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화려한 치장도 없고 다른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목제로 만들어진 이 마차는 클라슈마
가 부를 과시하는 귀족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귀족의 그 누구보다도 평민
을 깔보지 않고 잘 보살펴 주는 그런 귀족이었다.
보통은 이런 귀족은 집단으로 따돌려 지는, 한마디로 왕따를 당하게 되지만 보통의 귀족과
는 차원이 다른 클라슈마를 왕따시키는 간큰 귀족은 적어도 가을 대륙 내에는 없었다.
지금 그들이 가는 이 길은 가을대륙을 대표하는 산물중 하나인 빨갛게 달아오른 단풍들이
무수히 널려 있었다. 찬찬히 떨어지는 그 단풍잎들은 그들로 하여금 불꽃의 비가 떨어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호호. 네오는 이것을 보는게 처음이지?”
네오의 모친, 에밀리아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뜩 자신의 옆에 쪼그려 앉아 있는 네오를 보
며 말했다.
‘아뇨.’
속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이것은 입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자신이 태어나서 외출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을터, 그런 그가 이런
풍경을 봤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는 지금까지 겪어온 삶을 통해 몇천번은 봐 왔
지만 말이다.
“네, 네. 어머니.”
네오는 겁에질려 있는듯한 경직된 어투로 대답했다. 그러자 에밀리아는 그의 그런 태도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녀는 네오가 그렇게 밖에 나가는 것을 무서워 하는 줄을 모르고 있었
다. 단지 밖에 나가기 싫어 한다, 그 쯤으로 알고 있었다.
“왜그러니? 네오.”
“네, 네?”
네오가 당황하여 되물었다.
“아니, 왠지 겁에 질린 것 같아서….”
“아, 아뇨. 아무것도….”
네오는 애써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 그러자 그때 갑자기 클라슈마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자, 다 왔다. 내리자.”
“네.”
‘휴우!’ 하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네오였다. 다행이라는 기섹이 역력한 표정이
었다.
‘이번에는 마차바퀴가 빠져 죽지는 않았구나….’
오들오들오들오들….
“….”
무도회에 참석하여 마련되어 있던 자리에 앉아 있는 네오와 그의 식구들.
그중 이 무도회의 주인공인 네오는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
가 앉은 의자와 앞의 테이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몰랐었다. 단지 네오가 처음오는 무도회에 긴장해서 약간 떠는 것으로 생각 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이것이 테이블 전체가 흔들리도록 떨고 있는 것이다. 애써 어섹한 웃음
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던 클라슈마는 이내 미간을 구기며 네오를 내려다 봤다.
“네오! 그만 떨지 못하겠니?”
딱딱딱딱.
이빨까지 소리를 내며 떨고 있는 네오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클라슈마를 올려다 보았다. 입
이 떨려 말은 하지 못하여,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제, 제길! 그만 떨어라! 그만 떨라구! 않죽을거야… 염라대왕이 이번에는 40살 이상 살
수 있게 해준다고 그랬으니깐!’
“젠장할….”
그러나, 네오의 몸은 그의 머리의 통제를 완격히 무시하고 있었다. 그의 몸은 계속해서 떨
리고 있엇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나 비웃음소리를 계속해서 들어야 햇다.
그때였다.
“국왕폐하 납시오오옷!!”
“오오오!”
달달달달달달….
“….”
그때 들려온 국왕 친위대의 대장인 테일러라는 이름의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사
람들의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 벌벌 떨고 있던 네오의 몸이 돌아가며 난 소리에 일제
히 멎어 버렸다.
그 어섹하기 그지 없을 분위기에 국왕은 등장했고 그 어섹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모면해 보
려 했는지 멈춰있던 음악단은 다시 음악을 연주 하기 시작햇다.
그순간.
“헉!”
바로 그때, 네오의 떨림이 멎었다.
“……………………………………………………………….”
무난히 날려지는 점들….
네오의 시선은 국왕의 옆에서 국왕의 손을 받히며 걸어 나오는 1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
에 머물러 있었다.
금발의 웨이브 진 머리. 화려하다못해 빛이 나고 있다고 착각할만한 외모.
그녀는 국왕의 둘째 딸이자 루디아 왕국의 제 1왕녀, 레이나 반 루디아였다.
여기서 잠깐, 왜 장녀가 아닌 둘째 딸이 제 1왕녀인지 궁금 할 것이다. 그것에 대해 초간단
하게 설명 하겠다.
