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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 한 사람을 위하여(3)
행 10:1-8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 설 교 >
인정받는 사람
행 10장 1~8절 / 김상복목사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라 인간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은총에는 일반은총과 특수은총이 있습니다. 일반은총은 마치 해와 비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주시는 은총입니다. 예수 믿거나 안 믿거나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부족한 사람은 부족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사람은 로마군의 장교 고넬료입니다. 예수를 믿지는 않지만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그분을 인도하셔서 베드로를 만나 예수님을 소개받게 하시고 구원에 이르는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군선교회’가 있습니다. 제가 이분들을 여러 해 보니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책임감이 있어요. 무엇을 맡든지 해결해 냅니다. 맡은 일을 우물쭈물 못해내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둘째는, 일을 아주 조직적, 효과적으로 합니다. 저를 만나자고 할 때는 “목사님, 7분이면 됩니다!” 그래서 만나면 벌써 서류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7분 되면 딱 나가요. 셋째는, 의견대립으로 서로 다퉈 문제가 생긴 일이 없습니다. 선후배 의식이 확실해요. 자기의 기수를 알아서 상관을 깍듯이 대하고 동료 및 후배 관계가 잘 정돈이 되어 있어요. 동창회도 비슷합니다. 저도 동창회 회장을 6년 장기 집권했어요. 왜? 동창들이 너무 일을 잘하는 겁니다. 나는 그저 회장이라는 이름뿐이고 일은 후배들이 착착 알아서 해갑니다. 그래서 속으로 ‘아, 교회도 이랬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한 달 전에 우리는 논산훈련소에서 약 5천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때도 군선교회가 먼저 가서 구석구석 점검하고 확실하게 준비를 해 놓고는 우리가 가서 세례만 딱 줄 수 있도록 만들어 놨어요. 참 일을 잘해요.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예수 믿는 군인이 몇 명입니까?” 60%라고 합니다. 신문에 난 것을 보니, 우리나라 장군 10명 중 7명이 기독교인이랍니다. 군대가 한국을 복음화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번에 신병 5천명은 신앙을 잘 키워 훌륭하게 복무하고 제대하고 가정을 이루면 그 아내들도 세례를 받을 겁니다. 그 자녀들은 믿는 집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아이들이 될 겁니다. 그래서 ‘2020운동’을 시작했는데, 2020년까지 한국인의 50% 이상을 군대를 통해서 예수 믿게 만들겠다는 겁니다. 아주 대단한 가능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동네 출신 군인이 세례를 받으면 우리 군선교회로 연락이 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를 위해 기도하고, 부모님을 방문하고, 편지를 쓰고, ‘오늘의 양식’과 테이프를 보내주고, 부대에 찾아가서 그를 돌아봅니다. 2층에 군선교회 ‘병무상담’이라고 써 있습니다. 자녀의 군 문제는 그곳에 가면 해결됩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고넬료는 훌륭한 군인이었습니다. 그의 특징을 보면, 고넬료는 첫째로 ‘경건한 사람’(행10:2), 즉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몰랐지만 영성과 신앙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분의 때에 아름답게 만드시고 사람의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전3:11). 사람은 영원을 사모합니다. 그저 먹고 자고 뛰는 것만으로는 못 삽니다. 짐승은 질문을 안 하지만, 가슴속에 영성이 있는 사람은 질문을 합니다. “이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떻게 이 세상에 왔으며, 태어난 목적이 무엇인가? 죽음 저 편엔 무엇이 있나? 살다가 죽으면 없어지는가? 선과 악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삶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하여 확실한 대답을 가져야 삶에 의미와 평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답을 못 찾으니까 “아, 골치 아파. 말하고 싶지 않아. 집어 치우자.” 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긴 합니다. 방대한 자연을 자세히 쳐다만 봐도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이는 세계 속에 나타나 있다. 눈을 뜨고 보라. 머리를 가지고 생각해 보라. 귀를 가지고 귀 기울여 보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하였습니다. 우리는 아이들만 봐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디서 이 아이가 왔나? 어떻게 이렇게 야들야들하고 말랑말랑한 아이가 태어났나?’ 한번만 살짝 웃어도 부모가 뿅 갑니다. ‘어떻게 이런 아이가! 도대체 이 생명이 뭐냐?’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영성이 있습니다. 전도를 해 보면 종종 “목사님, 제가 교회는 안 나가지만 하나님은 믿습니다.”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럼 제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군요.” 합니다. 마치 고넬료 같은 사람이에요.
둘째로, 고넬료는 가정에 충실한 남자입니다. 한 남자가 하나님을 만나 알게 되면 가정에 충실해져서 그 가정의 중심을 잡아주고 큰 축복이 됩니다. 고넬료는 “온 집으로 더불어”(행10:2)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식구들과 종들과 부하들까지 모두 하나님을 섬기도록 만들고, 가족에 대한 영적, 도덕적, 물질적 책임을 졌습니다. 청소년 문제 있잖아요. 중학교에 들어가서 만 13살, ‘Thirteen’의 ‘Teen’자가 나오면 그때부터는 갑자기 사람이 이상하게 변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꼭 귀신들린 것 같아요. Thirteen에서 Nineteen까지 문제가 아주 많아요. 이때 부모들이 고민을 하는데 대개 엄마가 많이 합니다. 제가 하소연을 듣다가 “아빠는 어디 갔어요? 뭐라고 그래요?” 하면 “아빠는 상관을 안 해요. 아무 말도 안 해요.”합니다. 그때마다 제가 속이 상해요. 이럴 때는 권위를 가진 아빠가 나서야 합니다. 그 아이를 붙들고 같이 통곡하든지 해야 합니다. 남자가 눈물을 흘릴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고넬료의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셋째로,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남자입니다(행10:2). 종교성, 영성이 있는 거예요. 예수님을 몰라도 하나님을 알고 의식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롬1:2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않는 것이지, 무신론자는 거의 없습니다. 구소련이 한참 무신론 주장할 때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70년 동안이나 무신론을 주장했던 열대여섯 나라가 다 무너졌습니다. 왜? 무신론은 안 됩니다. 신론이 있어야 그 앞에 ‘무’자가 붙죠. 사람은 잘 몰라도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삽니다. 우주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하면 “아, 그래서 그렇지!” 합니다.
메릴랜드대 천문학교수이며 미우주항공국(NASA) 연구원을 제가 아는데 사람이 너무 좋고 믿음이 좋아서 제가 물었습니다. “교수님, 어떻게 예수 믿게 되었습니까?” 우주를 연구해보니 모든 것이 화학적, 물리적, 생물학적, 수학적이고 너무나 정확하다는 겁니다. 학교에서는 ‘뻥’ 폭발하여 저절로 생겼다고 배웠지만 도저히 그렇게 볼 수 없고, 어떤 법칙이 없이는 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늘 마음속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는데, 하루는 우연히 성경을 보다가 첫 장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를 읽고 ‘어! 창조자 하나님이 있어? 그러면 그렇지! 우주가 저절로 될 수가 없지! 했답니다.
여러분, 사람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만물 중에 사람이 최고입니다. 다윗왕이 그것을 알았어요.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4). 다윗 시대인 3천 년 전에 무슨 과학이 발달했겠습니까? 지금은 과학, 의학, 생물학이 발달해서 생명의 세계를 너무도 잘 압니다. 컴퓨터를 훌륭하다고 하지만 수백 명의 철학박사와 과학자들이 모여서 만들어야 됩니다. 그저 될 수가 없어요. 컴퓨터를 만든 인간은 너무도 신묘막측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만 잘 관찰해도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능력과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도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넷째로, 고넬료는 “구제를 많이”(행10:2)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니까 삶이 개방됩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은 똘똘 뭉쳐진 너무도 작은 존재입니다. 내 마음을 열고 내 손을 뻗쳐야 그때부터 위대한 삶이 나타납니다. 고넬료는 넉넉한 사랑의 마음으로 남에게 주면서 살았습니다. “목사님이 잘 몰라서 그러시는데 저는 줄게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줄 것이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아까 독창하신 분은 목소리를 줄 수 있습니다. 찬송 세 곡을 연이어 불렀을 때 여러분이 얼마나 박수를 많이 쳤습니까! 여기 오케스트라 한 분 한 분이 마찬가지입니다. ‘베토벤 9번 합창교향곡’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 같았어요. 다 줄 것이 있습니다.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도 시간을, 지혜를, 지식을 줄 수 있고,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중보기도를 통해 남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6:3)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하나님을 섬길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유익한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돈도 있다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평생 보니까, 교회 안에서 돈 많은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꽉 붙들고 안 내놔요. 그리고 자기 사업 잘하는 것만 이야기합니다. “사업 잘 해서 돈 많이 벌었다!” “So what?”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과 가문과 세계를 위해서 써야 그 돈이 가치가 있지, 모아 놓은 돈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우리 교회에는 말없이 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학기 초가 되면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내놓으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이 돈이 많은 분들인가? 그렇지 않아요. 가슴에 사랑이 있는 분들입니다. 옛날 자기가 장학금 받아 본 경험이 있어서 그래요. 공부를 하고 싶으나 돈이 없는 아이들을 기회만 있으면 도와주고 싶어요.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에도 이웃을 향한 사랑이 풍성해서 고넬료처럼 많은 선을 베풀며 살기 바랍니다.
다섯째로 고넬료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행10:2)하는 사람입니다. 쉬지 않고, 밥도 안 먹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친합니다. 하나님과 만나면 하나님이 금방 알아보세요. 자주 안 만난 사람이 나타나면 “너 누구지?” “제가 할렐루야 교회 교인 아닙니까?” “글쎄, 어쩌다 한번 본 것 같아서 잘 모르겠다!”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잘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I know him well.” 늘 만나니까 아브라함의 이름만 대도 잘 아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과 친한 사람의 기도가 잘 응답되는 것은 당연하지요. 여러분도 하나님과 친하길 바랍니다. 저는 어렸을 때 장로님들이 “저~ 높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라고 기도하셔서 굉장히 높은 곳에 계신 줄 알았어요. ‘아, 하나님이 언제나 이 기도를 들으실까?’ 했습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은 내 마음속에 계시더라고요. 언제나 그분과 대화하며 친하게 지내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꾸준한 기도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항상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그래서 고넬료는 영적인 체험도 합니다.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행10:3). 천사를 만나서 대화를 했어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지난주에 우리 교회 오신지 얼마 안 되는 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너무 기뻐서 전화를 했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어젯밤에 목사님을 꿈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목사님이 나타나셔서 저와 제 남편에게 세례를 주셨습니다.” 와, 목사가 꿈에 나타나서 세례를 줘도 그렇게 기쁜데, 하나님을 체험하면 사람이, 삶이 달라집니다. 여러분도 경건하고 가정을 살피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하고 기도생활 잘 해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영적인 체험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아브라함, 야곱, 이삭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 때 살았더라면 하나님과 자주 이야기할 뻔 했는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대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몇 번이나 나타나셨나?’ 궁금해서 창세기 12~25장을 읽으며 세어보았습니다. 8번이었어요. 그리고 ‘아브라함이 몇 살까지 살았나?’ 봤더니 175세였어요. 그러면 175년 동안 8번 하나님을 체험했으니까 22년에 한 번씩 만난 거예요. 특별히 자주 만난 건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22년에 한번이라. 내가 지금 몇 살이지?’ 그러고는 제가 하나님을 체험한 것을 꼽아 봤더니 “할렐루야!” 제가 아브라함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체험했더라고요.
여러분이 20대인데 하나님체험이 1번 있다면, 40대인데 2번이면, 60대에 3번이면, 80대에 4번만 있어도 아브라함과 같은 수준입니다. 하나님과 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를 생활화하면 여러분도 반드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면 사람이 달라져요. 방향이 변합니다.
일곱째, 고넬료는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천사가 하는 말이 아주 멋있어요. “네 기도와 네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바 되었으니”(행10:4).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마치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물 같아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전부 기록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을 베풀었는데 사람들이 안 알아줬습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계속 선을 베풀며 사시기 바랍니다. 기록이 영원히 하늘나라에 남을 것이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제가 여러 번 강조했는데요, 진정 영원히 여러분의 것은 여러분이 나눠준 것 밖에 없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끌어 앉고 있으면 무엇이 영원히 남겠습니까? 안 남아요. 여러분이 사랑을 주었으면, 기도를 주었으면, 친절을 주었으면, 도움의 손길을 주었으면, 미소를 주었으면 그것은 남습니다.
제가 옛날에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해 국가고시를 통과했더니 그때는 가난한 시대니까, 정부에서 100불 가져가라면서 박사학위 받아 오래요. 100불은 혼자 쓰기에도 모자랐는데 우리는 둘이 갔거든요. 아주 가난한 유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논문을 과목마다 타이프로 쳐서 내야 했어요. 손으로 쓴 것은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주변사람들에게 매번 빌려서 썼는데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어요. 신학교 1학년 때 아직 설교학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필라델피아의 어느 교회에서 제게 설교를 부탁하였습니다. 기도하다 갈라디아서 2장 내용으로 준비해서 설교를 했는데, 끝나고 나니까 사람들이 저에게로 확 몰려와요. 그때 제가 영어 잘 하는지 처음 알았어요. 영어 때문이 아니라 열정에 감동을 받았는지 아무튼 몰려왔어요. “Mr. Kim, 우리가 이런 설교를 지난 10년 전에 들어보고 처음입니다.” 그러면서 교인들이 악수를 하고 칭찬을 해요. 그런데 50대쯤의 남자가 너무 고맙다고 하면서 악수를 하는데 제 손이 따끔따끔해요. 그래서 보니까 종이를 꼬깃꼬깃 조그맣게 접었어요. 집에 가서 보래요. 수표 50불짜리였어요. 그 때 제일 싸구려 타이프라이터가 49불99전이었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사람이 누군지, 교회가 어딘지는 몰라요. 그분은 잊었겠지요. 그러나 그분이 베푼 선은 남아있습니다. 여러분이 선을 베풀면 남아 있습니다. 선을 베푼 것만 남아 있어요. 고넬료처럼 구제와 기도를 하나님께서 제물로 받아주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받으시면 기도가 응답되는 거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돌보심과 사랑을 여러분들이 체험하게 되실 겁니다.
끝으로, 고넬료는 이렇게 좋은 사람인데 예수는 아직 몰랐습니다. 예수를 모르고도 이렇게 귀한 분들이 있는데, 여러분과 저는 예수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복음을 전해줄 사람을 소개해줘요.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5절). 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줄 사람을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고넬료는 종 둘과 경건한 군인을 보내 베드로를 초청하였습니다. 고넬료는 결국 베드로 때문에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영생을 얻었고, 십자가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착하고 좋은 사람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고넬료의 도전을 받아서 다 경건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경건한 장교에게 경건한 부하가 생겼습니다. 경건한 가장은 경건한 가문과 가정을 만듭니다. 경건한 사장은 경건한 직원을 만듭니다. 경건한 선생님은 경건한 학생들을 길러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축복하셔서 고넬료처럼 경건한 사람이 되어 우리를 통해 많은 축복이 나타나고 경건한 다음 세대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가정의 경건을 회복하라
행 10장 1~8절 / 김경년목사
어느 교회에서 선교바자회가 있었습니다. (우리교회도 20-21일까지 합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이번에 선교바자회를 위하여 여선교회 회원들은 다음주일에 집에서 쓸모없는 것이나, 1년이 지나도 한번도 쓰지 않는 것, 장롱이나 구석에 쌓여있는 것들을 이번에 다 교회로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주일에 여전도회 회원들이 자기 집안에서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다 한 가지씩 가지고 왔는데 글쎄, 모두 다 자기 남편을 가지고 왔답니다. 우리 집안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을 해보니 남편이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그 교회 사모님도 목사님을 가지고 왔답니다.
이런 이야기는 누가 웃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지만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어떤 분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넬료라는 사람은 전혀 이런 사람과는 반대의 인물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든 믿음의 가정이 고넬료의 가정처럼 새롭게 회복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은 어떤 가정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가정이 어떻게 회복되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첫째, 하나님은 먼저, 부모들이 바로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2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고넬료는 당시 이탈리아 군대의 고급장교였습니다. 군대의 백부장이라고 하면 군인 중에서도 지휘관에 속하는 계급입니다. 하지만 군인은 조직생활에 매여서 자기 가정을 잘 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군인으로서 그 바쁜 업무 중에도 자기 가정에 충실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라고 했습니다. 고넬료는 군인의 신분을 가지고도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여기서 ‘경건’이란 ‘유세베이아’라고 하는데 ‘유’라는 말은 ‘좋다’ 혹은 ‘잘한다’는 의미이고, ‘세베이아’는 ‘예배’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말의 뜻은 ‘예배를 좋아한다’ 또는 ‘예배를 잘 드린다’ 라는 말입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으며, 특별히 군인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군인은 아무리 위험한 사지라도 가라고 하면 가야 합니다. 또한 매우 바쁘고 고단한 직업이요 휴식이 없는 직업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예배에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환경적으로 보면 예배를 잘 드리기 힘든 여건이었지만 그는 예배하기를 잘 드리기 위해 힘썼으며 더 나아가서 예배드리기를 좋아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온 가정이 함께 예배하기를 힘썼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부모가 바로 서야 합니다. 그러면 가정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가정이 바로 서야 교회가 바로 설 수가 있고, 국가가 바로 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작은 사회요 작은 국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 중에 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즉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다 잘되어 나갈 수 있습니다.
부모가 흔들리게 되면 자식들은 자동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자식 때문에 속상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자식이 그 부모의 뜻대로 잘 따라 주지를 못 할 때는 속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우리 자녀들은 그냥 무조건 반항을 위한 반항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부모 때문에 속상해 하는 자식들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적인 가정은 부모가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예배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쁘다고 해서 예배를 안드리고, 가정에 경조사가 있다고 해서 예배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예배를 잘 드려야 하고, 예배드리는 일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 가정이 이웃과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2절에 고넬료의 가정은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 고 했습니다. 또한 본문 4절 하반절에 “그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에게 물 한컵 대접하는 것도 기억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하여 구제하고, 도와주면 결국은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고 우리에게 더 큰 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잠언 11:24-25절 말씀에서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사람은 풍족해 질 것이고, 남을 윤택하게 하는 사람은 자기도 윤택하여 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구제를 해도 부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하게 아껴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요즘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현대인의 인간미를 여지없이 파괴해가고 있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아끼고, 절약하고, 남에게 차한잔 대접도 못하고 사는 것은 인간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고 죽을 때 얼마나 가지고 간다고 그렇게 하면서 살아요.
어리석은 부자가 양식을 풍족히 쌓아 놓고 노래하기를 “네 영혼아 이제는 풍족하니 실컷 먹고 마시고 놀면서 인생을 즐기자” 라고 할 때, 주님은 그날 밤에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너의 영혼을 거둘텐데 그러면 너가 쌓아 놓은 것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그렇습니다. 어짜피 이고지고 가지고 못 간다면 내 손에 있을 때 이웃을 돌아보고, 구제하고, 선한 일에 투자하고,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3-4절 말씀입니다.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여기서 ‘제9시’란 유대인의 기도 시간입니다. 고넬료는 그 시간만 되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과 기도의 시간을 약속해 놓고 그는 늘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힘썼습니다. 그의 기도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에게 한번은 놀라운 일이 나타났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자, 천사가 나타나서 “너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바가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고넬료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하는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허공을 치는 메아리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중언부언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외식하는 자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가정을 눈여겨보십니다. 기도하는 어머니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백성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부모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환상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환상을 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시간을 이용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조용하게 묵상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시끄럽게 떠들고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겠습니까?
