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천 주식회사 맹을성 사장은 ‘데스 밸리(death valley)’ 클럽을 인수해서 그 운영을 박 상무에게 맡겼다. 맹 사장은 대외적인 체면과 이미지 때문에 직접 운영할 수는 없었다. 박천순 상무가 스튜디어스 출신이고, 나이는 55살이나 되었지만, 아직은 외모가 받쳐주고, 사람 관리를 잘 하기 때문이었다.
박 상무는 그동안 회사에서 하는 일이 별로 없고 자신이 실력 발휘할 분야가 마땅치 않아 공연히 월급이나 축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이번에 사장이 클럽을 운영하라고 하니까 신이 났다. 24시간 일을 했다. 스튜디어스를 지낸 동료, 후배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술값은 공짜로 해준다고 선언했다. 미모나 몸매가 되는 여자 손님들이 많이 클럽에 와야 물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장사가 잘 되기 때문이었다.
클럽의 속성상 40살만 넘으면 늙은 할머니 취급을 하기 때문에, 가급적 40살 미만의 여자들에게만 연락했다. 소문을 듣고 늙은 여자들이 전화를 해오면, 박 상무는 자신은 별 실권이 없다고 거짓말로 둘러대고 끊었다. 하지만 소문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전직 스튜디어스 출신이 돈 많은 영감 세컨드가 되어 클럽을 인수했다는 소문이 강남 바닥에 쫙 퍼졌다. 박 상무는 뜻하지 않게 맹 사장의 세컨드로 신분이 상승했다. 사람들은 박천순 상무가 돈많은 재벌 2세와 동거중이라고 알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차기 대선에 출마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유력 정치인의 내연녀라는 소문을 냈다.
그래서 가끔 정치부 기자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오기도 했다. ‘요새 같은 극심한 불황에 어떻게 생각하고 큰 투자를 클럽에 했느냐?’ ‘강남의 클럽들이 다 문을 닫는 추세인데, 박 상무는 무슨 배짱으로 인수했느냐?’ ‘클럽의 실제 소유자는 정치인인가, 재력가인가, 연예인인가?’ 등의 질문을 퍼부었다. 심지어는 현직 검찰총장의 이복동생이라는 루머도 퍼졌다.
박 상무는 그런 우매한 질문에는 늘 웃으면서 염화시중의 미소로 답했다. 세상 일, 남녀 사이의 일, 술집 문제에 대해서는 꼭 직문직답을 하거나 사실조사를 받는 것처럼 답할 문제가 아니고, 이심전심으로 알아서 이해하라는 태도였다. 그런 미묘한 태도 때문에 ‘데스 밸리’ 클럽과 ‘박 상무’의 존재는 장안에서 커다란 화제거리로 급부상되었다.
‘데스 밸리’ 클럽에서는 상무가 아니라, 전권을 휘두르는 ‘박 사장’ 또는 ‘박 회장’, ‘박 여사’로 불리워졌다. 어떤 아부쟁이는 심지어 박 상무를 ‘영부인’이라고까지 극존칭을 썼다. 박 상무는 처녀시절부터 자신의 외모나 신장, 음성, 학력, 두뇌, 성격 등을 종합하면 당연히 대통령 부인보다 월등 낫다고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영부인’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에 대해 별로 거부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평소 친하게 지내는 경찰서장이 그런 호칭을 클럽에서 잘못 사용하면 영부인 모욕죄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young woman'으로 바꿔서 불러달라고 했다.
박 상무는 심혈을 기울여서 데스 밸리의 체제를 재정비했다. 우선 중요한 포지션에 모두 스튜디어스 출신을 배치했다. 일부 인재는 현직에서 근무하는 스튜디어스를 스카웃해서 항공사에 사표를 내고 오도록 영입했다. 영업도 잘 못하면서 잘난 척이나 하는 남자들은 여성 파워에 밀려 모두 구조조정되었다.
끝까지 버티면서 나가지 않고 근무를 계속 하겠다고 우기는 남자들은 영업직이나 관리직에서 화장실 청소 담당으로 바꾸었다. 영업 개시 전과 개시 후에는 여자화장실 청소까지 맡겼다. 그리고 일부러 아는 여자들을 시켜서, 전 관리직원이며 현 청소담당직원이 화장실 앞에서 청소를 하면서 여자들을 응큼한 눈으로 쳐다보았다고 트집을 잡아서 시말서를 쓰도록 했다.
