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순례기
사회주의 체제 중국에서 70년대 ‘흑묘백묘론’이 일었다. 하향 균등을 지향하던 죽의 장막 폐쇄 국가가 빗장을 열고 자본주의 경쟁 체제를 도입했던 지도자가 실용주의자 덩샤오핑이다. 그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고 했다. 북한 지도자가 의당 본받아야 할 점임이 분명하다.
뜬금없이 흑묘백묘 얘기를 꺼냄은 도서관 순례도 마찬가지라서다. 공공 도서관이 도청이나 시청 일반 행정에서 운영하는가 하면 교육청 산하 직할 사업소에서 운영하기도 했다. 사서와 직원들의 배치도 운영 주체에 따라 기관끼리만 교류했다. 두 기관에서 도서관 장서 확충과 서비스 품격을 서로 경쟁하듯 해서 도서관 이용자 측면에서는 검은 고양이나 흰 고양이로 봐도 될 듯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시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가까이 있고 그에 딸린 작은 도서관도 있다. 퇴직 이전부터 주로 시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을 이용했는데 퇴직 후 용지호수의 작은 도서관을 가끔 찾았다. 이용자가 적어 내가 찾을 때마다 개인 서재로 여겨도 될 만치 아늑한 공간에서 마음 편히 책장을 넘기고 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비치 도서가 적어 열람할 책이 한정되었다.
팔월이 가는 주중 수요일이다. 이번 주 들어 가을장마가 시작되었다시피 연일 비가 오고 있다. 어제는 우중에 삼귀 해안으로 나가 마창대교 아래 산책로를 걷고 왔다. 귀로에 내일도 비가 올 텐데 자연학교 행선지를 미리 구상해 놓았더랬다. 그 자연학교가 다름 아닌 도서관으로 평소에 나가던 용지호수의 어울림 도서관이 아닌 교육단지의 교육청 산하 도서관을 찾아갈 요량이었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 날씨는 예보대로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아침 식후 교육단지 도서관으로 가려고 현관을 나섰다. 우산을 받쳐 들고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반송 소하천을 따라 원이대로로 나가니 천변 가드레일에 넝쿨을 감고 오른 나팔꽃이 엷은 보라색 꽃을 피웠다. 창원스포츠파크 동문을 지나면서는 향나무 울타리에 계요등과 하늘타리와 배풍등이 피운 꽃과 열매를 보기도 했다.
민간 투자로 조성한다는 대상공원 공사 현장에서 창원 폴리텍대학 캠퍼스를 관통해 지났다. 교육단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대학까지 모여 있다. 나는 퇴직 이전 교육육단지 여학교에서 3년 근무하다 거제로 옮겼다. 사학 재단 남녀 고교와 전문계 공고도 있고 최근 공립 유치원도 들어섰다. 거기다 시설을 잘 갖춘 도서관이 있으니 가히 교육단지라는 이름에 걸맞았다.
내가 집을 나설 때가 7시 조금 지날 무렵이었으니 교육단지에 이르니 학생들이 한창 등교할 때였다. 내가 목표한 도서관은 업무 개시가 9시부터라 아직 사서나 일반 직원들이 출근하기 이전이었다. 나는 창원도서관 본관에 이어 근래 신축 확장한 별관으로 가서 실내를 둘러봤다. 내가 하루를 보낼 학습 공간이었다, 일과가 시작되기 전 아주머니가 바닥과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직원들 업무가 개시되어 나는 2층 서가로 가서 신간 코너를 비롯해 여러 칸으로 나뉜 비치 장서를 훑어 살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완구 가게로 들어선 꼬마가 갖고 싶은 장난감이 많아 무얼 골라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모습과 같았다. 눈에 띈 몇 권 책을 골라 편안한 창가 열람석에 앉아 책장을 넘겼다. 대학에서 ‘한국 문학과 여행’이란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이의 저서였다.
‘나의 문학 답사 일지’는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내보다 젊은 학자가 국내외 문학 작품 현장을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나는 나라 밖 사정은 어두워도 소개한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남원이나 군산은 물론 한양 궁궐과 안동 일대는 저자와 동행에 무리가 없었다. 점심때가 되어 휴게실로 건너가 컵라면과 커피 한 잔으로 끼니를 때우고 다시 열람석으로 복귀해 날이 저물도록 머물렀다. 23.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