우리가 은밀한 시간을 가져야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비디오나 보고, TV 만 보고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겠습니까? 우리가 담배 피고 술 먹고 세속에 물들어 방탕하게 사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가 기도할 때 들립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어떤 믿음이 좋은 가정에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유명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어머니가 서울로 유학 가는 아들에게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신앙생활을 잘 할 것을 부탁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내가 매일 저녁 9시에 너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마, 그러니 너도 그 시간을 잊지 말고 기도하거라”
아들을 서울로 보내 놓고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 시간에 기도했습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MT에 갔다가 그만 가서는 안 될 사창가에 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사창가에서 저녁 9시를 알리는 시계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순간, 어머니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아들아 밤 9시마다 널 위해 기도하고 있단다” 아들은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그 범죄의 소굴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아들을 범죄의 소굴에서 건져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부모의 기도는 방탕한 길로 가는 자녀들을 생명의 길로 돌아오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는 가정이 되어 하나님과 교통하시기를 바랍니다.
결 론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부모들이 먼저 바로 서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이 이웃과 함께 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이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새 역사를 전개하라
행 10장 1~8절 / 최낙중목사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새 역사를 전개해 가시는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새 역사를, 복된 역사를 이루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루가 24시간 되는 역사, 하나님께서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지으시고 또,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통해서 이 모든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죄로 타락한 이후에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었고, 죄인의 삶은 곤고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죄로 타락한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새 역사는 전개되었습니다. 구원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흑암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큰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귀신 들려서 고통 중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자유를 얻게 되었고, 병든 사람들이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예수님의 뒤를 이은 사도들을 통해서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 일을 기록한 것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이란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했다는 말씀도 되지만, 사실은 성령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나타난 성령의 행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임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 역사는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통해서 새 역사를 전개해 가실까요?
첫째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4절 말씀을 보면 천사가 고넬료에게 하는 말이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서 상달하여 기억하신바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로 기억이 될 때는 화가 있어도, 선하고 아름다운 일로 기억한바가 되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은혜와 복을 준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바로 서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 [바라크]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 말의 뜻은 ‘하나님을 향하여 서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바라크]가 우리말 성경에 기도란 말로 번역이 됩니다. 즉 기도는,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하는 기도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되 구하는 것보다 더 귀하고 큰 것을 얻는 것은 의인으로서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본받아 그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는데, 어느 날 제9시 기도시간에 그는 기도하다가 천사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고넬료는 사10:22 말씀에 보면, 그 종들이 베드로를 찾아가서 고넬료를 소개할 때에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을 수 있는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으니 그가 의인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구할 때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 응답의 세 가지 요소가 있다면,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책망할 것이 없는 그런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을 행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요한1서 3:20-22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하나님은 죄인의 기도를 물리치십니다. 사 59:1-2에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회개되지 못한 죄가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곤고하게 되고 힘들고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멸시한 까닭이라고 시 107:10에 말합니다. 또 여러 가지 곤고와 환난을 당하는 것은 회개하지 않은 고집스러운 죄 때문이라고 롬2:4-10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면서 또 그의 기뻐하는 일을 열심히 행하면서 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약5:15 이하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믿음으로 기도할지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할 것이요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심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죄를 서로 고하고 믿음으로 간구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2005년 한 해를 승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 열심히 읽고 그 말씀에 의한 기도를 합시다. 요15:7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새 역사를 전개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그 다음에 할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구제를 해야 합니다. 고넬료는 기도할 뿐만 아니라 가련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열심히 도와주는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로마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어렵게 사는 유대인들을 많이 도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을 기억했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을 때 그는 삼일동안 골방에 들어가 눈물 흘리며 간구했는데, 하나님은 그때 그의 눈물을 보았고 그 기도를 들었다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하면서 그 생명을 15년 동안 연장해 준 일이 있습니다. 창19:29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성을 유황불로 심판할 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그 조카 롯을 구원하기 위하여 천사를 보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기도가 있는 곳에 주의 손길이 나타납니다. 천사가 심부름을 합니다. 성령님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늘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이고, 기도는 하늘의 능력을 끌어내리는 우리의 마지막 수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곧 믿음인 것입니다.
새 역사를 전개하기 위해서 우리가 또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전도를 열심히 하다가, 어느 날 욥바 피종 시몬의 집 지붕위에서 기도하다가 또 환상을 봅니다. 환상의 내용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은 구원하기를 기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초청받아 갔고 말씀을 전할 때, 이방사람 즉 로마사람인 고넬료가 그의 가족과 일가친척, 친구까지 모두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주 안에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평소에는 서로 친분관계가 없었습니다. 서로 경계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진리 안에서, 성령 안에서 로마 사람과 유태인이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 역사를 전개해 가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 안에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너도 나도 십자가를 붙들면 십자가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분열, 그리고 그로 인한 상처 이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역사를 전개해 가는 복된 하나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이사랴와 욥바
행 10장 1~8절 / 이동원목사
한국 교회에서 이단으로 분류되는 신앙 집단중에 기성 교인들을 접근하여 전도할 때 언제나 구원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분명한 구원의 깨달음과 죄 사함의 확신의 순간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예배 행위, 봉사 행위, 그리고 우리의 헌신 심지어 우리의 기도 행위등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로 소위 그들 나름의 전도를 시작합니다. 나는 이들이 구원과 죄 사함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도 그것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처럼 소위 그들이 주장하는 방식으로의 구원의 극적인 체험을 갖기 전에 우리들의 일상적인 종교적 노력, 예배라든가 기도라든가 봉사와 헌신 행위등이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본문에는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도 성령을 체험하지도 못한 이방인 이탈리아 사람 로마 군 장교인 백부장(백명 거느림)고넬료의 종교적 경건 실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가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의 소위 그의 종교적 실천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해 보십시오. 오히려 주님은 그의 종교적 실천을 하나의 진지한 구도의 과정으로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고넬료로 하여금 온전히 주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도록 사도 베드로를 만나게 하시사 예수를 구주로 믿게 하시고 성령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사도행전의 역사에서 에디오피아 내시 다음으로 이방인으로 복음을 받아드린 자가 되어 이방인 선교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평신도 선교사가 됩니다.
본문에 보면 이 군인 고넬료가 거주하던 곳이 이스라엘 땅의 해안도시 가이사랴로 되어 있고, 이제 그가 베드로를 만나도록 준비하신 베드로의 방문지는 가이사랴 남으로 불과 50km 떨어진 역시 해안 도시 욥바(오늘날의 텔아비브 바로 근교)로 되어 있습니다. 가이사랴에 있던 고넬료가 역시 해안도시였던 욥바에 머물고 있던 베드로를 가이사랴로 청함으로 유명한 고넬료의 회심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 두 해안도시는 당시 로마로 오가는 모든 배들이 정박하는 항구 도시였고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침내 로마와 온 세상으로 전파할 또 하나의 선교 증인과 선교사 가문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방인 선교의 도구로서 주께서 이 고넬료를 준비하고 쓰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선교의 도구로 쓰임 받음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이 물어야 할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교의 도구로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준비되어야 할 영성-무엇일까요?
1.‘가족 신앙’의 영성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개인을 구원하는 영성에서 출발합니다. 복음을 수용하는 것도,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결단에 근거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나와 절친한 누군가라도 나를 대신하여 예수를 믿을 수 없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믿음에 근거하여 내가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기독교 신앙이 개인에 대한 관심에서 머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복음을 통한 구원이 정말 한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는 중대한 사건이라면 이 중요한 구원이 나에게만 일어나는데서 어떻게 만족할 수 있단 말입니까?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연스럽게 이 놀라운 구원이 그 누구보다 먼저 내 가족에게 임하기를 갈망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적 신앙은 개인적이면서도 가족적인 더 나아가 사회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구약에 노아가 갖게 된 여호와 신앙의 궁극적인 축복은 그 가족을 구원하는 축복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방주로 인도하지 못했어도 그 가족을 구원함으로 결국 구속사를 이어가는 믿음의 명문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히11:7을 함께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바울이 빌립보의 감옥에서 간수와 죄인들에게 선포한 복음도 바로 이 가족 구원의 복음이 아니었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오늘 본문에서 고넬료는 아직 예수님을 알지는 못했어도 유대 땅에 군인으로 주둔하면서 유대인들의 여호와 신앙을 받아드리면서 그 온 가족이 함께 그런 결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라고 기록되고 있지 않습니까. 행10:22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는 정복자로 성지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의 신앙의 대상만은 그도 겸손하게 받아드려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침내 베드로를 그에게 보내시어 그와 그의 집이 예수를 구주로 믿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 가족이 구원을 받지 못했을 때 어떻게 우리가 담대하게 온 세상에 나아가 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가족이 먼저 구원받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가족 신앙의 영성을 유산으로 계승하는 믿음의 명문가가 되기를 기도하십시다. 지금은 사순절-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수님의 수난의 의미를 묵상하고 부활의 주를 찬양하는 가족이 되도록 기도하십시다.
2. 구제의 영성입니다.
오늘 이미 묵상한 행10:22에 우리는 성경이 고넬료를 의인이라고 소개한 대목을 읽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가 어떤 의미에서 의인으로 소개되고 있는 지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행10:2의 본문이 그 대답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제의 실천이었습니다.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그것이 바로 정복지 유대 땅 이웃들에게 그가 칭찬을 받은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구제는 성경에서 경건의 실천 혹은 의의 실천으로 가장 보편적으로 강조된 신앙인의 덕목이었습니다. 마태6:1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여기서 예수께서 강조하신 의의 행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 대답은 바로 다음 절인 2절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구약 시대와 초대 교회를 거쳐 오면서 ‘의의 실천’은 바로 ‘구제의 실천’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새롭게 여호와 신앙, 혹은 예수 신앙을 갖게 되었을 때 이웃들에게 보여 지는 현저한 삶의 변화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그가 이제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웃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화는 아니지요. 우리의 이웃들은 우리가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는 것으로 감동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교회에 나가게 됨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주목합니다. 그런데 교회 나가기 전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이던 우리가 이웃들을 생각하고 이웃들과 나눔의 삶을 살기 시작할 때 그것이 바로 이웃들에 대한 간증이요 감동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고넬료가 새롭게 갖게 된 믿음의 경건(2절-그가 경건하여)은 바로 이런 구제의 실천으로 나타났고 성경은 그것이 바로 경건의 증거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약1:27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그래서 구제는 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이나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선교와 함께 영성 실천의 두개의 날개로 강조된 영성 실천의 덕목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 목장 교회들이 선교 사역과 더불어 구제 사역에의 헌신을 독려해온 이유이기도 한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을 갈2:9-10에서 읽겠습니다. “또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무슨 말입니까? 내가 감당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이방인 선교이지만 선교와 함께 잊지 않고 실천하고자 한 것이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실천이었다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바울을 쓰신 이유, 고넬료를 사용하신 이유가 바로 이런 영성의 실천을 귀하게 보심이었다면 오늘의 우리도 구제의 영성이 풍성하기를 기도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이 사순절 저는 우리 목장 혹은 우리 가족이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들을 찾아 그들과 반나절이라도 함께 한다면 하늘의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3. 기도의 영성입니다.
한 성경 학자는 고넬료의 집은 두개의 창을 열고 있었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하나는 이웃을 향한 창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구제의 실천인 것입니다. 그에게 또 하나의 열린 창이 있었는데 이 창은 하늘을 향한 창 곧 기도의 창이었던 것입니다. 본문 2절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우리가 정상적인 성도의 삶을 산다면 기도의 삶을 피해 갈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고넬료의 기도의 삶을 의식적 차원에서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항상 기도하고 살고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기도가 곧 그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는 아직 하나님만 알고 예수님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 4절의 증언을 읽어 보십시오.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바가 되었으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본문의 증언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아직 예수를 모르던 고넬료의 기도도 열납하시고 기억하셨다면 예수 믿고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 성도가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고 열납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 사는 것일까요? 본문에 이어지는 기도의 드라마를 지켜보십시오. 기도하는 고넬료를 보시고 하나님의 천사는 그에게 욥바에 있는 베르도를 청하라고 말씀합니다. 9절 이하에 보면 한편 베드로도 길 가다가 기도 시간이 되어 욥바 피장이(무두 장이/짐승 가죽으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시몬의 집에 들어 갑니다.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시(정오 12시)더라” 바로 이 기도시간에 그는 환상을 보고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가이사랴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여 고넬료와 그의 가족 친척 친구들이 함께(24절) 구원받고 성령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결국 그의 집을 구원하고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고넬료의 집은 하나님이 쓰시는 신앙의 명문가가 된 것입니다.
나는 오늘 한국 교회 역사의 초기에 이렇게 기도로 쓰임받은 한국판 고넬료의 가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주인공 서씨는 평북 의주에서 태어나 어릴 적 서당에서 한학을 배워 글쓰기에 뛰어났고 글을 읽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동경하여 청년 시절 이미 중국을 오가며 홍삼 비즈니스를 시작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도 신실하고 총명하였으며 열린 마음으로 이웃을 돌아보던 진취적인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만주 영구에 장사차 갔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고생할 때 영국인 의사 헌터의 치료를 받고 이어 그의 소개로 선교사 맥킨타이어 목사를 만나 전도를 받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며 복음의 메시지에 감화되어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또한 이 곳에서 맥킨 타이어와 같은 선교회에 소속된 선교사 로스를 만나 성경 번역에 참여합니다. 그는 이제 권서인(매서인)이 되어 황해도 소래에서 그의 동생과 함께 한국 최초의 소래 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다. 그는 이어 서울에 와서 남한 최초의 교회인 새문안 교회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 분의 이름이 서상륜이고 그는 그의 동생 서경조와 함께 한국 초대 교회의 신앙의 명문가를 만들게 됩니다. 새문안 교회 설립당시 14명의 세례 교인이 있었는데 그중 13명이 서상륜이 전도한 분들이었다고 합니다. 기독교 사회 책임에서 섬기시는 서경석 목사님도 바로 이 가문 출신이십니다. 바로 이 서씨 가문이 민족 복음화의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우리도 한번 이런 믿음의 명문가를 꿈꾸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 집도 이웃을 향한 창을 열어 사랑을 실천하고 하늘을 향해 창을 열고 기도를 시작한다면 우리 집에서도 가이사랴의 기적, 가문의 영광이 시작될 것입니다.
경건생활
행 10장 1~8절 / 최응희목사
믿음생활은 곧 경건생활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건생활이 무엇입니까? 경건은 '독실한 신앙' 또는 '바른 예배를 드리는 믿음'이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독실한 신앙'이나 '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이 남이 해줄 수 없는 내면적인 것인 것처럼, 믿음생활도 억지로는 할 수 없는 아주 자발적이고 내면적인 행동입니다. 믿음은 누가 시켜서 믿어지는 것도 아니요, 억지로 집어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옛 속담에 '말을 물 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강제로 먹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이야말로 그러합니다. 교회에 어떻게 해서 올 수는 있지만 믿음이 억지로 만들어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스스로 경건생활에 힘쓸 때, 거기에 믿음이 든든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은 곧 경건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스스로 내면적이고 영적인 삶을 가꾸어감으로서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아름다워지고 힘이 있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로 이렇게 경건에 힘 쓴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로마의 백부장인 고넬료입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10:1-2
이 말씀 속에 그의 믿음의 모습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오늘 고넬료의 경건생활을 통해서 우리들의 경건생활--곧 믿음생활이 어떠하여야 할 것인지를 배우고, 고넬료처럼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넬료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1. 하나님은 그의 기도하는 믿음을 축복하셨습니다.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외'는 너무 거룩하여 그 앞에 두렵고 떨림을 느끼는 마음입니다. 믿음은 경외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 앞에 순종하는 믿음이 되고, 적어도 교회에 나와서 겸손히 무릎을 꿇는 것이요, 진실함과 사모함으로 예배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대충대충의 믿음, 아무렇게나 드리는 예배는 다 하나님 경외의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넬료는 경외의 믿음으로 늘 하나님께 무릎꿇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경외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 좋은 믿음과 말씀과 은혜를 주시기로 마음먹으셨습니다. 그래서 환상 중에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그곳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 그래서 고넬료는 즉시 사람을 보내어 욥바에 있는 베드로 사도를 청하게 되었습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욥바를 향해 출발하는 시간에 베드로는 정오 기도시간이 되어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큰 보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속에는 유대인들 부정하게 여겨 먹을 수 없는 각종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제가 전혀 먹은 적이 없습니다.' 소리가 들리기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런 일이 세 번이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이것이 무엇일까하고 생각하는 중에 밖에서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하여 고넬료가 본 환상을 소개하며 가이사랴로 함께 가기를 청하였습니다. 그 때야 이 환상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욥바에서 35km나 떨어져 있는 가이사랴로 가게 된 것입니다.
고넬료는 기도하는 경건생활을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2 . 하나님은 그의 실천하는 믿음을 축복하셨습니다.
보통 영성이라고 하면 기도만을 생각합니다. 기도 열심히 하는 것을 영성이 깊다고 말합니다. 물론 영성의 첫 번째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깊은 영성은 기도와 함께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와 구제' 그것이 영성의 두 기둥입니다.
고넬료는 거친 생활을 하는 로마의 군인이었음에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신비한 환상을 볼만큼 영적인 생활에 힘을 기울인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이웃을 돌아보는 구제에 힘쓰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아주 건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안디옥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깊은 영성의 믿음을 주시기 축원합니다. 우리 안디옥 성도들에게 뜨거운 기도의 믿음과 함께, 베풀고 나눌 수 있는 더 큰 축복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윤 학이라는 분이 만드는 'Leader'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가 그 책에서 말하기를 자신은 대학에 가면 모든 것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막상 유수한 대학 법대까지 갔지만 거기는 기쁨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모두 경쟁의 가치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법조인이 됐지만 나중에 깨달은 것은 경쟁의 가치만이 아니라 나눔의 가치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가 나눔의 일들을 시작했을 때 그의 마음속에 기쁨과 평화가 찾아왔다고 고백하는 것을 읽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만족이 없고, 공허하고, 허무한가? 끝없는 욕망에 끌려 살기 때문입니다. 욕망을 계속 채우려고 하면 결국 채우지도 못한 채, 공허만 깊어질 것입니다. 오히려 참 복된 사람은 사명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날마다의 삶 속에서 잡초처럼 무성해지는 욕망을 뽑아 버리고, 주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자신을 드리는 삶--그것이 사명의 삶입니다.
고넬료는 그렇게 기도와 함께 나눔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10:4) 기도는 믿음생활의 대표요, 구제는 실천의 대표입니다. 고넬료는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와 구제를 상달 받으시고 기억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에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뭔가 경력은 화려했지만,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겠노라'는 말씀을 들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내가 네 수고와 네 기도와 네 헌신을 아노라' 그런 사랑의 음성을 듣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 건강한 영성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 경외의 믿음을 축복하셨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혼이 무디어졌습니다. coram deo(하나님 앞에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믿음도 대충대충하거나, 사람에게 보이듯이 하거나, 무슨 취미처럼 믿음생활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떨림도 없습니다. 하나님 경외의 믿음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이 경외의 마음은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 거룩하심 앞에 떨리는 마음으로 무릎꿇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을 때, 예배도 진실해지고, 그런 마음이 있을 때, 기도도 간절해지고, 그런 마음이 있을 때, 믿음생활이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경건의 모습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하나님을 제일로 모시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0:24의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들어갔을 때의 그 집 분위기와 장면에서 그의 믿음이 얼마나 하나님 중심의 믿음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튿날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렸다 했습니다. 고넬료는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반드시 권면해야 할 구원의 길임을 확신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의 믿음을 가졌는지를 말해주는 구절이 10:25의 말씀에도 나옵니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앞에 엎드리어 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고급장교로서 귀족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유대인 어부출신 베드로의 '발앞에 엎드리어 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최고의 존경과 섬김의 표시로서 무릎을 꿇어 절하였습니다. 이것은 겉모양으로 사람을 본 것이 아니라 영의 눈으로 하나님의 사도를 본 것이요, 믿음의 마음으로 영적 지도자인 베드로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고넬료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사랑하시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얼마나 그를 사랑하셨는지 대 사도인 베드로를 그의 집에 보내기까지 하시지 않았습니까! 베드로가 그의 집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의 은혜가 오는 것을 증거하였을 때(34-43) 성령충만의 역사가 사람들 속에 나타났습니다. 이미 끓는 물을 덥히는 것과 같았습니다. 믿음이 충만해 있는 이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시니 이미 그 영혼이 활짝 열려져 성령께서 운행하심에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방언이 터져나왔습니다. 충만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모두 놀라고 베드로도 놀라고, 온 교회가 놀랐습니다. 이방의 선교가 여기서부터 열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넬료가 어떻게 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경건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 실천, 경외의 믿음이 그의 경건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께 상달되고 기억되고 복을 받는 경건의 믿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랑할만한 신앙인
행 10장 1~8절 / 백장흠목사
사람들은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유치원에서 어린아이들이 서로 자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 1-우리 엄마가 요즘 수영을 배우는데 잠수를 30초나 하더라.
