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鶴) 산촌의 겨울저녁(山村冬暮
衡茅林麓下(형모림록하)-산기슭 초가로도
春色已微茫(춘색이미망)-봄기운이 가늘게 오는구나
雪竹低寒翠(설죽저한취)-눈 덮인 대나무에 차가운 푸른 싹이 아래서 움트고,
風梅落晩香(풍매락만향)-매화에 바람 불어 늦은 향기 떨어지네
樵期多獨往(초기다독왕)-나무할 때 혼자 가고,
茶事不全忙(다사부전망)-차 끓일 때 바삐 하지 않노라
雙鷺有時起(쌍로유시기)-백로 한 쌍이 가끔
橫飛過野塘(횡비과야당)-백로 한 쌍이 가끔 들못을 비껴 날아간다.
임포(林逋)
인간 없는 61년, 그곳의 평화
이 사진들은 환경부가 실시한 1953년 정전(停戰)이후 61년간 사람의 발길이 끊긴 비무장지대(非武裝地帶 DMZ)의 “DMZ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사진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들이다.
자연(自然) !
보통명사로서 모든 사물에 두루 쓰이는 “자연(自然)”은 말과 글로 표현 할 수 없는 깊고 멋진 말이다.
아쉬운 것은 우리말이 좀 더 오래 닦여지고, 압축된 뜻의 말이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위자연(無爲自然) !
전혀 손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
인위적인 손길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自然),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를 가리키기는
“~~함이 없는 그르러니 한 것”
억지로 무엇을 하지 않고 만들지 않고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삶을 산다는 것은 축복이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은 자연(自然)이후의 소리다.
그러므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서양의 “네이쳐(nature)”와는 차원이 다른 의미의 자연이다.
서양이 유위자연(有爲自然)이라면 동양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문명을 발달시키면서 자연을 변형시킨 결과가 배부르고 오래살고 편리한 결과인 것이다.
오래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
팽조(彭祖)처럼 800년을 살 것인가
구약성경의 므두셀라(Methuselah)처럼 969년을 살 것인가(창세 5장21절∼27절)
모두 영원히 살지 않으면 부질없는 기간이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끗하고 건강하게” 살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낙엽귀근(落葉歸根)의 삶이 아름다운 것이다.
송나라 임포(林逋967∼1028)는 자연 속에서 학(鶴)을 사랑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임포는 독신생활(獨身生活)로 동자(童子)하나만 데리고 살았다.
그의 집에는 매화나무가 많고 학(鶴)이 살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매처학자(梅妻鶴子)”라 했다.
임포가 “매화(梅花)에게 장가들어 학(鶴)을 낳았다”는 뜻으로,
임포의 고상한 자연생활을 말해 주는 재밌는 표현이다.
유적지 답사를 위해 여행을 하다보면 도로는 참 잘되어 있어 편리하다.
그러나
개발의 미명(美名)아래 우리의 산천이 너무 파헤쳐져 있다.
곳곳이 상처투성이다.
그 중 하나가 잘못 개발된 “4대강개발”이다.
61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없었던 “DMZ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그래서 더 소중한 자연이다.
필자는 우리강산의 산천을 볼 때마다 펄벅 여사의 “대지(大地)” 를 떠올리게 한다.
메뚜기가 쓸고 간 황량한 벌판
비(非) 자연주의 사람들이 온갖 명분으로 남산, 삼각산, 관악산 뿐이겠는가
온 산천을 파헤쳐서 메뚜기가 쓸고 간 해골(骸骨)만 남기고 있다.
우선 서울대학교부터 옮겨 관악산을 되살려 서울시민의 폐(肺)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
역설적으로 전쟁이 가져온 평화의 행복이 “DMZ”에 있다.
☺농월

▲독수리(秃鳩)
萬里千如咫尺間(만리천여지척간)-넓은 하늘을 지척처럼 날아가며
俄從某峯又玆山(아종모봉우자산)-이 산 위에 번쩍 저 산 위에 번쩍
平林搏兎何雄壯(평림박토하웅장)-숲속의 토끼잡이가 어찌나 웅장한지
也似關公出五關(야사관공출오관)-오관을 넘나드는 관운장만 같구나
김병연(金炳淵)

▲영원대자연이치(永遠大自然理致)
村郊景物日芳菲(촌교경물일방비)-시골 마을 풍경이 날로 꽃다워지니
閒坐松陰玩化機(한좌송음완화기)-솔 그늘에 가만히 앉아 때가 변하는 것 바라보네
金色청령銀色蝶(금색청령은색접)-금빛의 잠자리와 은빛의 나비들이
菜花園裏盡心飛(채화원리진심비)-채마밭 동산에서 마음껏 날고 있네
이용휴(李用休)

▲꽃 한송이
花開昨夜雨(화개작야우)-지난 밤 비에 꽃이 피더니
花落今朝風(화락금조풍)-오늘 아침 부는 바람에 꽃이 지네
可憐一春事(가련일춘사)-가련하구나 하루 봄날의 일들이
往來風雨中(왕래풍우중)-비와 바람 가운데 오고 가는구나.
송한필(宋翰弼)

