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K리그 컨텐츠를 많이 제작하여 많은 취미 게임 인터넷 온라인 오프라인 팬들을 유입시켜 파급효과를 일으켜주리라 약간의 기대가 됩니다.
축구와 코미디의 연관성을 생각하다가
축구선수 출신 코미디언 을 나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코미디언 이주일 - 한국 코미디황제
코미디계의 전설로 남은 인물이다.
당시를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연예인 한 명이 이 정도 규모로 하나의 사회현상을 일으킨 인물은 대한민국 역사상 이주일이 유일하다. 이름이 유래된 그대로 '2주일'(이주일)만에 신드롬급으로 떠서 업계 1등 국민스타가 된 유일한 연예인이다. 심지어 그 엄청난 가왕 조용필조차 당시 연예인으로서 가졌던 위상과 인기, 하나의 사회현상의 크기로 따진다면 이주일의 상대가 못된다.
훗날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에 폭풍을 일으키지만 충격의 여파는 가요계 흐름변화에 그쳤고 연령대 역시 사회 장년층과 노인층에게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대한 충격의 크기로는 역시 이주일의 상대가 못된다. 당시 이주일은 그야말로 이제 막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 어린아이부터 80대 노인까지 TV를 보는 한국 사람 전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TV를 지배했다. 단 한 명의 연예인이 사회 전체에 이 정도 파장을 남긴 일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당시 공중파의 위상을 알려주는 사실이기도 하다. 사실상 조용필과 더불어 딴따라 광대 취급받던 연예인이 정재계 인물급으로 존경받는 유명셀럽으로 대접받기 시작한 포문을 연 인물이라 볼 수 있다.[8]
어려웠던 1980년대, 국민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으며 사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다. 그런데 그 이유인즉, 코미디언으로서의 업적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금연운동에 기여한 공로(...)였다[9]. 어쨌건 이주일의 메시지는 역대 금연 광고 중에서도 가장 높은 효과를 냈다고 한다.
축구선수 출신 이주일
이주일은 춘천고 시절 축구선수로 뛰었으며, 춘천고 동창생이 바로 1983년 멕시코 U-20 월드컵 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이룬 빠따 박종환 감독이다.
이주일이 무명시절에 고생을 할 때, 박종환이 가끔씩 도와줬다고 하는데 이주일의 부인이 출산 후 몸조리는커녕 먹을 게 없어서 고생하고 있을 때 박종환이 미역과 쌀을 사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주일은 항상 박종환을 고맙게 생각했고, 유명 코미디언이 된 이후에는 박종환 감독에게 승용차를 선물하기도 했다고 토크쇼에서 여러번 언급하였다. 본인도 고인이 된 이주일을 언급하면서 "그 친구만 생각하면 눈물만 난다"며 각별한 우정을 과시했다.
그밖에 잔디구장 건립기금으로 1천만원을 내기도 했고, 연예인 축구단인 무궁화 축구단 단장을 지낸 바 있으며, 상기했듯, 2002년 월드컵 당시 투병 중인 몸을 이끌고 직접 경기를 관람하기도 하였다.
축구선수- 코미디언-국회의원 까지 당선된 이주일
1988년 4월 MBC의 한 코미디 프로에 나와서 "이제 13대 국회가 시작됐습니다. 13대 국회도 횡설수설을 즐겨하는 국회가 된다면 이 이주일도 14대 총선에 자신있게 출마하겠..."라는 개그를 시전한 바 있는데 4년 뒤인 1992년 스스로 뱉은 개그가 현실이 됐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으로 진출했다.
---- 이주일과 대조적으로 축구선수였다가 예능인이 된 케이스는 안정환 안정환은 축구선수 출신 예능인으로서 대활약 중. 외모가 출중한 안정환과 코미디황제 이주일은 축구선수와 예능방송인이라는 공통의 경력.
강동원 - 강동원은 현재도 일이 없는 날이면 아침 6~7시까지 축구를 보며 밤을 새우는 축구 마니아다. 집안의 반대가 워낙 심했던 탓에 축구를 그만뒀지만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그의 재능은 빛났다. 경원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또 다시 축구부 감독의 제의로 축구를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집안의 반대가 심해 결국 축구를 포기해야 했다.
노우진 - 축구선수 출신(차두리와 동기) kbs 개그맨
조한선 - 축구선수 골키퍼 출신 영화배우
윤두준 - 축구 해왔던 매니아 출신 가수
아이돌 중에서도 손꼽히는 축구 매니아. 어릴 때부터 축구를 해왔고, 학창시절 때는 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본인이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체육선생님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고...
