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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저유어(釜底游魚)
솥바닥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라는 뜻으로, 상황이 극히 위험한 상태에 이름을 비유한 말이다.
釜 : 가마 부(金/2)
底 : 밑 저(广/5)
游 : 헤엄칠 유(氵/9)
魚 : 고기 어(魚/0)
(유의어)
겁수난도(劫數難逃)
누란지위(累卵之危)
명재경각(命在頃刻)
백척간두(百尺竿頭)
부중지어(釜中之魚)
여리박빙(如履薄氷)
조상지육(俎上之肉)
철부지급(轍鮒之急)
초미지급(焦眉之急)
풍전등화(風前燈火)
출전 :
○후한서(後漢書) 제86권 장왕종진열전(張王種陳列傳) 장강편(張綱篇)
○삼국지(三國志)
○자치통감(資治通鑑) 第52卷 한기(漢紀)
몹시 위험한 처지에 놓여 목숨이 간당간당한 경우를 이를 때를 비유한 성어가 제법 많다. 여기저기 들쑤시며 음식을 훔치는 쥐가 독 안에 빠지면 꼼짝달싹 못하는 입옹지서(入甕之鼠)가 된다.
도마 위에 오른 고기 조상지육(俎上之肉)이나 약간 나은 못 속의 물고기와 새장의 새, 지어농조(池魚籠鳥)도 부자유스럽긴 마찬가지다. 장자(莊子)가 비유한 학철부어(涸轍鮒魚)도 있다.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라는 뜻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솥바닥(釜底)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游魚)도 다를 바 없는 신세다. 곧 삶길지도 모르고 놀지만 사람 목숨으로 치면 명재경각(命在頃刻), 풍전등화(風前燈火)인 셈이다.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서기 25년 재건한 후한(後漢)은 초기에는 서역까지 뻗어 국력을 과시하다가 외척과 환관의 농간으로 급격히 쇠락했다. 외척의 대표적인 인물 양기(梁冀)는 여동생이 8대 순제(順帝)의 왕후가 된 후 4대에 걸쳐 제위(帝位)도 마음대로 폐립하는 등 무소불위의 횡포를 자행했다.
이 때 하급관리 장강(張綱)이란 강직한 사람이 양기를 규탄하여 눈 밖에 났다. 윗물이 흐린데 아랫물이 맑을 수 없어 지방서도 비리가 들끓자 황제는 장강을 비롯한 8명에게 규찰을 시켰다. 장강은 더 큰 도둑을 두고 갈 수 없다며 수레를 묻고 양기를 탄핵한 매륜남비(埋輪攬轡)의 고사로 남았다.
앙심을 품은 양기는 장강에게 지방관을 죽이고 모반을 일으킨 장영(張嬰)을 진압하도록 보냈다. 장강은 양기의 속셈을 알고도 두려움 없이 부임하여 장영을 설득했다.
장강의 사람됨을 믿은 장영 일당들은 살기 위해 이렇게 도적이 됐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희들은 마치 솥 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과 같아 잠시 숨만을 쉬고 있을 뿐입니다(若魚游釜中 喘息須臾間耳)." 이들이 용서를 구하자 장강은 용서하고 평안을 찾았다.
황제는 큰 공을 세운 장강을 중용하려 했으나 양기의 반대에다 장영 등이 상소를 올리며 지역에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자 더 근무토록 했다. '후한서(後漢書)' 장영열전(張嬰列傳)과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실려 전한다.
'끓는 물 속 개구리'란 말이 있다. 물이 끓는 통에 넣은 개구리는 바로 뛰쳐 나오지만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닥칠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개구리는 솥 안의 물고기보다 족을 시간이 빨리 닥쳐도 유유히 헤엄친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우리나라가 국내외 여건으로 성장이 예전만 못하다고 아우성이다. 소득이 높아지자 세금을 펑펑 쓰고 온갖 명목의 복지제도를 만들어 낭비하는 경쟁을 한다.
미래세대는 이럴 줄도 모르고 좋아하다가 솥 안의 물고기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제도가 잘못 되어 부작용이 나타나면 고하를 막론하고 장강 같은 지사가 나타나 바로잡아야 한다.
부저유어(釜底游魚)
물고기가 솥바닥에서 헤엄치다. 상황이 극히 위험한 상태를 비유하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후한서(後漢書) 제86권 장왕종진열전(張王種陳列傳) 장강(張綱) 편에 나온다.
후한(後漢) 멸망의 주된 원인은 외척과 환관의 횡포와 전횡이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외척은 무려 20년 동안이나 권력을 전횡한 양기(梁冀)였다.
양기(梁冀)는 순제(順帝; 後漢 제7대 황제) 때 여동생이 황후가 되자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하여 충제(沖帝), 질제(質帝), 환제(桓帝) 등 4대에 걸쳐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이다.
양기(梁冀)는 동생인 불의(不疑)가 하남의 태수에 임명되자 황제에게 건의하여 여덟 명의 강직한 사람을 선발하여 각지를 순행하면서 민정을 살피고, 지방의 태수들 중 재물을 탐하여 백성의 고혈을 짜는 자가 있는가, 혹은 국법을 어기는 사람이 있는가를 살피게 하였다.
