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선비들의 샹그리라 - 우이산[武夷山]Ⅰ개론
무이구곡(武夷九曲)의 제 1곡 대왕봉(大王峰)
중국 동남부에 위치한 복건성(福建省)에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이 두곳 있다. 그 중 하나는 복건성토루인데. 나의 블로거에 상세히 소개해 두었다. 또 하나는 오늘 소개할 무이산(武夷山)이다. 복건성은 동쪽으로 대만(台灣)과 마주하고 동북쪽으로는 절강성(浙江省)과 잇닿아 있으며 서북쪽은 강서성(江西省)과, 서남은 광동성(廣東省)과 인접해 있다. 인구 3,471만으로 성소재지는 복주시(福州市)이다. 아열대기후라 온난하고 습윤하다. 복주 이남은 일 년 내내 겨울철이 없지만 무이산에서는 설경을 간혹 볼 수 있다고 한다.
세계유산 복건성토루
해발 750M인 무이산(武夷山)은 복건성(福建省)에 서북부에 위치하여 중국 동남쪽에서 경치가 으뜸이라 꼽혀온 명산이다. 기이함과 수려함으로 이름난 무이산은 물이 옥같이 맑고 산봉우리가 비취같이 푸르고 기이한 암석과 동굴들이 많으며 태산(泰山)의 웅위로움과 화산(華山)의 험준함, 황산(黃山)의 기이함, 계림(桂林)의 수려함을 모두 담고 있다.
2010년 울산대곡박물관에서 <자연에서 찾은 이상향 - 구곡문화>라는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이와 함께 2010년 8월 11일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때 한양대 최종현교수가[조선에 구현된 주자의 무이구곡]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윤진영연구원이 [구곡도의 전통과 백련구곡도]를, 성범중 울산대교수는[울산의 구곡과 구곡시], 김덕현 경상대교수는[전통명승 동천구곡의 의의와 활성화 방향]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들 발표문과 특별전 도록에 실린[주자 무이구곡의 한국적 전개와 구곡원림의 인문학적 의미]라는 정우락 경북대 교수의 글 등을 포함하면 무이구곡, 특히 우리나라 구곡문화를 집대성한 작업으로 보여 진다.
고려 말 주자의 성리학이 수입되고 조선 중기에 이 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조선은 주자학적 논리로 세계를 이해하고 주자학적 논리에 따라 행동을 규제하게 되었다. 세상에 나아가 벼슬하는 것도,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 속에서 학문을 탐구하는 것도 주자학에서 찾았다. 여하튼 조선시대는 주자학으로 시작하여 주자학으로 마감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주자학은 우주론이나 존재론, 인식론이나 수양론 등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지성사를 지배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원림 - 궁중원림(宮中園林), 관아원림(官衙園林), 복거원림(卜居園林) - 중에서 복거원림은 자신이 살고있는 사제(私第)를 중심으로 하는 거제원림(居第園林)과 사제와는 별도로 경영되는 별업원림(別業園林)으로 구별된다. 이 두 원림은 모두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조성되어 그 기법이 유가원림의 기법을 취하였다. 유가의 전통적 원림은 거제원림보다 별업원림이 중요했다. 별업원림은 사제에 부설되는 별당원림(別堂園林)과 사제와는 별도로 부설되는 별서원림(別墅園林), 명산에다 정사(精舍)를 지어서 거하는 구곡원림(九曲園林) 등으로 구분된다.李殷昌, ?韓國儒家傳統園林의 硏究?, ?한국전통문화연구?4, 효성여대 전통문화연구소, 1988. 이 중 구곡원림은 중국 송(宋)나라 이후에 나타나는 원림인데 그 직접적인 시원(始源)은 남송의 주자(朱子)가 경영했던 무이구곡(武夷九曲)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구곡원림은 성리학의 전래 이후 설정되고 경영된 원림으로 조선시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원림(園林)으로 성리학자의 삶과 사상이 투영된 생활문화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주자(朱子)는 말년에 벼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은거(隱居)를 하였다. 그는 정사(精舍)를 짓고 그 곳에서 자연과 함께 하며 수양하는 삶이었다. 19세에 진사 급제하여 71세 임종 때까지 여러 관직을 거쳤지만, 실제로 현직에는 약 9년 정도만 근무하였을 뿐, 나머지는 학자에 대한 일종의 예우로 반드시 현지에 부임할 필요가 없는 명목상의 관직을 지냈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학문에 전념하며 수양할 수 있었다.