강심장 출연시, 김남일 선수와 같은 경기[14]에서 어차피 이기지 못할 거, 추억이라도 만들자는 생각에 김남일 선수와 일부러 부딪혔다가 나동그라졌다 한다(...).
서동균 - kbs 개그맨
작고한 코미디언 서영춘의 아들로 잘 알려진 서동균은 중·고등학교 시절 축구 선수로 맹활약했다. 남대문중과 광운전자공고에 다니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운 서동균은 선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예인 축구단에서도 183cm의 훤칠한 신체 조건과 왼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능력, 타고난 축구 센스를 앞세워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노지훈(위탄1) - 고등학교때까지 축구선수
구자명(위탄2) - 청소년 국대 출신 공격수
샘카터(위탄2) - 잉글랜드 풀럼 주니어 소속 스트라이커
김동준(제국의 아이들) - 고등학교때 까지 선수. 미드필더
최민호(샤이니) - 아버지의 반대로 그만둠. -------
축구선수 출신 대통령 국회의원 정치인
조지 웨아 - 프로축구선수 출신으로 최초 한 국가의 대통령. 현재 라이베리아 대통령.
트럼프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70)가 학창 시절 축구 선수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스포츠 신문 ‘마르카’는 9일자 인터넷판 뉴스를 통해 트럼프가 청소년기에 축구 선수로 뛰었던 사실이 있다며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10대 후반에 뉴욕군사학교에서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만 17세에 축구팀의 단체 사진에 모습이 포착됐다. 트럼프와 함께 뛰었던 동창들은 “승리하고자 하는 정신력이 강했고, 신체 능력이 뛰어났다”며 축구 선수 트럼프를 기억했다.
트럼프의 부친은 독일계 프레드 트럼프다. 트럼프는 독일 이민자 3세다. 모친도 스코틀랜드 태생의 매리 애니다. 유럽계 미국인으로 어려서부터 축구에 관심을 보였다. 트럼프는 스포츠에 흥미를 보여 축구 선수뿐 아니라 야구와 미식 축구 활동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 각주에서 얘기한 카슴파샤는 이당시에는 3부리그와 아마추어리그를 넘나드는 클럽이었다. 하지만 한때 터키 쉬페르 리그 초창기(정확히는 쉬페르리그 2년차때 가입)멤버중 하나였고, 2012시즌에 다시 복귀해서 현재 쉬페르 리그 중상위권까지 올라왔다.
전두환
청년기 운동선수로서의 전두환 전두환은 대구공고에서 축구부였고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로 몸이 엄청나게 단련되어 있어서 싸움을 잘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 다리 힘이 엄청났다.
육사 생도 시절의 전두환 성적은 하위였지만 체력이 강하고 운동을 즐기던 전두환은 축구부원이였고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중학교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며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축구선수로서 계속 활약했다.[5] 이 전력이 있는 전두환은 대통령이 된 이후 축구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는데, 1983년 5월 K리그 개막 경기에 직접 참관을 비롯하여 박종환 당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불러서 축구국가대표팀의 작전과 선수기용을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5] 전두환이 생도시절에 주최된 전국 대학 축구대회에서 육군사관학교는 당시 골키퍼였던 전두환의 맹활약으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 외국..
호마리우 - 브라질 국회의원. 리우 데 자네이루 연방 상원 의원.
지아니 리베라(1943년생/ 이탈리아/ 국회의원 4선) 이탈리아 그리고 밀란의 전설인 리베라는 현역 시절인 1968년 AIC(이탈리아 축구 선수 연맹)을 설립했고, 이후 선수 노조의 대포로서 활약한 특이한 경력을 자랑했다. 공교롭게도 1986년 리베라는 밀란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새로운 구단주로 선임하면서 구단과의 연을 끊었다. 밀란의 부회장까지 역임했던 레전드의 이탈은 단 하나, 정치적 신념 때문이었다. 정치인이자 동시에 미디어 재벌인 베를루스코니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우파다. 오른쪽보다는 왼쪽을 지향하는 리베라와는 여러모로 대조됐다. 1987년 리베라는 이탈리아의 기독민주당의 일원으로 국회의원이 됐고, 1996년까지 4선에 성공했다.