아이 2-우리 할머니는 해녀인데 잠수를 1분 10초 하더라. 잠수 오래하지
아이 3-이 아이의 자랑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 삼촌은 작년에 물에 들어갔는데 아직도 나오지 않는단다. 자랑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자랑은 요즘 말로 PR을 말합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자기 PR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자기를 많이 자랑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기 얼굴과 이름을 많이 알리려고 합니다. 자기 PR를 잘하는 사람이 소위 성공한다고 합니다. 남이 알아주지 아니하니까 자신이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치면 오히려 혐오감을 갖게 합니다. 교회를 자랑하는 사람은 교회를 PR하는 것입니다. 자기 교회 목사님을 자꾸 자랑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것이 목사님 PR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입니다. 내가 볼 때 좋습니다.
자랑은 내가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해주어야 합니다. 자랑은 사랑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자랑할 때 조금이라도 과장하지 않으면 자랑이 되지 않는 거지요. 아내가 남편을 자랑합니다. 그 여인은 남편으로부터 사랑 받을 자격을 갖춘 것입니다. 여인의 지혜입니다. 남편 되는 이가 아내를 자랑합니다. 뭐라 하지요. 팔불출이라고 합니다. 천만입니다. 아내를 자랑하지 못하는 남편이 팔불출입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자랑하는 사람은 같이 행복해집니다. 자랑하는 이나 자랑의 대상자 같이 좋은 것입니다. 서로 자랑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 중에서 자랑할만한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너무나 좋고 행복합니다. 내가 간증할 때 성도님들을 자랑할 때 자신이 행복해집니다. 목사가 자랑하는 대상자는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자랑의 대상자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은 이방인 고넬료라는 인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분은 자랑스러운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제2의 고넬료 같은 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가 자랑할만한 사람이 된 것은 무엇입니까?
1. 초월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은 상식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례가 법인 경우도 많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방인은 조금 모자란 사람들이고 예전의 말로 하면 적자가 아닌 서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방인에게는 구원도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고넬료는 이방사람입니다. 인종을 초월하여 모범적인 믿음을 간직하였습니다. 이방인은 구원 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알던 그 시대에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바로 고넬료였습니다. 이방인이란 원래가 다른 지방 사람이란 뜻이지만 보통 사람보다 못한 사람들로 여긴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서양 것은 다 좋고 국산은 좀 모자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건도 외제가 좋다고 우리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일본에 다녀온 분들이 전기밥솥을 사 들고 자랑스럽게 들어왔습니다. 선입관념이 중요합니다. 속히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영혼구원을 핵심가치로 알고 전도합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에 귀인한 분들에게는 전도하지 않습니다. 왜 그들은 예수를 믿을 수 없을 것이라고 이미 고정시켜놓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종교에 열중하는 사람도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받으려고 하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들도 전도 대상자이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무당굿을 하는 사람의 아들은 예수 믿을 수 없어. 그런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아내는 믿음 좋은 집사인데 남편 되는 이는 교회에 대하여 비판적입니다. 목사님이 남편에게 전도합니다. 그때 옆에서 믿음 좋은 아내 집사가 목사님, 이 사람은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니에요. 그만 두세요. 그 소리를 남편이 듣고 생각이 입력됩니다. 그래, 나는 예수 믿을 수 없고 믿어서도 안돼. 그런 생각이 박힙니다. 하나님께 죄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낙심, 게으름, 포기 이것이 죄입니다. 이방인, 깡패, 조폭, 무당, 굿쟁이, 몸 파는 여인, 누구라도 예수 믿어야 하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이들이 예수를 알면 더 잘 믿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완고한 시아버지는 안돼. 이런 결정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누구라도 예수 믿어야 합니다. 선민만이 아닌 이방인도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좋은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방인 그러면 부정적인 뜻으로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이를 초월하여 자랑할만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인종을 초월하여 모범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직위를 초월하여 믿음을 가졌습니다. 제가 질문을 하겠습니다. 부자가 예수를 잘 믿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이 예수를 잘 믿겠습니까? 다르게 질문하면 세상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이 예수를 잘 믿겠습니까? 지위가 낮은 사람이 잘 믿겠습니까? 답입니다. 잘 믿는 사람이 잘 믿는 사람입니다. 부자도 잘 믿을 수 있고, 가난하기에 잘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나 지위가 높은 사람은 예수를 잘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고넬료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군대 안에서 백부장입니다. 지휘관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사병으로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그때 소위는 참 높은 분이더라구요. 저는 이등병이었으니까요. 소위는 참으로 높은 거지요. 요즘은 농담 삼아 대위 보다는 방위가 더 높다고 하는 시대인 우리는 백부장쯤 그럴지 모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중대장급이지요. 그러나 그 당시 백부장은 높은 사람 측에 들어 있습니다. 더구나 로마의 군인이었습니다. 많이 아는 사람도 교만하기 쉬운 것처럼 권세를 가진 이들이 겸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예수를 영접하고 겸손하고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 경건한 가정생활을 하였습니다.(2절)
요즘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관계에서 찾습니다. 예전에는 IQ가 성공의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NQ라고 합니다. NQ 라는 말은 (Network Quotient) 라고 하여 서로 연결되고 관계를 잘 맺는 것을 말합니다. 대인관계가 잘되어 있는 사람은 남보다 훨씬 쉽게 성공의 자리에 나아간다고 합니다. 미국 리더십 연구소와 카네기 연구소에서 각 분야에서 성공한 요소를 분석하였는데 85%가 인간관계이고 15%는 실력이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라 함은 나와 너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가족들도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가족들간에도 갈등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 좋아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인간관계를 높이기 위하여 네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You first’- 언제든지 당신 먼저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Understand’-몸을 낮추라. 무슨 말이던지 들으면 알았어. 이렇게 말하라는 거지요.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Win Win’- 당신이 잘되어야 나도 잘된다는 생각입니다. 같이 이겨라. 그것입니다.
넷째, ‘No give No take’-주지 않으면 받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라. 공짜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NQ를 위하여 일곱 가지를 실천하라고 권면합니다.
(1) ‘Need’입니다.
상대방의 필요에 민감하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해야 합니다.
(2) ‘Encouragement’입니다.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말라는 것입니다.
(3) ‘Thank’입니다.
무조건 감사하라. 나를 힘들게 한 사람까지도 감사하라.
(4) ‘Wow’입니다.
감탄사를 연발하라. 식사 상을 받은 남편이 와 맛있겠다. 너무 잘 차렸다. 라고 감탄사를 연발해보세요.
(5) ‘OK, OK’입니다.
긍정하라. 어떤 경우에 면전에서 부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6) ‘Kindness’입니다.
친절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이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경건이 있어야 합니다.
경건이라는 표현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다고 했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모범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 집으로 더불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였다는 말입니다. 남편 혼자만 하나님을 경외한 것 아닙니다. 아내 혼자만 대표로 하나님을 섬긴 것도 아닙니다. 온 집으로 온 가족이 함께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선 가정을 잘 다스렸다는 말입니다. 구약 성경 사무엘상 4장을 보면 엘리 제사장의 가정이 왜 비극의 가정이 되었나? 그가 가정을 바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정을 어떻게 해야 잘 다스릴 수 있습니까? 사춘기를 맞는 어린 자녀를 어떻게 지도해야 합니까? 우울증에 걸린 가족을 무엇이라고 말하면서 치유하여 줍니까? 그들이 주 안에서 예수 믿고 기도하다가 치유되고 건강한 자녀도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족이 다 함께 하나님을 경외 하도록 하는 사람은 자랑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는 자는 이미 겸손과 순종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 세속을 떠나서 별나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2) 말을 적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말을 많이 하면 실언도 하고 실수도 하게 됩니다. 말은 적게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진실하게 삽니다.
약속을 이행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현실 사회에서 손해를 봅니다. 그래도 정직하게 살아갑니다. 이런 이들이 나중에는 승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그분만을 두려워합니다. 존경스러운 자세로 두려워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무슨 죄라도 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자신을 지켜 성결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2)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다고 했습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어렵게 하는 것이 경건이 아닙니다. 말로도 외모로도 나타나지만 행동으로 삶에서 나타납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돕고 싶어지고 실제로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기주의 사람이 언제부터인지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했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잘 믿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신앙인은 보기 힘듭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가 산골 웅덩이에 살고 있었습니다. 봄이면 진달래가 피고 여름이면 우거진 숲 속에서 유유히 흐르는 물속에서 헤엄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등산객이 던져준 먹이를 서로 먹겠다고 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날부터 웅덩이의 평화는 깨졌습니다. 먹이 전쟁에서 힘 있는 고기가 이기고 마음껏 포식을 하게 됩니다. 승리한 물고기는 좋았습니다. 이기지 못한 물고기는 점점 파리해져서 마침내 죽고 말았습니다. 이긴 자는 홀로 즐거웠습니다. 경쟁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승리는 잠깐 뿐이었습니다. 고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물이 혼탁해집니다. 고기가 썩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지나면 깨끗해지겠지 하는 기대는 사라지고 이제는 숨도 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도 죽고 말았습니다. 경건이나 거룩한 것은 외모에 있는 것 아닙니다. 남을 배려하고 돌보는 것, 선교도 하고 구제하는 일을 하는 것이 경건입니다.
3) 기도가 있는 가정입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새벽기도로 하루의 삶을 여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개인 사업이나 주님의 사역도 성공하였습니다. 출구가 없는 고난의 마지막 길을 만나도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가정에 문이 있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창문이 없는 집도 있습니다. 그래도 기도의 창문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주전 605년 바벨론의 포로가 된 다니엘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중상모략을 당하며 어려움을 당할 때 기도의 창문을 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것도 하루에 세 번 씩이나 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승리했습니다. 우리에게 유혹이 오고 시험이 닥쳐올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고넬료는 가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항상 기도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가정에는 재앙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자녀를 지켜주십니다. 요즘은 참으로 무서운 세상입니다. 자녀들을 마음 놓고 밖에 내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흔히 기도가 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친해지려고 하면 만나고 마음을 열고 서로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십니다.
남자들이 기도하면 남성다워집니다. 요즘은 여성화되어 가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소심합니다. 힘이 없습니다. 쉽게 낙심합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기도하고 교회에 나와 기도하는 남자는 담대해집니다. 여자가 기도 많이 하면 여성다워집니다. 아침밥을 짓습니다. 남편을 남편답게 모시게 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 여자는 기도를 잘못한 것입니다. 자랑스런 믿음의 집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바로 경건한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천사가 왕래하는 가정입니다.
좋은 집은 사람의 왕래가 많은 집입니다. 믿음 좋은 성도의 가정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습니다. 믿음이 좋으니까 신자들의 왕래가 많습니다. 목사님이 자꾸 오십니다. 어느 분은 집을 크게 지었답니다. 왜 교회식구들이 자꾸 와서 놀고 예배하고 회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느 분은 신자들이 오는 것이 싫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역모임도, 셀 모임도 우리 집에서는 안돼요 그럽니다. 이건 몰라도 한참 몰라서 그럽니다. 우리 집에 성도가 오지 않으면 누가 오라고 그럽니까? 마귀가 찾아오면 안 되지요. 도적이 와도 안 됩니다. 천사가 왕래하는 집이 고넬료의 집이었습니다. 얼마나 믿음이 좋은가 알 수 있습니다.
우편제도가 발달되지 않았던 1940년대는 사람이 소식을 전하러 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대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사람이 전달했습니다. 우편배달부가 전해주러 오는 편지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애인의 사랑의 편지가 오기를 문 앞에서 기다리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 천사가 온다는 것은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위하여 오는 것입니다.
사사기 13:2-14절을 보면 단 지파 사람 마노아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니 포도주와 독주를 금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사람이 바로 삼손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8-19절에는 사가랴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데 천사가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줍니다. 그가 바로 요한이었습니다.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사람에게 천사가 나타나고 그 가정에 왕래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랑스러운 신앙인이 됩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구약 욥기를 보면 하나님이 모든 신들 앞에서 욥을 자랑하였습니다. 욥에게 시련이 닥쳐와도 그는 승리하였습니다. 같은 교회를 나와도 다른 사람들이 칭찬하고 자랑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바로 고넬료와 같은 신앙인입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 오직 믿음을 가진 분들이 됩시다. 경건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을 가진 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믿음과 구제와 기도가 상달되는 신앙인이어야 합니다. 천군천사가 왕래하면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보호하여 주는 복되고 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행복한 고넬료의 가정
행 10장 1~8절 / 박용래목사
언제인가?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아에서 사망한 후 30년이 지난 다음에 미국 정부는 군함을 보내서 그의 유해를 미국으로 데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유해가 뉴욕에 도착하는 날 뉴욕시가 생긴 이래 최대의 인파가 부둣가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군악대와 예포소리가 울려 퍼졌고 대통령 국무위원 수많은 사람들이 도열하는 가운데 그 한 시민의 유해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한 시민은 위대한 정치가도 아니었고 위대한 군인이나 과학자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평범한 한 시민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한 시민이 미국 국민들에게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단 한 편의 노래의 가사를 작사했기 때문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가 미국 국민들 마음속에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노래의 가사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라. 내 나라 내 기쁨 쉴 곳도 꽃피고 새 우는 내 집 뿐이라.’ 홈 스윗 홈의 작사자인 존 H. 페인의 유해가 입항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회사를 설립하신 적이 없습니다. 학교를 세운 적도 없습니다. 국가를 만들어 준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만들어주신 공동체는 바로 가정과 교회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이라는 공간 안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들을 경험하고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가정 안에서 평화와 안식과 사랑과 믿음과 희망을 경험하면서 행복하게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세상에는 우리 사회에 기반이 되는 가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정에 위기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신음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솔제니친은 “공산주의 국가들의 붕괴된 가장 큰 원인은 분명하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정과 교회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가정과 교회의 문이 닫히면 어떤 나라든 망하고 맙니다. 세계에 대재벌이었던 폴재티는 “내가 만약 두 달 동안만이라도 가정의 행복을 가질 수만 있다면 내 재산을 다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돈으로 살수가 없습니다. 행복은 권력과 풍요로운 넉넉함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지구촌 안에도 경제지표가 높은 선진국이라 해서 경제대국이라 해서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아닙니다. 옛날 6.25 이후에 빈곤한 시대보다 현재는 풍요롭고 넉넉한 시대에 살아간다고 해서 옛날보다 현대인들이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가정위기가 왔다는 것은 행복보다는 불행을 느끼며 살아가는 가정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오는 고넬료의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고넬료 가정에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고넬료의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었을까요?
1)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2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하다는 말은 지킬 것은 지키고 끊을 것은 끊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가 신자도 아니고 불신자도 아닌 상태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색깔이 분명한 가정이었습니다. 요즈음도 경건생활에 유익하지 못한 술과 도박과 마약과 쾌락에 중독이 되어 인생이 망가지고 가정이 무너지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에 행복은 경건한 생활에 힘쓰는데 있었습니다. 온 집이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했습니다. 경외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의미입니다. 고넬료는 당시 가이사랴 지방에 파견 나와 있던 로마군대의 장교였습니다. 이방인이었던 로마의 군대 장교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집에 가장인 고넬료가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한 다음 온 집 안에 식구들이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행복은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에 있습니다. 고넬료는 가족신앙에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온 집안에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에 행복이 있습니다.
요즈음에 ‘신앙은 자유다’라는 구실로 어떤 가정은 신앙생활이 콩가루 집안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무신론자, 어머니는 기독교신앙, 아들은 천주교, 며느리는 불교신앙, 큰딸은 여호와증인, 둘째딸은 안식교, 종교는 자유라는 미명아래 이 가정의 행복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신앙의 갈등 때문에 불행한 가정이 많습니다. 요즈음 종교다원주의 신학이 기독교의 구원론에 혼란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내 가족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복음의 뜨거운 열정을 상실해 버리기도 했습니다. 구원과 영생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믿음 밖에 없음을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복음으로 하나 된 가정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이 가정에 화목함이 있었고 기쁨이 있었습니다.
2) 더불어 백성을 섬기는 가정
2절 말씀을 보면 고넬료의 가정은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여기에 행복한 가정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도 구제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칭찬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의 구제는 외식하는 구제였습니다. 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하고 자신들이 행하는 구제를 사람들에게 나타내려고 힘을 썼습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상을 다 받았습니다. 그러나 고넬료 가정의 구제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받은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백성들에게 구제를 많이 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초대교회에 은혜 받고 성령 충만함 받은 성도들이 자기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 발 앞에 바쳐서 필요에 따라 함께 나눔의 삶을 살았듯이 은혜 받은 고넬료의 가정은 섬김의 삶을 살아갈 때 기쁨이 있는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이 권력과 재산을 소유한 부자라고 해서 구제하고 섬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나서 섬김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섬김의 삶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고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부자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을 부어 주셨다고 해서 선을 베풀고 구제에 힘쓰고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돼지가 젖소에게 화를 내면서 말을 했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당신들은 착한 것에 비유하며 칭찬하고 우리는 욕심쟁이에 비유하며 멸시하는지 화가 나서 못 견디겠다. 당신들은 우유와 버터를 주고 있지만 우리는 햄과 베이컨을 주고 있지 않느냐? 그러자 젖소가 큰 눈을 껌벅껌벅 거리더니 말했습니다.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우유와 버터를 주는데 당신들은 죽고 난 후에야 햄과 베이컨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당신들은 살아 있을 때 자신만을 위해 먹고 시끄럽게 더 달라고만 하면서 무엇 하나 주는 것은 없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는 젖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욕심쟁이 돼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연합회장이 되고 나서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니 대전 1830교회 중에 300명 사이즈 이상 모이는 교회 100대 교회 목회자들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모이기도 힘들고 제가 찾아다닐 수도 없고 좋은 호텔에서 아침식사 한번 대접하면서 회장초청만찬을 베풀고 기념사업설명을 하고 협력을 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유성의 강민구 장로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회장님 만찬을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그리고 25일 아침 7시 유성관광호텔 3층 킹룸에 100명의 식사 모임을 예약해주셨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것도 3백만원 이상 돈이 드는 일입니다. 돈이 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많이 받았지만 평생 한번 값지게 써보지도 못하고 빈손으로 떠나는 허망한 인생들도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소유하는데 행복을 찾은 것이 아니라 섬기는데 행복을 찾았습니다. 백성들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잘 섬기는 가정에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 임합니다. 섬기는 가정에 행복이 있습니다.
