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추석날 보름달이 뜨면 정말로 기분이 좋아지는가? (3)
춘양에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말했지만, 죽은 사람까지 포함시켜 말한다면, 한 명 있다고 고쳐야 한다. 춘양 공동묘지에 조부 산소가 있다. 사실 이번 춘양 여행은 성묘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성묘 중에서 약간 특별한 성묘인 것이, 조부 산소는 올 봄 한식께에 제법 큰 공사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 공사는 봉분과 그 주변의 죽은 떼와 죽은 흙을 걷어내고 새 것을 입히기 위한 것이었다. 산소도 수명이 있다고 한다. 하긴 기나긴 세월이었다. 산소 주변에 아카시아가 몇 그루 자라서 수 십년 동안 아버지와 일가 어른들을 괴롭혀왔는데 — 톱으로 잘라도 또 자라나고 약을 쳐도 죽지 않았다 — 몇 해 전, 이들이 저절로 사라졌다. 늙어 죽은 것 같다. 60년이 넘었으니 참으로 긴 세월이다. 조부가 돌아가신 것은 내가 네 살 때쯤이었다.
춘양역에서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운곡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 춘양교 — 를 건너야 하는데, 그 다리가 끝나는 곳 쯤에 지난 번에 말한 한수정이 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바로 그 한수정 앞까지 나가서 조부를 기다린 적이 있다. 해질녁이었다. 몇 해 전에 어머니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면서 놀라시더라. 우리 집에는 오랫동안 조부 영정이, 조모 영정과 나란히 벽에 걸려있었는데, 그것을 보면 조부의 입이 한 쪽으로 약간 돌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부는 말년에 풍을 맞으신 것이다. 장례 때, 내가 이불을 들어 조부의 발을 보고는 그 발을 내 발로 걷어차고 바깥으로 뛰어나갔다고 한다.
한수정에서 300미터쯤 들어가면, (예전에는 그 유명한 춘양5일장이었던) 억지춘양시장쪽으로 가는 길과 (예전에는 정오가 되면 싸이렌을 울리던) 춘양초등학교쪽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춘양초등학교쪽으로 방향을 잡고 작은 다리를 건너면 바로 왼편으로 우리가 살던 집이 나온다. 이번에 보니, 그 자리에 한문고전번역원이라는 간판을 단 단층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그 전에는 그곳에 장의사 간판이 붙어있었다. 우리가 떠난 이후, 그 집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더 많은 간판이 붙었다 떼어졌을테고 많은 가족들이 들어와 살다가 나갔을 것이다.
그 집과 관련하여 기억나는 특별한 일이 한 가지 있다. 그때 우리 집에는 전기가 들어와서 전기 다마로 환하게 불을 켰는데, 우리는 밤마다 창문에 담요를 걸어 일종의 등화관제를 실시하곤 하였다. 사적인 등화관제로, 전깃세를 내지 않기 위한 꼼수였다. 아버지가 남몰래 전깃줄을 연결하여 공짜 전기를 집으로 끌어왔던 것이다. 감 무더기에 대한 기억도 특별한 기억이라면 특별한 기억이다. 어느 해 가을, 우리 집 마당에 마당 가득 감이 쌓였다. 내가 큰 뒤에 여쭈어보았더니, 감장사를 하기 위해 떼온 것이었다고 하는데,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하시더라.