죽었다.
이유는 병.
설명 끝.
“예, 예쁘다…….”
저도모르게 해버린 한마디였다. 그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레이나는 국왕과 함께 주변의 귀
족들에게 웃으며 이리저리 인사하다가 이내 마련되어 있는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다소곳이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실로 아름답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이놈이 뭐하는거야?’
한참 레이나의 외모에 취해있는 네오를 보며 클라슈마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 여자를 이렇게 오랫동안 직접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게
다가 상대는 공주. 차칫 심기에 거슬렸다가 무슨일을 당할지 몰랐다.
꼬집.
“앗.”
엉덩이를 살짝 꼬집어 네오의 정신이 들게 만들어 주었다.
갑자기 느껴진 통증에 정신이 든 네오는 클라슈마의 행동이 자신의 실례를 알려 주는 것이
라는 것을 알았다. 때문에 몸을 돌려 바로 앉았고, 고개도 레이나에게서 돌렸다. 그러나 눈
은 계속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헉!’
그러다가, 문뜩 주변을 둘러다보던 레이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레이나는 자신을 바라
보고 있는 네오를 향해 방긋 미소를 보여 주었고 네오는 그녀의 그런 반응에 깜짝놀라 눈을
돌렸다.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좋았다.
‘이, 이게 왜… 어?’
그때, 네오에게 시선을 주던 레이나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 섰다. 힐끔힐끔 쳐다보던 네오
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순간 긴장해 눈을 돌리고 바로 앉았고, 떨리는 몸을 간신히 추
리고 잇었다.
그러다가 다시 눈만을 돌려 힐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이쪽으로 온다아아!’
그녀가 자신이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는 것을 본 네오는 저도모르게 긴장하고 말았다. 그녀
의 발걸음에 맞추어 그의 가슴은 두근거렸고 이것이 마치 멜로디처럼 반복되었다. 그녀가 자
신에게 다가올때마다 심장은 더욱 크게 두근거렸고 바로 옆까지 왔을때는 심장이 멎는줄만
알았다.
휘잉~
“….”
그러나, 네오의 기대아닌 기대와는 달리 레이나는 그를 휭 지나쳐 저 멀리 있는 루디아 왕
국의 특징인 푸른 달이 가장 잘 보이게끔 만들어놓은 곳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가 자신을 그냥 지나쳐 버리자 네오는 아쉬움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꾸깃.
“어?”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레이나는 그를 완전히 그냥 지나치진 않은 것 같았다. 그의 손
에는 그도 모르는 사이 아주 잘 접어진 쪽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네오는 두근거리는 마음
으로 그 쪽지를 펼쳐 보았다.
그곳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밖에서 기다릴께요.’
“…….”
끼익!
그즉시 네오는 자신의 키보다 약간 큰 의자를 박차(찼다기 보다는 미끄러져 내려와)고 내려
와 공주가 나갔던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러자 그런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클라슈마
와 그의 부인, 에밀리아가 그를 불러 세웠다.
“얘, 어디가니?”
“밖에 나가는거냐?”
“아, 아뇨. 화장실좀….”
이렇게 둘러대며 네오는 빠르게 걸어 레이나가 나간 곳으로 걸어나갔다. 그런 그를 보며 클
라슈마는 미간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졔가 정신이 있나? 저긴 화장실이랑은 정 반대 방향이잖아?”
“잘못간 거겠죠.”
“그런가…?”
“아….”
나오자마자 곳장 문을 닫아 버린 네오는 순간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하늘에 떠 있는 푸른 달. 그리고 그 밑에 적당히 길러져있는 나무들. 그것들을 배경으로
서 있는 레이나 공주.
그것을 본 네오는 넋을 잃고 말았다. 그러다가 문뜩 자신을 돌아본 레이나의 시선에 정신
을 차렸다.
“아, 안녕하십니까, 레이나 공주님….”
네오는 곶장 레이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레이나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그의 인사에 답
했다.
“안녕하세요? … 네오라고 불러도 되죠?
“물론이죠….”
이순간 만큼은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삶을 살았지만 솔직히 이 눈앞의 여자의 외모는 그 어떤 여성도 따라갈 수
가 없었다. 하기야 뭐 대체로 삶이 워낙 짧아 미녀를 그리 많이 보아 보지도 못했지만 말이
다. 그런 그녀가 이토록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을 해 주고 있다. 이 기분 만큼은 직
접 겪어보지 못한사람은 모를것이다.
