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근로자의 날 일기예보에는 오후부터 날이 궂어 진다고 하니 봄철은 반짝 날씨가 좋을 때 움직이는 게 낫다.
나도 근로자인가? 하고 생각을 해보니 일면 근로자이기도 하고, 아닌 것같기도 하고.
하여튼 출근안하고 노니까 좋긴 좋다. 출근해봤자 근로자들이 안 나오면 나도 할일이 없으니.
주머니에 약간의 현금, 휴대폰과 카메라만 챙기고 선 글라스에 파라솔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출발.
아파트 옆 산책로는 온통 꽃길이다.
산책로가 끝나는 곳은 고속도로 서초 IC.
여기엔 분수가 있고 넓은 풀밭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곳이 나는 좋다.
며칠 전에도 처와 같이 왔다가 네잎 클로버를 몇장 찾았었지.
그냥 버려두어도 꽃들은 조화를 이루어 피고 있고.
언젠가 가 본 북해도 동해안의 '원생공원'처럼 가꾸지 않아도 꽃과 풀들은 스스로 어울린다.
벌써 꽃은 지고 홀씨만 남겨두었다.
어릴 적 저걸 따다가 작은 우산처럼 생긴 씨를 불고 다녔었지.
이 꽃이 왜 '개불알꽃'인가?
우리 민들레는 모두 서양 민들레로 바꾸어 졌고.
조금 당겨 본다.
클로버 꽃을 꺾어 반지 만들고 목걸이 만든 때도 있었지.
하얀 꽃들을 찍으려고 했으나 잘 보이질 않네.
여기 서초 IC는 나만의 트여진, 그러나 비밀스런 야생화 밭이다.
길마다 나들이 나가는 차들로 꽉 막혀있다.
이러니 나까지 휴일날 차 가지고 멀리 나갈 일이 없다.
바로 이 자리에서 철쭉구경을 하면 된다.
물론 지리산 바래봉이나 여수 영취산 등의 철쭉도,
아니면 더 늦게 피는 지리산 세석의 흰 철쭉 구경도 좋치만.
가고 오고 걸리는 시간에, 운전 힘들지, 돈 들지 그냥 간단하게 집을 나서서
한 시간여만 움직이면 이런 근사한 꽃구경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늦게 피기 시작하는 하얀 철쭉
이건 또 무슨 꽃?
야생화 구경을 실컷 마치고 우면산으로 가는 길가에 얌전하게 버려 둔 쓰레기.
이런 놈들은 어떻게 혼내어야 하나?
적어도 하룻동안 쓰레기 줍는 일이나 시키면 좋을텐데.
5.16 군사 쿠데타 후 교통위반을 하면 교차로에 몇시간 세워도 두었는데.
길을 건너면 서초 약수터가 나오는 횡단보도에서 자주 떨어지지 않는 보행자 신호를 보고 조심해서 길을 가는데
휴일 아침에 무엇이 바쁜지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자동차.
치일 뻔해서 차를 세우고 문을 열라하니 웬 여자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
'죄송해요'
무얼 모르는 모양인데 여기서 사고를 내면 신호무시, 횡단보도 사고는 교통사고 특례조항에 포함되지 않는 사고라
보험 처리도 되지 않고 만약 내가 다치기라도 하면 과실 치상에 진단서는 최소 2개월은 땔 수가 있다.
그래도 높은 연봉에 일년에 내는 세금만 수천만원이니 민사상 일실소득을 배상해야 되는 액수도 기 천만원,
여기에 위자료를 포함시키면 얼마나 될까?
살인 미수죄도 있고 사기 미수죄도 있는데 교통사고 과실 미수죄는 왜 없나?
아래의 표시 'HYUNDAI FOR LIFE'를 무색하게 한다.
운전자는 오늘은 운수대통한 날이란 걸 알아야지.
에이, 기분 잡치네.
휴대폰이 울린다.
'형님, 저예요'
'그래 휴일 아침부터 웬일이야'
'갑자기 가슴이 아파 오는데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질 않아요'
재작년 밤 산책을 나갔다가 비슷한 전화를 받고는 응급실로 오라고 하였더니
'여기는 상해입니다' 하여 다음날 비행기 타고 와서 여러 검사를 해보았더니 역류성 식도염이 나왔었는데.
'응급실에 연락을 해 둘터이니 무조건 와라'
응달진 곳의 자목련은 오히려 지금이 한창.
무얼 심고 있어 무언가 물었더니 병꽃이란다.
'지난번 이곳에는 칸나를 심어 두지 않았나요'
그때 그때 바꾼단다.
물이 내려와 약간 고인 데는 갈대가.
지난 가을의 흔적을 남기고 있고
꽃이 피기전에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온길을 뒤돌아 보며
능선으로 오른다.
하늘 빛깔은 봄하늘이다.
이 계단을 오르면
만나는 쉼터에는 빈 긴의자만.
길을 걸어가다 만나는 안내 표지판
오늘의 코스는 새로 생긴 서울 둘레길로 정하자.
잘라낸 나무의 나이테는 얼마?
사람은 이게 얼굴의 주름으로 나타나나?
올라온 길과
올라갈 길 모두 등산객들이 다니지 않는다.
저 능선에서 길이 갈린다.
그래 양재 시민의 숲으로 가자.
가로막는 나무의 높이는 딱 나의 키이다.
아마 60년대 파 놓은 참호같은데
저기에 기관총좌가 걸리면 앞에는 사계청소가 되어 있어야 하나 나무만 무성하다.
우면동이 보인다.
이런 좋은 자리를 두고 사람들은 자연농원같은 번잡한 곳에서 자리 하나도 못잡고 있겠지.
저 아래는 지난 홍수 이후 배수로를 만들어 놓았다.
꽃들이 도열해 있는 길을 혼자서 걸어 간다.
여기가 관문사로 내려가는 길이고
올라 갈길이다.
고압 송전선 부근에 세워진 안내판은
송전탑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는 별 해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 소방학교로 내려갈까? 하다 처음 마음먹은 대로
지나온 구간이 서초 둘레길이었구나.
내가 애용하는 서울의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인 고속도로 변에 나있는 길을 따라 집으로 가자.
외교안보연구원 앞에서 문뜩 생각이 나서 전화를 보니까 불통이다.
이번이 세번째이나 일과중에 AS Center에 갈 시간이 없다.
다시 길을 건너 '임병주 산동 칼국수(02-3473-7972)'에서 만두 포장으로 2인분을 주문하여 들고 간다.
두시간 반의 산책이 끝났다.
첫댓글 인간이 지니는 치명적인 속성의 하나가 찾는 것을 멀리서 찾으려는 속성이다. 내 땅 밑에 무엇이 있는 줄을 모르며 우주를 탐사하며 옆의 아파트에는 누가 사는 줄도 모르며 미얀마나 아프리카를 찾아 봉사활동을 한다. 북한산도 제대로 찾지 않는 사람이 히말라여 트렉킹을 한다고 하며 굶은 아동들이 지척에 깔려 있는데 외국의 구호활동에 나서며 집 안의 시어머니에게는 물 한 잔 안 떠다드리는 여자일수록 양로원 구호활동엔 대단히 적극적이다.
꽃이 이렇게 지척에 만발한데 무슨 벗꽃 구경을 간다고 진해다 화개사다 현충사다 법석인가?
유교수의 건강 비법은 틀림 없이 걷기일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음식을 섭렵하면서도 건강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거기에 더 하여 약간의 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