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천재가 될거야… 빌 게이츠가 10대에 손에 넣은 "반칙급 기회"란? / 12/29(월) / 다이아몬드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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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재가 될거야… 빌 게이츠가 10대에 손에 넣은 "반칙급 기회"란? / 12/29(월) / 다이아몬드 온라인
천재는 노력과 재능의 곱셈으로 태어난다. 그렇게 믿어져 왔지만, 세계적인 기업가 빌 게이츠의 10대를 더듬어 보면, 그 뒤에는 "우연의 연쇄"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보인다. 그를 형성한 많은 우연이란? ※본고는, 저널리스트의 말콤·글래드웰, 사쿠라다 나오미 번역『Outliers 사고와 사고가 연결되는 최적해가 보이는 머리의 주가 되는 방법』(썬마크 출판)의 일부를 발췌·편집한 것입니다.
● 게이츠는 두뇌와 야심으로 올라섰다 조숙한 소년을 매료시킨 것은
빌 게이츠의 개인사를 보자. 그의 이야기도 비틀즈의 그것만큼이나 유명하다. 수학을 잘하고 우수한 젊은이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발견한다.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친구들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이름의 작은 컴퓨터 회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우수한 두뇌, 야심, 거츠만을 의지해, 그 작은 회사를 소프트웨어계의 거인까지 길러 낸다. 이것이 대략적인 흐름이다.
자, 여기서부터 더 자세히 파고 들어가자.
게이츠의 아버지는 시애틀의 부유한 변호사다. 그리고 어머니는 성공한 은행가의 딸. 어린 시절의 빌은 조숙해서 학교 공부에 자주 지루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아들을 공립학교에 보내는 것을 그만두고 7학년부터 레이크사이드라는 학교에 전입시켰다. 레이크사이드는 시애틀 엘리트 가정의 자녀가 다니는 사립학교다.
그리고 게이츠가 레이크사이드에 온 지 2년차 중반이 되자 학교에 컴퓨터 클럽이 생겼다.
"매년 학교 어머니회가 자선바자회를 개최했다. 그때마다 바자회에서 모인 돈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가 됐다며 게이츠는 당시를 회상한다.
"도심에 사는 빈곤층 아이가 캠퍼스로 찾아오는 여름 프로그램에 쓰일 수도 있고 선생님의 수입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해에는 매출 3000달러를 들여 컴퓨터실을 만들기로 했지"
"색다른 작은 방에, 1대의 컴퓨터 단말기가 놓여 있다. 결국은 우리가 그 장소를 점령하고 말았다. 그건 꽤 멋진 거였어"
물론 컴퓨터가 대단한 것이었던 것은 당시는 아직 1968년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는 비록 대학이지만 컴퓨터 클럽이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더욱 특기할 만한 것은 레이크사이드가 구입한 컴퓨터의 종류다. 1960년대 당시 프로그래밍이라고 하면 판지 카드에 구멍을 뚫는 것이었다. 그러나 레이크사이드는 학생들에게 그런 아찔한 작업을 시키지 않았다.
● 행운은 레이크사이드에서 시작되었다 최첨단 기술을 배울 기회를 잡다
레이크사이드가 도입한 것은 ASR-33 텔레타입으로 불리는 머신이다. 이는 타임셰어링 시스템을 갖춘 단말기로 시애틀 시내에 설치된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직접 연결돼 있다.
"타임 쉐어링이라는 개념 자체가, 1965년에 발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라고 게이츠는 계속했다. "그 학교에는 누군가 아주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 있었을 거야."
빌 조이는 대학 1학년이던 1971년 당시 최첨단 기술인 타임셰어링을 통해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다시없는 기회를 얻었다. 한편 빌 게이츠는 아직 8학년이던 1968년 실시간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부터 게이츠는 컴퓨터실 안에서 살게 됐다. 그를 포함한 몇몇 학생들은 이 기묘한 새 기계 사용법을 독학으로 배워갔다.
당연히 ASR이 접속된 메인프레임의 사용료는 상당한 액수가 된다. 자금에 여유가 있는 레이크사이드 같은 학교에서도 쉽게 낼 수 없었다. 어머니회에서 제공한 3000달러도 순식간에 바닥났다. 학부모가 더 자금을 모으고 학생들이 그것을 다 쓴다.
그 무렵, 워싱턴 대학의 프로그래머가, 컴퓨터·센터·코퍼레이션--통칭 C-Cubed(C의 3승)-라고 하는 회사를 설립해, 현지 기업에 컴퓨터의 사용 시간을 리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다행히 설립자 중 한 명인 모니크 로나의 아들이 우연히 레이크사이드에 다니고 있었다. 학년은 게이츠의 한 살 위다.
● 매일 밤 프로그래밍에 몰두했다 고교에 진학했던 당시를 되돌아보다
그래서 로나는 생각했다. 레이크사이드 컴퓨터 클럽은 무료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면 주말에 C-Cubed 소프트웨어 테스트를 맡아 줄 것인가? 당연하지!
그리고 게이츠는 방과 후가 되면 버스를 타고 C-Cubed 사무실로 가 밤늦게까지 프로그래밍에 몰두했다.
그 후 C-Cubed는 파산했다. 그래서 게이츠와 친구들은 이번에는 워싱턴대 컴퓨터센터에 모이게 됐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정보과학잉크(ISI)라는 조직과 가까워졌다. ISI는 회사의 급여 계산을 자동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대가로 게이츠들이 무료로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허락해줬다.