이 여덟 명의 특사들 중에 장강(張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홀로 마차를 몰고는 낙양성 밖 역참 부근에서 여장을 푼 후 숙소에다 수레바퀴를 묻어 버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승냥이와 이리가 길을 막는데 어찌 여우와 살쾡이에게 묻겠는가(豺狼當路, 安問狐狸)?"
漢安元年, 選遣八使徇行風俗, 皆耆儒知名, 多曆顯位, 唯綱年少, 官次最微. 餘人受命之部, 而綱獨埋其車輪於洛陽都亭, 曰: 豺狼當路, 安問狐狸.
그러면서 장강(張綱)은 양기(梁冀) 형제를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이 때문에 장강(張綱)은 양기(梁冀) 형제의 미움을 사, 장영(張嬰)이라는 도적이 10년 동안 휩쓸고 다니던 광릉군(廣陵郡)의 태수로 쫓겨났다.
장강(張綱)은 임지에 도착하여 이졸 십여 명을 데리고 도둑의 소굴로 장영(張嬰)을 찾아갔다. 장영(張嬰)은 처음에는 깜짝 놀랐으나 장강(張綱)을 보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장강(張綱)을 절로써 맞이했다.
遂奏曰: 大將軍冀, 河南尹不疑, 蒙外戚之援, 荷國厚恩, 以芻蕘之資, 居阿衡之任, 不能敷揚五教, 翼贊日月, 而專為封豕長蛇, 肆其食叨, 甘心好貨, 縱恣無底, 多樹諂諛, 以害忠良. 誠天威所不赦, 大辟所宜加也. 謹條其無君之心十五事, 斯皆臣子所切齒者也. 書禦, 京師震竦. 時, 冀妹為皇后, 內寵方盛, 諸梁姻族滿朝, 帝雖知綱言直, 終不忍用.
時, 廣陵賊張嬰等眾數萬人, 殺刺史二千石, 寇亂揚徐間, 積十餘年, 朝廷不能討. 冀乃諷尚書, 以綱為廣陵太守, 因欲以事中之. 前遣郡守, 率多求兵馬, 綱獨請單車之職. 既到, 乃將吏卒十餘人, 徑造嬰壘, 以慰安之, 求得與長老相見, 申示國恩. 嬰初大驚, 既見綱誠信, 乃出拜謁.
장강(張綱)은 자리를 배설하여 상좌에 앉히고 무슨 힘든 일이 있느냐고 물으며 비유를 들어 말했다. "지방 수령들이 탐욕스럽고 포학하여 공 등이 분을 품고 서로 모였구려. 지방 수령들의 죄요.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의가 아니오. 지금 주상께서는 어지셔서 문덕으로 반도들을 복속시키려 하고 있소. 그래서 나를 파견하여 작록으로 서로를 영화롭게 하려고 생각하지, 형벌을 내리기를 원하지 않고 있소. 지금이 화를 복으로 바꿀 수 있는 때요(轉禍為福). 만약 불복하면 천자께서 진노하여 형주(荊州), 양주(揚州), 연주(兗州), 예주(豫州)의 대병을 모을 텐데 어찌 위험하지 않겠소. 강약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밝음이 아니요, 선을 버리고 악을 취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요, 순종을 버리고 역행을 본받는 것은 충이 아니요, 후사를 끊는 것은 효가 아니요, 바름을 뒤로하고 사악함을 좇는 것은 바름이 아니요, 의를 보고 행하지 않는 것은 용이 아닌 것이오. 이 여섯 가지는 성공과 실패의 조짐이요, 이득과 해로움이 따르는 것이니 공은 깊이 따져 보기 바라오."
綱延置上坐, 問所疾苦. 乃譬之曰: 前後二千石多肆貪暴, 故致公等懷憤相聚. 二千石信有罪矣, 然為之者又非義也. 今主上仁聖, 欲以文德服叛, 故遣太守, 思以爵祿相榮, 不願以刑罰相加, 今誠轉禍為福之時也. 若聞義不服, 天子赫然震怒, 荊揚兗豫大兵雲合, 豈不危乎. 若不料強弱, 非明也; 充善取惡, 非智也; 去順效逆, 非忠也; 身絕血嗣, 非孝也; 背正從邪, 非直也; 見義不為, 非勇也; 六者成敗之幾, 利害所從, 公其深計之.
장영(張嬰)이 듣고 울면서 말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스스로 조정과 통하지 못하고 벼슬아치들의 가혹한 처사에 견디다 못해 모두가 모여서 도적이 되었습니다. 마치 솥 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과 같아 결코 오래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若魚游釜中, 喘息須臾間耳). 이제 태수의 말을 들으니 바로 우리가 갱생할 수 있는 때인 것 같습니다. 불의에 빠져 있으면서 사실은 군사들이 투입되는 날에는 도륙을 면치 못할까 두려웠습니다."
嬰聞, 泣下, 曰: 荒裔愚人, 不能自通朝廷, 不堪侵枉, 遂複相聚偷生, 若魚游釜中, 喘息須臾間耳. 今聞明府之言, 乃嬰等更生之辰也. 既陷不義, 實恐投兵之日, 不免孥戮.