선수시절 AC밀란 레전드. 발롱도르 수상. 유로 우승. 유로피언컵 우승. 은퇴 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1986년 팀을 사들였을 때, 그는 팀을 떠났고 정계에 진출하였고, 이탈리아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는 로마노 프로디 내각에서 국방부의 부국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베베투 - 브라질 정치인 요람 세레머니의 주인공. 호마리우와 함께 정치판에 뛰어들어 주의원이 됨. 호마리우의 정치적 라이벌로 여겨짐.
로만 파블류첸코(1981년생/ 러시아/ 2008 통일 러시아당 하원의원)
해외 축구선수 출신 영화배우.
비니 존스 -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의 윔블던 FC에서 보냈고, 첼시 FC, 리즈 유나이티드, QPR 등의 팀에서도 뛰었다.
출연 1998년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2000년 스내치
2001년 그들만의 월드컵
2004년 유로트립
2006년 엑스맨 3 - 최후의 전쟁 : 저거노트
2008년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에릭 칸토나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전드
은퇴 후에도 계속 축구계에 몸담고 있었는데, 각종 미디어의 인터뷰는 물론이요 각종 광고, 축구 영화에도 출연해 주셨다. 축구 잡지나 광고, 영화에 수염 더부룩하고 머리까지 더부룩한 웬 노숙자같은 아저씨가 나왔다면 십중팔구 이 사람이다(…).
배우로써 경력도 은근 있는 편. 1995년 프랑스 영화 Happiness Is in the Field로 데뷔해 작은 역들을 맡다가 2009년 좌파 영화로 유명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에릭을 찾아서>의 타이틀 롤(!)을 맡았다. 이 영화는 그 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상당히 괜찮은 코메디 영화라는 평을 들었다. 덕택에 에릭 칸토나는 그 밟기 힘들다는 칸 영화제 레드 카펫도 밟았다. 이후로도 프랑스 영화나 영국 영화에 소소하게 출연하고 있는 중. 2015년 하반기에는 디즈니-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굿 다이노의 프랑스어 더빙판에서 포레스트 우드부시 역의 목소리를 맡기도 했다.
르뵈프 Franck Alain James Lebœuf - 첼시, 마르세유 경력, 프랑스 국대 경력
축구 선수에서 은퇴한 뒤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2년동안 살았다.[4] 이 시기에 르뵈프는 아마추어 축구 팀인 할리우드 유나이티드 FC에서 비니 존스, 앤서니 러팔리아 등과 함께 축구를 했다.[5] 동시에 르뵈프는 연기를 배우고 싶다는 열정을 갖게 됐고,[4] 웨스트할리우드의 리 스트라스버그 연극 학원에서 연기를 배웠다. 프랑스에서 연극을 몇 차례 했고, 2014년에 개봉한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는 의사 역할로 나왔다.
---- ‘성악의 제왕’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파바로티는 1935년 10월12일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에서 태어나 빵집을 하는 부모 밑에서 외아들로 컸다. 유년시절에는 음악보다 축구에 더 관심을 가져 고향 사람들에게는 축구선수로 먼저 알려졌다. 파바로티, 어릴 때 꿈은 프로 축구 선수. --- 이탈리아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
원래 태어날 때부터 녹내장 증상이 있었으며, 12살 때 축구를 하다 머리에 충격을 받는 사고로 인해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상당히 무시무시한 엄친아다. 시각장애에도 불구하고 피사대학교,법과대학원에 진학하고 1년간 변호사로서 경력을 갖기도 했다.)
라니에리 친분으로 레스터시티 리그 우승 축하 공연을 하고 축구에 대한 사랑으로 200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오프닝 공연을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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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출신에서 정치인 연예인 케이스도 있고
김학범, 마우리시오 사리 처럼 은행원 출신에서 축구 감독 성공 케이스도 있습니다.
---- 이상으로 축구와 코미디의 연관성을 생각하다가 축구선수 출신 유명인 케이스를 나열해봤습니다.
감스트도 인터넷방송계의 코미디언 스타일의 크리에이터로서 K리그 홍보대사 라는 직함의 축구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 축구와 코미디의 매력적인 결합으로 빅재미 기대합니다.
첫댓글 교황 요한바오로 2세도 골키퍼 출신
노우진은 예체능나와서 축구하는거 보니깐ㄷㄷ
위의 축구 관련 인물들 중 강동원은 차기 홍보대사감으로 파급효과 꽤 있다고 봅니다. 영화배우 톱 흥행 수표이고 여성팬들이 많아서 K리그 많이 유입될 가능성 클 듯해요. 노우진 개그맨도 괜찮고요. 감스트가 이번에 흥행몰이에 큰 영향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