주자는 1169년 건양(建陽) 후산(後山)의 천호(天湖)를 한천(寒泉)이라 이름하고, 이곳에 한천정사(寒泉精舍)를 짓고 살면서 주자가례(朱子家禮), 근사록(近思錄) 등을 지었다. 1175년에는 건양 서북쪽 운곡(雲谷)에 초당을 짓고 회암(晦庵)이라 이름하고 살면서 ?운곡기(雲谷記)?를 지었다. 1179년에는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중수하였고, 1183년에는 무이산(武夷山)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은거하며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을 지었다. ?무이정사잡영?은 무이정사 주변의 누정(樓亭) 및 지형을 시로 읊은 것이다. 1184년 ?무이도가(武夷櫂歌)?를 지었는데 무이계(武夷溪) 아홉 굽이 경치를 읊은 것이다. 1192년 건양 서남쪽 삼계(三桂)에 고정(考亭)을 지었고 1194년에는 죽림정사(竹林精舍) 혹은 창주정사(滄州精舍)를 지어 장주지사(?州知事)를 역임한 뒤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주자의 얼굴에는 북두칠성 처럼 생긴 점이 있다. 1183년에 건립된 무이서원(武夷書院: Wuyi Academy) 현재 건물은 2000년~2002년에 중수한 것이다, 무이서원 평면도 무이산(우이산) 오곡(五曲) 은병봉(隱屛峰) 아래에 위치한 무이정사(우이징서: 武夷精舍) 주자는 영원한 스승이다는 현판이 걸려있다. 1179년 주자가 중수한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 설명 페널
이처럼 주자는 무이산에 많은 정사를 짓고 구곡원림을 경영하면서 ?무이도가(武夷櫂歌)?즉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지었는데 이 시는 후대에 중국 문인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수용하여 창작하는데 전범이 되었다.
무이서원에는 주자학의 해외영향을 소개한 패널에 퇴계(退溪) 선생 부분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주자처럼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 구곡원림(九曲園林)을 경영하면서 구곡시(九曲詩)와 구곡가(九曲歌)를 짓고 각 원림을 대상으로 구곡도(九曲圖)를 그렸다.
퇴계선생 발문 무이구곡도 중 제8곡(영남대박물관 소장)
구곡원림(九曲原林)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이산(武夷山)처럼 빼어난 산이 있어야하며,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이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계곡이 많이 있다고 하여 구곡원림이 설정되고 경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주자와 같은 성리학자가 있어야 하며, 주자와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선비가 있어야 구곡원림이 설정되고 경영될 수 있는 것이다.
퇴계선생 발문 무이구곡도권 중 표지 1564년 경 지본담채(영남대박물관 소장)
울산대곡박물관의 <자연에서 찾은 이상향 - 구곡문화>라는 특별전도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경영된 구곡은 모두 86개소가 있었다. 지역별로는 서울 1개소, 경기 2개소, 황해도 2개소, 강원도 3개소, 전북 6개소, 전남 3개소, 충북 25개소, 충남 3개소, 경북 33개소, 대구 2개소, 경남 3개소, 부산 1개소, 울산광역시 2개소로 나누어진다.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가 경영하였던 성주 무흘구곡(武屹九曲) 중 제6곡 옥류동(玉流洞) 포항시 기북면의 덕연구곡 팻말
조선의 지성사를 지배하였던 성리학의 성지(聖地)인 무이산은 중 중국의 41개 세계유산 중 하나이다. 태산과 황산, 아미산-낙산대불과 함께 4개뿐인 복합유산 중 하나인 것이다. 무이산은 1999년 등록(등록번호 911)되었는데, 그 면적은 99,975ha에 이른다.
무이육곡(武夷六曲)
무이구곡(武夷九曲) 주변에는 마애석각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무이구곡(武夷九曲) 유람의 하이라이트는 대나무 뗏목을 타고 주변을 유람하는 것이다.
문화재청에서 소개한 글을 읽어보자.