1971년의 어느 7개월간을 뽑아보면 게이츠와 동료들이 ISI의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사용한 시간은 모두 1575시간이다. 매일 사용했다면 평균적으로 하루에 약 8시간이다.
컴퓨터에 홀렸더라며 게이츠는 고등학교에 올라갔던 당시를 회상한다.
체육수업을 빼먹었다. 밤에도 그곳에 갔다. 동료들과 함께 주말에도 프로그래밍을 했다. 일주일에 20시간, 30시간씩 프로그래밍하는 건 흔했다
"어느 때, 폴·앨런과 내가 대량의 패스워드를 훔쳐, 시스템을 크래시시켜 소란을 피운 적이 있다. 우리는 쫓겨나고 말았어. 여름 내내 컴퓨터를 만질 수가 없었어. 15세에서 16세 사이의 일이다"
그때 폴이 워싱턴대에서 무료로 쓸 수 있는 컴퓨터를 발견했다. 대학 메디컬센터와 물리학부에 설치돼 있는 머신이다. 24시간 가동됐지만 새벽 3시부터 6시 정도까지는 아무런 예정이 없다. 게이츠는 소리내어 웃었다.
"는 척하며 밤에 집을 빠져나왔다. 워싱턴 대학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고, 버스로도 갈 수 있어. 그래서 나는 워싱턴 대학에 항상 많은 기부를 하고 있어. 내가 컴퓨터 사용 시간을 많이 훔쳐도 용서해 줬으니까.(후년에 게이츠의 어머니는 이런 말을 했다. 「항상 이상했어요. 왜 그 아이는 저렇게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싫어할까」).
ISI 설립자 중 한 명인 버드 펨브로크에게 기술기업 TRW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TRW는 본느빌 전력사업단이 워싱턴 주 남부에 설치한 거대한 발전소의 컴퓨터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을 막 수주한 참이었다. 그래서 발전소가 쓰던 소프트웨어를 잘 아는 프로그래머가 꼭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는 아직 컴퓨터 혁명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전문 지식을 가진 프로그래머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러나 펨브로크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인물을 알고 있었다. ISI의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사용해 수천 시간이나 프로그래밍에 몰두하고 있던, 그 레이크사이드의 고등학생들이다.
당시 게이츠는 고등학교 최상급생이었다. 어떻게든 고교 교사들을 구슬려 독립학습 프로젝트라는 명목으로 고교 수업 대신 본느빌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게이츠는 봄 내내 코드만 썼다. 그를 감독한 사람은 존 노턴이라는 인물이다. 게이츠는 나중에 노턴만큼 프로그래밍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8학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5년은 빌 게이츠에게 함부르크 시대다. 모든 면에서 게이츠는 빌 조이를 훨씬 능가할 기회를 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게이츠를 성공으로 이끈 우연의 연쇄 세계에서 50명이 있으면 놀랍다
첫 번째 기회는 레이크사이드로 전입한 것이다. 1968년 시대에 타임셰어링 단말기를 갖춘 고등학교는 세계에서도 희귀한 존재다. 두 번째 기회는 학교 어머니회에 컴퓨터 사용료를 낼 만한 자금력이 있었다는 것.
제3의 기회는, 그 자금이 다했을 때에, 보호자의 한 사람이 우연히 C-Cubed에서 일하고 있고, 그리고 C-Cubed가 우연히 주말에 코드의 테스트를 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게다가 우연히 그 사람이, 주말 뿐만이 아니라, 평일의 밤에도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네 번째 기회는 게이츠가 우연히 ISI를 알게 되고, 게다가 ISI도 우연히 급여 계산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것. 다섯 번째 기회는 게이츠의 집이 우연히 워싱턴대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있었다는 것. 여섯 번째 기회는 우연히 오전 3시부터 6시는 대학 컴퓨터가 비어 있었다는 것.
일곱 번째 기회는 TRW가 우연히 버드 펨브로크에게 전화를 한 것. 여덟 번째 기회는 펨브로크가 아는 한 TRW의 일에 적합한 가장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레이크사이드에 다니는 두 명의 고등학생이었다는 것. 그리고 아홉 번째 기회는 레이크사이드가 그 두 학생에게 봄 내내 멀리 있는 곳에서 코드를 쓰도록 허락해 준 것이다.
● 빌 게이츠는 기회를 무엇으로 바꾸어 갔나?
여기에 올린 기회의 거의 모든 것에 공통되는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빌 게이츠가 대량의 연습 시간을 손에 넣었다는 것이다.
대학 2학년 말에 하버드를 중퇴하고 소프트웨어 회사 설립에 도전하기까지 게이츠는 7년 동안 거의 논스톱으로 프로그래밍을 계속해 온 셈이다. 그 시점에서 1만 시간을 훌쩍 넘었다. 세계화라고는 하지만 게이츠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10대 자녀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세계에서 50명이 있으면 놀랍다고 게이츠는 말한다.
C-Cubed가 있고, 급여 계산 소프트웨어 일, 그리고 TRW다. 연달아 기회를 얻었다. 그 당시, 그렇게 소프트웨어 개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아이는 또 없을 것이다. 그것도 모두 아주 운이 좋은 일들이 겹친 결과야
말콤 글래드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