장강(張綱)은 하늘과 땅을 두고 약속하고 해와 달을 두고 맹세했다. 장영(張嬰)은 깊이 감동하여 작별 인사를 하고 영채로 돌아갔다. 다음 날 장영(張嬰)은 만여 명의 부하와 처자를 묶어서 데리고 항복했다.
綱約之以天地, 誓之以日月, 嬰深感悟, 乃辭還營. 明日, 將所部萬余人與妻子面縛歸降.
남주(南州)는 이렇게 해서 평안을 되찾았다. 조정에서는 장영(張嬰)의 공을 논하여 봉하려 했으나, 양기(梁冀)가 이를 막자 논의를 그치고 말았다. 천자가 장강(張綱)을 가상히 여겨 중용하려 했으나 장영(張嬰) 등이 상소를 올려 장강(張綱)을 그냥 머물게 해 달라고 부탁하자 이를 허락했다.
장강(張綱)은 군에 1년쯤 더 있다가 46세에 죽었다. 늙은이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애도를 표한 백성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장영(張嬰) 등 500여 명은 상복을 입고 건위(毽爲)까지 가 장례를 치르며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南州晏然. 朝廷論功當封, 梁冀遏絕, 乃止. 天子嘉美, 征欲擢用綱, 而嬰等上書乞留, 乃許之. 綱在郡一年, 年四十六卒. 百姓老幼相攜, 詣府赴哀者不可勝數. 綱自被疾, 吏人鹹為祠祀祈福, 皆言, 千秋萬歲, 何時複見此君. 張嬰等五百餘人制服行喪, 送到犍為, 負土成墳.
그리고, 이 성어는 삼국지(三國志)에도 보인다.
당양현(當陽縣) 싸움에서 조자룡(趙子龍)이 분전하였고, 장비(張飛)가 장판대전(長板大戰)에서 조조(曹操)의 대군을 물리쳤지만, 유비(劉備)는 여전히 조조(曹操)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현덕(劉玄德)은 군사를 재촉해 부지런히 길을 달렸다. 거의 한진(漢津) 가까이 이르렀을 때다. 갑자기 뒤에서 먼지가 일면서 하늘에 닿을 듯한 북소리와 더불어 군사들의 함성이 땅을 울린다.
유현덕(劉玄德)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앞은 큰 강이고 뒤에는 적군이니, 대체 어찌하면 좋을꼬." 급히 조운(趙雲; 趙子龍)에게 적군과 싸울 채비를 하라고 일렀다.
한편 조조(曹操)는 유현덕(劉玄德)을 급히 뒤쫓으며 군중에 영을 내렸다. "이제 유비(劉備)는 솥 안에 든 물고기요, 함정에 빠진 호랑이다(今劉備釜中之魚, 阱中之虎). 만약 지금 사로잡지 못하면 물고기를 바다에 풀어놓은 격이요, 호랑이를 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若不就此時擒捉, 如放魚入海, 縱虎歸山矣). 모든 장수는 있는 힘을 다해 진격하라."
명을 받은 조조(曹操)의 장수들은 분발하여 서로 용기를 북돋우며 앞 다투어 진군했다. 조조(曹操)의 대군이 채 10리도 못 갔을 때였다. 갑자기 고개 너머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한 떼의 기병이 나는 듯이 달려 나왔다.
앞선 장수가 큰소리로 외친다.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린 지 오래다!" 손에 청룡도를 들고서 적토마를 타고 있는 장수를 보니 바로 관운장(關雲長)이다.
원래 관운장(關雲長)은 강하(江夏)에 가서 군사 1만 명을 빌려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당양(當陽) 장판대전(長板大戰)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는 말을 듣고 즉시 이곳으로 와서 조조(曹操)의 군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조(曹操)는 생각지 않은 곳에서 관운장(關雲長/關羽)과 맞부딪치자 깜짝 놀랐다. "또 제갈량(諸葛亮)의 계략에 빠져 들었구나!" 조조(曹操)는 수하 장수들을 돌아보고 한마디 한 다음, 즉시 전군에 퇴각명령을 내렸다.
卻說玄德行近漢津, 忽見後面塵頭大起, 鼓聲連天, 喊聲震地. 玄德曰: 前有大江, 後有追兵, 如之奈何. 急命趙雲準備抵敵. 曹操下令軍中曰: 今劉備釜中之魚, 阱中之虎; 若不就此時擒捉, 如放魚入海, 縱虎歸山矣. 眾將可努力向前. 眾將領令, 一個個奮威追趕. 忽山坡後鼓聲響處, 一隊軍馬飛出, 大叫曰: 我在此等候多時了.
當頭那員大將, 手執青龍刀, 坐下赤兔馬. 原來是關雲長, 去江夏惜得軍馬一萬, 探知當陽長板大戰, 特地從此路截出. 曹操一見雲長, 即勒住馬回顧眾將曰: 又中諸葛亮之計也. 傳令大軍速退.
또한 이 성어는 자치통감(資治通鑑)의 한기(漢紀) 편에도 보인다.
