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때때로 노력이 버거운 이유는
내 노력의 결과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게임에서 성장이란 재미 요소를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에서는 내가 레벨업하고 있다는 게 스탯으로 환산되어 눈에 보이므로,
시시각각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충분한 동기 부여가 이루어지는 반면,
실제 세계에서의 인생사란 게임처럼 뭐든지 수치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당장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노력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이 사실은 아무 쓸데 없는, 헛된 노력은 아닐까라는 의심과 허무함을 품게 만드는 것이죠.
만약, 어떠한 존재가 내 옆에 있어서,
내가 얼만큼 성장하고 나아지고 있는지 매번 나에게 피드백을 줄 수 있다면,
우리는 충분한 성취감과 보상감을 느끼면서 가일층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에 매진할 수 있을 겁니다.
※ 아이돌 연습생이 혼자서 연습하는 상황과
대형기획사에 들어가서 멘토들의 케어와 피드백을 받으며 연습하는 상황을 비교해 보자.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확실한 심증을 얻게 되면, 그것은 곧 굉장한 에너지와 동기 부여로 전환될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 주변에 그런 존재가 있을 턱이 없으므로,
여기 여러분께, 내가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판별해볼 수 있는 일종의 자가 키트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다섯가지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성장하고 있는 겁니다.
불편감에 익숙해져가는가?
사람들은 흔히,
불편감을 내 인생에서 배제시켜야 하는 악의 축이라고 여기며
최대한 이를 회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가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다만 문제는, 그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거죠.
어차피 살면서 우리가 불편감이란 녀석과 필연적으로 맞닥뜨려야 한다면,
오히려 이 놈을 내 옆에 두면서 최대한 길들이고 통제하는 편이 더 나은 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불편감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시하면서, 얼마나 유도리있게 핸들링할 수 있는가?
만약 당신이 그 어떠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묵묵히 버텨내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이미 당신이 불편감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만큼 강인한 사람이라는 반증일 것입니다.
독립성이 강해지고 있는가?
사람들이 살면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스트레스 중 하나가 바로 다른 사람에 대한 의존성이 불러일으키는 "불안감"입니다.
타인에게 기대고 의지하고 기대하는 일의 장점은
사회적 동물로서 연결감이라는 만족을 느낌과 동시에, 실제로 필요한 것들을 제공받는다는 안락감에 있습니다.
반면, 이러한 안락감, 안전감은 나를 케어해주는 대상이 떠나면 곧바로 사라지기 때문에,
누군가에 대한 정서적/물질적 의존은 무의식적으로 강한 "분리 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 부모에게 의존성이 강한 아이일수록, 안정적인 애착 형성이 힘든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타인에 대한 의존은 본질적으로 '이 사람이 없으면 어떡하지?' 라는 근원적 공포를 불러일으킴으로써,
강력한 분리 불안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는 성인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이다.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강한 의존성을 띄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인 분리 불안으로 인해 지나친 집착이나 질투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독립성이 강해진다 함은 곧 그 사람이 분리 불안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해 나갈 수 있다는 내적 자신감이 생기고 있는 것이죠.
NO라고 말할 수 있는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 뿐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등쳐먹으려고만 하는 하이애나들에게 빨대를 꼽히지 않으려면,
어렵더라도 단호하게 아닌데? 싫은데?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이애나들이 처음에 가볍게 부탁을 하는 것은
권투로 따지자면 잽을 날려보면서 상대를 가늠해보는 과정과 비슷해서,
어? 이거 할만한데? 빨대 꼽을 수 있겠는데? 라는 계산이 서면 그 때부턴 점점 더 피치를 올리며 본격적으로 훅을 날리게 되요.
따라서, 검증되지 않은 자가 부탁을 해 올 땐,
깊게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NO라고 대답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 됩니다.
잽을 맞았을 때 바로 카운터로 응수하면서 내가 만만하지 않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죠.
그 사람이 진짜 도움이 필요한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같이 지내면서 차차 검증해 나가면 되는 문제니까요.
살면서 항상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나를 최우선순위로 두는 것 자체가 곧 변화와 성장의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는가?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일은 비유하자면, "비만 유전자"와 같습니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비만 유전자는 구석기 시대에 굉장한 우성 요인이었습니다.
먹을 게 부족했던 시대에 조금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이란 엄청난 가성비를 제공하였고,
그에 따라 그 유전자가 현대의 우리들에게까지 대물림돼 내려온 것이죠.
하지만, 먹을 게 차고 넘치는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는 최악의 유전자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이건, 진화의 기준점이었던 구석기 시대와 180도 급변한 현대적 환경,
이 둘이 빚어낸 일종의 "불협화음"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일 또한,
과거에는 원시인들을 서로 뭉치게 해 줌으로써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기질이었다면,
뭉쳐서 포식자들에게 대항할 일이 없는, 즉, 육체적 생존이 최대한 보장돼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오히려, 내 주체성과 자유를 구속하는 일종의 "정신적 굴레"처럼 작용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즉, 멋진 몸매를 위해 노력하는 일과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은 둘 모두 현대 사회에 대한 필연적 "적응의 산물"인 셈.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가?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그릴 때,
한 친구가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자리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겠느냐? 아무도 모를 것이다라고 얘기하자,
"내가 안다." 라고 대답한 일화는 굉장히 유명합니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고 존중하는 사람과의 약속은 더할나위없이 중요하게 느껴지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우선시돼야 할 나와의 약속은 사실 가장 최우선적으로 다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그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넘어가고 무시되는 경우가 다반사이죠.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미션이라고 얘기하지만,
자애심의 기본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며,
이러한 자기존중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일상적인 루틴에서부터 출발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야말로 곧 최고의 성장이라고 볼 수 있겠죠?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무명자 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 스스로 참 독립심이 떨어지는 사람이구나..를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점점 더 성장해가야지요!
이번글은 좀더 와닿네요..
감사합니다.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