3) 항상 기도에 힘쓰는 가정
고넬료의 가정은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이방인의 로마 장교가 하나님을 믿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항상 기도에 힘쓰는 가정이 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행복한 가정, 은혜와 성령 충만한 가정의 힘은 기도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정에 신앙의 행복이 있습니다. 24절에 보면 기도하는 가운데 욥바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라는 천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즉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모셔왔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며 그를 맞아들였습니다. 우리는 고넬료의 훌륭한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는 베드로를 갈릴리 시골의 어부로 보지 아니했습니다. 세상 눈으로 보면 베드로는 볼품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엎드려 절하고 영접한 것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으로 맞이한 것입니다. 그때 고넬료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44절 말씀을 보면 모인 사람들이 성령 충만함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세례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항상 기도하는 가정에 겸손이 있었고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오늘날 가정에 심각한 위기를 만나고 있습니다. 행복은 돈으로 권력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비결은 첫째,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둘째, 더불어 섬기는 가정, 셋째 항상 기도에 힘쓰는 가정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산을 넘는 기독교
행 10장 1~8절 / 마경훈목사
사도행전의 4대 오순절이 있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에 임한 오순절입니다(2:1-4). 120문도가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을 쓸 때에 성령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그리고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모습으로 임하셨습니다. 이 때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둘째, 사마리아 오순절입니다(8:14-17). 스데반의 순교로 흩어진 사람 가운데 빌립이 사마리아로 가서 일으킨 성령운동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지원으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셋째, 가이사랴 오순절입니다(행10:44-48). 고넬료 집에서 일어난 부흥회였습니다. 이 때는 베드로가 설교하는데 성령께서 역사 하셨습니다. 넷째, 에베소 오순절입니다(19:1-7). 선교사 바울이 방문해서 설교 후 안수할 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본문은 초대교회 4대 오순절적 역사 가운데 세 번째인 가이사랴 오순절입니다. 이 사건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그 중에 가장 큰산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독교가 유대인 안에만 머물러 있기를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신자들이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령을 주신 이유도 유대 땅만을 복음화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순절에 성령 받은 사람들은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계 복음화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불순종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세계적인 전파를 위하여 핍박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기독교인들은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흩어진 기독교인들이 가는 곳에는 복음이 전파되었고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뛰어넘어야 할 가장 큰산이 있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이 가진 선민의식입니다. 이 선민의식의 큰산을 넘어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사건이 바로 가이사랴 오순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던 고넬료에게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천사는 베드로를 청할 것을 명합니다. 고넬료는 천사의 명대로 베드로를 청하게 됩니다. 베드로도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방인인 고넬료를 심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할 때 성령께서 임하신 것입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저에게 가장 큰산은 엄하신 아버님이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 산을 넘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간다는 소리도 못했습니다. 성경책을 들고 집에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벌써 그 산은 넘었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이제 넘어야 할 산이 아닙니다. 이제는 장로님이 되셔서 저의 든든한 기도의 후원자이십니다. 어느새 복음은 저에게 큰산이었던 엄하신 아버님을 넘어서 우리 집안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복음의 부담감을 가진 대상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해야 하며 그들은 반드시 복음에 굴복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그들에게 참된 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과 우리 사이에 산이 있습니다. 아마 넘기 힘든 산이 버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산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산을 넘어서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나눠줘야 합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산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그 산은 극복 될 수 있습니다. 그 산이 아무리 높아도 유대인이 가진 선민의식의 산보다는 낮을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복음을 가로막은 선민의식의 산을 어떻게 넘었는지 살펴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 사람의 높은 산을 넘게 하시든지 평지를 만드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기도하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이방인인 백부장 고넬료와 사도인 베드로입니다. 고넬료의 기도는 하나님 보좌를 움직이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기도하는 시간에 주님은 그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도록 하셨습니다.
기도가 능력입니다. 기도의 능력은 여러 방면에서 입증이 되고 있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시험한 재미있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기도가 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실험이 실시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실험에는 기독교 자원봉사자들의 기도가 심장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에 대한 결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실험대상 집단은 임의로 무작위 추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은 집에서 기도했습니다. 환자들과는 전혀 접촉이 없었습니다. 또 다른 환자들은 자원봉사자들의 기도를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실험 결과 자원봉사자들의 기도의 대상이 되었던 환자들의 상태가 대체로 좋게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다른 환자들보다 호흡도 좋았고 보호장치도 덜 사용하였으며 약도 덜 필요로 했습니다. 완치율도 물론 높았습니다. 반면 일반 환자들은 환기를 요구하거나 항생제 이뇨제 등을 기도 후원을 받는 환자들보다 더 많이 요구했습니다.
본문에는 두 명의 기도의 사람이 나옵니다. 이방인 고넬료와 사도 베드로입니다. 이 두 사람의 기도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고넬료의 기도의 특징을 살펴봅시다.
첫째, 고넬료의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셨습니다. 2절에 보면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기도의 대상을 바로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모든 기도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기도가 좋은 기도입니다. 올바른 기도는 기도의 대상이 좋아야 합니다. 고넬료는 우상에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기도문에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줍니다. 저는 얼마 전에 00단체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에게 설교부탁을 하더군요. 한참 전화통화를 하다보니 그 전화는 저를 찾는 전화가 아니라 다른 교회 목사님을 찾는 전화였습니다. 전화를 거신 분이 죄송하다고 하더니 전화를 끊더군요. 그분은 대상을 잘못 알고 많은 말을 했습니다. 결국 그분이 저와 통화했던 내용은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둘째 고넬료는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는 몇 번 기도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쉬지 않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는 기분에 따라서 기도를 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상태가 어떻든지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다보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도 주님은 우리를 보고 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내가 느낄 수 없다고 하나님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나와 같은 수준을 가진 분이 아닙니다.
기도는 항상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적인 호흡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영적 호흡을 이상하게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1주일에 한번씩 호흡합니다. 참고 참았다가 주일 11시만 되면 숨을 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동안 호흡하지 않다가 기도회 때 몰아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영적 호흡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산소 공급이 안되면 건강에 이상이 생깁니다. 영적 호흡인 기도를 쉬는 사람은 반드시 영적인 이상이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셋째, 고넬료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 되었습니다(4절).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소홀히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시고 기도의 내용을 기억하시며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구하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부르짖으면 응답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넷째, 고넬료는 기도하다가 신비체험을 했습니다. 환상 중에 천사를 통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기도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파이프와 같습니다. 기도하면 하늘의 신비한 것들이 공급됩니다. 기도하다가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환상, 음성, 응답 등을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성경은 그런 신비체험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교회사 가운데 경건한 사람들에게도 신비로운 체험이 있었고, 지금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고넬료는 기도하다가 베드로를 만났습니다. 베드로를 만난 것은 그에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는 베드로를 통해서 복음을 듣게 되고 베드로를 통해서 성령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 많은 복이 있는데 사람을 잘 만나는 복만큼 큰복도 드물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만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만나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군이 됩니다.
여섯째, 고넬료는 기도의 힘으로 실천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간혹 구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이 자주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실천적인 생활을 하려면 영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인간적인 결심만 가지고는 지속적으로 실천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습니다.
일곱째, 고넬료는 기도의 힘으로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했습니다. 고넬료는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베드로가 방문하자 온 집안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많은 경우 부모는 신앙생활을 잘하는데 자녀들은 그렇지 못한 가정이 많습니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 보다 신앙을 물려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신자들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재산을 소유하는 것보다 영생을 얻는 것이 더 큰복이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자녀들에게는 영적인 유산보다 물질적인 재산만 물려주고 있는 부모가 많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영적인 유산을 물려주려면 몇 가지를 잘해야 합니다.
① 생활의 모범이 되십시오. 고넬료처럼 가족들에게 생활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고넬료가 신앙생활은 잘하는데 가족관계에서 모범이 되지 못했다면 가족들과 종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② 신앙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마십시오. 믿음 없는 가족들과 타협해서 가족들을 따라가면 그 때는 가족들과 좋은 것 같지만 절대 신앙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는 없습니다. 좀 힘들고 어려워도, 타협하지 않으면 핍박을 받아도 신앙의 정조를 지키십시오.
③ 예배에 모범을 보이십시오. 다른 어떤 일보다 예배를 우선하십시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을 보이십시오.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의 모범을 보이십시오.
④ 교회나 목회자 그리고 교회 식구들에 대해서 좋은 말만 하십시오. 시험들만한 말은 하지 마십시오. 상처 받을만한 말은 하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자녀들은 반드시 교회나 목사 그리고 성도들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교회를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2. 베드로의 기도의 특징을 살펴봅시다.
베드로 역시 기도하던 사람입니다. 베드로의 기도의 특징을 몇 가지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첫째, 베드로는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습니다. 사도들에게는 정해진 시간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기도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기도는 습관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기도가 어려워서 못하겠다고 합니다. 기도가 습관이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습관은 반복해서 익숙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기도를 본래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도는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많이 해보면 늘게 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엎드려 보십시오. 습관이 되면 좀 더 쉬어질 것입니다.
둘째, 베드로는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요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면 이단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성경적으로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듣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못 듣는 사람이 이상한 것입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습니다. 음성을 들을 영적인 기능이 없습니다. 중생하지 못한 경우가 많겠지요. 또는 영적인 귀가 죄로 인하여 막혀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면 하나님의 음성보다 다른 것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베드로는 기도하다가 자신의 고정관념이 깨지게 됩니다. 그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보자기 안에 있는 짐승들을 먹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절하다가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의해서 이방인을 찾아가게 되고 거기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람이 생각이 바뀌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 변화가 없습니다. 내가 전에 생각하던 대로 생각한다면 전에 일어나던 일만 반복 될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는 축복이 기도를 통해서 주어집니다.
넷째, 베드로는 기도하다가 이방인을 복음으로 인도하는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0장의 사건은 기독교 역사에 남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다가 이 사건에서 핵심적인 인물로 쓰임 받게 됩니다. 이 사건은 이방인에게 뿐만 아니라 베드로에게도 축복된 사건입니다.
전에 평양 남문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 무식한 목사님이 부임해왔습니다. 이 목사님은 말도 잘 못하고 학식도 없지만 기도는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계속 부흥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인들이 "무식한 목사님이 목회해도 부흥이 되었는데, 이제는 미국 갔다온 목사님을 모셔오면 더 부흥이 되겠다"고 하면서 먼저 목사님을 내쫓고 새로운 목사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해 온 목사님은 학식도 많고 말도 잘 하고, 모든 것이 뛰어난데, 왠지 교회는 점점 냉냉하게 되어갔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안타까워하다가 사찰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전에 있던 목사님과 나와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찰이 대답하기를 "전에 있던 목사님은 강단에서나, 지하실에서 엎드려 있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지금 목사님은 한번도 그런 것을 못 보았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깨닫고 담요를 싸 가지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바위를 붙잡고 낙엽이 온 몸을 뒤덮을 정도로 며칠동안 부르짖어 기도하고 내려와 목회를 하는데 교인들이 변화되고 교회는 계속 부흥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며,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힘과 능력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와 고넬료라는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교회사에도 보면 하나님은 선교의 큰 역사를 기도라는 방법으로 행하신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예가 건초더미 기도회입니다.
세계에서 선교사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는 대학은 윌리엄스 대학입니다. 그렇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1805년 윌리엄스 대학이 영적으로 부흥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소그룹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날마다 모여 대학에 영적 바람이 불도록 맹렬히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들이 정원에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모두가 비를 피하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5명만은 정원에 쌓여있는 건초더미 속으로 들어가서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 건초더미 기도모임이 생겼습니다. 선교학자 토렛 박사는 “미국 교회들이 해외 선교운동에 대하여 처음으로 자극을 받았던 것은 건초더미 모임에서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임이 드디어 해외 선교사를 수없이 배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계선교의 장벽이 기도하는 두 사람 고넬료와 베드로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윌리엄스 대학이 세계에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대학이 된 것도 건초더미 기도회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본주의의 큰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기도 까닭에 그들을 가로막는 큰산은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고넬료의 믿음과 축복
행 10장 1~8절 / 김성광목사
A. 믿음과 축복에 대하여
1. 믿음과 축복
믿음이 있으면 축복을 받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고 성공하며 희망과 용기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로 알려져 있고, 미국인들도 대개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바나 리서치그룹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면서도 “당신은 실제로 구원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33%만이 “네!”라고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확신이 없는 가운데 막연하게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33% 중에서도 “당신은 예수님을 믿어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으로 인해 행복하다고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신다고 믿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절반만이 “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즉, 미국인들은 10명 중의 1명만 진정한 믿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이 진짜입니까? 가짜입니까? 또한 큽니까? 작습니까?
영국의 성직자이자 저작가인 테일러(Jeremy Taylor ; 1613~1667)는 “믿음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축복의 근원이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운명도 달라지고 인생도 달라집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살아 있다면 그 사람을 향한 축복도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런 표적이나 기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이 고넬료를 통해서 큰 믿음을 배우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성령 충만 받고, 기도해서 응답받고, 많은 사람을 전도하고,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오늘 본문말씀은 백부장 고넬료의 믿음에 대해 기록하고 그가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백부장 고넬료는 이방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유대 민족도,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방인으로서 최초의 기독교인이 되어서 성령을 받고 주변 사람들을 전도함으로 큰 역사를 일으킨 인물이 되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로마 장교요, 이방인이었지만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집안 식구들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백성들을 많이 구제해서 주변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고넬료는 기도하던 중에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환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 기억하신바 되었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서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해서 말씀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즉시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집안 하인과 군졸을 욥바로 보냈습니다.
다음날 욥바에 있던 베드로도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오는데, 그 속에는 부정한 짐승들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늘에서 그것을 먹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베드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깨끗하지 않은 부정한 것들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내가 깨끗하다 한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똑같은 환상을 보았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을 했습니다. 그들을 만난 베드로는 자신이 본 환상의 의미를 깨달았고, 그들을 따라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을 따라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의 집으로 갔습니다.
고넬료는 가족과 친척, 친구들까지 모두 불러모아놓고 예배드릴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달려가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일어나라고 한 뒤 예배를 드렸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을 받아서 방언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백부장 고넬료를 통해서 이방인들에게도 주의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유럽, 미국, 결국 한국까지 주의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당시 로마의 황제가 아닌 백부장 고넬료가 기록되었으며, 전도의 큰 사명을 감당한 사람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 백부장 고넬료는 과연 어떠한 믿음을 가졌습니까? 그에게 나타난 축복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항상 기도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환상을 보았다’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말씀을 듣고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았다’라고 하였습니다.
B. 고넬료의 믿음과 축복
1.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항상 기도하였다
- 경건, 하나님을 경외, 기도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 10:1~2)
고넬료는 ‘이달리야대’에 속한 백부장, 장교였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중대장 정도에 해당하는 직업군인입니다. 당시의 로마 군인들은 식민지의 반란군을 진압하는 일이 주된 임무였기 때문에 상당히 포악하고 난폭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다른 군인들과는 달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착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본문말씀은 그의 믿음을 네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건했으며,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많은 사람을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도 고넬료처럼 경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경건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경건한 시간을 가지고 항상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경건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배를 드리십시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수요예배, 금요예배도 참석하고, 새벽기도, 구역예배, 기도원까지 모든 예배에 참석할 때 경건할 수 있습니다.
주일에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경건할 수 없습니다. 예배시간에 빠지지 않고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 경건합니다. 여러분도 예배에 잘 참석해서 경건한 신앙을 갖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명령으로 생각하고 그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고, 순종하고,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 때에도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돈을 쓸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르게 썼습니다. 경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는 것은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도와주고 선행을 많이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칭찬받고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들 기도는 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덕을 부리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항상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그는 시간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항상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항상 기도하던 백부장 고넬료에게 놀라운 환상의 체험과 성령 충만 받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여러분도 쉬지 않고 항상 기도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 참석한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항상 기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 설교 중에 어떤 중이 얼음이 언 강을 지나가다가 얼음이 깨지기 시작하자 “아이고, 하나님!” 하고 불렀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편 145편 18~19절 말씀에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게 간구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십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후, 병들고 어렵게 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멀리 떠난 공산주의 국가들은 먹고 살기도 힘이 듭니다. 하나님을 항상 모시고 사는 나라들은 복지국가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곁에 모시고 가까이 할 때,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형통하고 강건해 지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사는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마음의 모든 소원을 어떻게 성취하고 이룹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올 한해가 다 가기 전에 여러분의 마음속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부지런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소원을 성취하게 하여 주십니다.
종종 ‘하나님은 왜 내 기도를 안 들어 주시는가? 내 소원은 언제 성취되는가?’ 하고 의심하고 탄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기도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제 멋대로 살다가, 가끔 “주여, 주여!” 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들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는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항상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출 17:11), 그에게 능력을 주셔서 죄악을 물리치고(대하 16:9), 항상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도록 하십니다.
그가 하는 일은 형통하고 잘되고 창대하게 됩니다.(욥 8:5~7) 하나님께서 그를 항상 돌보아주시고 위험과 위기에서 보호하시고 축복하여 주십니다.(욥 8:5~6) 죄를 지었다할지라도 용서하여 주시고(사 55:6~7), 귀신을 쫓아내고(악 9:28~29), 지혜를 주시며(약 1:5), 병을 고쳐주시고(약 5:16),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일꾼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토마스 브룩스(Thomas Brooks ; 1608~ 1680)는 “가장 많이 기도하는 사람이 가장 강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없는 것을 탄식하지 마시고, 기도하지 못한 것을 탄식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기도하고 계십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신문이나 TV 보는 시간만큼도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믿음이 커지고,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가지고 크게 역사하여 주십니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한 교포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자신이 사업을 하면 잘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봉제공장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옷을 많이 만들어서 멕시코로 수출을 했는데, 멕시코와 미국에 갑작스런 불황이 닥치면서 공장의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사업은 회복 불능의 지경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힘과 지식만으로는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하박국 2장 3절의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는 말씀에서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기다리며 인내하고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는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교회는 새벽기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사님께 교회 열쇠를 하나 복사해 달라고 하여 매일 새벽 4시에 공장으로 가기 전에 혼자 교회로 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저는 망합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사업이 잘 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믿음을 가지고 공장으로 갔습니다.