놀라운 일이지만 그 시골에 중국인이 들어와 살았다. 우리 동네에 중국인 할아버지가 하는 만두가게가 있었던 것이다. 아마 나도 중국 만두를 먹어보았겠지만, 그 모양이나 맛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제법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오렌지의 맛이다. 우리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주전부리를 파는 점방이 있었는데, 나는 코를 찌르는 사이다 대신에 달콤하고 향긋한, 그리고 색깔도 예쁜 오렌지를 사먹곤 했다. 병에 든 것이 아니다. 삼각형 모양의 두꺼운 비닐봉지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조부 타계하신 후의 일이겠지만, 조모는 춘양 5일장에 나가 심심파적으로 과일을 파신 적이 있다. 나는 조모의 치마꼬리를 잡고 따라가서 조모 무릎에 앉아 과일을 먹다가 그 무릎에서 그대로 잠들곤 하였는데, 언젠가는 그 너덧 살, 혹은 대여섯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가 수박 한 통을 혼자서 다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즐겨 먹은 것은 따로 있다. 정말로 즐겨 먹은 것이다. 아니 탐닉했다고 해야 할까? 중독된 듯이 허겁지겁 먹었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그것은 흙이다. 더 어릴 때의 일이었겠지만, 나는 집 마당이나 길가에서 놀다가 땅바닥의 흙을 한 움큼씩 집어 먹었다고 한다. 동작이 굉장히 빨라서, 어른들이 달려들어도 잽싸게 입에 집어넣는 탓에 제지를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흙을 도대체 왜 먹었던 것일까? 회충이 있으면 흙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고 하지만, 믿을 만한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른들도 그 이유가 뭔지, 그 맛이 어떤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영태가 자기들하고 말이 통할 때가 되면 단단히 물어보겠다고 벼르면서, 애가 크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여 이 시절 내 인생이 그야말로 아무 걱정도 없고 아무 문제도 없는, 그런 쉬운 인생이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집 앞에 작은 다리가 있다고 말했지만, 여름이 되면 아저씨들이 개를 한 마리 끌고 그 다리 밑으로 들어가서 나오지를 않았는데, 거기에는 아저씨들과 개만 출입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항상 듣기 싫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떼거지로 몰려다녔다. 항상 시냇물의 상류 쪽에서 등장하곤 하였는데, 다리께에 와서는 또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다리 위로 올라와 내 영역으로 쳐들어왔다. 거위다. 이들이 나타나면 나는 겁먹은 눈을 하고 정신없이 집으로 뛰어들어와 대문 뒤에 숨어야 했다.
세발자전거로 인한 사건도 있었다. 어느 날, 동네 아이 하나가 나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을 가지고 나타나 으스대기 시작했다. 얼마 뒤 할머니가 주선을 해주셔서 나도 그 아이의 물건에 올라타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바퀴를 돌고도 내가 내릴 생각을 하지 않더라는 것이며, 자전거를 잡아당기면서 그 아이와 싸움이 나서 내 얼굴에 상처가 나기까지 하였다는 것이다. 그 상처가 전화위복이 되어 나는 그 동네 아이들치고는 비교적 일찍 자전거 소유자가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의젓하게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관에 가서 찍은 사진인데, 아마도 자전거 구입 기념으로 찍었을 것이다. 요즘 식으로 하자면 인증샷이지.
조부 타계 후 2년 정도를 더 살고 나서 — 내 부모는 부부관계도 삼갈 정도로 삼년상을 충실하게 지켰다고 하신다 — 우리는 춘양을 떠났다. 그러니 춘양에 대한 내 기억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추석의 춘양 여행에서 나는 춘양역과 한수정, 춘양장터와 우리 집 근처 등등을 둘러보면서 여기에 쓴 것과 같은 옛날 일을 반추해보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서 그 이야기를 이렇게 쓴다. 반추되는 기억이 정말로 빈약하지만, 나는 그 빈약한 것들을, 우리 집 경조사에 들여다 보아준 소수의 친지들을 소중히 여기듯이, 소중히 여긴다. 아니, 그 빈약한 것들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빈약한 것들은 최소한 나로 하여금, 보름달이 크게 뜬 이번 추석에 나도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귀성을 했다고 자부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귀성이란 게 무엇인가? 돌아가서 살펴보는 것이 아닌가?
아 참, 조부 산소의 떼는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더라. 조부 산소에 성묘를 갈 때는 정종과 더불어 연태고량주를 한 병 사간다. 조부는 만주에서 활동하실 때 빼갈(白酒)을 그렇게 즐겼다고 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조부에게 특별히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조부는, 내가 조부에게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셨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조부에게건, 누구에게건 내가 잘못한 것을 자꾸 떠올리는 것이 추석을 잘 쇠는 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번의 귀성을 통해 나는,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 내 기억이 날조해낸 가상의 일인지도 분명치 않은 옛 일, 현생에서의 일이었는지, 전생에서의 일이었는지도 분명치 않은 옛 일을 돌아보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일들을 돌아보면서 살펴보는 것은 동화나 동시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처럼, 의식주 걱정 같은 것은 없으며 도덕적 후회 같은 것도 없는 비일상적 세계를 즐기는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명절이나 축제는 그런 일을 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끝)
첫댓글 끝까지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명절이나 축제가 갖는 의미를 새삼 일깨워 주는 글. 결국 추석 보름달이 돌아가서 살펴 보라는 알림이 이네요. 돌아가신 나의 부친이 추석 설 명절 때 나를 앞세워 데리고 다니셨던 그 뜻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됩니다. 연재글 감사합니다~
to be continued,,,,,,,,
ㅎㅎㅎ 마이 재미지다. 감칠맛 나게 걸리는 거 없이 잘 넘어간다. 즐겁게 지내시는 구마. 글보면 반가워
자주 올려주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