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바다로
여름이 꼬리를 내린 팔월 마지막 날이다. 강수가 예보되어 전날과 마찬가지로 도서관에서 지낼까 마음을 정했다. 날이 밝아온 새벽에 어제 도서관 가면서 봤던 도심 속 야생화 계요등꽃으로 시조를 한 수 남겨 친구와 지기들에게 사진과 함께 보냈다. 이어 내일 아침에 넘길 작품도 미리 준비했다. 어제 창원 스포츠파크 동문 앞을 지나다가 봤던 배풍등이 피운 꽃을 글감으로 삼았다.
“덩굴로 타고 나간 가지과 다년초로 / 풍 치료 효능 있어 배풍등 이름 붙어 / 늦여름 하얀 꽃송이 방울방울 피웠다 / 지는 꽃 자리마다 빨갛게 영근 열매 / 약효도 있겠지만 새 먹이 그저 그만 / 겨우내 조잘거리며 떠날 줄을 모른다” ‘배풍등꽃’ 전문이다. 1일 1수 아침 시조는 예비로 몇 편 준비해 두고 있다. 이 작품 말고도 ‘우곡사 약수터’와 ‘온천장 풍경’이 마련되어 있다.
아침 식후 도서관으로 가려고 현관을 나섰다. 이웃 동 뜰의 꽃밭으로 나가 꽃대감을 만나 안부를 나누었다. 가을이 오는 길목 촛불 맨드라미와 유홍초가 선홍색 꽃을 피워 존재감을 드러냈다. 빙상장으로 가 스케이트를 타는 친구와 헤어져 나는 정류소로 나가 소계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한 번 만에 가는 버스가 없어 창원역 앞으로 나가 8번 마을버스로 갈아타 소계동에 닿았다.
어제는 교육단지 ‘책담 ’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오늘을 ‘지혜의 바다’ 도서관에서 지낼 생각이다. 두 곳 다 경남교육청이 운영하는 규모가 큰 도서관이다. 지혜의 바다는 예전 구암여중 터의 체육관을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해 지역민에게 호응이 좋다. 남녀 분리 중학교였던 구암중학교에 여학생까지 통합시켜 남은 한 곳에 자유학기제 대안학교와 함께 공공 도서관이 들어섰다.
소계동은 천주산에서 흘러온 소계천을 기준으로 행정구역이 마산과 창원으로 나뉜 경계 지역이었다. 구암동은 마산이고 소계동은 창원인데 단독주택과 빌라로 형성된 촌락으로 소계시장 주변에 상가도 보였다. 노후화된 주거지는 재건축 논의가 있을 법했다. 초중학교와 천주산 기슭에 사립 고등학교가 있어 최근 들어선 도서관은 취학 자녀 둔 젊은 층 부모들로부터 환영받을 듯했다.
도서관 업무가 개시되길 기다려 내가 제일 선착으로 입장했다. 2층 서가로 올라가 신간 코너를 비롯해 십진 분류에 따라 나뉜 개가식 서가의 많은 책들을 살펴봤다. 코너마다 위아래를 훑어보면서 눈길이 가는 책 가운데 다섯 권을 골라 작은 테이블이 놓인 편안한 열람석을 차지에 책을 펼쳤다. 사범대를 나와 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쳤던 저자는 대학원에서 환경을 더 공부했다.
박강리가 쓴 ‘바람 좋은 날, 경복궁’은 궁궐의 역사나 건축보다 환경에다 초점을 맞춘 책이었다. 조선 왕조 고궁을 통치 권력을 행사한 임금과 신하가 머문 공간이 아닌 인간의 삶이 자연과 맞닿아 있는 곳으로 봤다. 경복궁에서 만난 비, 바람, 흙, 생명 그리고 환경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궁궐 돌바닥과 틈새 자란 잡초를 소개하고 관람객 눈에 잘 띄지 않은 뒷간도 찾아내 언급했다.
점심때가 되어 아침에 챙겨간 우산을 들고 바깥으로 나왔더니 온다던 비는 오질 않고 날이 개어 햇볕이 드러났다. 도서관과 인접한 냇가는 소계시장으로 처음 찾은 상가였다. 돼지국밥집으로 들어 점심을 요기하고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와 3층 독서 라운지로 올라 오전에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아침에 골라 놓고 못다 읽은 책은 표지 소개 글과 차례만 훑어보고 후일을 기약했다.
도서관은 현장의 교실 수업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타종이 없는 일과 진행이라 열람자 스스로 하교 시각을 정했다. 어제 책담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책이 있어 지혜의 바다 도서관에서는 책을 빌리지 않았다. 날이 저물기 전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니 개학이 되어 등교 일과를 마친 고등학생들과 같이 하교했다. 비 오는 날이면 다시 찾아갈 도서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3.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