▲할미새(鶺鴒)
鶯歌鷰語選姬鬟(앵가연어선희환)-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말을 첩과 종년으로 고르고
三百飛禽總紀官(삼백비금총기관)-삼백의 날짐승은 모두 벼슬이름일세.
唱斷鶺鴒雙下淚(창단척령쌍하루)-애끓는 할미새 노래 부르니 두 줄기 눈물 흘리는데
弟兄何日更相看(제형하일경상간)-형제가 언제 다시 만날까?
조수삼(趙秀三)

▲해금강(海金剛)
萬二千峰彫刻奇(만이천봉조각기)-만이천봉 새긴 모양 기이하기도 한데,
化工衒巧有餘思(화공현교유여사)-화공이 기교자랑하다 여유 부렸나.
海中更試一場劇(해중갱시일장극)-바다속에 다시 한바탕 놀이 벌려,
幻出金芙三四枝(환출김부삼사지)-금부용 서너 줄기 뽑아 올렸다.
남한조(南漢朝)

▲고석정(孤石亭)
長溪繞山流泱泱(장계요산류앙앙)-산을 휘감은 긴 계곡의 물줄기 힘차서/
巨石屹立出水長(거석흘립출수장)-우뚝 솟은 우람한 바위를 부딪쳐 흘러간다.
我陟其上聊相羊(아척기상료상양)-내 그 바위에 올라 이리저리 거니니
恍若鶴飛而鸞翔(황약학비이난상)-황홀하여 학과 난새가 비상하는 듯하다.
丹崖翠壁環其傍(단애취벽환기방)-깎아지른 푸른 벽이 둘러쳐졌고
其底潭心龍必藏(기저담심용필장)-그 밑 여울엔 용이 필시 있으리라.
隱隱有窟穿其腸(은은유굴천기장)-용의 창자를 뚫어낸 까마득한 굴에
我欲入之心魂揚(아욕입지심혼양)-내들어서려니 정신이 아찔하고
却立哨嶢俯蒼茫(각립초요부창망)-높은 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보니
若墜復稽仍徊徨(약추복계잉회황)-떨어질까 움찔하며 이내 주저한다.
奇形異相狀無方(기형이상상무방)-기이한 모양과 형태 모두가 제각각
此地盤遊何代王(차지반유하대왕)-이 땅에 노닐던 이, 어느 대의 왕인지
有碑記刻今則亡(유비기각금즉망)-비석에 새긴 기록 지금은 없어지고
泰封高麗迭興昌(태봉고려질흥창)-태봉과 고려가 연이어 번성하여
緣溪長麓有城隍(연계장록유성황)-계곡의 긴 산등성엔 성황이 있다.
人事代謝豈有常(인사대사기유상)-계속되는 사람의 일에 일정함이 있던가?
山川遊覽應無央(산천유람응무앙)-산천유람도 응당 지속될 수 없어라.
俯仰今古情內傷(부앙금고정내상)-고금을 생각하니 마음이 서글퍼져도
我來復値月純陽(아래복치월순양)-내 다시 찾아오니 한창의 봄날이라.
紅葩翠葉映波光(홍파취엽영파광)-붉은 꽃 푸른 잎 물에 비춰 흔들리니
異境幽趣却相忘(이경유취각상망)-신이한 경치에 취해 너와 나를 잊어서
縱欲歌之安能詳(종욕가지안능상)-시를 지으려 하나 어찌 말로 다하랴?
長嘯獨倚松樹蒼(장소독의송수창)-오래도록 푸른 소나무에 기대 휘파람분다.
허적(許迪)

▲자연속의 삶
蘿衣蕙帶稱如何(나의혜대칭여하)-담쟁이넝쿨로 옷 해 입고 난초로 띠를 매면 어울릴까?
因樹爲居在澗阿(인수위거재간아)-개울가의 나무 밑에 가지 엮어 살고 싶다.
砌覆芭蕉搖扇易(체복파초요선이)-섬돌 덮은 파초 잎은 부치기 쉬운 부채이고
徑添苔蘚鋪氍多(경첨태선포구다)-길을 덮은 이끼는 넓게 깐 보료겠네.
把竿衝雨當扶老(파간충우당부로)-낚싯대 잡고 비를 뚫고 가면 그게 바로 지팡이요
據石臨泉是養和(거석임천시양화)-바위에 걸터앉아 계곡물 내려보면 방석이 따로 없다.
挼碎鳳仙沾荻筆(뇌쇄봉선첨적필)-봉선화를 비벼 짜고 갈대 붓에 즙을 적셔
拾將梧葉寫隱歌(습장오엽사은가)-오동잎을 주어다가 은사(隱士)의 노래 지어내리.
정학연(丁學淵)

▲학(鶴)
人有各所好(인유각소호)-사람은 저마다 좋아하는 바가 있고
物固無常宜(물고무상의)-세상물정에는 애당초 꼭 그래야만 하는 법도 없어
誰謂爾能舞(수위이능무)-누가 너를 일러 춤을 잘 춘다 하는가
不如閑立時(부여한립시)-한가롭게 서 있을 때만 못한 것을
백거이(白居易)

▲자연속의 삶(閑中自慶)
日日看山看不足(일일간산간부족)-날마다 산을 봐도 늘 부족하고
時時聽水聽無厭(시시청수청무염)-언제나 물소리를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自然耳目皆淸快(자연이목개청쾌)-자연으로 향하면 귀와 눈은 다 맑고도 상쾌해
聲色中間好養恬(성색중간호양념)-그 소리와 그 빛 사이에서 평온한 마음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