그 결과 다른 공장들은 모두 문을 닫고 가동하지 않는데, 그의 공장은 계속 주문이 들어와 공장을 가동하게 되고, 멕시코와 남미 국가들에 제품을 수출하여 수백만 불의 이익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교포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고, 앞장서서 봉사하고 전도하며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성전에서 혼자서 새벽예배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내 사업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하고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여러분, 사업이 안 된다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불황이 닥쳤다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2. 환상을 보았다 - 환상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행 10:3~6)
고넬료는 제 구시 기도 시간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제 구시는 오후 3시를 말합니다. 오후 3시가 기도하기 쉬운 시간입니까, 어려운 시간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로 바쁘거나 아니면 낮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그 시간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고넬료는 기도할 때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이상하고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고넬료를 불렀습니다. 고넬료는 천사를 보고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들어 “주여,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천사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환상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환상이 나타나고 천사를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평생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못하고 환상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영적인 체험이 없으므로 확실한 믿음도 없습니다. 고넬료처럼 항상 기도해서 여러분에게도 신비한 체험이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체험이 한 번만 있으면 인생이 달라지고 신앙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천사는 고넬료에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모든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가 상달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여, 주여!” 하고 기도해도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못하고 없어지는 기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상달되지, 끝까지 기도하지 않으면 상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는 것은 인정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대통령에게 인정을 받아도 온 나라가 떠들썩한데,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열심히 구제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시고 그 기도를 응답하시고 축복하시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욥바로 보내서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시몬의 집에 거하며 그 집이 해변에 있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환상을 보았다, 계시를 받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막연하게 얘기하는 엉터리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확실하고 분명합니다. 그리고 고넬료도 환상을 보고, 베드로도 환상을 본 것처럼 확실한 환상을 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환상으로 인해 유혹과 시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열심히 부르짖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큰 사건, 큰일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십니다. 앞날을 예측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3개월, 6개월, 1년을 미리 알게 만들어 주시고, 죽음 그 다음을 알려주십니다. 여러분, 환상을 보는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말씀에 나타난 사람들,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앞날에 대한 환상과 이상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 앞에서 그런 이상과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시고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어떤 일이 있어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창 15:1)
환상을 본 사람은 올바른 신앙과 믿음을 갖습니다. 야곱도 밤중에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습니다.(창 46:2) 사무엘도(삼상 3:15), 이사야도 예루살렘에 대한 이상을 보았습니다.(사 1:1) 에스겔도 포로로 잡혀 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상을 보여주셨습니다.(겔 1:1)
어려운 고난과 고통 가운데 빠졌다할지라도 하나님의 환상과 이상을 본 사람들은 담대하게 믿음으로 인생을 살고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큰 역사를 전개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람들, 선지자, 예언자,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미리미리 앞날을 깨닫게 하시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각 나라마다 큰일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르네상스 문예부흥과 더불어 전 세계 역사를 새롭게 변화시켰던 종교개혁가 독일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 1483~1546)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비한 체험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독일을 새롭게 변화시켰습니다. 무혈혁명을 일으켰던 영국의 존 웨슬리(John Wesley ; 1703~1791)도 영적인 체험을 한 사람입니다.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 1703~1758)도 예수님을 보는 환상을 체험한 후에 영적인 지도자가 되어서 미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는 기초를 놓았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 원하십니까? 당대에 큰 인물이 되기 원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충성된 일을 감당하기 원하십니까? 열심히 기도해서 영적인 체험, 환상과 같은 놀라운 경험,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는 여자 집사님이 한 분 있었는데, 남편이 보증을 잘못서는 바람에 은행으로부터 월급의 일부를 차압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월급으로 여섯 식구가 생활하기에는 어려웠는데, 차압을 당하고 다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가계부는 매달 적자였고, 이러다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가정을 돌보아 주십시오. 빨리 빚을 청산하게 하옵소서.” 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새벽기도, 철야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눈앞에 조그만 빌딩이 하나 보였습니다. 그런데 빌딩의 다른 상가들은 다 캄캄한데, 한 점포만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집사님은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으로 알고, 부동산에 가서 가게를 알아보았더니, 지금은 장사를 하고 있지 않아 권리금도 없는 가게가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찾아가 보니 환상으로 보았던 바로 그 가게였습니다. 거기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아주 잘 돼서 빚도 다 갚고, 남편의 월급보다 더 많은 수입이 생기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종종 저는 교회에 처음 나온 초신자에게 누가 전도했는지 물어보면 꿈을 꾸어서 왔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꿈속에 교회가 나타나서 그 교회를 찾아다녔는데 우리 교회가 꿈속에서 본 교회하고 똑같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도 꿈을 통해서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무엇을 못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정 문제도 해결하십니다. 직장문제, 건강문제도 해결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결코 버려두지 않으시고 환상을 통해서 축복과 은총을 베푸시고, 능력과 권능을 주시고, 전도도 많이 하게 하시고, 그 시대의 큰 사명을 감당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믿음 갖고 환상을 보기 원하는 사람들은 환상을 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 다니면서 환상도 한번 못보고 다니는 사람들은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고, 능력 받고, 환상을 보게 되면 나오지 말라고 해도 먼저 앞장서서 교회 나오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큰 역사를 베푸셔서 사업장과 직장, 가정에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은총과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영적인 체험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 보다, 영적인 체험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더욱 기쁨이 충만합니다. 감사가 넘쳐납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진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봉사합니다.
3. 말씀을 듣고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았다
- 말씀, 예배, 성령을 받음, 방언 말함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 10:44~46)
고넬료는 열심히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천사의 말에 즉시 순종해서 하인과 군졸을 보내서 가까운 친지, 가까운 친구들을 다 모아놓고 베드로를 기다렸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자마자 고넬료가 마중하여 그 앞에 엎드려 절하고 “오셨으니 잘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베드로 앞에서 하나님 앞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처럼 듣겠다는 겸손함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예배를 드릴 때 겸손해야 합니다. 주의 종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은혜를 받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은혜를 받지,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성령의 역사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니 그들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성령 충만을 받고 방언을 하고 능력을 받아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하나님의 높으신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 1절 말씀은 성령께서 유대인들에게 역사하신 것이고, 오늘 본문말씀은 이방 사람들에게 역사하시는 놀라운 일이 시작된 사건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그 시작이 바로 고넬료를 통해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믿음을 통해서 그 큰 섭리와 전도의 역사, 성령 충만 받는 역사를 성취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입니까? 믿음이 없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역사하여 주십니다.
성령 충만 받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 말씀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하나님의 성령을 받으면 그에게 능력과 권능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기다려야 합니다.(행 1:4)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죄를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행 2:38)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고(행 5:32),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청종해야 하고(행 10:44), 하나님 앞에 응답받을 때까지 인내하면서 끝까지 기도할 때(행 13:2)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성령 충만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백화점에 가면 마네킹이 있습니다. 마네킹은 잘생긴데다가 키도 크고 늘씬한 몸매에 쇼윈도의 가장 좋은 자리에 화려하게 치장하고 서있습니다. 몇 천만 원짜리 밍크코트도 마네킹에게는 그냥 입혀줍니다. 그것도 매일 다른 것들로 입혀줍니다. 모자도 몇 백만 원짜리를 씌워줍니다.
그러나 이 마네킹이 행복한 존재입니까? 마네킹에게 만약 소원을 물어본다면 생명을 달라고 할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좋아 보여도 생명이 없기 때문에, 기쁨, 감사, 행복을 모릅니다. 기도도 할 수 없고, 성령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마네킹이 있습니다. 예쁘게 화장하고 좋고 비싼 옷을 차려입고 예배드리기 위해 앉아있지만 찬송을 불러도 감동이 없고, 기도해도 기도소리가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무슨 소린지 알 수 없고 깨닫는 것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 마네킹입니다. 백화점 마네킹이나 교회 마네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왔다갔다만 하지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교회 마네킹이 되지 마시고, 열심히 기도해서 성령 충만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열심히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예배도 결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물을 드립니다. 그를 통해서 전도의 열매, 사랑과 축복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됩니다. 열매를 보고 나무을 안다고 했습니다. 열매가 없으면 마네킹이고, 열매가 있으면 그 사람의 믿음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참석한 성도 여러분, 한 사람도 교회 마네킹이 되지 마시고, 성령 충만 받아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전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 앞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직장과 사업장도 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혜림교회 박연수(여, 50세) 성도님의 간증입니다. 그는 성실한 남편도 있었고 건강에도 항상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감기 증상이 나타나면서 몸에 열이 오르고 머리도 아프고 기침도 해서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다 먹었는데도 낫지를 않았습니다.
기침도 점점 심해지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서울아산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해보았더니, 폐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폐암 말기라 수술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약물 치료만 해야 했는데, 항암주사가 얼마나 독한지 한번 맞으면 온 몸이 저리고 아프고 먹은 것도 다 토해야 했습니다.
다섯 달 동안 항암주사를 맞았지만 별 다른 차도도 없이 약도 먹지 못하고 항암주사도 맞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는 죽음만을 기다리며 진통제만 맞는 처절한 상황이 되자 죽더라도 천국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영적인 체험이 없는 교회 마네킹이라도 천국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기 전에 실컷 기도하기로 결심을 하고 강남금식기도원으로 갔습니다. 그는 7일 금식을 작정하고, 예배시간마다 게으르고 불순종하고 충성하지 않고 기도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금식 5일째 되는 날, 뜨거운 성령 충만을 체험하고 환상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손을 머리에 얹으시고, “병을 고쳐주면 네가 나를 위해 일하겠느냐?” 하고 물어보셔서, 그는 “아멘, 아멘!” 하고 대답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화장실에 갔더니 앉자마자 검붉은 피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피를 쏟고 나니 손, 발도 저리지 않고 몸이 가벼워지고 통증도 다 사라졌습니다.
금식이 끝나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더니 암 증상이 다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것입니다.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 병을 왜 못 고치시겠습니까? 그는 그 이후부터 전도하면서 교회에 충성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각오하고 금식기도 했더니 하나님께서 살려주셨습니다.’라고 간증을 했습니다 .
여러분, 목숨을 걸고 한번 간절히 기도해보십시오. 기도하지 않으니까 사업이 어렵고 몸이 아프지, 하나님 앞에 열심히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병에 걸리지 않고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깨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공부해서 박사가 되라고 한다면 되겠습니까? 지금 운동해서 축구선수가 되라고 한다면 되겠습니까? 지금 장사해서 돈 벌라고 한다면 하겠습니까? 그런데 기도하는 것이 그것보다 더 어렵습니까? 병이 들어서 기도하지 마시고 미리미리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항상 기도하여서, 환상을 보고, 성령 충만을 받는 영적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자
하나님께 계속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마치 고넬료를 통해서 역사하신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믿음을 주시고, 성령 충만하게 하시고, 능력을 주시고, 축복을 주셔서 전도도 많이 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고넬료의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집
행 10장 1~8절 / 문강원목사
고넬료는 이방인으로써 그와 그의 온 가족이 예수를 영접하는 놀라운 사건을 기록한 본문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라는 사상이 팽배했던 구약에서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신약으로 넘어오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기록자 누가는 이제 율법의 시대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마감하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된다는 은혜의 시대를 알리게 되었습니다. 8장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개'라고 부르면서까지 멸시했던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사실, 9장에서는 세계를 돌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사도 바울의 회심, 그리고 오늘 본문 10장에서는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의 가족이 한꺼번에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는 참으로 감격적인 사실을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11장에서는 계속해서 이방인 선교의 기지와도 같이 인정하고 있는 안디옥교회의 설립까지 기록함으로써 과연 복음은 세계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잘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인물들은 너무나 귀한 분들입니다. 사도 바울, 그리고 수제자 베드로, 그리고 세계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던 안디옥 교회가 등장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사역속에 열매로 맺어진 귀한 가정이 바로 오늘 고넬료의 가정이라는 사실입니다.
Ⅰ. 고넬료의 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었습니다.
(2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고넬료의 신분에 대해서는 1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이달리야 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 이었습니다. 이"대"라고 하는 규모는 보통 육백명의 병사와 이들을 지휘하는 여섯명의 백부장으로 이루어진 부대입니다. 로마 군대에서 오늘날로 말하면 중대장 정도의 계급을 가진 장교였습니다. 그러나 권한으로 말하자면 오늘날의 중대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신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자기 군대가 지배하고 있는 땅에 사람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더욱이 고넬료는 자신의 삶이 경건한 것은 물론이며 그의 온 식구가 하나님을 믿고 경외했다고 했습니다. 7절을 보면 고넬료의 종들 중에서도 경건한 종이 있었을 정도로 경건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알고 주인을 섬기듯이 두려운 마음으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정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하나님을 두려움과 높이는 마음,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경외심이 있을 때 여러분의 가정이 경건한 가정이 되며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의 가정인 고넬료를 택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정도 여러 가지 부족한 것이 많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 되기만 한다면 고넬료와 같이 복된 집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열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습니다. 최고의 자녀사랑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란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경외가 가정 행복의 시작이요 비결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들이 부모를 경외하게 되고 세상에서도 성공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내가 남편을 경외하고 현숙한 아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이 아내와 자녀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고 손의 범사가 형통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경외하므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중심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성도에게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Ⅱ. 고넬료의 집은 구제하는 가정이었습니다.
(2절)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막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우리가 이웃을 향하여 구제할 때 마치 우리 주님께 하듯 할 필요가 여기에 있습니다. 구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해야 할 마땅한 의무입니다. 누구에게 우리가 구제한다고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를 구제로 나타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제는 하나님 사랑의 한 방편인 것입니다. 또한 구제는 우리가 물질의 복을 받게 되는 성경적인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잠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성도 여러분! 나누어 주는 것을 아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베푸는 자에게 더욱 풍성한 것으로 채워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다시 말씀드리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우리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죄인들이요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야 마땅한 것입니다. 바로 고넬료의 가정이 물질의 복을 받았던 비결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온 가족의 뜻이 같아야 합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그런 가정입니다. 고넬료만 혼자 경건했던 것이 아니고 혼자만 구제했던 것이 아닙니다. (2절) "온 집으로 더불어"라는 구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고넬료 혼자만의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구제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내나 자녀들의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들도 사랑의 실천을 자녀들과 함께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온 가족이 함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베푸는 삶을 실천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물질의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아이들은 여러분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의 삶은 봅니다. 자신은 교회에서 그 어떠한 중요한 직분을 맡았다 해도 그것으로 자녀들이 존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보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경건한 삶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을 살 때 여러분의 가정에 자녀들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씀대로 이웃을 돌아보며 구제와 선교의 삶을 살 때 여러분의 자녀가 그런 복된 삶을 이어갈 줄로 믿습니다.
Ⅲ. 고넬료의 집은 기도하는 가정이었습니다.
본문 2절에 보니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라고 했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기도할 때 환상을 보았고 그는 환상 중에 주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부모 여러분! 또한, 특별히 믿음의 가장이신 남성 여러분! 다른 어떤 모습보다도 기도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기도입니다. 즉, 여러분들이 기도를 가르친다는 것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란 말입니다. 부모로써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고 염려만 한다든지 원망이나 하고 있는 다면 누가 여러분이 섬기는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까? 우리 가정이 함께 모여서 가정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아뢰면서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가정은 그 어떤 환난 풍파가 몰려와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가정에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은혜 받기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3절 이하를 보면 고넬료가 환상 중에 욥바에 머물고 있던 베드로를 초청하라는 천사의 계시를 받고 즉시 사람을 보내 베드로를 모셔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베드로가 자기집에 도착하자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며 그를 맞아 드렸습니다. (행10: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그것은 상관이나 황제에게 표하는 예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베드로를 갈릴리 어부로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 본 것입니다. 베드로는 당황하여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26절)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그가 은혜를 사모했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자기의 일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구들까지 불러 모아놓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행10: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바로 고넬료의 이러한 영혼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이 어떻게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은혜를 사모하는 일이 신앙생활의 출발입니다. 고넬료는 "온 집" 곧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모으면서까지 말씀 듣는 시간을 기다릴 정도로 은혜 받는 시간을 사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Ⅳ. 고넬료와 그의 집이 받은 복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고넬료의 가정은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인정받은 복을 받은 가정입니다. 고넬료가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주의 사자를 만났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행10:31)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라고 말입니다. 부정한 이방인의 집에 갈 수 없다고 하는 베드로를 같은 환상으로 설득하여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가족이 모두 구원받도록 하십니다. (24절)에서는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렸다고 하는 걸 보아 일가나 친구들에게도 인정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를 잘 하시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사람에게도 인정받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교회로 초청했을 때 그들이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둘째로,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방언을 했습니다. 바로 이날에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신 것입니다. (행10:44-46)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47절을 보면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날 거기 모인 사람들 모두가 함께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베드로와 일행조차 이방인인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이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이처럼 성령께서 이방인 선교를 이루어 가시는 성령의 불씨를 일으키는 복된 가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축복된 가정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선교하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기도하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고넬료 가정처럼 행복을 누리는 가정, 영육간에 승리하는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놀라운 복이 바로 여러분의 가정의 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
행 10장 1~8절 / 조재진목사
사도행전은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어떻게 퍼져 나가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세상 한 가운데 일으키신 그리스도 사건은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심과 함께 온 예루살렘을 뒤흔들어 놓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기 시작했습니다. 이 복음의 역사는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유대지역과 사마리아성으로 퍼져갔습니다. 또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에서도 일어났고, 다메섹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드디어 가이사랴에서도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언제나 사람들을 부르심으로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뒤흔들어 놓았던 구원의 역사는 성령을 체험한 120명의 주의 제자들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사마리아에 일어난 복음의 역사는 성령이 충만한 빌립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에디오피아와 저 아프리카에 일어난 복음 운동은 내시 한 명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시작되었고, 또 하나님은 사울이라는 한 사람을 부르심으로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문을 열기 시작하셨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는 늘 한결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나갈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찾으면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출애굽의 놀라운 일도 한 사람 모세를 찾으시고 그 모세가 준비되었을 때 시작하신 일입니다. 또 하나님은 사무엘을 찾으시고는 이스라엘에 왕 제도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다윗을 만나시고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시고 영원한 왕권을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누구를 보낼꼬" 라고 사람을 찾으시다가 보통 골치 아픈 사람이 아닌 사울을 만나고 그를 변화시켜서 생명을 내어놓아야 할 이방선교에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로마에 복음의 문을 열기 위해 사람을 찾다가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를 만났습니다. 이 고넬료를 통해 하나님은 로마 황실과 로마의 심장부에 복음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역사가의 기록에 의하면 사도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이전에 이미 로마에는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로마의 황실, 가이사집에 복음의 씨앗이 이미 뿌려져 있었습니다. 누가 바울 이전에 저 로마에 복음의 전했을까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로 고넬료에 의해서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므로 이방인 고넬료가 사도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체험한 사도행전 10장의 사건은 사도행전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두 가지 의미에서 중요합니다. 첫 번째는 최초로 이방인의 가정에 성령이 임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는 유대인들, 주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와 똑같이 하나님은 이방인의 가정 고넬료의 집에도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이었지요. 처음에 그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동의하든 하지 않든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의 가정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임한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기름부음의 사건이 똑같이 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성령님이 임할 수 있다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최초로 복음의 문이 열린 이방인 가정이 고넬료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중요한 관심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어떻게 이방세계로 전달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넬료의 집이 이방세계에 전도의 문을 여는 첫 가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행전에서는 이 사건을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설명합니다.
고넬료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당시 수많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굳이 고넬료의 가정을 사용하셨을까요? 고넬료가 누구이길래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고넬료를 통해 일하셨을까요?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고넬료처럼 하나님께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역사를 바꾸는데 사용되는 일군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넬료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고넬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고넬료가 로마의 군인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달리야대라는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당시 로마 군대는 여러 점령지에서 모집한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달리야 본토 출신의 사람으로만 구성된 정예요원들이 있었는데 그 부대가 바로 이달리야대였습니다. 고넬료는 그 정예요원으로 구성된 부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귀족이었고 가이사랴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고넬료에 대한 계속적인 설명이 나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성경은 백부장인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비록 로마의 군인이었지만 가이사랴에 와서 하나님 신앙을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해 하나님 신앙을 가졌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로마의 백부장으로 유일신 사상인 하나님 신앙을 갖게 된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로마의 법을 따라서 황제를 신처럼 섬겨야 했고 로마의 많은 신들에게 제사를 드려야만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 신앙은 그들이 점령한 유대인들의 신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가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대강 믿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을 체험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3-4절에 보면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교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참 놀랍습니다. 고넬료가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은 고넬료가 기도하는 것을 보고 계셨고 그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또 고넬료가 구제할 때 그의 행동을 보고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기도가 하나님에게 상달되고 우리들의 구제가 하나님에게 상달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성도들의 삶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분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우리의 삶을 체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특히 오늘 우리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단어가 바로 "하나님이 기억하셨다" 라는 표현입니다.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는 것도 너무 좋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고넬료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넬료는 하나님의 관심을 끈 사람입니다. 많은 이방인 중에서 유독 하나님이 기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에게 복음의 문을 여실 때 하나님께서는 고넬료를 기억하고 고넬료와 그의 가정에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 고넬료! 오늘 우리가 봐야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넬료가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사람이라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굉장한 모티브를 제공합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보실 때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신앙의 기준은 너무 중요합니다.