후한(後漢)의 외척 가운데 양기(梁冀)는 여동생이 순제(順帝)의 황후가 되자 그의 횡포가 극에 달하였다. 양기(梁冀)는 동생인 불의(不疑)가 하남의 태수(太守)에 임명되자 사자(使者) 8명으로 하여금 주와 군을 순찰하도록 명령하였다.
그 여덟 명의 사자 중에는 장강(張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낙양(烙陽) 숙소에다 수레바퀴를 묻어 버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산개와 이리 같은 양기(梁冀) 형제가 요직을 차지하고 설쳐대는데 여우나 살쾡이 같은 지방 관리들을 조사하며 돌아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면서 장강(張綱)은 도처에 양기(梁冀) 형제를 탄핵하는 15개 조항의 상소문을 올렸다.
喬等受命之部, 張綱獨埋其車輪於雒陽都亭, 曰: 豺狼當路, 安問狐狸. 遂劾奏.
이 때문에 장강(張綱)은 양기(梁冀) 형제의 미움을 사서 광릉태수(廣陵太守)로 쫓겨났다. 더구나 광릉군은 양주와 서주 지방을 10여 년간 휩쓸고 다니는 장영(張嬰)이 이끄는 도적떼의 근거지다.
그러나 장강(張綱)은 피하지 않고 당당히 임지에 도착하였다. 그는 부임하자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곧장 도둑의 소굴로 장영(張嬰)을 찾아갔다. 장영(張嬰)과 도둑들을 만난 자리에서 장강(張綱)은 인간의 도리와 사물의 이치를 말하면서 투항하여 개과천선할 것을 진심으로 종용하였다.
장영(張嬰)은 장강(張綱)의 설득에 깊은 감명을 받고 울면서 말했다. "벼슬아치들의 가혹한 처사에 배기다 못해 모두가 모여서 도적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목숨이 붙어있지만 마치 솥 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魚游釜中)과 같아 결코 오래 갈 수는 없겠지요."
장영(張嬰)은 항복하였고, 장강(張綱)은 이에 대한 대가로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었으며, 그들을 석방하였다. 마침내 광릉군은 평온을 되찾았다.
冀乃以綱為廣陵太守. 前太守率多求兵馬, 綱獨請單車之職. 既到, 逕詣嬰壘門; 嬰大驚, 遽走閉壘. 綱於門外罷遣吏兵, 獨留所親者十餘人, 以書喻嬰, 請與相見. 嬰見綱至誠, 乃出拜謁. 綱延置上坐, 譬之曰: 前後二千石多肆貪暴, 故致公等懷憤相聚. 二千石信有罪矣, 然為之者又非義也. 今主上仁聖, 欲以文德服叛, 故遣太守來, 思以爵祿相榮, 不願以刑罰相加, 今誠轉禍為福之時也. 若聞義不服, 天子赫然震怒, 荊揚兗豫大兵雲合, 身首橫分, 血嗣俱絕. 二者利害, 公其深計之. 嬰聞, 泣下曰: 荒裔愚民, 不能自通朝廷, 不堪侵枉, 遂復相聚偷生, 若魚游釜中, 知其不可久, 且以喘息須臾間耳. 今聞明府之言, 乃嬰等更生之辰也. 乃辭還營.
明日, 將所部萬餘人與妻子面縛歸降. 綱單車入嬰壘, 大會, 置酒為樂, 散遣部眾, 任從所之; 親為卜居宅相田疇; 子弟欲為吏者, 皆引召之.
부저유어(釜底游魚)는 곧 삶아질 것도 모른 채 솥 안에서 펄펄 날뛰는 물고기와 같은 뜻으로, 자기 명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부중지어(釜中之魚)
솥 안에 있는 물고기라는 뜻으로, 죽음이 눈앞에 닥칠 위험도 모른 채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을 말하기도 하는 이 말은 자치통감(資治通鑑)의 한기(漢記)가 그 출전이다. 참고로 부(釜)는 양쪽에 귀가 달린 쇠로 만든 그릇, 즉 솥을 말한다.
환관들에 의해 황제가 된 한순제(漢順帝)는 환관들을 높은 자리에 앉힐 수 밖에 없었으며 나아가 그들에게 각별한 은혜를 베풀어야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부양후(浮陽侯) 손정이라는 환관이 죽었을 때 손정의 지위와 재산을 그의 양자인 손수계에게 물려주게 한 것이다.
환관들이 높은 자리에 있었던 일은 한무제와 한선제 때도 있었던 일이지만, 당시 환관들에게는 그 후손이 지위와 재산을 계승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외척들처럼 조정을 쥐고 흔들지는 못하였는데, 한순제의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환관의 세력이 외척의 세력을 능가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었다.
환관들로서는 각자 자신의 세력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여 재산을 늘리는데 여념이 없는 한편, 서로 권력을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이며 다반사(茶飯事)였다.
이러다 보니 천하가 어지러워져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환관들에 의해 천하가 시끄러웠을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잘못 보이면 부귀영화를 보전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었다.