“생일 축하드려요.”
“가, 감사합니다.”
갑작스런 축하에 네오는 당황하여 버벅거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레이나는 살짝 실소를 하
며 말했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되요.”
“아… 네.”
그러나 그렇다고 이 긴장이라는 것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그때 레이나가 갑자기 옆으로 손을 벌리며 한걸음 물러나 주었다. 옆으로 오라는 무언의 신
호였다. 그 뜻을 알아챈 네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그녀의 옆에 섰다.
“멎지네요. 푸른 보름달이라… 지금까진 별것 아닌 것처럼 봐 왔는데.”
“그, 그렇네요.”
솔직히 네오는 지금까지 이 달이 푸른색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기야 죽음에 대
한 너무나도 과한 두려움에 의해 외출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 보
는 그 푸른색의 보름달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마치 옆에 있는 레이나 공주 처럼….
‘잠깐… 이러다가 또 죽는거 아냐?’
순간 지금까지의 자신의 행동을 마악 자각한 네오였다. 이렇게 밖에 오래 있으면 안된다.
혹시 모를 부실공사로 이곳이 무너져 버릴지도 몰랐고, 남모르게 변장하고 있던 벰파이어가
자신의 뒤에서 덥쳐 올 수도 있다.
물론 이것들은 전부 허무맹랑한 말처럼 들려 오겠지만 네오는 지금까지의 삶을 전부 이런
일들로 죽어버렸다.
“걱정이라도…?”
“아, 아뇨. 아무것도…….”
그의 표정이 흐려지자 사람좋은 레이나가 물었다. 네오가 버벅거리며 대답하자 레이나는 또
다시 방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정말 저 ‘방긋’ 하는 웃음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아직 16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삶을 살아온 자신을 이토록 설레
이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저 웃음이었다.
레이나가 잠시간에 있던 침묵을 깨고 말을 걸었다.
“올해 9살 이시죠?”
“네.”
‘그러고 보니 그녀석이 통신구를 준다는 것도 1년밖에 안남았군.’
갑자기 생각한 한가지 였다.
“꿈이 뭐예요?”
“… 꾸, 꿈이요?”
무슨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네오가 되물었다.
“그런거 있잖아요. 이번엔 미래의 직업이나, 나중에 크면 이건 꼭 하겠다라든지.”
“…….”
그런거라면 있지만 솔직히 말하기가 꺼렸다.
그게 뭐냐고? 당연하지 않은가? 매 순간순간을 목숨을 아끼며 살겠다! 절대 오래사는 직업
을 택하겠다! 이번엔 절대로 수명이 다하기 전에 죽지 않겠어! 뭐 그런 것 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짧았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제기랄. 근데 정말 걱정이네. 이러다가 또 죽는거 아냐?“
“… 없나봐요. 훗, 나이도 어린데. 괜히 물어본건가….”
“하….”
말끝을 흐리며 중얼거리는 레이나를 보며 네오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
도 자신의 이 꿈은 말하지 않는 편이 훨씬 좋았다.
그래서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 나이에 어울리는 걸로.
“왕이요.”
“풋.”
대답과 동시에 레이나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녀의 그런 웃음에 멋쩍어진 네오
는 뒷머리를 긁적였고, 레이나는 입가를 손으로 가린체 계속 미소만을 지었다.
“너무 터무니 없나….”
“뭐, 아예 가능성이 없지는 않네요. 공작가의 외아들이 시니…”
‘윽?!’
“부인을… 저로 하시면….”
“예?”
“아, 아뇨. 아무것도 아녜요.”
‘제, 제길! 진짜 못들었다!’
갑자기 느껴진 복통에 정신을 빼앗겨 레이나의 뒷 이야기를 듣지 못한 네오였다. 그러고 보
니 갑자기 궁금해졌다. 레이나의 얼굴이 빨게진 것 하며, 갑자기 말끝을 흐리는 것도 그렇
고 말이다.
그런데 방금 느껴진 그 복통은 무엇이엇을까? 빠르게 느껴졌다가 사라졌지만 그 고통의 강
도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순간.
‘억?!’
방금 아주 잠시동안 느껴졌던 복통이 다시금 느껴졌다.
“크, 크으으…?!”
쿵.
이번에는 빠르게 사라지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것은 보통의 그것을 분출하
지 않아 느끼는 고통이나 단순한 복통과는 차원이 다른 그런 고통이었다. 그는 고통에 신음
하며 무릅을 꿇고 필사적으로 배를 감쌌다.