보십시오 유교는 그 신앙의 기준이 사람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가 그들의 신앙의 기준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부분을 강조하기 때문에 "예"(禮)를 중요시합니다. 자기는 못먹어도 제사상은 잘 차려야 합니다. 장례가 나면 시간을 맞춰서 곡을 해야 합니다. 반면 불교는 자기 자신이 중심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참선"(參禪)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다른 사람"도 기준이 아니고 "나 자신"도 기준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기준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 의하면 마지막 심판 때에 벌어질 한 장면을 소개합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심판 주이신 예수님을 만나고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말하자면 "주님 저를 아시지요, 제가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했습니다. 나를 알고 계시지요"라고 말할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이 기준입니다. 내가 이런 일을 했고 저런 일을 했다고 말합니다. 내가 주님을 잘 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나를 알아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것이 기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알아주는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거나 일군을 뽑을 때 이 기준은 너무 중요합니다.
보십시오 고넬료는 하나님이 기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알아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놀라운 축복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방인으로 최초로 성령의 임하심을 체험했습니다. 로마 복음화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기억하게 할 만한 것이 그의 어떤 면이었습니까? 고넬료의 어떤 모습이 하나님에게 상달되었고 하나님께서 기억했습니까?
고넬료에게 열려진 두 개의 창
본문 4절을 함께 보십시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보십시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네 기도와 구제" 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였고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바로 기도와 구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고 우리의 구제를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기도와 구제의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십니다. 기도와 구제!, 이것은 고넬료의 경건한 신앙을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그의 삶에는 늘 두 개의 창이 열려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창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고 다른 삶의 창은 이웃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창을 의미합니다. 고넬료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갈급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의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성경은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갈급해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기도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실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을 만큼 굉장한 능력의 사역을 하셨지요. 수많은 기적과 능력과 기사들을 행하셨습니다. 문둥병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으켰고, 귀신을 내쫓아 주셨고, 풍랑이는 바다를 잔잔케 하셨고 물위를 걸으셨으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이런 능력있는 사역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이런 위대한 사역 뒤에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대면하는 기도의 시간들이 있었던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능력있는 사역의 비밀은 바로 기도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아무리 피곤하셔도 새벽 미명에 따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가장 고통스러운 그 시간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 앉았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아버지 하나님과의 만나는 시간은 가장 중요한 스케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에 대한 열망했습니다. 마치 어떤 시편기자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라고 말한 것처럼 예수님은 그렇게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열망했습니다.
사람마다 어떤 열망을 가지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부유해지기를 열망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기를 얻는 것을 열망할 수도 있습니다. 또 출세하거나 육신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열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는 열망은 무엇입니까? 정말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까? 기도는 종교적인 의식이나 규칙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기도는 안식이고 하나님 안에서 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열망했다는 것은 기도가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새힘을 얻었고 영적 능력을 공급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역보다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루 일과였습닏. 저와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기도와 예배가 즐거운 일, 힘을 얻는 시간입니까? 예배에 오면 쉼이 있지요. 예배하면 안식이 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배 때 깊은 잠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러분, 우리에겐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나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고 싶다. 깊은 기도를 경험하고 싶다" 라는 열망들이 있어야 합니다. 고넬료에겐 이런 열망이 있었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고넬료는 항상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또 3절에 보면 제 구시에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제 구시는 우리 나라의 시간으로 보면 오후 3시경입니다. 새벽에 기도하는 것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보면 비교적 기도하기 쉬운 시간입니다. 그러나 오후 3시는 아주 어중간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그가 기도했다는 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급한 마음이 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 계속 성경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는 종들을 욥바에 보내 베드로를 초대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온 가족과 일가, 친구들을 초청해 놓고 베드로를 기다렸습니다. 총동원전도집회를 하는 것 같습니다. 또 그는 베드로가 왔을 때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리어 그를 맞이했습니다. 로마의 백부장이 점령지 백성인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렸다는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구원에 대한 열망과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는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해 창을 열어놓고 하나님을 갈급하게 열망했던 고넬료를 기억하셨습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앉는 것입니다.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며, 주님의 숨결을 느끼며,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왜 우리들이 자꾸 실패의 삶을 삽니까?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향한 창을 열어놓고 있습니까?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까?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 고넬료를 기억하셨습니다.
고넬료가 열어놓은 두 번째 창은 이웃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구제는 이웃을 향해 열어놓은 창입니다. 성경의 증언에 의하면 고넬료는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경건한 것이 아니고 온 가족 다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고넬료의 집에서 일하는 종 중에도 경건한 자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가 하인들과 노예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또 일가와 친구들을 은혜의 자리에 초대한 것을 보면 친척과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2절에 보면 그는 백성을 많이 구제한 사람이었습니다. 군인 백부장이 점령지 사람들에게 구제를 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구제를 통해 이웃을 향한 창을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경건하고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한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이웃을 향한 창이 닫힌 경우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통해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웃 향해 문을 열어놓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야 전도가 되고 그래야 구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향한 사랑, 이웃을 향해 문을 열어놓은 것은 중요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사도요한은 요한복음 5:24에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기록하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보십시오 요한복음에서는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라고 말했고 요한 일서에서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조건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은 형제사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향해 창을 열어놓은 것처럼 이웃을 향해 창을 열어놓고 구제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의 마음,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구제하는 마음 가지고 다른 사람을 향해 손을 펼 때 하나님은 영수증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구제하는 행동을 보고는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은밀하게 구제할 때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갚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돈이 있는 자는 자기만을 위해 쓰지 말고 나눠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억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나눠주었다고 뽐내지는 마십시오 사람이 알아주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억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교회는 매월 두 번째 주에 사랑의 헌금을 합니다. 저는 이 일이 너무 좋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름 없이 헌금합니다. 그 헌금으로 생계가 어려운 형제들을 돕고 이 지역 주님들을 돕고 있습니다. 많이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입니까? 적어도 하나님이 나를 기억할 만한 것이 하나 정도, 아니면 그 이상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가지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구제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의미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기도와 구제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사실 신앙의 그릇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 좋은 믿음의 그릇에 베드로를 불러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유일한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죄와 저주에 빠진 사람을 살리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복음은 믿음의 내용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복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방선교를 위해 준비된 고넬료에게 성령의 체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집스러운 베드로가 안 간다고 말할까봐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개입하셨습니다. 고넬료도 기도하다가 환상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베드로로 초청하였고 베드로도 기도하다가 똑같은 환상을 세 번씩이나 보았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그릇 하나가 내려오는데 그 속에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잡아 먹으라"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습니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깨끗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런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이런 이 일이 세 번이나 있은 후에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고넬료가 예수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나 구제라는 종교적인 행위를 가지고는 세상을 살릴 수 없습니다.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보십시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와서 복음을 말할 때 말씀을 듣는 도중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건은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문을 여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한 단어를 붙잡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넬료처럼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열망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웃을 향해 문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기억할 정도로 시간을 정하고 계속적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이 기억할 정도로 구제하고 이웃을 사랑해 보십시오. 그 때 "000야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라는 주의 음성을 듣게 될 줄 믿습니다.
고넬료 가정은 우리의 모델
행 10장 1~8절 / 조상호목사
EX) 99년 3월21일자 신문을 보니, 남편이 술에 취한 채 귀가해 자신과 자녀들에게 주먹을 휘두른 뒤 안방에서 잠이 들자, 펄펄 끓고 있던 보리차 물주전자를 가져와 남편 정씨의 얼굴에 부어 버려 얼굴, 가슴 등 상반신에 3도 화상을 입힌 혐의로 이모라는 부인이 구속되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또 같은 해 4월 3일자 신문에는 대구에 사는 41세의 K씨는 부인이 외출한 틈을 이용, 자신의 집에서 중학교 3학년인 친딸을 1년 6개월 동안 총 9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로 인하여 구속되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또 같은 해 4월 5일자 일간신문의 기사에는 며느리에게 20여년 동안 구박을 받고 구타를 당해 오던 80대 시아버지가 "며느리가 무섭다"고 며느리를 상대로 서울 가정법원에 접근금지신청을 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접근금지신청을 낸 87세의 A씨가 원하는 것은 45세인 며느리인 B씨가 1백m 이내로 접근할 수 없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느 통계자료를 보니, 60년대에는 결혼한 미국 사람 5명 가운데 1명이 이혼을 하다가, 70년대에 들어와서 3명에 1명이 이혼을 하고, 80년대에 들어와서 2명에 1명이 이혼을 하다가, 86년부터는 드디어 3명에 2명 꼴로 이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일들을 무슨 현상이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세기말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말세야, 말세! 세상이 어디까지 가려는지 모르겠어"라고 한탄합니다.
정말 신모라는 탤랜트가 수년 전에 소리 높여 외친대로, '세상은 뒤죽박죽 요지경'입니다. 이러한 요지경 같은 세상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이미 2500여년 전,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미7:6)에서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로다"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2000여년 전에 이미 말세에 대해서 (막13:12)에서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마24:12)에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세중의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이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까요?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의 모습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모델이 되는 한 가정을 보게 됩니다. 그 가정은 고넬료 가정입니다.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본문의 고넬료 가정은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1)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는 가정: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이 말은 그가 부모님으로부터 어떠한 신앙 유산을 물려받은 적도 없는 사람이었음을 뜻합니다.
또 그는 로마군대의 백부장 이었습니다. 자기 밑에 1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는 오늘날로 말하면 중대장쯤 되는 상당히 높은 지위에 속한 장교입니다. 그런 그가 본문 2절에 따르면 '경건한 사람'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유대교로 개종하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일 성수를 잘 하고, 주의 말씀대로 살고, 믿음 생활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그의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한 것을 보니,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가장인 고넬료가 경건했기 때문에 온 가정이 경건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인 고넬료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했기 때문에, 온 가정이 제대로 신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EX) 어느 날 밤, 남의 집의 담을 넘어 잠자던 부부를 흉기로 위협하고 전깃줄로 묶어 놓은 후, 강도질을 하다 경찰서로 잡혀온 10대 두명을 조사하던 경찰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이유는 강도 중의 한 애가 높은 지위에 있는 유명인사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타락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부모님들은 함께 방을 쓰지 않는 상태, 즉 별거 상태로 살고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사회의 저명인사이기 때문에, 이혼은 할 수 없고 마지못해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딴 여자를 첩으로 거느리고 자주 외박을 하고, 어머니는 춤바람에다 남자 바람까지 나있었습니다. 살림은 가정부가 도맡아서 하다 보니, 이 아이는 고아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 아이는 부모에 대한 반발로 집을 뛰쳐나왔고 닥치는 대로 못된 짓을 한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님들을 보고 배웁니다. 우리가 보통 어린 자녀가 부모를 닮으면 "
국화빵"이라고 말합니다만, 저는 이 말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배웁니다. 썰렁한 부모 밑에 썰렁한 자녀가 나옵니다. 부정적인 부모 밑에 부정적인 자녀가 나옵니다.
소극적인 부모 밑에 소극적인 자녀가 나옵니다. 믿음 좋은 부모님 밑에 믿음 좋은 자녀가 나옵니다. 부모가 하는 대로 자녀가 쫓아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모님들은 자녀들 앞에서 행동을 잘해야 합니다. 여러분! 고액 과외를 시키는 것보다, 자녀에게 본을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일류 미신에 빠져서 자녀들을 일류병에 걸리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자녀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일 것인가에 고민해야 합니다. 목사인 저도 저의 자녀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EX) 어느 날, 올해에 중학교에 들어간 큰애가 집사람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는 언제까지 목사님 하는 거야?"
집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고 "그건 왜 물어?"라고 반문했습니다.
"응, 나는 아빠가 목사님 그만 두었으면 좋겠어"
"왜?"
"나는 아빠가 목사님 하지 말고 그냥 내 아빠만 되었으면 좋겠어"라고 하더랍니다. 저는 이 말을 집사람으로부터 듣는 순간, 그냥 제 서고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그냥 울었습니다. 저는 목사의 자격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 애는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나이인데도, 아빠하고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불만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제가 아빠로서 자녀에게 본을 보였다면, 비록 자기 아빠를 성도들에게 빼앗겼다 할지라도, 자기의 아빠가 목사님인 것을 좋아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아빠가 목사님인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남들에게 아빠가 목사님인 것에 대해서 자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아이는 아빠가 빨리 목사님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저의 가족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가정 사역에 성공할 수 있도록,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배웁니다.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본 받습니다. 믿음의 기초 위에 가정이 세워지도록 자녀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일반 건축물에서 기초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초가 잘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리 벽을 튼튼하게 세우고 지붕을 멋지게 올린다 할지라도 안전한 건축물이 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도 기초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정의 기초는 물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일류학교도 아니고, 믿음입니다. 믿음의 본을 자녀들에게 보일 때, 그 자녀가 결코 비뚤어지지 않습니다. 고넬료는 자녀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인 훌륭한 부모님이었습니다.
2)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가정: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가족들을 모아놓고 이상한 말을 합니다.
50Km 떨어진 욥바라는 곳으로부터 베드로라는 귀빈이 올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도 밖에 나가지 말고 기다렸다가 함께 예배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말에 모든 가족들이 순종했습니다. 24절을 보겠습니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온 가족과 일가 친척, 가까운 친구들까지 한 자리에 모여 손님 베드로를 맞이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나름대로 각자의 볼일도 있고, 해야 할 일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부모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당시의 고넬료의 자녀들은 효자, 효녀였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효의 기독교입니다. 우리 나라에 처음 기독교가 전래되었을 때에 "야소교는 애비도 애미도 모르는 상놈들이 믿는 교"라고 했습니다만, 실제로 성경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기독교만큼 부모 공경을 강조하는 종교도 없습니다.
십계명중 1~4계명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이고, 나머지 6개의 계명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대인 계명의 맨 처음의 계명인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또 (엡6:2)에서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의무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따라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다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의무이기도 하지만, 큰 축복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에 관련된 계명 중, 다른 계명에는 상급이 없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이것을 지키라, 저것을 지키라는 명령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을 지킬 때에는 축복이 보너스로 따라 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반면에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명하셨습니다. (신27: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또 (잠20:20)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잘 되려고 고등교육을 받고 전문적인 기술을 연마하고 더 높은 학위를 따려고 합니다. 또 오래 살기 위해, 비행기 타고 다니며 몸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 나서고, 건강에 좋다는 식품을 섭취하기 위해 거액의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헬스클럽에 밤낮으로 가서 운동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부자들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과 근심과 염려와 스트레스 등으로 고생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다른데 있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여러분! 잘되고 장수하기를 원하시나요?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3)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가정:
2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우리는 이 2절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2절에서 우리는 세 개의 동사와 세 개의 부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사로는 '경외하다, 구제하다, 기도하다'라는 단어이고, 그 동사 앞에서 보충하며 설명해 주는 '더불어, 많이, 항상'이라는 세 개의 부사들이 있습니다. 이 동사와 부사를 함께 살펴보아야 원래의 뜻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1) 그 가정은 온 식구가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부모뿐 아니라, 자녀들까지 온 식구들이 믿음이 출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고넬료와 같은 가정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우리 주위에 믿음 좋다고 하는 집사, 권사, 장로, 하다못해 목사의 자녀들 중에 많은 수가 교회를 떠나고 믿음생활을 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교회만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신자 자녀들 보다 엉망진창인 삶을 살기도 합니다. 왜? 부모님들이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직분자라고 해서 경건한 척하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이 햇갈리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고넬료의 가정은 온 식구가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2) 많이 구제하였습니다: 본문의 '많이'라는 원어는 폴뤼스'라는‘크게’'자주'라는 말로서 고넬료 가정은 할 수만 있으면 자주 남을 도왔습니다. 아까워하는 마음으로 한 두번 구제한 것이 아닙니다. 궁핍한 사람들을 많이 구제하였습니다.
(3)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끊임없이 기도 생활하던 가정이었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하루 3번씩 기도를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이방인이면서도 유대인들의 기도 스케줄에 따라 기도를 했습니다.
(4)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4절 보겠습니다.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뿐만 아닙니다.
(5)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22절 상반절을 보겠습니다.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인 족속이 칭찬하더니" 유대 온 족속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오늘날로 말하면 인기가 캡인 가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조나단 에드워드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EX) 미국에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는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교의 초대 총장이요 가난한 목사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역자의 생활은 시간이 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루 중 조용한 밤시간에 자녀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같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만은 꼭 지켰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새벽 일찍 일어나 촛불을 켜놓고 아이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예배 드리곤 했다고 합니다.
에드워드의 가정은 신실한 가정이었습니다. 신앙으로 교육하고 양육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그가 떠나간지 200년이 넘었습니다만, 신앙 교육을 통해 위대하게 쓰임 받는 수많은 후손들이 나왔습니다. 729명의 후손 가운데 목회자와 선교사가 300명, 고위급 관리가 80명, 변호사가 100명, 대학교수가 65명, 국회의원이 3명, 사장이 3명, 대학교 총장이 13명, 주지사가 3명, 부통령이 1명, 판사가 30명, 의과대학장, 법과대학장이 각각 1명씩 배출되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고넬료 가정은 어떠한 축복을 받았습니까? 이방인으로서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최초의 가정이 되었고, 이방인으로서 최초로 성령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을 통해서 이방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조나단 에드워드 가정과 본문의 고넬료 가정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고, 자녀들은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하나님께 인정받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모든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복된 가정
행 10장 1~8절 / 김홍도목사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또 하나님이 친히 조직과 제도를 만드셨는데 그중에 교회와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가정이 그토록 귀중하다는 것을 아는 사탄마귀는 이 가운데 침입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파괴와 멸망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그 한 예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사탄이 침입하여 가장 약한 하와를 넘어뜨리고 그 가정을 파괴하고야 말았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귀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복된 가정이라고 하는 제목을 가지고 잠시 생각을 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모범되고 복된 가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요, 군인 장교로서 신앙 생활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택한 자가 되었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는 경건한 신앙인이었고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 었으므로 남을 많이 구제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늘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기도하던 중 천사가 나타나서 그에게 음성을 들려 주기를 네 기도와 구제가 하늘에 상달했으니 하나님의 기록하신 바가 되었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욥바로 가서 베드로를 청하여 모셔다가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부를 듣자 고넬료는 종들 중에 경건한 사람을 택하여 베드로가 있는 욥바로 보냈습니다.
마침 그 때에 베드로도 기도 시간이 되어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는데 환상이 보였습니다. 큰 보자 기가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부정한 짐승들이 가득히 쌓였는데 그것을 잡아 먹으라고 명령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그 환상의 의미를 깨달았는데 지금까지 그는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을 개나 돼지처럼 부정하게 생각해 왔으므로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잘못된 사상을 깨뜨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뜻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침 그 시간에 고넬료가 보낸 하인 두 사람이 도착하여 베드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인들은 고넬료가 시키는 대로 전달하고 베드로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베드로에게 이야기를 한 후에 그는 엎드려 절까지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모든 일들을 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심을 믿고 고넬료의 가정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순간 온 가족이 성신받고 방언도 하고 은사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복된 가정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복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인가를 몇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① 인가귀도(認家歸道)된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고넬료의 가정은 인가귀도된 가정이었습니다. 10장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복된 가정은 무엇보다도 온 가정이 한 마음으로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인 것입니다. 남편은 믿음의 생활을 잘 하는데 반대로 아내가 안 믿는다든지, 아내는 잘 믿는데 남편이 안 믿는다든지, 부모는 믿는데 자녀들은 안 믿는다든지, 자녀는 믿는데 부모가 안 믿는다든지 하면 그것은 영적으로 반신불수와 같은 가정입니다.
또 종교를 가져도 어느 식구는 기독교를 어느 식구는 불교를 또 어떤 식구는 개신교를 어떤 식구는 천주교를 믿는다면 그것도 불행인 것입니다. 온 가족이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주님을 그 집의 호주로 모시는 가정은 반석 위에 세운 가정이 되고 복된 가정이 됨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인가귀도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은 여러분들이 똑바로 믿고 바른 행실로 본을 보이고 간절히 기도하면 그 가정은 언젠가는 인가귀도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도저히 믿을 것 같지 않아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셨으니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고 노력하면 인가귀도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도 그 온 가정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제단생활을 잘하므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노아의 식구도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방주에 들어가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 앞에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고 맹세를 했습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이 찾아 갔을 때 그와 온 집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옥에 갇혀 있던 바울을 지키던 간수도 자살하려다 바울을 통해 예수를 믿고 온 식구가 구원을 받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한 가정에서 어느 몇 사람만 구원받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저희 가정도 원래는 어머님이 혼자 신앙 생활을 하셨는데 많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며 온 가족이 예수를 믿었고 자녀들 7남매가 모두 예수 믿었을 뿐만 아니라 아들 4형제는 다 목사까지 되는 축복이 넘치는 가정이 되었습이다.
