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유리잔처럼 얇아서
시월은 쉽게 금이 간다
예민해져서 상심이 잦아진다
환절기의 그리움이란
시월에 장미를 보러가는 일
붉은 파도인 것 같아도
이파리를 손에 들고 보면 다른 것처럼
사랑은 보는 이에 따라 채도가 달라진다
함께 서있던 나무를 보는 감정은
음정이 조금 틀린 허밍 같은 것
곁이 빈 나무 사진을 보냈다
단풍잎은
연애를 시작하던 심장같이 붉고 뜨거운데
날카로운 외면의 끝에 찔리고도 말하지 않았다
잠은 죽음만큼 깊었는데 꿈도 짧아서
새벽은 미완성인 채로 시작된다
연락도 없이 연락할 것 같아
시월엔 주말 약속을 머뭇거리게 된다
갈꽃은 진 후의 여운이 길어서 아프고
저 붉음이 퇴색할 거라는 상심만 진해진다
오르내리는 일기에 병열(病熱)도 앓는다
단풍은 잘 팔리면서 저평가되는 연애시
흔적만 남고 통증 없는 무릎의 흉터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4.10.12. -
한국의 봄과 가을은 참 짧습니다. 기후변화 탓도 있겠지만 보내기 아쉬운 마음 탓도 있을 것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분 좋은 온도와 세상이 붉게 물드는 아름다운 풍경은 잠시 우리 곁에 머무는 듯하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립니다.
가을은 짧은 “꿈”과 같아서 길고 아픈 “여운”을 남기나 봅니다. “유리잔”처럼 차고 맑은 날들이 올해는 조금만 더 오래 머물다 가기를 기도해 봅니다.
〈최형심 시인〉
Field of Tears - George Skaroulis & Chris Sphee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