“네, 네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레이나는 당황하여 주춤했다. 네오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져 갔고 조
금 지나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가 하면 식은땀이 뻘뻘 흘렸다.
레이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크, 크아악….”
“네오!”
“크하아악!”
‘무, 뭐야! 왜 이렇게 아픈거야!’
네오의 복부에 느껴지던 고통은 더해져 그는 그대로 뒤로 실신했다. 입으로는 거품을 물었
고 눈을 뒤집어져 있었다. 레이나는 당황하여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경비병을 큰소리로 불렀
다.
“커, 커허헙…! 크허헙!”
‘이, 이게 뭐야?’
그순간, 네오는 복부에서부터 뭔가가 올라오는듯한 것을 느꼈다. 그것은 가슴을 지나가 식
도를 따라 올라왔고 이윽고 그의 목덜미에 까지 달했다.
“세, 세상에!”
레이나는 볼수 있었다. 뭔가 둥그런 물체가 그의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말이다. 레이
나는 서둘러 그를 돌아 눕히고는 그의 등을 툭툭 쳤다. 마치 토하고 잇는 사람의 등을 툭툭
쳐 주는것과 같았다.
“뱉어, 뱉어요!”
“푸헉!”
때구르르르….
잠시 신음하던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다름아닌 붉은 색의 피의 범벅이 되어 있는 주먹
만한 구슬이었다. 그것이 무엇이엇는지는 몰랐다.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뭣보다
도 네오의 몸이 더욱 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때마침 레이나의 외침을 들은 경비병은 안으로 달려 들어 왔고 네오는 한 여성의 외
침을 뒤로 한체 눈을 스르르 감았다.
“네오!”
그것은 다름아닌 그의 어머니, 에밀리아의 외침이었다.
“으, 으으윽….”
“네오야!”
얼마나 지났을까, 네오가 깨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는 그가 정신을 잃었을 당시 들려왔던 어
머니, 에밀리아의 목소리였다. 그는 자신의 방에 와 있었다. 침대에 누워 이마에는 적신 수
건이 올려져 있었고 이불도 잘 덥혀져 있었다. 누군가 옆에서 정성스레 간호한 기색이 엿보
이는 것이었다. 물론 그 간호한 사람은 에밀리아였다.
“어, 엄마.”
“어이구 우리 강아지. 살아났구나….”
‘사, 살아나?’
설마 죽을뻔 했다는… 거…? 썅!
살아 났다는 것은 자신이 거의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살은것이란 뜻일 것이다. 죽는
것이 소멸하는 것보다도 더 싫은 네오에게 있어 그 말은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도 남을 말이
었다. 그는 등에 식은땀이 흘러 내리는(원래 온몸이 땀 범벅이었지만.)것은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괜찮은 것이냐?”
그때 언제 있었는지 클라슈마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네오에게 물었다. 물론 겉으로는 잘 내
색하진 않았지만 그도 나름대로 네오가 깨어났다는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었다. 하기사 4년동
안 고생하여 겨우 얻은 외아들이 죽을 것 같이 시름시름 앓고 있었는데 걱정하지 않을 부모
가 어디 있으랴. 있다면 그것은 친부모가 아닌 것일 것이다.
“쓰러진지 얼마나 됬죠….”
“5일 됬다.”
“그렇게나 오래….”
“괜찮다. 네가 깨어나기 직전에 의사가 다녀 갔는데 당분간 안정만 취하면 될거라는 구
나.”
‘다행이다….’
죽지 않는다는 클라슈마의 말에 네오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큰병이라도 있으
면 이번에는 정말로 염라 그자식을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정말 괜찮은 거니?”
방금 클라슈마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되는지 에밀리아가 네오에게 다시금 물
었다. 약간 몸이 무겁고 피곤한 것 말고는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 없었기에 네오는 고
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에밀리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더 자거라.”
“예, 아버지.”
클라슈마는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네오의 방에서 걸어 나갔다. 물론 에밀리아처럼 네오의
옆에 있고 싶은 마음은 같은 부모인 그도 굴뚝 같았지만 그의 작위는 다름 아닌 공작. 더 이
상 자신의 일을 미뤄 둘 수가 없었다.
“아.”
그때, 네오의 머릿속에 스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마악 클라슈마가 문을 열었을때, 네오가
그를 불러 세웠다.
