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14~22 / 맹인이었던 자의 선지자로 고백
(요 9:14, 개정)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요 9:15, 개정)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요 9:16, 개정)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요 9:17, 개정)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요 9: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요 9: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요 9: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요 9:21, 개정)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요 9:22, 개정)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요한복음 9장 14~22절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예수님께 눈을 뜬 후, 바리새인들의 심문을 받으면서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점점 깊어지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판단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눈을 뜬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죄인인 줄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요 9:25)
그리고 앞선 17절에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당신은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선지자니이다."
왜 "선지자"라고 고백했을까?
유대인들에게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나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뜨는 일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깨달았고, 그래서 예수님을 선지자로 고백한 것입니다.
부모의 반응 (18~22절)
유대 지도자들은 그 기적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부모를 불러 확인했습니다.
부모는 아들이 맹인이었다가 지금 보는 것은 인정했지만, 누가 고쳐 주었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사람이 출교당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맹인은 육신의 눈뿐 아니라 영적인 눈도 점차 열려 갔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라는 사람"(11절)이라고 했고, 다음에는 "선지자"(17절)라고 고백했으며, 결국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경배하게 됩니다(38절).
신앙도 이와 비슷합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훌륭한 사람으로 아는 것에서 시작해,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 믿고, 마침내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의 담대한 고백은 경험한 은혜가 얼마나 큰 확신을 주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본문은 단순히 맹인이 눈을 뜬 기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는 태도와 예수님을 향한 고백을 돌아보게 하는 교훈을 받습니다.
첫째, 경험한 은혜를 담대하게 증언해야 합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신학적으로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경험한 사실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우리도 모든 질문에 답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내 삶에 행하신 일을 담대하게 나눌 수 있습니다. 신앙의 가장 강력한 증거는 삶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십시오.
맹인의 부모는 출교를 두려워하여 사실을 모두 말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시선과 불이익을 의식하면 믿음의 고백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도 '사람들의 평가' 때문에 예수님을 드러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 가십시오.
맹인은 예수님을 처음에는 '사람'으로, 다음에는 '선지자'로, 마지막에는 '주님'으로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것보다, 예수님을 날마다 더 깊이 알고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기적을 보고도 편견 때문에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내 생각이나 전통을 앞세우기보다, 말씀 앞에서 겸손히 배우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 제 삶에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고 담대히 증언하게 하소서.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을 더 경외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선지자로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더욱 깊이 믿고 따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