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대교 아래서
여름 끝자락 팔월 다섯째 화요일이다. 처서 이후 일교차가 커진 날씨지만 연일 쾌청하지 못하다. 한밤중 잠을 깨 인터넷으로 검색한 일기는 오늘부터 주말에 이르기까지 구름이 끼며 강수가 예보되었다. 기상 용어로 고착되지는 않아도 가을이 오는 길목에 비가 잦은 경우를 가을장마라고도 불렀다. 또 한 차례 북상 중인 태풍이 스칠 경로를 감안하면 가을장마라 해도 될 듯하다.
아침 식후 짧은 거리 동선을 정한 산책을 위해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로 가서 꽃을 가꾸는 꽃대감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친구가 가꾼 꽃 가운데 유홍초가 선홍색 꽃을 피워 눈길을 끌었다. 새의 깃털 같은 자잘한 녹색 잎사귀를 단 덩굴이 뻗으면서 별 모양 꽃을 점점이 피웠다. 날이 밝아온 아침 꽃밭 뭉쳐진 녹색 융단에 밤하늘 별이 내려앉아 박혀 있는 듯했다.
친구와 헤어져 나는 나대로 일정으로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원이대로로 나갔다. 오전보다 오후에 강수가 심할 듯해 비가 적게 내릴 아침나절 다녀올 산책 걸음이다. 반송 소하천을 따라 간 정류소에서 귀산 해안 석교 종점으로 가는 216번 버스를 탔다. 교육단지로 등교하는 학생들과 공단에 출근하는 회사원들과 뒤섞여 혼잡했는데 충혼탑 사거리에서 학생들이 내리니 차내가 널찍했다.
신촌삼거리에서 양곡을 지나 봉암다리에서 적현으로 돌아 제4부두로 갔다. 화물 전용부두는 외국으로 팔려나가는 수백 수천 대 신제품 굴삭기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지난 정권 원전 압살 정책으로 극심한 구조조정을 겪다가 시대가 바뀌어 기사회생하는 두산중공업 공장을 지났다. 차창 밖 무학산엔 구름이 뭉쳐지고 마산 시가지와 돝섬은 안개가 가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합포만에 걸쳐진 높다란 마창대교 교각이 드러난 용호마을 입구에 내릴 때 승객은 나 혼자였다. 빗줄기가 굵어지기 전 산책로가 잘 정비된 귀산 해안으로 산책을 나섰더랬다. 물때가 아니어선지 바람이 불고 날씨가 궂어선지 낚시꾼은 드물었다. 해안선을 따라가며 갯가에 조성된 산책로를 걸을 때 빗방울이 들어도 우산은 펼쳐 쓰지 않았는데 강수량이 미미했고 바람이 심해서였다.
용호마을은 횟집촌보다 카페나 일반 음식점이 많았다, 낮보다 야경이 좋을 듯해 밤이면 차를 몰아 바람을 쐬러 나오는 이들이 많을 듯했다. 편의점이 보이길래 그 곁에 딸린 무인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 손에 들고 마시며 마창대교 교각 아래로 갔다. 그즈음 소나기성 비가 세차게 내려 쉼터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비가 그치길 기다려 해안 산책로를 따라가니 낚시꾼을 만났다.
중년 부부가 드리워둔 낚싯대에서 기별이 왔는지 낚아채 올리자 손바닥 크기 물고기가 따라왔다. 사내가 이르길 보리멸인데 지역어로 문조리라 했다. 어느 계절이나 남해 연안 방파제에서 흔히 잡히는 어종이었다. 나는 낚시에 문외한이라 구분 못하는데 꼬시래기를 문조리라 하는가도 싶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와 같은 뜻으로 ‘꼬시래기 제 살 뜯어 먹기식이다’란 속담이 있다.
삼귀 주민센터가 가까운 갯마을에 이르니 빗줄기가 세차졌다. 석교 종점으로 들어가질 않고 도중에 옛길 해안로를 따라 걸으니 우거진 숲이 바람을 막아주어 빗줄기가 약해 걷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우중에 호젓한 숲길을 걸어 다시 마창대교 교각 밑으로 와 정자에 이르니 빗줄기는 더욱 세차졌다. 비옷을 입은 한 노인은 낚시를 하다 내 곁에 와 정자에서 비가 그쳐주길 기다렸다.
아침나절 삼귀 해안으로 산책을 나와 마창대교를 글감으로 삼아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창원천 모여드는 봉암은 갈대 갯벌 / 무학산 골골마다 실개천 가닥 합쳐 / 가고파 합포만에서 난바다로 나간다 // 가포를 가로지른 우뚝한 교각 세워 / 삼귀로 건너가게 상판을 길게 걸쳐 / 쇠줄로 팽팽히 당겨 차량들이 오간다” 내일 아침 지기들에게 보낼 시조 ‘마창대교 아래서’ 전문이다. 23.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