“아버지.”
“응? 왜그러느냐?”
“한가지 여쭤볼게 있습니다만….”
“…?”
클라슈마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 고개만을 까딱거렸다. 그것이 뭐냐는 뜻의 제스쳐였다. 그
뜻을 알아들은 네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때, 궁전에서… 뭔가를 뱉어낸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아….”
클라슈마도 그제서야 생각이 났는 듯 했다.
“무엇 이었습니까?”
이 물음에는 클라슈마도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네오가 뱉어낸 물건은 아무리 봐도 예삿물건이 아님에 틀림이 없었다. 보도듣도 못한 검붉
은색의 구슬. 색에서부터가 뭔가 강렬한 포스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슬에서 느껴지는 마나는 검(劍)에 일관이 있는 클라슈마로써 느끼지 못할 리
가 없었다. 그 구슬에서는 미세하지만 어둠의 마나가 느껴졌었다. 그런 물건을 자신의 아들
에게 보여주는 것은 내키지가 않았다.
“모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네오는 이미 단단히 결심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알고 싶습니다.”
“네오.”
“….”
이제까지 있었던 몇 번의 외출에 대한 마찰로, 네오의 고집을 잘 알고 있는 클라슈마는 한
숨을 내쉬며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휴… 알았다. 네 고집은 나조차도 꺽지 못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니. 나중에 하인을 시
켜 보내 주마.”
“감사합니다.”
“그럼, 쉬어라.”
클라슈마는 곧장 방을 나가 문을 살짝 닫았다.
에밀리아는 아들이 누워있는 침대의 난간에 살짝 걸터 앉아 네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아들. 고마워.”
“뭐가요?”
“그냥… 살아나 줘서.”
“엄마도 참.”
클라슈마 가(家)의 모자(母子)는 서로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에밀리아는 자신의 아들이 이렇게 살아나 준 것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만약 네오가 죽으면 에밀리아는 자신도 따라 죽을 생각이었다. 그만큼 네오는 에밀리아에게
서 소중하고도 소중한 존재였다.
네오는 그런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하고 있었다.
“이건가?”
그날 저녘. 네오는 하인이 가져온 구슬을 자신의 양손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것은 네오의 주먹만한 크기의 검붉은 색을 띄는 반투명한 구슬이었다. 안으로 갈수록 붉
은 색은 짙어졌고, 그것이 마치 피의 색처럼 느껴졋다.
“뭐지… 이게?”
통신구?
염라대왕이 보내주겠다던 통신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나이는 염라대왕이 약속
한 10살이 아닌 9살이었다. 아무리 멍청해 보여도 한 차원계의 왕이니 이런 실수는 하지 않
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염라대왕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
-여~ 잘 있었냐?
“으악?!”
퍼억~!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네오는 자신도 모르게 그 구슬을 떨어뜨렸다. 그런데 무게가 꽤 나
가서 그런지 무릅으로 직행한 그 구슬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작렬했다.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네오는 엎드려 신음했다.
“크, 크으윽.”
-하핫! 멍청한 자식.
“너, 너?”
네오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떨어뜨린 구슬을 바라봤다.
구슬의 표면에는 어떤 붉은 피부에 검은 머리와 수염을 가진 무섭게 생긴 남자가 떠올라 있
었다. 입가 위로 튀어올라온 덧니가 인상적인 그런 그는 친근한 미소를 지은체 네오를 바라
보고 있었다.
이 안습적인 얼굴과 썩소. 네오는 이것들을 알고 있었다.
“여, 염라?”
-여~ 오랜만이다.
붉은 피부의 괴한, 염라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손까지 흔들었다. 그러나 네오는 그런 그의
인사를 받아줄 생각따윈 없었다. 그가 나타난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그에게는 먼저였다.
“네, 네가 어떻게?”
-벌써 잊어먹었냐? 10살되면 통신구 하나 준댓잖아. 또라이야.
‘누가 또라이라는거여 누가.’
네오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과연 이인간… 아니 왕새끼의 머리는 대체 뭘로 만들어 진걸
까….
“… 내가 지금 몇 살?”
네오는 설마 하여 염라대왕에게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결과는 물론.
-10살 이잖아 병신아. 니 나이도 모르냐? 또라이야.
네오의 예상 대로 였다.
“니 머린 장식이냐?”
-…뭐?