대장군이던 양상은 자기 자식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기를 환관인 조절, 조등 무리와 잘 사귀어 집안의 부귀영화를 보전하라고 할 정도였다.
서기 141년, 그런 양상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 한순제는 자신의 장인이자 대장군이었던 양상이 죽자 큰처남인 양상의 아들 양기(梁冀)에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장군 직임을 맡겼다. 그리고 작은 처남인 양불의(梁不疑)에게는 하남부윤(河南府尹)을 맡겼다.
양기는 말을 더듬었는데, 집안이 부유했던 탓에 도박에 빠져 흥청망청 지내기만 했던 그에게 막강한 권세가 주어지자 온갖 못된 짓은 다 저질렀다. 이런 사람이 조절, 조등 등의 환관들과 어울리던 당시의 천하는 무법천지에 다름 아니었다.
마침내 더 이상은 살아갈 수 없게 된 백성들이 일제히 봉기하였다. 탐관오리들을 쳐내지 않고는 달리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던 백성들의 노도와 같은 봉기, 즉 민란이 일어난 것이다.
간의대부 주거(周擧)는 한순제에게 '반란을 가라 앉히려면 먼저 각지의 지방관들 중에 탐관오리를 가려내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계책을 간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라 각지에 여덟 명의 파견조사관을 보내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 나이가 제일 어린 장강(張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생각하기를 '나라를 이토록 어지럽힌 것은 조정의 고관대작들이 분명하니 그런 고관대작들을 징벌하면 그만인데 지방의 하급관리들을 잡아 족치라고 하니 우습지 아니한가' 하였다.
장강은 낙양을 떠나 첫 숙박지에 이르렀을 때, 길을 멈추고는 자기가 타고 가던 수레를 부수고 수레바퀴는 땅 속에 묻어 버렸다. 그리고는 의아해 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승냥이 같은 놈들이 판을 치는데 그까짓 여우 같은 사람들의 뒷조사는 해서 무얼 하겠소?"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곧장 낙양으로 돌아와 대장군 양기와 하남부윤 양불의의 죄를 물을 것을 한순제에게 청하였다. 이 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장강이 자신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었다며 기뻐했지만 양기의 식솔들은 분개하여 장강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갔다.
양황후를 총애하고 있던 한순제는 황후의 형제들을 벌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장강을 따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도 알고 있던 한순제였기에 그의 상주서(上奏書)를 깡그리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저 한쪽에 밀어 놓고 시간만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지방에 파견 나갔던 조사관들의 보고 내용은 환관들과 양기 형제의 부정과 범죄 연관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런 보고 조차도 묵묵부답, 가타부타 말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을 뿐 그 후속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정의 형편이 이러하니 백성들의 삶은 나아질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장영이라는 자가 서주와 양주에서 수만에 달하는 사람을 거느리고서는 대도적의 수괴로 난리를 일으켰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장강에게 원한을 품고있던 양기와 환관 무리들은 이 기회에 장강을 그곳으로 보내 죽게 하려고 그를 광릉태수(廣陵太守)로 추천하였고 한순제는 기꺼이 가납하여 마침내 장강은 광릉태수로 부임하게 되었다.
장강은 광릉에 부임하자마자 10여 명의 수행원만 대동한 채 장영의 소굴로 찾아갔다. 그리고는 자신은 탐관오리를 징벌하러 온 것이지 죄없는 백성들을 탄압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장영은 이러한 장강의 용기와 열정에 감명을 받아 말하기를 "저희들이 이처럼 서로 취하여 목숨을 오래 보존할지라도 그것은 물고기가 솥 안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입니다(汝等若是 相取久存命 其如釜中之魚 必不久之)"고 하였다.
장영의 말은 곧 항복의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은 장강은 잔치를 베풀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들은 함께 흉악한 탐관오리들을 없애 버리고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할 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장강은 봉기군 가운데서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을 골라 자기의 휘하에 거두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살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광릉 일대는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게 되었다.
장영은 스스로 그들 봉기군을 일러 '부중지어'의 신세라고 말하였지만, 과연 곧 삶아질 것도 모른 채 솥 안에서 즐겁게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가 과연 봉기한 농민군이었을까?
그 솥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백성이 아닌 권력자일까? 권력을 가진 자들, 남을 다스리는 자들이 스스로를 '부중지어'로 생각한다면, 그리하여 항상 공손하고 항상 공평하려 한다면 세상은 그런대로 살 만한 세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 적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중국의 촉한 시대에 명성을 떨친 제갈량의 말이다. "안전함에 의지하여 위험을 생각하지 않거나, 적들이 도착할 때를 감지하지 못할 만큼 신중하지 못한다면 천막 위에 둥지를 튼 참새 꼴이요, 솥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꼴이다. 둘 다 그날을 넘기기 어렵다."
적의 위협에 대해 만반의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는 국가는 반드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세계 각국은 정보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CIA나 NSA, 영국의 MI5와 MI6, 이스라엘 모사드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나라는 국가정보원이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국정원은 예측 가능한 위협은 물론 예측할 수 없는 위협으로 부터 국가를 수호하고 국익을 증진시킴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이다.