여러분! 우리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능치 못함이 없으신 것을 믿고 낙심치 말고 기도하며 모범된 생활을 하여 모두 인가귀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 결혼을 할 때에도 재산이나 인물이나 외적인 조건만을 보려 하지 말고 상대방의 속에 믿음이 있는가를 바로 보고 결혼하시기를 바랍니다. 결혼생활을 해도 교회에서부터 시작하고 애기를 낳아도 제일 먼저 하나님 성전에 나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주의 종으로부터 축복기도를 받도록 하고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지도해야 될 것입니다.
에스겔 11장 19-20절에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② 예배를 귀중히 여기는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 33절에 보면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하면서 베드로를 모셔다 놓고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또 얼마나 예배를 정성스럽게 드리고 말씀을 잘 들었던지 말씀을 듣는 순간에 성령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시간에도 말씀을 잘 경청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많은 은혜와 축복이 있게 되고 성령의 체험도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은 제단(예배)을 통하여 복을 받기 때문에 제단 생활을 게을리하고 실패하게 되면 모든 것에 실패하고 만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고넬료의 가정도 제단을 잘 쌓아서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구약의 아브라함도 어디를 가든지 제단을 먼저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제사(예배)를 무시하다가 목이 부러져 죽었고 그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제사를 경홀히 여기고 제사장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건만 성전 안에서 음란한 행위만 하다가 전쟁터에 나가 죽었고 하나님의 법궤마저도 빼앗겼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드리는 일을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신자들을 보면 자녀들이 학교에 안 가거나 과외수업 한 번 빠지면 큰 일이 나는 줄 알고 있지만 예배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에 저희 어머님은 그 날에 가정예배를 못드리면 금식을 하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은 안 하셨어도 예수 잘 믿으라는 말씀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 있는 고넬료의 가정은 예배를 중시함과 동시에 주의 종도 존경하고 귀중히 여겼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군인 장교로서 지위와 권세도 있는 사람이었으나 무식하고 보잘 것 없는 어부였던 베드로를 그는 하나님처럼 존경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33절에 보면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는 주의 종을 환영했고 주의 종에게 순종했고 주의 종 앞에 있는 것이 마치 하나님 앞에 있는 것 같이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고넬료와 같이 주의 종을 존경하고 잘 섬겨 축복받는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③ 사랑이 넘친 가정입니다.]
본문에 보면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경건한 종들과 상의하여 일을 한 것을 보면 그 가정은 사랑이 넘친 가정이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부모와 자식간에도, 형제간에도, 서로 사랑이 있는 가정이어야 진정 복된 가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복받을 수 있도록 신앙 생활을 잘해서 남을 구제도 할 수 있는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 생활을 해도 가정에 충실하고 남에게 본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가정이 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도록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④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순종하는 가정입니다.]
이 고넬료의 가정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순종하는 가정임을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복된 가정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인도 아래서 시작도 하고 진행도 하고 끝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바로 믿고 두려워 하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데서 참 경건도 나오고 죄도 안 짓게 되고 따라서 순종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축복을 받으려면 제일 첫자리는 하나님에게 드리고 하나님을 제일로 섬기는 데 있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⑤ 성령 충만한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 44절 이하에 보면 베드로가 예배를 인도하여 말씀을 전할 때에 모든 사람이 다 성령충만을 받고 방언도 했다고 했습니다.
성령 충만하고 믿음 충만한 가정은 어떠한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기도로써 해결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귀신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질병도 치유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가정은 모두 다 성령 충만한 가정이 되셔서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고넬료의 가정과 같이 되기 위하여 힘써 노력하시고 축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한 고넬료
행 10장 1~8절 / 김명혁목사
오늘 아침에는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이란 주제를 가지고 네 번째 설교를 합니다. 첫 번째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수가성 여인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두 번째는 아람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작은 계집아이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세 번째는 욥바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도르가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가이사랴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고넬료에 대해서 설교를 하겠습니다. 가이사랴는 사마리아 서해안에 위치한 변방 항구 도시였습니다.
위의 네 가지 사건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들은 모두 주변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들이었고 아람 사람들이었고 욥바 사람들이었고 가이사랴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들 주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들 역시 주변 사람들이란 사실입니다. 수가성 여인이 주변 사람이었고 포로로 잡혀갔던 작은 계집 아이가 주변 사람이었고 욥바에 살던 도르가가 주변 사람이었고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가 주변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중심 사람들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역설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기독교의 모순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기독교의 복음이 모순적이라고 고백했고 터툴리안도 기독교의 진리가 모순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터툴리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Credo quia absurdum est. I believe because it is absurd. 나는 모순되므로 믿는다.
이방 사람 고넬료는 가이사랴의 많은 이방인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사도행전11:1을 읽습니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가이사랴에 살던 이방인들이 옳은 데로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습니까?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대로 그 근원적인 원인은 도르가에 있었고 그 직접적인 원인을 고네료에게 있었습니다. 근원적으로는 도르가 때문에 직접적으로는 고넬료 때문에 가이사랴의 많은 사람들이 옳은 데로 즉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고넬료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고넬료는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한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는 로마 사람이었고 백부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군인 100명을 거느린 로마군의 장교 백부장은 개인적인 시간이 없는 군에 얽매인 너무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고넬료는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새 신자 중의 새 신자였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믿고 싶어서 자기 나름 대로 기도를 힘썼고 구제를 힘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새 신자이건 오래 된 신자이건 기도하고 구제하는 일을 힘쓰는 경건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런 사람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아마 강변교회에서 기도와 구제에 힘을 많이 쓰는 구역들 중의 하나는 삼익1구역일 것입니다. 지난 주에도 8명 중에서 여섯 명이 새벽기도회에 나왔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5명이 구제부 부원들과 함께 소망의 집에 가서 장애아들을 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는 고넬료를 아주 귀하게 보셨습니다. 너무 귀하게 보셨기 때문에 천사까지 그에게 보냈습니다. 하나님뿐 아니고 가이사랴 지역의 많은 사람들도 고넬료를 아주 귀하게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칭찬했다고 했습니다. 전도자가 되려면 칭찬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칭찬 듣고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제를 많이 하는 너그러운 사람이 칭찬을 듣습니다. 인색한 사람은 칭찬을 듣지 못합니다. 인색한 사람은 전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먼저 믿는 사람들이 너무 인색해서 전도의 문을 가로 막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도자가 되려면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의 시간을 드리는데 너그러워야 하고 사람들에게 구제의 손길을 펴는 데 너그러워야 합니다. 고넬료는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는 기도의 시간을 너그럽게 드렸고 사람들에게는 구제의 물질을 너그럽게 드렸습니다.
둘째 고넬료는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24). 고넬료는 바쁜 생활 중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했습니다. 고넬료는 혼자서 살아가는 고독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고넬료는 우선 가족 식구들과의 관계가 좋았습니다.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하인들과의 관계가 아주 좋았습니다. 고넬료의 하인들은 고넬료를 존경했습니다. "저희가[하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그 다음 일가와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았습니다.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그 다음 가이사랴 지방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과의 관계가 아주 좋았습니다.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어떤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 하는 것 같은데 가족 식구들이나 부하 직원들이나 친척들이나 이웃 사람들로부터는 칭찬대신 욕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인표 회장은 부하 직원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도자가 되려면 부하 직원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관계가 까다로운 사람은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친척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은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이웃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은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친척들과 왕래도 없고 인사도 없는 사람, 이웃과 왕래도 없고 인사도 없는 사람은 전도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고넬료는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었습니다. 모여라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집에 와라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집에 왔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한 사람이 전도를 잘 할 수 있습니다. 노오현 집사님과 김기배 집사님과 최종분 집사님이 전도를 비교적 많이 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인간관계가 원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오현 교수님이 강변교회에 와서 많이 변한 것을 사람들이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소리까지 힘 있게 변했다고 말을 합니다. 전도는 변화된 삶이고 전도는 원만한 인간관계입니다. 인간관계가 원만 하려면 평소에 인사도 잘하고 교제도 잘하고 구제도 잘 해야 합니다. 고네료는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고넬료는 하나님의 종을 존중하며 은혜를 사모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더니." 하나님의 사람 베드로에 대한 고넬료의 태도는 극진한 존경의 태도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통해서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고넬료는 다른 사무를 다 제쳐 놓고 베드로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욥바에 머물고 있던 베드로가 자기 집에 들어 왔을 때 고넬료는 그의 발 앞에 엎드리어 절을 했습니다.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어 절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얼마나 정성이 지극한 태도입니까? 얼마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태도입니까? 무릎을 꾸는 겸손한 자세와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전도를 할 수 있습니다. 베다니의 마리아도 주님의 발 앞에 앉아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결국 옥합을 깨뜨렸고 수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별과 같이 빛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박영희 a 집사님과 박영희 b 집사님이 전도를 비교적 많이 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종들을 존중히 여기며 간절한 마음으로 은혜를 사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설교를 비판적인 자세와 닫힌 마음으로 듣는 사람은 은혜를 받을 수도 없고 전도를 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허물이 있는 인간인 베드로 같은 하나님의 종들을 극진히 존경하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주실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미리암도 실수를 범했지요. 그러나 고넬료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의 종을 극진히 존경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국 고넬료는 자기는 물론 가이사랴의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전도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을 때 믿음으로 죄사함 받는 복음을 전했을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들 위에 내려오셨다고 했습니다. 저들은 모두 물 세례와 성령 세례를 받으며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이사랴의 많은 이방인들이 옳은 데로 돌아왔습니다. 고넬료는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 고넬료의 삶의 모습과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비교하여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새 신자 중의 새 신자인 고넬료가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했는데 과연 오래 믿은 우리들의 구제와 기도는 어느 수준에 머물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구제와 기도에 감동해서 천사까지 그에게 보내셨는데 나의 구제와 기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지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로마 군대에 매어 있던 고넬료의 인간관계가 원만했는데 과연 오래 믿는 우리들의 인간관계는 어느 수준에 머물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가족과의 관계 부하 직원들과의 관계 일가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새 신자 중의 새 신자인 고넬료가 하나님의 사람을 극진히 존중하며 무릎을 꿇고 은혜를 사모했는데 과연 오래 믿은 우리들의 자세와 마음 가짐이 어느 수준에 머물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극진히 존중하고 있는지 하나님이 주실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북한 사람들, 모슬렘 사람들, 집시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니 우리들의 일가와 친구들과 이웃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고넬료를 찾으시고 도르가를 찾으시고 작은 계집 아이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의 고넬료와 오늘의 도르가와 오늘의 작은 계집 아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 받는 비결
행 10장 1~8절, 민수기 6:22-26 / 안효관목사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이 주일 아침에 예배당에 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혜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3)고 말씀하신 것처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왔습니다.
오늘 구약성경에서 읽은 민수기 6:24절 이하에 보면 대제사장인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손을 들어 축복하면서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흔히 ‘아론의 축도’라고 말하는데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백성들을 축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시길 원하셨는데, 그 내용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기를 원한다’는 축복을 하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이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자가 되기보다는 은혜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기보다는 은혜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고, 건강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오신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고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의 은혜 안에서만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오늘도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덧입어 은혜 풍성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베풀어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당신의 백성들이 더욱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풍성한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은혜보다 더 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풍성한 은혜 가운데 거하지 못합니까?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하게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받을 신앙의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은혜를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날마다 풍성한 은혜를 주시지만, 우리는 그 은혜 안에 거하지 못하고 늘 영적인 목마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내 것으로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오늘 신약성경에 나오는 고넬료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은혜 받는 삶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넬료는 팔레스틴 땅으로 파송 받아 온 로마 군인입니다. 당시 가이사랴에는 이탈리아인으로 구성된 부대가 있었는데, 그게 본문 1절에 말씀하고 있는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입니다. 이탈리아(Italia)라는 말을 우리 말로 바꾸어서 ‘이달리야’라고 한 것입니다. 고넬료는 그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백부장은 100명의 군사를 거느린 장교입니다. 오늘날 군대로 하면 중대장 쯤 되는 중급 장교입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고넬료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은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고넬료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본문 2절에서는 그를 가리켜서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3절에도 보면 제 9시 기도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기도 중에 베드로를 청하여다가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를 받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기도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께 마음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고넬료를 가리켜서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군인에게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으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고넬료는 기도에 열심 했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은혜의 통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은혜 받고 싶으십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은혜 풍성한 삶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은혜를 받을 수 없고, 기도하지 않고 은혜 풍성한 삶을 살 수도 없습니다. 기도하고 말씀 듣는 것과 기도하지 않고 말씀 듣는 것은 차이가 많습니다. 같은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다릅니다.
기도는 우리 신앙인의 영혼과 신앙을 살아 숨쉬게 만드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기도가 끊어진 사람은 영혼의 호흡이 끊어진 사람입니다. 영혼의 호흡이 끊어진 사람에게 어떻게 풍성한 은혜가 임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도하시고, 영혼이 곤고해질 때일수록 더욱 기도할 때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고 봉사하는 것은 기름칠하지 않고 기계를 작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계에 기름칠을 하지 않으면 기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하지 않고 봉사하고 섬길 때에는 너무 힘이 듭니다.
봉사하다가 봉사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느끼신다면 ‘내가 더 기도해야겠구나. 기도가 부족하구나’ 그렇게 생각하시면 틀림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우들이 전부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잘 압니다. 그래서 집에서 기도하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솔직하게 생각해 보십시다. 집에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연속극 볼 시간은 있어도 기도할 시간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껄요. 일주일 내내 가봐야 식사기도 하는 시간 빼고, 1시간 정도 시간 내서 기도할 수 있습니까?
기도하기 가장 좋은 곳이 교회당입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당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새벽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면 저녁이라도 조용히 찾아와서 기도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교회당에 내 기도의 자리를 만들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에 내 기도의 자리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시고, 영혼이 곤고해질 때 내 기도의 자리에 와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영혼에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고넬료는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5절 이하에 보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불러다가 말씀을 들으라”는 음성을 듣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고넬료가 그 말씀대로 순종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넬료는 지배국의 군인으로 피지배국에 와서 근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이탈리아 군대의 장교입니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청해다가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 베드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로마가 지배하고 있는 피지배국 사람입니다. 그는 배우지도 못한 사람이요 어부 출신입니다. 당시 최고의 문명 혜택을 받았던 고넬료에 비하면 초리하기 그지없는 시골뜨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교육의 수준이나 문화혜택의 수준이나 신분의 수준이나 어느 것 하나를 비교해 보아도 고넬료는 베드로에 비하면 훨등하게 낫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청해다가 말씀을 들으라고 하시니까, 고넬료는 두말하지 않고 사람들을 보내 베드로를 정중하게 모셔옵니다. 그런 순종이 있었기에 베드로의 말씀을 통해서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고 싶으십니까?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순종할 때에 은혜가 임합니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 방해꾼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불순종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사람들은 모두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문둥병에 걸렸던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씀에 순종했을 때에 저주받은 불치의 병이 치유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도 “오른 편에 그물을 내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그물을 내렸을 때,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순종하는 길이 때론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대로 하면 손해가 없습니다. 축복이 있고 은혜가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라” 그러시면 사랑하고, “기도하라” 그러시면 기도하고, “섬기라” 그러시면 섬기면 됩니다. 거기에는 어떤 이유나 변명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냥 순종하면 됩니다. 그것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신 28:2)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가정에, 산업에, 창고에, 떡반죽 그릇에 복이 가득가득 임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과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고넬료는 하나님 앞에 은혜 받기 위해서 모였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24절에 보면, 고넬료는 베드로를 부르러 종들을 보내놓고는 일가와 가까운 친척들을 불러 모아놓고 베드로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고넬료는 베드로를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래서 3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하여 다 하나님 앞에 모였나이다.”
고넬료는 인간 베드로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기다렸습니다. 자기 혼자만 기다린 것이 아니라 일가친척들을 다 불러 모아놓고 기다렸습니다.
고넬료는 이미 은혜 받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고넬료에게 어찌 은혜가 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하고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44절 말씀에 보면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을 받게 됩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이 그들 가운데 임하자 말씀을 전하던 베드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 이방인에게 이렇게 큰 은혜 - 성령이 임하는 이런 놀라운 은혜가 임할 줄을 생각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하던 베드로조차 놀랄만한 은혜가 고넬료와 그 가족들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 자리에 어떤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사모한만큼 은혜를 받으실 것입니다. 사모하는 마음 없이 오셨다면 이 시간 은혜를 깊이 사모하시고 큰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십니다. 시편 107: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그렇습니다. 사모하는 영혼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만족하게 하십니다. 갈급한 영혼에게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세상적인 쾌락이나 물질을 더 사모하는 사람에게 어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겠습니까? 하나님보다 세상이 더 좋은 사람의 영혼에 어찌 하늘로부터 좋은 것이 임하겠습니까?
말씀을 사모하고 은혜를 사모할 때 은혜가 임하고 축복이 임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사모하시는 대로 큰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갈급해 하는 대로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좋은 것으로 채움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로 고넬료는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고넬료의 겸손을 보여주는 말씀이 25절입니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아래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를 보자 고넬료는 베드로의 발아래 넙적 엎드렸습니다. 마치 왕을 뵈옵는 것같이 베드로를 영접했습니다. 당시에 로마 장교가 엎드려 절을 하는 경우는 세 가지 경우 밖에 없었습니다. 황제를 알현할 때, 높은 상사가 찾아왔을 때, 그리고 그들의 신에게 경배할 때뿐입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베드로를 보자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그를 맞아들였습니다.
고넬료가 왜 이렇게 베드로 앞에 엎드려 절하며 그를 맞아들였습니까? 베드로에게 황제나 상관과 같은 어떤 지위가 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베드로와 고넬료의 사회적인 신분으로 본다면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고넬료는 지배국의 장교입니다. 반면 베드로는 피지배국의 아무런 사회적인 지위도 없는 시골뜨기일 뿐입니다. 고넬료는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반면 베드로는 배운 것 없는 어부 출신입니다. 어느 것을 보아도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있다면 오직 하나,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고, 고넬료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고넬료와 같은 겸손한 자세로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은혜가 임합니다. 고넬료는 지금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무릎을 꿇은 것뿐입니다.
은혜와 축복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은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에게 절대로 은혜를 베풀지 않으십니다. 교만한 자에게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벧전 5:5)고 말씀하셨습니다. 교만은 천사를 마귀로 만들었습니다. 교만은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나 겸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립니다. 지극히 높은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신 예수님,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던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2000년이 넘는 오늘에까지 그렇게 찬송을 받고 영광을 받으신지 아십니까? 겸손하셨고, 하나님께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지 않으셨다면 사람들이 그 예수님을 사랑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 위에 군림하려 하셨고 제자들에게 강압적으로 대하셨다면,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실 때에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제발 오시지 말라’고 말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경건한 신앙인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그분은 겸손하셨고, 지극히 낮은 자리에까지 내려가서 우리를 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늘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사람이든 교만한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도 자기 앞에서 겸손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우리 주위에 가까운 친구가 얼마나 되는지 보면, 내가 그동안 겸손하게 살아왔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생명을 주기까지 사랑해줄 친구가 없다면 나는 겸손하지 못하게 살아왔습니다.