“뇌가 없냐? 뇌세포가 어느날 갑자기 모두 녹아버렸어? 오크머리냐? 무늬만 대왕이지,
너? 대(大)자가 아깝다. 시발레야”
-뭔 개소리야, 십새야!
“야이 병신아! 지금 내가 10살이냐? 9살이야 9살! 개소리를 지금 누가 하고 있는데?”
-쿨럭!
염라대왕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이게 왠 개쪽팔린 짓이냐. 10살 때 준다고 개폼 잡아 놨다가 다된줄 알고 줬는데 이놈이 10
살이 아니라 9살이라네.
그러나 장부를 뒤적거리던 염라대왕은 순간 발끈하며 네오에게 소리쳤다..
-너, 너 구라까냐? 내 장부에는 네가 환생을 한게 10년 전으로 되어 있다구! 10년 전! 이
개새끼가! 누굴 햇갈리게 만들어?!
“인정한다. 니 머리는 오크머리다.”
-이 십새가….
“병신아, 잘 봐라. 환생을 한게 몇월 며칠이냐?”
-….
네오의 말을 듣고 장부를 살펴 보던 염라대왕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장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몇월 며칠로 적혀진게 아닌, 이 한 문장. ‘메리 크리스마
스'.
바보가 아닌 이상, 이날이 무슨 언제인지는 누구나 다 알것이다.
-12월… 25일….
“그때부터 10개월 애미 뱃속에 들어가 있다가 나왔는데 지금 내가 10살이겠냐? 생각을좀
하고 살아라 생각을. 응?”
-씨, 씨발.
네오의 비꼼에도 불구 하고 염라대왕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모두 옳았기 때문
이었다.
그가 환생한 것은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 그로부터 10개월 동안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
있었으니 그로부터 10년 뒤인 지금의 그의 나이는 9살 인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멍청하게
생일인 것은 기억 했으면서 나이는 생각 하지 않은것이다.
이런 개뻘쭘한….
“그건 그렇고, 시발 왜 이걸 내가 토하게 만들어 논거야? 이거 얼마나 아펏는줄 알아? 또
죽는줄 알았다고.”
-아, 그건 솔직히 계산착오였다.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울줄은 몰랐거덩. 그냥 놀래켜 주려
구.
“아, 그냥 놀래켜 주려고 사람 거의 죽게만들었다?”
-허, 허억.
순간 네오가 지은 표정은 아무리 한 험악한 염라대왕이라지만 겁먹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것
이 정녕 인간의 얼굴이냐. 사신이 있다면 바로 이 모습 이리라.
아, 있구나, 그러고 보니까.
“확 깨버릴란다, 시발. 이따위 쓰짤때기 없는 물건으로 사람 죽을뻔 하게 만들어? 죽고 싶
어 환장했냐? 앙?”
-아아, 깨건 말건 네 자유지만 될 수 있으면 깨지 않는게 좋을거다.
“……?”
그때 들려온 말은 네오로 하여금 충분히 의문이 갈 만한 것이었다. 솔직히 이 물건은 염라
대왕이 자신의 40살 이상의 삶을 사는데 도와주려고 보내준 물건. 화가난다고 깨버리기에는
아직 이 구슬에 대해 모르는게 많았다.
그래서, 물어보기로 했다.
“왜지? 왜 깨지 않는게 좋을거라는거야?”
-핫, 그건말이다.
염라대왕이 실소를 하며 대답했다. 꽤나 이 말을 하는 것을 기다린 듯 했다.
그는 신나게 입을 나불거렸다.
-솔직히 그냥 통신구 하나 준다고 해서 니 운명이 달라지겠냐? 그런거라면 그냥 너랑 나랑
예기하거나 내가 널 지켜보는 수준밖에 되지 않아. 뭔가 특별한 점이 있어야 네가 오래 살
거 아냐.
“그래서, 이 구슬에 특별한 점이 있다?”
-그렇지 그….
“뭔데?”
-말좀 끊지마 새꺄. 말하려는데 말끊고 있어.
‘이 호로새끼…….’
방금 한 말에 네오는 순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자식, 산체로 염라계로 갈수만 있었다면
가서 녹여버렸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첫댓글 음? 설마 누가 통신을 들은건가? 무튼 이번편도 재밌었어요 ㅋㅋ
감사합니당^,^
왠지 엄청나게 오랜만인듯..
와...정말 재밌네요...레이나가 그렇게 예뻐요..?한번 보고싶네..오크머리 염라도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