국정원의 주요 임무는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되는 국내외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국가기밀을 보호하며, 내란이나 외환(外患), 반란을 비롯한 각종 범죄를 사전에 탐지해 안보와 국익을 저해하는 어떤 위협에도 즉각 대처해야 한다. 이러한 국정원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도록 우리 국민이 활동여건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정보기관이 왜 존재하는가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 오로지 정권을 흔들 기회라고 판단되면 잘잘못을 가려내는 차원에서 벗어나 무차별적으로 물고 뜯는다. 국정원의 손발을 묶고, 눈과 귀를 가려 식물정보기관으로 만들려는 상식 이하의 이적성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작년도에는 비밀엄수가 생명인 국정원을 대상으로 여러 번에 걸쳐 압수수색을 단행하고, 목숨을 걸고 국익을 지켜 온 국정원 간부로 하여금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수사과정에서 치욕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를 시도하고 요원의 실명을 공개하는가 하면 국정원 원장까지 몰아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IT 기업으로부터 구매한 해킹프로그램을 둘러싸고 불법감청 의혹을 제기하는 등 온갖 음모론으로 국정원을 흔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해킹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한 북한의 대남공작이 활개를 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국정원의 입장에서 당연히 갖춰야 할 프로그램이고, 이 프로그램을 구입한 국가도 30여 개국 90여 개 기관으로 알려졌다.
이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우리나라 전체가 괴담과 음모론에 휩싸이고, 급기야는 국정원 직원이 스스로 목숨까지 끊어야 한 오늘의 현실은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다. 대다수 국가의 국민이 국익을 우선시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반해 155마일 휴전선을 가운데에 두고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작금의 현실은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북한 김정은 집단은 수년 전부터 2015년인 올해 안에 통일대전(統一大戰)을 치르겠다며 호언장담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최고수준의 해킹부대를 거느리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핵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심각한 경제난에도 신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등 도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안보현실을 외면한 채 자해(自害)에 가까운 '국정원 흔들기'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냉정해져서 적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선동적인 정쟁은 없어져야 하며 진실은 밝혀내면서도 안보를 흔들지 않는 최선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국가안보의 근간인 국정원을 뿌리째 흔들려는 무책임한 행동들로부터 국정원을 보호할 수 있도록 국민이 나서야 한다. 국가안보와 국익 수호를 위해 헌신하는 국정원의 전사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데에도 앞장서야 한다.
▶️ 釜(가마 부)는 형성문자로 釡(부)는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쇠 금(金; 광물, 금속, 날붙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父(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釜(부)는 ①가마(가마솥), 가마솥(아주 크고 우묵한 솥) ②솥의 범칭(汎稱) ③용량 단위(=6말 4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가마 밑을 부저(釜底), 기왓 가마를 와부(瓦釜), 가마 속의 고기란 뜻으로 생명이 위험한 것을 가리키는 말을 부중어(釜中魚), 솥 속의 생선이라는 뜻으로 생명에 위험이 닥쳤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부중지어(釜中之魚), 솥 안에 물고기가 생긴다는 뜻으로 매우 가난하여 오랫동안 밥을 짓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부중생어(釜中生魚), 시루에는 먼지가 쌓이고 솥에는 물고기가 생길 지경이라는 뜻으로 몹시 가난함을 이르는 말을 증진부어(甑塵釜魚), 질그릇과 솥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천둥이 치는 소리로 착각한다는 뜻으로 무식하고 변변치 못한 사람이 아는 체하고 크게 떠들어댄 소리에 여러 사람이 혹하여 놀라게 된 것을 이르는 말을 와부뇌명(瓦釜雷鳴), 배를 가라앉히고 솥을 깬다는 뜻으로 필사의 각오로 결전함을 이르는 말을 침선파부(沈船破釜),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싸움터로 나가면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고 결전을 각오함을 이르는 말을 파부침선(破釜沈船),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싸움터로 나가면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고 결전을 각오함을 이르는 말을 파부침주(破釜沈舟), 고기가 솥 속에서 논다는 뜻으로 목숨이 붙어 있다 할지라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을 비유하는 말을 어유부중(魚遊釜中), 가마솥 속에서 논다는 뜻으로 생명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말을 유어부중(游於釜中) 등에 쓰인다.
