 만배 100일기도에 도전하게된다.
전의 100일 精進과 같이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 만배정진 백일기도 두 번째에 접어들어 기도가 거의 마쳐갈 무렵 성철스님의 열반 얼마 전에 성철스님을 백련암에서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서로 눈빛이 마주친 후 그 눈빛에 빨려들어 주관과 객관을 벗어난 경지를 체험했듯이 두 번째 정진때도 절수행중 문득 창밖을 보았을 때 주객이 없어지고 우주와 하나된 구경각의 경지를 체험하게된다.
개인적 생각으로 저자의 초인적인 수행력과 그 정진력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않으나 이러한 경험은 구경각이 아니라 참나를 발견한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실생활에 충분히 체화될 수는 없는 解悟의 경지를 현실에 수용하여 체화할 수 있는 證悟로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주로 수행을 꾸준히 해 온 저자의 어머니의 수행체험과 이론에 기대어 수행생활을 해왔기때문에 프로수행자인 스님들이 체계세운 보편적인 수행이론과는 조금 달리 저자 스스로의 수행이론을 말하는 것 몇 부분을 읽고는 선지식의 가르침이 있어야하지 않을까하였다.
예를 들면 성철스님의 책 禪門正路를 보면 구경각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 아니라 화두가 동정일여 몽중일여를 거쳐 깊은 잠속에서도 한결같은 숙면일여를 거쳐 내외명철이 되어야 얻어진다고 하였다. 또한 성철스님 법문을 보면 구경각을 얻으면 자나깨나 마음이 언제나 환해서 매시매시가 좋은 때이고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저자의 글을 보면 절을 하다가 그 체험을 어머니께 여쭤보고 究竟覺에 이르렀다는 인가를 받는다. 어머니가 印可한 셈이니 어머니가 설사 수행많이하신 분이라하더라도 구경각에 이르렀다고 인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경혜님도 심신의 안정과 평화를 절수련을 통해서 분명히 얻었으나 日日是好日의 깨달음의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내가 보기에 저자는 뛰어난 인생의 구도자임에 틀림없으나 심오한 道的 체험을 한 선지식 큰스님을 스승으로 삼아서 지도를 받으면서 공부를 더해나가면 정말로 생사를 초월하고 윤회를 뛰어넘는 구경각의 경지까지도 이 생에서 체현해낼 수 있지않을까 하였다.
얼마 후 저자는 이생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3번째의 만배 백일정진을 자발적으로 시작한다. 이 정진은 깨달음을 얻고난 후의 기쁨과 이 생에서 절을 통해서 얻은 많은 것들과 장애를 이기며 살아가는데 이런 저런 도움을 줬던 존재들을 생각하며 그 공덕을 회향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장애우 동아리의 시력이 극도로 약화되어 전방 몇십센티밖에 보이지않을 정도인 친한 선배언니와 함께 시도했던 히말라야 칼라파타르봉(5540m) 트레킹에 성공하게되어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가지게되고 장애를 극복한 스스로에게 더욱 자신을 가지게된다.
평소 병원에 다니지않고 꾸준한 절수행과 참선으로 건강을 유지했던 어머니도 바쁜 직장생활에 병들고 나이들어 은퇴해서 경혜를 위해서 경남 진양에 어머니가 설계하고 특수한 기술이 요구되는 부분외에는 거의 혼자힘으로 작업실을 짓고 '작가의 집'이라고 명명한다.
현재 저자는 이곳에서 외국인 한국체험을 하게하여 각국의 사람들이 와서 한복입기, 김치, 된장국, 잡채만들기, 다도, 도자기굽기, 동양화 그리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하게하고 있고 주로 장애아동들이 자연을 벗삼아 스스로의 꿈을 키워가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다른 장애인들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매개체 역할을 하려고하며 이제까지 많은 절수행을 통해서 얻었던 것을 사회를 위해 환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곳을 갤러리로 활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한다.
저자는 장애는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며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먹고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장애는 극복될 수 있다고하고 있으며 실제로 자신이 그 한 예를 보여주었다.
어머니의 교육과 동생의 도움 그리고 저자의 지극한 절수행과 노력 그리고 불보살의 가피가 오늘의 저자를 있게했음을 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지극한 정성으로 장애도 딛고 업도 극복하고 한 사람의 인간미있는 훌륭한 사회인으로 선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아직까지 많이 잘못되어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고 국가정책에 많이 반영되어 그들이 진정 용기를 내어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참고: 저자 한 경혜님의 작가의 집 웹사이트 주소: www.artisthous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