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지영입니다.
지난번에 1편을 쓴 뒷내용이 궁금하다는 메일을 받고
부끄러운 마음, 감사한 마음이 물결쳤습니다.^^
사실은 조금 이야기가 길어지고 옆으로 샌 감도 없잖아 있지만
가능한 제가 겪고 알게 된 홍명보 선수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어서...
욕심이 좀 지나쳤나봅니다.
아무튼 오늘 이야기에서는 홍명보 선수의 은사였던
전 고려대 감독 남대식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기사&정보방 278번 글에도 나와있지만 남대식 선생님은
홍명보 선수를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한 분이셨기에
여러분들에게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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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이 쪼달리는 유학생이었던 나 -
왕복 5천엔의 교통비와 소요시간 약 3시간이 걸리는 히라쓰카까지
홍명보 선수의 연습장면을 보겠다는 일념하에 연습구장에 갔는데...
나는 먼발치서도 삼삼 오오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는 연습구장에서
훈련하는 선수들 속에 홍명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힘들게 찾아온 나로서는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허탈하게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으려는 순간 왼편에 왠 낯익은 한 사람이 보이는 것이다.
'어랏?'
선수들 연습하는 것을 턱을 괜 포즈로 주시하는 그 사람은 바로 홍명보 선수였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연습안하시고 여기 계세요?"
"아, 손님이 오셔서....(옆의 분을 가리키며)나 대학교 때 감독님이셔.(또 나를 가리키며) 제 팬클럽...(약간 우물쭈물하더니)회장이에요."
고려대학교 감독을 하시던 남대식감독님은 일본에 유학온 딸에게 놀러온 김에 홍명보 선수를 만나러 오신 것이었다.
"연습은 빠지셔도 되나봐요?"
"사정이 있으면 그렇지. 여기선 다 알아서 훈련에 참석하고, 빠지면 자기만 손해니까 강제적으로 해라 마라 하지는 않아."
홍명보 선수는 이런 자율적인 일본 프로팀의 훈련방식을 무척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먹구름이 끼어있던 하늘 - 잠시 후에 예상했던 비가 쏟아졌다.
홍명보 선수와 남대식감독님은 홍명보 선수의 차 안으로 비를 피하러갔고 나는 우산을 펼쳐든 후 되돌아가려고 하는데 홍명보 선수는 클랙션을 누르며 나를 불렀다.
"차에 타."
잠시 구단에 볼일이 있다면서 차를 구단 앞에 세워놓고 홍명보 선수가 나가자 남대식감독님은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감독님은 말수가 전혀 없는 홍명보 선수와는 180도 반대로 아주 대화에 능한 분이었다.
"명보는 학교 다닐 때 내가 기절할 때까지 때려가면서 키워봤는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언제 어떤 말을 해야할지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야. 진짜 인격이 된 사람이야."
그 때는 그냥 막연히 음...그런가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진짜로 알게된 것은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뒤였다. 그 때만 하더라도 홍명보 선수가 나에 대해서 선수와 팬의 선을 딱 긋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은 어려운 존재였다.
그래서 전편에도 기재했지만 내가 인간적으로 친하기 보다는 선수와 팬의 관계로서 만족하고 선수로서의 홍명보 선수를 알아내겠다는 생각을 했는진 모르겠다.
아무튼, 홍명보 선수가 사무실에서 나왔다.
뭔가 한아름 안고 나온 것이 선물들이었다.
그 때 홍명보 선수가 나에게 "왠만한 것은 이렇게 구단에서 챙겨주니까 나한테 보낼 것은 구단으로 보내라고 해줘"라고 부탁을 했었고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그렇게 부탁하고 계신다.
선물들을 실은 뒤, 지하철 역까지 나를 바래다주겠다고 홍명보 선수가 말하기에 내가 미안해하자, "어차피 오늘은 명보한테 내가 밥을 사줘야 해서 거기 가야하거든. 어제는 명보가 돈 많이 썼지.^^"라며 남감독님이 선수쳐서 답변을 해주셨다.
잠시 뒤 홍명보 선수는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한 상가를 가리키면서
"저기서 저희 집사람이 얼마전 쓰러졌었어요.(당시 임신 7~8개월 째였는데)
저는 모르고 시합준비 하고 있는데 구단에서 오늘 시합 안나가도 되니까 얼른 병원에 가서 부인을 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난 괜찮다, 시합 뛰고 만나도 된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구단에서 더 펄쩍 뛰었어요. 부인이 쓰러졌는데 무슨 정신으로 경기를 하냐면서요.