가 낮아질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지존하신 영광의 자리에 계십니다. 그 자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는 지존하신 영광의 자리에 계신데, 내가 교만하여 높아지면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하나님은 더욱 존귀해지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기에 내가 낮아질 때 영광을 받으신 그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높아지고 영광을 받으신 대로 내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컴퓨터에다 설교제목과 본문만 써놓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제 딸 예나가 장난을 쳐놨습니다. ‘은혜 받는 비결’이라고 제목을 써놓고 잠깐 다른 곳에 갔다 왔더니, 예나가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라. 그러면 은혜를 받을 것이다” 그렇게 써 놓은 것입니다. 그 글을 읽고 저는 딸 예나가 아주 신앙이 성숙한 아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가만히 읽어보니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라. 그러면 은혜를 받을 것이다.” 그렇게 써놓은 것이 아니라, “예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그러면 은혜를 받을 것이다.” 그렇게 써놓은 것입니다. 예나는 “예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라고 썼는데, 저는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라”라고 쓴 줄 알고 대단한 아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아부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많은데,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은혜받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사람을 기쁘게 해서는 절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사모하여 모인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겸손한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림으로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고넬료의 가정처럼
행 10장 1~8절 / 홍문수목사
5월 가정의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을 없을 겁니다. 그러기에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가정의 달 행사로 분주합니다. 정신없이 사는 현대인들이기에 이렇게 해서라도 가정을 챙기는 게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행사들이 연례적인 겉치레로 지나간다면,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그 이상의 유익이 없습니다. 행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가정에 대한 깊은 성찰입니다. 우리 가정의 형편을 잘 살펴보고 반성하면서 더 좋은 가정으로 만들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 진정한 가정의 달로서 의미가 있을 겁니다. 그런 취지에서 오늘은 성경 안에서 가장 모범적인 가정 중 하나인 ‘고넬료의 가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가정과 우리 가정을 비교해 보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더 좋은 가정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고넬료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1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당시 로마 제국의 도시인 가이사랴에 주둔하던 로마 군대(이달리야대)의 백부장입니다. 백부장은 당시 100명의 군인을 통솔하는 군인입니다. 요즘으로 하면 중대장에 해당되지만, 그 지위와 권세는 비교가 되지 않게 컸습니다. 대개 식민지 주둔군이 그렇죠. 옛날 일제 치하에 일개 순사만 되어도 얼마나 세도를 부렸습니까? 그런 점을 감안하면 백부장은 그 당시 상당한 지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 군인들은 아주 잔인했습니다. 정복자로서 횡포를 부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넬료는 아주 훌륭한 신앙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유의할 사항입니다. 당시 1세기는 과도기였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심으로 구약 시대에서 신약 시대로 넘어온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이었으므로 개중에는 그 신앙이 아직 구약의 상태로 머물러 있던 신앙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0장 뒷부분을 보면, 고넬료가 베드로를 통해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혹시 처음 믿는 초신자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아직 예수님을 소개받지 못했지만, 이미 경건한 유대인들로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소개 받고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모범이 될 정도로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데,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가정 중심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고넬료의 가정에 앵글을 맞추고 본문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본문을 보면 고넬료의 가정이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가정을 이룬 것입니다. 하나씩 살펴보고 저와 여러분의 가정도 고넬료 가정처럼 좋은 가정들로 만들어 가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1] 신앙이 있는 가정
2절 보면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 ”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넬료는 혼자만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온 가족으로 하여금 다 함께 믿게 했습니다. 온 가족이 다 함께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가정 행복의 기본입니다.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신앙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고 교회나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닙니다. 신앙은 가치관이요, 인생관입니다. 말하자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며 방향감각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들이 신앙이 있고 없고 하면 서로 다른 가치관, 인생관을 갖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될 텐데 얼마나 피곤한 일입니까? 불화의 요소가 항상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집안에 원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마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신앙이 통일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불신앙으로 통일하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죠. 그것은 다함께 멸망하는 길입니다. 신앙은 내세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고 결정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그렇지, 사실은 현세보다 내세가 더 중요합니다. 현세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게 당장은 중요하죠. 그러나 내세에 관해 무지한 채 살아간다면, 그것은 아주 어리석인 일입니다. 현세는 잠깐입니다. 반면에 내세는 영원합니다. 아무리 현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잘 먹고 잘 산다 하더라도 내세에 실패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16:26 “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여기서 ‘목숨’은 ‘영혼’을 가리키는데, 영혼이 내세에 지옥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 받으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눅16:19 이하의 말씀을 보면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사로는 비참한 현세의 삶을 살았지만 신앙이 있었기에 천국에 들어가 영생 복락을 누립니다. 반면에 부자는 모든 게 다 있어도 신앙이 없었기에 음부에 들어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머리 보이는 아브라함에게 요청합니다. 나사로를 시켜서 물 한 방울만이라도 갖다가 혀에 축여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죠. 그러니까 이번에는 세상에 있는 자기 형제들에게 이 비참한 사실을 알려줘서 제발 오지 않도록 전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거절당합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나 홀로 신앙은 곤란합니다. 가정 복음화를 위해 수고해야 됩니다. 제일 좋은 것은 가장이 먼저 예수 믿고 그로 인하여 차례차례 믿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다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가족 중에서 위치가 어떠하든지 먼저 믿은 사람이 우선 “내가 가정의 제사장이다” 생각하고 나머지 가족들을 기도하며 인도하면 됩니다. 한 피 나누고 한 지붕 밑에서, 심지어 한 이불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하나는 천국, 하나는 지옥 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 있겠습니까? ‘영원한 이산가족’이 되는 겁니다. 물론 가족을 전도한다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차라리 남을 전도하는 게 쉽죠. 그러나 우리가 뜻을 정하고 기도하며 수고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뤄주실 줄로 믿습니다.
물론 선조로부터 신앙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으면 더 좋겠죠. 그러나 초대신앙도 축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초대신앙의 경우 시험도 많고 갈등도 많지만, 그래도 보람이 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대로 내려오던 불신앙의 고리를 끊고 나로부터 앞으로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자자손손 믿음의 가문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이를 위해 특별히 자녀들에게 신앙을 잘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산 물려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공부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 물려주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해 봅니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조금 주는 것이다. 공부시키는 것은 많이 물려주는 것이다. 신앙을 물려주는 것은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또 이렇게 비유해 봅니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물고기를 주는 것이다. 공부를 시키는 것은 낚시질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신앙을 물려주는 것은 배와 그물을 주고, 그물질하는 법까지 가르쳐주는 것이다.” 재산을 물려주고 공부를 시키는 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죠. 우선순위가 뭐냐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우선순위를 지키지 못합니다.
한번은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 대학 캠퍼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건물 앞에 설립자 하버드 목사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다 까만데 발등만 반들반들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하버드의 발을 만지면 자녀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겁니다. 저도 만졌죠, 뭐. 그런데 우리 아이들 성적이 안 올라가더군요. 물론 괜한 소리죠. 부모 마음은 다 같은 겁니다. 미국인 부모나 한국인 부모나 자녀가 공부 잘하는 것은 동일한 소원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자녀의 신앙을 위해 더 큰 소원을 가져야 됩니다. 부디 여러분의 가정이 고넬료 가정처럼 온 가족이 자자손손 예수 믿고 복을 누리는 가정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사랑이 있는 가정
본문 2절 다시 보면 “온 집으로 더불어 ... ” 그랬습니다. 이 말은 온 가족이 신앙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더 나아가 한 마음 한 뜻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가득한 화목한 가정이었을 겁니다. 행10:24 보면 사람을 보내서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해 놓고 일가친척까지 다 모여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정도면 화목한 가정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가정은 하나님의 마지막 창조물이며,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창1:27 보면 인간을 창조하되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그 말은 가정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이 모든 창조 세계를 보시며 뭐라고 하셨나요? 창1:31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 말씀은 창조 세계의 완벽함과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아름다움, 그 중에서도 가정의 아름다운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가정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행복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대로만 살아가면 천국과 같이 아름답고 행복해집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살아가면 지옥과 같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뭐겠습니까? 한 마디로 ‘사랑’이죠. 사랑은 비유컨대 ‘가정의 산소’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질식합니다. 지옥 같은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사랑이 있으면 편안합니다. 천국 같은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에 사랑이 있으면 지상 천국이 되고, 사랑이 없으면 지상 지옥이 되는 겁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가정들 가운데서도 과거 지옥 같은 고통 속에 있다가 예수 믿고 변화되어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천국 같은 가정으로 변화된 케이스가 적지 않으실 겁니다.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도로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죄성의 기본 특징이 이기심이거든요. 부부 사이, 부모 자식 사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관계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이에서도 이기심이 발동합니다. 그렇게 되면 여지없이 관계가 깨어지고, 불화가 생깁니다. 그리고 일단 가정불화가 생기면 대책이 없습니다. 물질이 있으면 뭐하고, 명예 권세가 있으면 뭐합니까? 인생이 마냥 괴로워지는 겁니다. 잠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런 경우 유일한 치유책은 오직 하나 사랑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사랑은 다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뜨겁던 부부의 사랑도 세월이 가면 식어집니다. 자식은 부모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배은망덕합니다. 가장 고상한 부모의 사랑조차 때로는 변질됩니다. 다 이기심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완전합니다. 사49:15 보면 인간의 불완전한 사랑과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비교해서 설명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인간사랑 중 최고인 부모 사랑조차 때로는 불완전하다는 겁니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아가페 사랑, 이타적인 사랑만이 참 사랑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십자가에 죄인들의 대신해서 피 흘려 희생하신 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참 사랑을 체험하고 배우면 인간관계가 이기적인 관계에서 이타적인 관계로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행복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불신 가정은 물론이고, 신앙의 가정에서조차 참 사랑을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신앙은 갖고 있으되 성숙하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성숙하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옛 사람의 이기적인 모습을 살아가면 참 사랑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오직 성숙한 자, 즉 성령 충만한 자만이 이타적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성령 충만을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뜻대로 사는 겁니다. 그러면 참 사랑이 가능해집니다. 엡5:22~6:4에 보면 부부 사랑, 부모 자식 사랑의 가르침이 나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희생적으로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는 자식을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만 가르치고 ... 그런데 이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왜 그래요? 인간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서로 자기를 위해 달라고만 하므로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성령 충만해야 됩니다. 그래서 앞에 엡5:18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그럴 때 비로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예수님이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사랑이 뭡니까? 말은 많이 하지만 때로는 막연한 느낌이 듭니다.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양보하고, 섬기고, 희생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도 막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아주 간단한 것을 제안해 봅니다. 우리 가정에 행복과 불행이 말 몇 마디로 좌우될 수도 있습니다. 말로도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면 다른 것은 볼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말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나하나 실천해 나아가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이런 기본적인 것부터 부족해서 많은 불화와 문제들이 야기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언어부터 사랑의 언어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언어를 통해 가정의 행복이 깨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사랑의 언어가 부족합니다. 이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사실은 엄청나게 큰 문제입니다. 언어에는 하나님이 신비로운 능력이 있습니다.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언어에는 사망의 언어와 생명의 언어가 있습니다. 생명의 언어는 무엇입니까? 별로 어려운 게 아닙니다. 아이들도 할 줄 아는 말입니다. 사랑, 용서, 칭찬, 격려, 감사, ...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겁니다. 참 이상하게 이런 게 우리에게 아주 부족합니다. 이런 것들은 표현하지 꼭 화가 나고 미움이 생길 때만 그런 마음을 마구 표출합니다. 그러니까 사소한 일로 엉뚱하게 가정의 화목이 깨지곤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언어를 잘 구사해야 합니다.
어느 가정에서 딸아이가 휴대폰을 갖고 문자 메시지를 합니다. 옆에 있던 엄마가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딸이 가르쳐주니까 더듬 더듬 따라합니다. 처음 배워서 누구에게 제일 먼저 보낼까 하다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금세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 지금 뭐 하는 거야?” “뭐긴요, 나도 문자 배웠지.” “근데 왜 ‘여보 사망해’라고 보낸 거야?” “예? 나는 ‘여보 사랑해’라고 했는데 ... ” ㄹ 자판 누를 걸 옆에 있는 ㅁ 자판을 잘못 눌렀던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한 실수였습니다. 이처럼 어색하고 서툴더라도 자꾸 표현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가정에 사랑이 충만해 질 것입니다.
사실은 생명의 언어가 별 게 아닙니다. 몇 가지 말만 잘 해도 충분합니다. 고마워, 미안해, 괜찮아, 사랑해 이 정도만 해도 됩니다. 외국어도 그렇잖아요. 이 몇 가지만 배워 놓으면 대충 통합니다. 가정에서 이렇게 쉬운 말들만 잘 표현해도 분위기가 확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가정들이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해져서 지상의 작은 천국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3] 사명이 있는 가정
본문 2절을 다시 보면 후반 절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 ...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 ” 그랬습니다. 그의 가정은 받은 축복을 이웃과 나누는 가정이었습니다. 행10:24에는 베드로를 청해 놓고 일가친척들은 물론이고 친구들도 불러 모았습니다. 이웃과 복음을 나눈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고넬료의 아름다운 인격은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행10:22) 이런 가정이었기에 하나님은 고넬료 가정을 사용해서 베드로의 편견(이방인을 배제하고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벗겨 주는 역할을 감당하게 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한 것,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 등의 배경에 고넬료 가정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가정에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과 구원의 복음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가족들끼리 말 먹고 잘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이웃과 세상을 향해 복을 나누는 사명을 감당해야 됩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실 때의 목적이 바로 복의 근원(=복의 통로)이 되게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과 가정은 축복의 웅덩이가 아닙니다. 흘려보내는 축복의 시냇물입니다.
이렇게 사명을 감당할 때 그 가정을 하나님이 더욱 풍성하게 축복하십니다. 잠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구제하고 나누는데 신기하게 더욱 풍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빌립보교회에서 에바브로 디도 집사를 통해 선교비를 전달받았습니다. 그때 바울은 감사하면서 하나의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빌4:17~19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복의 통로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해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물의 원리와 같습니다. 물을 퍼내면 밑에서 새 물이 솟아올라옵니다. 그러나 우물에서 물을 퍼내지 않으면 서서히 썩어가는 것입니다. 축복을 나눌 때 더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이 있는 가정은 늘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성합니다. 꼭 이런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고넬료의 가정은 이처럼 신앙이 있고 사랑이 있고 사명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행복이 있고, 영광이 가득한 가정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고넬료의 가정과 비교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디 고넬료의 가정 같이 지상의 작은 천국 만드시고, 행복한 인생 의미 있는 인생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모범된 신앙가정
행 10:1~8 / 최건호목사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10:2). 5월을 보내는 마지막 주일에 우리는 가정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신성한 기관이며 창조와 축복의 기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고넬료의 가정이 나옵니다. 우리는 고넬료의 가정을 통하여 현대사회의 붕괴되어가는 가정의 회복에 대한 좋은 모범을 보게 됩니다.
첫째, 고넬료의 가정은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가정이었습니다(행10:2a).가정의 튼튼한 행복의 기초가 무엇입니까? 지성과 교양은 가정의 기초가 되거나 행복의 촛대가 되지 못합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회복은 교양과 도덕적 교훈(敎訓)만 가지고는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을 순종하여 지키려는 열정만이 가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신앙의 든든한 믿음의 기초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초가 있어야 세상의 유행이나 악한 파도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닷이되고 노정기(路程記)가 될 때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인간의 바른 길과 진리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고넬료의 가정은 기도와 구제(救濟)에 힘쓰는 가정이었습니다(행10:2b).우리 사회는 더 많이 소유하고 누리는 데서 행복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소유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기도와 구제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사랑에 감격하여 그 은혜를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때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나눠주는데서 오는 기쁨, 베푸는 데서 오는 행복감이 가득할 때만이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치고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깨달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총에 감격한 사람입니다. 그와 그의 가정은 다른 사람을 심판하거나 판단하기 전에 기도하고 구제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셋째, 고넬료의 가정은 하나님께 인정(認定)받은 가정이었습니다(행10:4).고넬료의 기도와 구제는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1-42절의 말씀을 보면 주님의 이름으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일은 그의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인의 이름으로, 선지자의 이름으로 의인이나 선지자를 대접하면 하나님께서 그 의인에게 주는 상과 복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넬료의 가정은 상을 받기 위해 구제에 힘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는 데서 기쁨을 느꼈습니다. 고넬료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종들에게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나 항상 구제와 기도에 힘써서 봉사를 통한 선교, 봉사를 통한 복음 증거를 하여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의 실천이 없고 진리만 떠드는 곳은 울리는 꽹과리만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고넬료의 가정을 본받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구제와 기도에 힘써 우리의 가정이 구원의 방주가 되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가정, 예수님의 기도의 응답을 받는 축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고넬료의 모범 가정
행 10장 1~8절 / 최건호목사
본문에 등장하는 고넬료라는 사람은 유대인이 아닌 로마사람으로 이방인 크리스찬이었습니다. 그는 온 가족이 주님을 믿도록 했고 가정에서 기도와 구제가 끊이지 않도록 가정을 인도한 훌륭한 가장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 나타나는 기독교 모범 가정들 중 고넬료의 가정을 깊이 살펴봄으로써 어떤 가정이 예수님을 잘 믿을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도 모범이 되는 기독교 가정인지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고넬료의 가정은 온 가족이 더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었습니다(행10:2). 하나님을 향해서 경건한 가족들이 됐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종교적인 특별 의식을 갖는 것이나 찬양을 부르는 것은 경건에 속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마음의 경건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경건이란 하나님의 거룩성을 갈망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며 전적으로 신뢰하고 싶어 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계속하며 자신의 삶의 전체를 의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가족 전체가 신앙으로 연합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거룩하고 경건한 가정이었습니다. 그의 가정은 일하는 일꾼들 까지도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훈련을 받았습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갈망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의지하는 고넬료의 가정이야말로 경건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고넬료의 가정과 같이 경건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가정에 축복을 쌓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둘째, 고넬료의 가정은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인정된 가정입니다(행10:4). 믿음의 가정의 특색은 가정에 기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은 어려울 때나 위험한 날에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총과 축복에 감사며 날마다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가정이 바로 크리스찬 가정입니다. 거기에는 가족이 합심하고 연합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며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모임이 있는 곳이 믿음의 가정의 특색입니다. 그래서 기도로 일치하는 공동체입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이러한 기도로 일치하는 기도 공동체였습니다. 또한 고넬료는 기도하며 사랑과 구제를 실천했다고 했습니다. 구제는 동정심이나 불쌍히 여기는 감정 뿐 아니라 주님의 사랑의 기억하면서 서로가 나누어주고 섬기는 마음으로 은밀히 돕는 것이 구제입니다. 구제할 때 받는 자에게 수치감을 주고 주는 자가 자기를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은 진정한 나눔이 될 수 없습니다. 구제를 할 때는 은밀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밀히 사랑을 베푸는 손길을 기억하시고 사랑하시며 축복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해야합니다.
셋째, 고넬료의 가정은 하나님의 사도들을 통해 말씀을 배우는 가정이었습니다(행10:44). 훌륭한 저명인사나 사회 인사가 많이 드나드는 것도 좋지만 고넬료의 가정에서는 베드로를 모셔다 놓고 말씀을 듣다가 성령이 충만한 가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가 유대인에게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열렸다는 증거였습니다. 이것은 계기로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을 시작으로 천하 모든 나라에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믿고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오늘 우리 모든 가정이 성령이 충만한 가정이 되도록 말씀을 붙드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넬료의 가정과 같이 가정 전체가 신앙으로 연합하여 말씀 사모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링컨과 어거스틴이 믿음의 가정에서 양육 받은 것처럼 우리들의 믿음의 가정은 하나님 나라의 큰 기둥 같은 일꾼, 금 그릇 같은 일꾼들이 나오는 훈련장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