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 가문은 177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빈민거주지(게토. Geto)에서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가 태어나면서 시작됐다.
마이어는 젊은 시절 궁정 대리인이 되어 금융가로 성공한다.
이때부터 ‘빨간 방패(Rothshilds)’를 가문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마이어는 다섯 아들을 두었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가게를 물려 받고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로 흩어져
각자 금융기업을 만들었다.
마이어는 그의 다섯 아들들에게 ‘화살 하나하나를 부러뜨리기는 쉽지만,
뭉친 화살은 부러뜨리기 어렵다’는 탈무드 우화를 유언으로 남긴다.
로스차일드를 국가 이상의 금융재벌로 만든 건 전쟁이었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해상봉쇄’를 했는데 밀수선을 운영하여 막대한 돈을 벌었다.
이와 함께 웰링턴 공작에게 금괴 수송을 해주고 영국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1812년 워털루 전투 때 채권 시장에 역정보(Disinformation)를 흘려
2억 3천만 파운드라는 막대한 부를 모아 기반을 잡았다.
이때 로스차일드 가문은 정보력과 실행의지, 도전정신을 중대한 유산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특히 정보력은 돈과도 맞바꾸지 않는 재산이라고 생각했다.
워털루 전투 때 채권 시장 흘린 역정보(Disinformation)
영국의 통신병을 매수하여 전투결과를 미리 알려 달라고 한다.
영국이 이겼다는 전보를 받자
로스챠일드는 침통한 표정으로 주식을 파는 척
이때 다른 투자자들은 영국이 패 한 줄 알고 모두 헐값에 팔았다.
팔았다는 말은 누군가 사는 사람이 있어야 팔 릴 수 있다.
누가 샀을까? 당연히 로스챠일드.
시간이 지나면서 영국이 이겼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번엔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
파는 사람이 있어야 살 수 있다.
누가 팔았을까? 당연히 로스챠일드.
로스챠일드가 범죄자일까요
도덕적 비난은 할 수 있어도 법적 처벌은 못하고 오히려 세계사에 길이 남은 영웅이 되었으며
당시 피해자들은 쪼다라는 비웃음.
매수한 통신병한테 영국이 졌다는 전보를 받았으면
로스챠일드는 이번엔 꺼꾸로 활짝 웃으며 주식을 사는 척 하고 뒤로는 팔았을 것.
아이러니 하게도 로스차일드 가문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게 된 것도 잘못된 정보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럽에서 최고의 부와 명예, 권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들은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나치 최대의 군수업체인 IG 파벤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이다.
IG 파벤에 투자할 때 나치 고위층은 로스차일드는 유대인이 아니다. 안심하라고 꼬드겼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 말만 믿고 계속 IG 파벤에 투자를 하면서 나치를 지원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나치 정권은 IG 파벤을 국유화한 뒤
로스차일드 가족들을 유대인 강제수용소로 보낸다.
이 일로 로스차일드 가문 사람 중 3분의 1이 죽었다.
여기에 충격을 받은 로스차일드 가문은 정확한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