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식민통치 36년 , 남북분단과 좌우격돌의 해방정국, 6.25전쟁 등 등~ 격동의 역사가 소용돌이치고 간 역사의 수레바퀴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가족, 우리의 이웃 동족모두가 ...
무참히 치이고 끼이고, 끌려가고 쓸려가고~
역사는 아프다, 구슬프다
고스란히
자업자득이며, 운명이다.
누가 죽으랬나.
지가 숨을 안 쉬면서...ㅋ
모두 내탓이고
내 운명 탓이고 보면
남탓 하거나, 내로남불할 건 이승에는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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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 가수 왕수복의 '아리랑' 공연
등록 2012.11.15 22:31 / 수정 2012.11.1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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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번(卷番: 일제 강점기, 기생들의 조합) 기생 출신 1호 가수 왕수복
- 고도(孤島)의 정한(情恨) , 그리운 강남, 능수버들, 아리랑 등 14곡
王壽福의 본 이름은 王誠實.
1917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출생하여,,, 2003년 86세를 일기로 평양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화전민 가정, 편모 슬하에서 평양 명륜여자공립보통학교 3학년 때 평양기생학교에 입학한다. 평양기생학교는 1926년 설립한 최초의 기생학교, 3년 과정이었다.
그녀는 16세이던 1933년 콜럼비아레코드에서 <울지 말아요>, <한탄>으로 기생출신 최초로 대중가요가수가 되었다. 최초라고 하지만 그 이전에는 대중가수라는 직업이 없었다. 봉건과 근대문명의 충돌지대에서 발생한 신문화 발생의 트렌드.
왕수복은 소설가 이효석과 경제학자 김광진의 연인.
1942년 이효석이 사망할 때 임종을 지켰고, 이후 시인 노천명의 연인이던 김광진과 결혼. 김광진의 월북행에 동행하여 평양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중앙라디오 전속가수, 교향악단 성악가수로 활동했다.
최초로 공훈배우칭호를 수여받았으며 2003년 86세를 일기로 타계. 애국열사릉에 잠든 남편 김광진과 합장됐다
-이효석 (1907.02 23,~1942.05.25) 경성제대 법문학부 영문학과졸업 35세 작고 메밀꽃이 필무렵 강원 평창출신
-왕수복 (1907년 - 2003년) 북한의 최고 공훈가수 평남 강동출생 평양기생학교출신 북 최고 공훈가수
-노천명 (1911년 - 1957년)시인 대표작 사슴 일제 찬양시로 친일인사로 분류됨
-김광진 (1903년~1981년) 동경대 경제학부 출신 학자 경성제대 법문학부 부수(副手)를 거쳐 조수(助手)북한 경제통.
보성전문교수이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였던 김광진은 시인 노천명과 결혼직전까지 간 연애 스캔들의 주인공이다. 그는 본부인이 있었지만 왕수복과 ....
이효석의 연인 왕수복, 北 체제 선전가수가 되다
1935년 월간지 '삼천리'에서 가수 인기투표를 실시했다. 독자 투표로 남녀 각 5명을 뽑는 방식이었다.
전체 1위로 뽑힌 평양기생출신 왕수복은 이효석의 연인으로도 유명하였다.
남자가수 1위는 채규엽. 함흥출신으로 일본 중앙음악학교에서 공부한 유학파였다.
1930년 콜럼비아 레코드사에서 ‘봄노래 부르자’를 취입한 ‘직업가수 1호로 당대 스타였다.
여자 가수 1위는 열여덟이던 평양 기생 왕수복이었다. 남녀 1만130표 중 1903표를 얻었다. 채규엽은 1844표를 얻어 남녀 통틀어 1위는 왕수복이 차지했다. 같은 평양기생 출신인 선우일선이 2위(1166),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이 3위(873)였다.
그리운 강남 - 왕수복 원창(장란희 노래)
1928
* 김석송 작사. 안기영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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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의 할머니는 1940년대 최고의 배우 문예봉(함흥출신). 해방후 월북, 북한 최초의 공훈배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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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인용한
'그리운 강남' 작사, 작곡가 정보는 백과 사전에서 발췌한 것임
김석송 (김형원金炯元)
김형원(金炯元, 1900년~ ?)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시인 겸 언론인이다. 호는 석송(石松)
현 충청남도 논산군의 일부인 강경포 인근에서 출생했다. 경성부의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20년대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이 무렵 시인으로 문단에도 등단하여 한국 신경향파 문학의 선구자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제1공화국 초대 공보처 차장에 발탁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영(安基永), 1900. 1. 9, 충남 청양 출생
191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3·1운동 만세시위에 가담하여 일본 경찰에게 잡혔다가 풀려났다. 그후 잠시 중국에 갔다가 1923년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조교로 있으면서 이듬해 〈내 고향을 리별하고〉를 녹음했다. 1926년 미국의 엘리슨화이트음악대학에 유학한 뒤, 1928년 귀국하여 1932년까지 이화여자전문학교 성악과 교수로 있으면서 성악·음악사·음악이론 등을 가르쳤다.
데뷔작으로 <그리운 강남>(1928)을 작곡하고... 어린이날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는데,,,
이화여전 교가를 작곡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는 이 노래를 현재에도 교가로 사용 중이라는...?
사생활에서 간통이라는 흑역사가 있다. 이화여전 제자와 ....
해방직후 조선음악건설본부의 성악부 위원장, 조선음악가동맹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1950년 6월 18일 부인 김현순과 월북한 뒤 평양음악대학 성악 교수로 있다가 1980년 80세에 타계하다.
첫댓글 왕수복
북한의 선전가수가 되었군요
역시
젊은 시절의 여가수는 이뿌고 목소리도 꾀꼬리 같습니다
지나간 가수들의 배경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낌니다
오늘도
한 수 배우고 갑니다 ~^^
북한은 김왕조 찬양과 우상화 일색이고 보면
북한 출신이던 월북한 누구든 예외없이
신세가 위대한 수령님 품안이죠.
오천년 망조가
북조선 태양족의 집단입니다.
그런데 뭘 할 수 배우신다고요
ㅋ
오늘 팔꿈치 치료 잘 받으시고
팔굼치 가급적 덜 사용하세요.
몰랐던 유익한 정보를 잘보앗습니다. 감사 합니다. 좋은날 되소서
모르는 것이 천지 널렸지요 ㅎ.
감사합니다.
모두의 운명이지요
춥다해서 꽁꽁싸고
외출하고 오는데 더워요
추우면 춥다
더우면 덥다
좋은 걸 어떻게
둏아요,ㅎ~
체온유지 적절히 잘 하서유
운명을 거스릴수 없는것이
비극인가 하옵니다
늘어지게 자고나서 비몽사몽
먼소리를 하는지요 ㅎㅎ
좋은 운명은 희극
안존 운명은 비극ㅎ
잠이 보약인데
보약 잘 드시고
사몽비몽이 왠 말씀이시오니까.ㅎㅋ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