▶️ 底(밑 저, 이룰 지)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엄 호(广; 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氐(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엄 호(广; 집)部는 사람이 사는 곳을 나타낸다. 氐(저)는 벼랑의 제일 밑, 또 거기까지 도달하다, 이르는 일, 또 평평(平平)함을 나타낸다. 그래서 底(저)는 벼랑 밑의 주거(住居)였으나 나중에 물건의 밑을 나타내는 말로 되었다. ❷회의문자 底자는 '밑'이나 '바닥'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底자는 广(집 엄)자와 氐(근본 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氐자는 땅속 깊이 뿌리가 뻗어 나간 모습을 그린 것으로 '근본'이나 '낮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낮다'는 뜻을 가진 氐자에 广자가 결합한 底자는 건축물의 가장 아래쪽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底자는 본래 건축물의 가장 아랫부분인 '바닥'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나 지금의 底자는 단순한 의미에서의 '아래'나 '바닥'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底(저, 지)는 ①밑, 바닥 ②속, 내부(內部) ③구석 ④밑절미(본디부터 있던 부분), 기초(基礎) ⑤초고(草稿), 원고(原稿) ⑥어찌, 왜 ⑦아주, 몹시 ⑧남모르게 ⑨그치다, 멈추다 ⑩몰래 숨기다 ⑪막히다, 정체(停滯)되다, 그리고 ⓐ이루다(지)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다다르다(지) ⓒ평정(平定)하다(지) ⓓ안정(安定)시키다(지) ⓔ숫돌(연장을 갈아 날을 세우는 데 쓰는 돌)(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뿌리 저(柢)이다. 용례로는 수학에서 밑변의 옛 용어로 비유적으로 쓰여 어떤 분야에서 정점에 선 사람을 떠받드는 많은 사람들을 저변(底邊), 속으로 작정한 뜻을 저의(底意), 초벌로 쓴 원고를 저고(底稿), 속에 간직하고 있는 끈기 있는 힘으로 듬직하게 버티어 내는 사람의 든든한 힘을 저력(底力), 목적한 곳에 닿아서 그침을 저지(底止), 밑의 층 또는 바닥의 층을 저층(底層), 바다나 강의 바닥의 흐름을 저류(底流), 밑바닥을 저면(底面), 밑바닥이 되는 부분을 저부(底部), 바다의 밑바닥에 사는 물고기를 저어(底魚), 바다나 호수나 하천 따위의 바닥을 이루고 있는 물질을 저질(底質), 하층의 흙 또는 밑바닥의 흙을 저토(底土), 땅속의 깊은 곳에 너른 넓이를 차지하고 있는 쑥돌 따위의 커다란 암석을 저반(底盤), 밑에 댄 널빤지를 저판(底板), 공물을 바침을 저공(底貢), 속속들이 꿰뚫거나 미치어 부족함이나 빈틈이 없음을 철저(徹底), 학식이나 생각이 아주 깊음 또는 행동이나 몸가짐이 흐트러짐이 없이 바름을 도저(到底), 사물의 기초를 근저(根底), 바다 밑바닥을 해저(海底), 천정과 정반대의 점 곧 관측자가 서 있는 점을 천저(天底), 폐의 아래 바닥을 이루는 오목한 넓은 면을 폐저(肺底), 마음의 깊은 속을 심저(心底), 골짜기의 밑바닥을 곡저(谷底), 기초가 되는 밑바닥을 기저(基底), 네모진 바닥을 방저(方底), 우물의 밑바닥을 정저(井底), 하천의 밑바닥을 하저(河底), 배의 밑바닥을 선저(船底), 대지의 밑바닥을 지저(地底), 평평한 밑바닥을 평저(平底), 마음속을 흉저(胸底), 대문간에 붙어 있는 조그만 방을 낭저(廊底), 높은 재의 아래 기슭을 영저(嶺底), 산 밑이나 산 아래를 산저(山底), 골짜기의 깊은 곳을 간저(澗底), 깊은 속 또는 깊은 바닥을 오저(奧底), 바다의 밑바닥으로 끌고 다니면서 해저에서 사는 물고기를 잡는 그물을 저인망(底引網),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뜻으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정저와(井底蛙), 크게 깨달아서 번뇌나 의혹이 다 없어짐을 일컫는 말을 대오철저(大悟徹底), 좁은 골짜기 아래의 작은 들을 일컫는 말을 곡저평지(谷底平地), 호수 바닥이 육상으로 드러나서 이루어진 평야를 일컫는 말을 호저평야(湖底平野), 우물 밑의 개구리로 소견이나 견문이 몹시 좁은 것을 이르는 말을 정저지와(井底之蛙), 바닥이 네모난 그릇에 둥근 뚜껑이라는 뜻으로 일이 어긋나고 맞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방저원개(方底圓蓋), 물이 밑바닥까지 맑다는 뜻으로 지극히 청렴결백함을 이르는 말을 철저징청(徹底澄淸), 마음에 차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불만저의(不滿底意), 마음에 즐기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불긍저의(不肯底意), 산 밑에 절구공이가더 귀하다는 뜻으로 물건이 그 생산지에서 도리어 더 품귀함을 이르는 말을 산저귀저(山底貴杵) 등에 쓰인다.
