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 첫날 가을 마중
가을이 시작되는 구월 첫날이다. 가을장마라고 불러도 될 만치 연일 궂은 날씨가 계속이다. 어제와 그제는 비가 내려 도서관에서 보내 자연학교 현장이 궁금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일기 예보는 오늘도 때때로 강수가 예보되어도 아침 식후 강가로 나가 강둑을 걸어볼 셈으로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에서 꽃을 가꾸는 친구와 밀양댁 할머니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원이대로로 나가 본포 강가로 가는 녹색버스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으로 향했다. 읍사무소를 거쳐 단감 테마공원을 둘러 석산과 금산을 지나 용산을 앞두고 마음이 바뀌어 주남저수지 둑길을 걷고 싶었다. 용산에서 내려 정류소 인근 텃밭에 핀 하얀 부추꽃을 감상했다. 근처 탱자나무 울타리 넝쿨로 뻗어나간 선홍색 나팔꽃과 노란 호박꽃까지 덤으로 구경했다.
수문으로 산남저수지와 나뉘는 둑에서 용산마을을 비켜 가는 야트막한 언덕의 데크를 따라 걷다가 쉼터에 앉아 잠시 쉬었다. 저수지 가장자리 갯버들이 숲을 이룬 곳이라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간밤 내린 비에도 벤치는 젖지 않은 상태여서 앉고 보니 난감한 일이 생겼다. 반소매 티를 입었는데 등 뒤 벤치에 무성히 자란 개옻나무가 있을 줄 모르고 앉았더니 그만 스치고 말았다.
나는 옻 알레르기가 심해 개옻나무에 살짝 닿아도 옻이 올랐다. 옻은 잎사귀에 스쳐 삼사일 지나면 가렵고 발갛게 부어올랐다. 증상이 심하면 병원을 찾아 주사를 맞고 처방전 따라 연고를 발라야 가려움이 가라앉았다. 올여름 영지버섯을 찾느라 숲을 누비다 나도 모르게 두어 차례 옻나무에 스쳐 증상이 심하지 않아 작년에 바르던 연고로 잘 넘겼는데 이번은 어떨지 지켜봐야겠다.
쉼터에서 일어나 둑길을 걸으면서 광활하게 펼쳐진 주남저수지를 응시했다. 시야에 들어온 백월산과 구룡산에는 구름과 안개가 걸쳐 있었다. 산책로 길섶 풀에는 이슬이 아닌 지난밤 내렸던 비가 투명한 물방울로 맺혀 있었다. 저수지 둑길 바깥의 넓은 들녘에는 이삭이 팬 벼들이 고물이 차는 즈음이었다. 제방에 심은 코스모스는 김을 매주지 않아 바랭이와 돌피가 같이 섞여 자랐다.
몇 군데 쉼터를 지나면서 그때마다 발길을 멈추고 의자에 걸터앉아 호수와 들녘을 바라봤다. 비록 쾌청한 날씨가 아니었지만 야외로 나와 남긴 사진을 몇몇 지기들에게 카톡으로 보내면서 계절이 바뀌는 첫날의 안부를 문자로 나누었다. 주천강 수문이 가까워지자 가월마을 쪽에서 들어온 산책객이 간간이 보였다. 그 가운데 세 아낙은 폰으로 사진을 찍어주길 원해 청을 들어주었다.
탐조 전망대를 앞두고서 무릇꽃에 앉으려는 암끝검은표범나비를 사진에 담았다. 좀체 곁을 내주지 않는 나비인데 피사체로 삼을 수 있었다. 제초 작업이 잘 된 길섶에서 여우팥과 왕고들빼기가 피운 꽃을 보았다. 무리 지어 자라진 않아도 억새는 제철을 맞아 이삭처럼 패는 꽃을 피웠다. 가월 수문에 이르러 동월마을로 건너가 갯버들이 무성한 동판저수지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아직 매미 소리가 그치질 않았고 귀뚜라미를 비롯한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저수지 가장자리 수초에 몸을 숨긴 황소개구리 울음소리와 삭은 고목을 쪼는 딱따구리의 목탁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판신마을 수문으로 가다가 꽃방석처럼 펼쳐진 백일홍 꽃잎에 앉는 호랑나비를 사진에 남겼다. 무점마을로 가는 길고 긴 둑길은 정성 들여 가꾼 코스모스가 얼마 뒤 개화를 앞둔 때였다.
무점마을에 이르니 성근 빗방울이 들었는데 배낭에 챙겨간 우산은 꺼내지 않고 그냥 맞으며 걸었다. 시내에서 무점마을 종점까지 들어온 버스 기사는 차를 돌려 시동을 꺼놓은 채 출발 시각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버스를 타지 않고 들길을 더 걸어 용잠1구까지 걸어 옛길 국도변 식당에서 돼지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요기했다. 식당을 나오니 빗방울은 그치질 않고 흩날렸다. 23.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