우이산(武夷山)은 중국 남동부에서 생물 다양성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으로 고유종 등 고대부터 서식한 많은 잔존 생물들의 안식처이다. 계곡이 아홉 번 굽이치는 구곡계(九曲溪)가 자아내는 협곡의 절경과 많은 사원과 수도원이 있으며 11세기부터 동아시아 문화에 영향을 끼친 성리학의 발전 및 전파의 본산지가 되었다. 기원전 1세기 한나라 지배자들은 이곳과 인접한 쳉쿤에 대규모 행정 수도를 건설하였으며 거대한 성벽이 이 고고 유적을 감싸고 있다. 정당성/가치 기준 (vii), (x): 우이산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아열대림 중의 하나이다. 다양한 중국 아열대림과 남중국 우림의 거대한 숲이 대체로 그대로 보존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중국의 고유종 등 고대부터 서식한 많은 종들의 안식처이며 다양한 파충류, 양서류, 곤충류의 서식지이다. 구곡천(아래쪽 협곡)의 맑고 깊은 물과 부드러운 바위 절벽은 뛰어난 절경을 만들어낸다. 기준 (iii): 우이산의 절경은 무려 1,200년 이상 동안 보존된 것이다. 이 유산에는 기원전 1세기 한나라 때 지어진 수도를 비롯하여 11세기 성리학의 탄생과 관련된 사원과 서원들이 있는 뛰어난 고고학 유적지가 포함된다. 기준 (vi): 우이산은 수세기 동안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많은 국가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전세계에 걸쳐 철학과 국가 통치에 영향을 준 성리학의 요람이다.
다음은 중국유네스코위원회에서 소개한 글이다.
1999年根據自然遺?和文化遺??選標準N(III)(IV)C(III)(VI) 被列入《世界遺?名錄》
武夷山,座落於 福建省 北部 武夷山市 西南。全景區 面積 有60平方公里,山地海拔 多在 300到 400米,最大 高度差只 有500左右。武夷山 有 黃山之奇,華山之險,廬山飛瀑之勝,桂林山水之秀,博采?長,小巧玲瓏,具有 綜合性特點。
武夷山有 奇特的 紅層地貌。武夷紅層單斜山,在外力因素長期雕琢塑造下,形成 中國類型 最齊全,也最有觀賞價?的紅層地貌。這裡有雄偉而氣派的單面山,以三仰峰?代表;危巖千?的短塊山,又稱 塊狀山;還有單斜山在垂直節理影響下形成的柱狀山,如頂天立地的 玉柱峰和 造型優美的 玉女峰。武夷山的紅層峰林,像科斯特峰林,又非科斯特峰林,「以假亂?」。這裡還有各式各樣的巖洞,?武夷大添光彩。武夷山風景區地處中國亞熱帶,屬於亞熱帶濕潤型季風氣候。冬春溫暖,夏季溫度偏高,秋季天高氣爽。武夷山植被保存良好,?我國紅層分佈區少見。這裡有成片的中亞熱帶長綠闊葉林, 次生的馬尾松林和各類竹林。可謂四季常?,鳥語花香,生機勃勃。武夷水資源?富,山澗泉水淙淙,溪溝流水潺潺,瀑布高懸飛瀉。
武夷山不僅山水奇秀迷人,而且歷史文化悠久,人文景觀?富。早在新石器時代,生活在我國東南地區的古越人,也在武夷山安家落戶,反映這個民族傳統安葬習俗的「船棺」, 「虹橋板」,幾乎遍佈武夷山中的丹巖?壁上和紅層洞穴中,據考證,?今已有3800年左右的歷史了,具有極高的考古價?。秦漢以來,武夷山中相繼修建不少宮觀, 道院, 庵堂,是古代道?和佛?中心之一。武夷宮是山中最古老的宮觀。武夷山還曾經是歷代名人遊覽, 倡道講學和隱居的好地方。在玉?峰下還留有朱熹當年創辦的武夷精舍舊址。武夷丹巖?壁上,還留有不少名人摩崖石刻,大小700多處,最早見於宋代,成?武夷山歷史文化景觀的重要組成部分。六曲右岸巖壁上的「逝者如斯」?朱熹親筆所題。歷代還留下不少關於武夷山的神話傳說與掌故,是武夷文化的一部分,例如仙凡對奕, ?亭招宴等。
世界遺?委員會評價:武夷山脈是中國東南部最負盛名的生物保護區,也是許多古代孑遺植物的避難所,其中許多生物?中國所特有。九曲溪兩岸峽谷秀美,寺院廟宇?多,但其中也有不少早已成?廢墟。該地區?唐宋理學的發展和傳播提供了良好的地理環境,自11世紀以來,理?對中國東部地區的文化?生了相當深刻的影響。公元1世紀時,漢朝統治者在程村附近建 |
출처: 눌인정사로의 초대 원문보기 글쓴이: 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