▶️ 游(헤엄칠 유, 깃발 류/유)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斿(유)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游(유/류)는 ①헤엄치다 ②유동하다, 뜨다 ③떠내려가다 ④어슬렁거리다 ⑤놀다 ⑥걷다, 여행하다 ⑦사신으로 가다 ⑧사귀다, 교제하다 ⑨허황되다 ⑩경작하다 ⑪헤엄 ⑫물줄기, 강물 ⑬놀이 ⑭별장(別莊), 행궁(行宮) ⑮하루살이(하루살이목의 벌레 총칭) 그리고 ⓐ깃발(류) ⓑ흐름(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헤엄칠 영(泳)이다. 용례로는 헤엄치며 놂을 유영(游泳), 사방으로 돌아 다니며 자기의 의견을 설명하여서 그것을 채택하여 주기를 바람을 유세(游說), 유람하기 위하여 여러 지방을 돌아다님을 유행(游行), 물 속에서 노는 고기를 유어(游魚), 맺고 끊은 데가 없음을 유이(游移), 물고기가 알을 낳기 위하여서나 또는 계절을 따라 정기적으로 떼지어 헤엄쳐 다니는 일을 회유(回游), 다방면에 걸쳐 배움이나 떠돌아 다니며 놂을 범유(汎游),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따라 내려감을 소유(溯游), 영민한 사람들이 모여서 노닒 또는 그런 곳을 영유(英游), 빼어난 벗을 준유(俊游), 주색에 빠져 마구 헤프게 놂을 황유(荒游), 관리 생활에 싫증이 남을 권유(倦游), 가마솥 속에서 논다는 뜻으로 생명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유어부중(游於釜中) 등에 쓰인다.
▶️ 魚(고기 어)는 ❶상형문자로 漁(어)의 고자(古字), 鱼(어)는 통자(通字)이다. 물고기 모양을 본뜬 글자로, 한자의 부수로서는 물고기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魚자는 '물고기'를 그린 글자이다. 魚자는 물고기를 그대로 그린 상형문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魚자를 보면 물고기의 주둥이와 지느러미가 잘 묘사되어 있었다. 이후 해서에서 물고기의 몸통과 꼬리를 田(밭 전)자와 灬(불 화)자로 표현하게 되면서 지금의 魚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魚자는 물고기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활용될 때는 주로 어류의 종류나 부위, 특성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魚(어)는 성(姓)의 하나로 ①물고기 ②물속에 사는 동물의 통칭(通稱) ③바다 짐승의 이름 ④어대(魚袋: 관리가 차는 고기 모양의 패물) ⑤말의 이름 ⑥별의 이름 ⑦나(인칭대명사) ⑧고기잡이하다 ⑨물에 빠져 죽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생선을 가공해서 말린 것을 어물(魚物), 물고기 잡는 그물을 어망(魚網), 물고기를 잡거나 기르는데 쓰이는 항아리 모양으로 만든 유리통을 어항(魚缸), 물고기의 알을 어란(魚卵), 물고기와 조개를 어패(魚貝), 생선 파는 시장을 어시장(魚市場), 물고기의 종류를 어종(魚種), 낚시로 고기잡이하는 데 쓰는 배를 어선(魚船), 물고기를 기름 또는 기른 물고기를 양어(養魚), 말린 물고기를 건어(乾魚), 미꾸릿과의 민물고기를 추어(鰍魚), 청어과의 바닷물고기를 청어(靑魚), 멸치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를 행어(行魚), 퉁가리과의 민물고기를 탁어(馲魚), 은어과의 물고기를 은어(銀魚), 가오리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를 홍어(洪魚), 가물치과에 딸린 민물고기를 흑어(黑魚), 학꽁치과의 바닷물고기를 침어(針魚), 멸치과의 바닷물고기를 약어(鰯魚), 동자개과에 딸린 민물고기를 종어(宗魚), 잉어과의 민물고기를 타어(鮀魚), 철갑상어과의 바닷물고기를 심어(鱘魚), 제사 상을 차릴 때에 어찬은 동쪽에 육찬은 서쪽에 놓음을 이르는 말을 어동육서(魚東肉西), 어魚자와 노魯자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몹시 무식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어로불변(魚魯不辨), 물고기와 물처럼 친한 사이라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의 친밀한 사이 또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를 일컫는 말을 어수지친(魚水之親), 물과 물고기의 관계와 같이 매우 친근한 사이를 일컫는 말을 어수지교(魚水之交), 고기 대가리에 귀신 상판때기라는 뜻으로 괴상 망측하게 생긴 얼굴을 형용하는 말을 어두귀면(魚頭鬼面), 고기가 솥 속에서 논다는 뜻으로 목숨이 붙어 있다 할지라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을 비유하는 말을 어유부중(魚遊釜中), 잉어가 용으로 화한다는 뜻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 양명함을 이르는 말을 어룡장화(魚龍將化), 물고기의 눈과 연산의 돌이라는 뜻으로 두 가지가 옥과 비슷하나 옥이 아닌 데서 허위를 진실로 현인을 우인으로 혼동함을 이르는 말을 어목연석(魚目燕石), 물고기는 대가리 쪽이 맛이 있고 짐승 고기는 꼬리 쪽이 맛이 있다는 말을 어두육미(魚頭肉尾), 물고기 떼나 새 때가 흩어져 달아난다는 뜻으로 크게 패망함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어궤조산(魚潰鳥散),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었다는 뜻으로 어릴 적에는 신통하지 못하던 사람이 자란 뒤에 훌륭하게 되거나 아주 곤궁하던 사람이 부귀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어변성룡(魚變成龍), 글자가 잘못 쓰였다는 뜻으로 여러 번 옮겨 쓰면 반드시 오자誤字가 생긴다는 말을 어시지혹(魚豕之惑), 용과 같이 위엄 있는 모양을 하고 있으나 실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옳은 듯하나 실제는 그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어질용문(魚質龍文)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