오늘 경기보다 그 일이 더 중요하고,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면서 병원으로 떠밀더라구요. 사실 저도 집사람 혼자 길거리에서 쓰러졌다고 해서 아찔했거든요. 그날 시합은 결국 쉬었구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감독님 왈.
"아마 우리나라라면 아버지 상을 당해도 경기는 나가야한다면서 가슴에 리본 달고 뛰게 했을꺼야. 빠지긴 어딜 빠져? 오늘 시합이 어떤건데! 하면서 말이지. 하하하하"
그 이야기를 듣고 홍명보 선수가 부인을 상당히 아끼고있다는 것을 알았고, 부인의 건강이 조금 염려되었다.
지하철 역에 도착해서 홍명보 선수는 나와 남감독님을 내려놓고
조수미씨와 남감독님 부인을 데리러 집으로 갔다.
이제 나는 남감독님에게 인사하고 가려는데,
"동포를 여기까지 와서 만났으니 차나 한잔 사겠다."고 해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국 축구의 열악한 환경과 일본의 모습을 비교하며 이야기를 해 주셨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인조잔디랑 모래밭에서 뛰고 있잖아.
일본애들은 잔디밭에서 뛰고 있고. 거기서부터 틀린거야.
일본애들보고 그 인조잔디에서 뛰라고 해봐. 다들 절래절래 할꺼야.
거기서 다 까지고 다치고 하면서 뛰면서 커온 선수가 우리나라 애들이지.
그런 것에서부터 정신력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여건이 좋은 외국으로 보낼 수 있으면 보내고 싶은 것도 사실이야.
명보는 한국에서는 1억정도밖에 못받았잖아.
일본에서 10억 받고 있지만 그만큼의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 실력있는 선수야.
한국에서도 그만큼의 대우를 진작에 받을 선수였는데... 여건이 안되서 그랬지만..."
나중에 내가 여러가지 자료를 모으면서 홍명보 선수가
97년 일본진출을 하기 전까지 수많은 시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94년 월드컵을 마친 뒤 유럽리그에서 여러 팀들이 홍명보를 스카웃하려고 했었으나
포항팀에서는 이적료를 비롯한 홍명보 선수의 연봉 등을 협상하면서
'터무니없는 값에 홍명보를 보낼 수 없다'면서 진출 그 자체를 거절해버리고 말았다.
이 현상은 과거 안정환 선수의 이탈리아 페루자팀과 부산대우팀과의 협상이 결렬될 때와 비슷한 것으로,
홍명보 선수 자신은 적은 연봉에서부터 시작하더라도 유럽리그에 나가고 싶어했었고
소속팀은 거기서부터 홍명보가 스스로 실력을 키우며 연봉을 높이면 된다는 것에 대해 너무 몰랐거나 무심했던 탓에 홍명보 선수는 결국 아무대도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 이전에 황선홍 선수가 독일에 축구유학을 갔다가
오히려 부상이 악화하면서 고된 슬럼프에 빠진 것을 보고
지레 홍명보에 대해서도 겁을 먹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홍명보 선수는 96년도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경기를 하고
'나는 더이상 오를 곳이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데쉬를 한 벨마레 히라쓰카팀에 도망치듯 이적을 하게 된 것이다.
늘상 홍명보 선수가 그 때 유럽에 갔었더라면 지금의 안정환이나 나까다보다도 훨씬 더 좋은 선수로 인정받고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을 난 가지고 있다.
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서 -
남대식 감독님과 10분정도 이야기를 하고 있자 홍명보 선수가
부인 조수미씨와 남감독님 부인과 함께 찻집에 나타났고
나는 간단히 홍명보 선수 부인과 인사를 한 뒤 헤어졌다.
화장기 하나없는 홍명보 부인은 보기에도 몸이 힘들어보였다.
그리고 얼마 뒤에 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했다.
겨울이 되었을 때 홍명보 선수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봄이 되어 스포츠신문에 홍명보 선수가 국가대표 경기 때문에 입국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김포공항에 나가봤다.
한참을 서성이다보니 모니터에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린 한 남자가 보였다.
직감적으로 홍명보 선수라는 것을 알고 달려갔는데 내가 부르자 홍명보 선수는 화들짝 놀래는 것이었다.
그 참에 몇몇 기자들이 홍명보 선수를 붙잡고 인터뷰를 했고 그 뒤를 유모차를 끌며 나온 부인과 나는 인사를 했다.
"정말 이렇게 공항까지 나와줘서 정말 고마와요."
유모차 안의 성민이는 새근새근 자고 있었는데 정말 인형같았다.
이후로도 몇번 홍명보 선수가 일본에서 귀국을 하게 되면 나가봤었다.
물론 사전에 연락이 없이 한번 가볼까...하는 생각으로 나갔던 것인데
운 좋게 만나볼 수 있었고, 그 때마다 홍명보 선수는 무덤덤했지만 부인인 수미언니는 무척 반가와했다.
그 홍명보 선수의 무덤덤한 대꾸가 가끔은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어서
내가 이렇게 만나봐도 되는 것인가? 다음엔 만나면 안되나?하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그러나 그것은 홍명보 선수 특유의 무뚝뚝함 때문이고,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홍명보 선수가 보이는 태도는 조금씩 변한다는 것을 안 것은 또 한참 지내보고나서의 일이다.
이런 비유를 하면 두 선수 다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지만 ~
황선홍 선수는 처음 보는 순간에 그 사람의 인간성에 반해버리게 만드는 사람인 반면에
홍명보 선수는 처음엔 상대방을 빨아들일 것 같은 위압감과 차가움으로
상대방을 질리게 만들지만 함께 지내면 지낼수록 의리와 진국의 사나이라고 난 감히 평한다.
어쨌든 2000년 여름까지도 홍명보 선수를 만나러 일본에 가도 홍명보 선수는 늘 어려운 존재였던 것은 사실이다.
홍선수 나름대로 나에게 잘해주고 나도 거기에 매번 감동받기는 했지만
오빠~! 저에요~! 하면서 친근하게 애교를 떨 수 없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그에겐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황선홍 선수에게는 처음 만난 뒤부터 그게 가능했다.)
그런 홍명보 선수의 의리!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
나의 결혼과 2001년 12월 가시와레이솔 퇴단식 때였는데
그 때 홍명보 선수는 다른 사람에게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농담과 제스쳐, 그리고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제 개인 홈페이지 http://ariel20.hihome.com 에
가보시면 master board라고 있습니다.
그 안에 홍명보 선수네 가족과 보낸 반나절이라는 글과
가시와레이솔 퇴단식을 보고...라는 글이 있으니까 한번 읽어보세요.)
그러면서 홍명보 선수가 정말로 나를 팬클럽이라는 것을 떠나서
인간적으로도 믿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도 그랬을지 모르지만.... 그 때야 비로소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너무도 감격하여 밤새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일본에서 황선홍 선수와 유상철 선수 때문에 한국 월드컵을
보러 온 언니들이 있어서 그녀들을 핑계삼아 인천의 올림푸스 호텔에 갔었다. (죄송해요 여러분...-_-)
삼엄한! 경비 속에 선수들이 호텔방으로 들어가려고 줄서서 걷고 있는데
내가 홍명보 선수를 부르자 식사를 마치고 잠시 시간을 내 주었다.
홍명보 선수의 핸드폰은 불이 나게 울려댔는데,
거기서 부인인 조수미 언니의 전화가 울리자 그 전화만 받았다.
"(나)전화를 잘 안받으시는군요."
"하도 기자들이 성가시게 굴어서 모르는 번호가 오면 아예 안받어."
"(나)경기 마치고 피곤한 선수들한테 전화까지 해서 괴롭힌단 말이에요?"
"그러게 말야."
"(우리 신랑) 어떻게 형 핸드폰 번호를 다 알죠?"
"(나) 뭐 한명 알려주면 금새 다 퍼지는 거죠?"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그게 다 그렇지 뭐."
홍명보 선수의 윙크하는 모습은 그날 첨 봤습니다. 그런 집에서 할 법한 표정을 짓는 것은 첨봐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홍명보 선수의 부인인 수미언니는 무척 자상하신 분입니다.
언니가 그러시는 겁니다.
결혼발표할 때 -
"결혼하면 지영씨랑은 이제 끝이구나 했어요. 그런데 신랑이 이렇게
좋아해주니 앞으로도 자주 만날 수 있는거죠?"
한국에 귀국한 뒤에 -
"혹시....팬클럽은 우리 애기아빠 은퇴하면 없어지는거 아니죠?
은퇴하고 난 다음에도 팬클럽이랑 애기아빠랑 관계가 유지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마음이 홍명보 선수의 마음과 같다는 것도....
그 무렵에 홍명보 선수가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 수미언니가 방송에서 말했듯이,
홍명보 선수는 말은 없지만 자기 생각을 상대방에게 마음으로 느끼게끔 해주는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팬클럽은 홍명보 선수가 할아버지가 되어도 계속 운영될 것입니다.^^
그 외에 홍명보 선수에 대해 느낀 바는
Together 랑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에 대충 썼으니까
그 책을 사신 분들은 함 읽어봐주세요~
너무 너무 긴 글을 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로 인해서 여러분들의 홍명보 선수에 대한 사랑의 불길이 더욱 거세지길 바라면서..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