성경에도, ‘눈으로 간음하는 것도 간음이고, 마음 속으로도 간음하지 말라.’고 했는데,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 깨끗하고 성스러운 여자를 클럽에서 화장실 청소하는 남자가 응큼하고 더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라고 단죄했다. 영업 및 관리를 담당했던 남자들은 이런 여자의 편향적인 시선을 다툴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그 남자 직원들은 한 달 이내에 모두 사표를 내고 말았다. 결국 클럽 ‘데스 밸리’는 박 상무를 비롯해서 모두 스튜디어스 출신의 여성으로 채워졌다. 그래서 쫓겨난 남자직원들은 클럽의 이름이 ‘죽음의 계곡’이라고 지은 것이 처음부터 남자들의 죽음터라는 것을 운명적으로 예견한 것 같다는 괴담이 퍼졌다.
하늘천주식회사의 맹을성 사장은 술을 마시고 갑자기 그것이 하고 싶어졌다. 평소에는 늘 사전에 미리 약속을 하고 갔는데, 그날은 아무 연락도 하지 않고, 택시를 타고 곧 바로 오피스텔로 갔다. 영미는 없었다. 전화를 해도 전원이 꺼져 있었다.
화가 단단히 났다. ‘분명히 젊은 놈과 있는 게 확실해!’ 음성 메시지를 남겨놓아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오피스텔 부근 커피숍에서 기다렸다. 30분이 지나도 아무런 응답이 없자, 밖으로 나왔다.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리는 사람이 현식이었다. 술에 취한 상태였다.
“아니, 김 과장! 이 늦은 시간에 여기는 왠 일인가?”
“사장님 아니세요.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이 부근에서 사람들 만나 술 한잔 하고, 이제 들어가는 길이야? 술을 많이 했구먼. 조심해서 들어가.”
“예. 알겠습니다.”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맹 사장은 현식이 타고 온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문득 수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저 놈이 영미와 내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총각이니까 영미와 사귀는 것 같기eh 하고.’ 맹 사장은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영미를 너무 믿고 있었구나. 저 놈이 분명 범인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맹 사장은 다시 택시를 돌려 오피스텔 건너 편에서 내렸다. 그리고 동정을 살폈다. 영미나 현식 과장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매복을 하고 수색을 하기로 했다.
맹 사장은 젊었을 때 돈도 없고 빽도 없었기 때문에 군대 가서 최전방 부대에 배치되어 고생을 죽도록 했다. 맹 사장이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고 돈도 있고 빽이 있는 상태가 되어서 보니까, 그동안 맹 사장이 고생하고 있던 시절에 수많은 정치인, 고위 공직자, 돈 많은 사람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군대를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병역비리가 그토록 심각했던 것인지 미처 몰랐다. 하기야 참새떼가 기러기들이 높은 창공에서 날아가면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턱이 없는 노릇이었다.
어떤 사람은 대통령후보로 유력한 상황까지 올라갔다가 아들 병역비리문제로 선거에서 패배하였다는 뉴스를 본 것도 같았다.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나라에서 군대를 어떤 이유에서든지 안 갔거나 못 갔으면 조용히나 있지, 군대 가서 고생하고 온 사람 기분 나쁘게, 면제 받은 사람들이 날뛰면서 국회의원, 장관, 체육대학 교수, 스포츠협회 회장, 재벌이 되어 잘난 척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면제 받았다는 사람들이 대부분 맹 사장보다 키도 크고 몸무게도 더 나가는 것 같고, 안경도 안 쓰고 정력이 매우 센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면제 판정을 받은 다음 각종 질병에서 해방되고 체력단련을 열심히 해서 몸도 운동선수처럼 된 것 같았다.
그래서 군대 갔다 온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TV에서 정치인들 병역면제 이야기만 나오면 맹 사장은 폭탄주를 10잔 연거푸 마시고 울분을 토하면서 내장으로부터는 음식물도 토했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상해가면서 울분과 음식물을 토해내봤자.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장관후보는 병역면제사유가 불분명했고, 오래 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답변했다. 군대는 가지 않았지만, 테니스나 골프는 프로 선수 이상의 실력이었다. 몇십억원하는 고급아파트에서 떵떵거리면서 살고, 자녀들은 모두 미국 유학을 보내고 명품 옷을 입고 다니면서, 청문회만 나오면 서민 위주로 정책을 해야 하고, 정의와 공평한 사회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었다.
맹 사장은 군대 있을 때 상급자로부터 기합도 숱하게 받았다. 어떤 때는 너무 심한 기합을 받다가 기절하기도 했다. 의무실로 실려감으로써 유격훈련에서 빠지니 살 것 같았다. 의무실에 누워 있는 동안 동료들이 유격장에서 뺑뺑이 도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으니, 기분이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았다. 특히 맹 사장을 괴롭히던 최 상병과 정 상병은 훈련을 받다가 다리가 부러졌으면 하는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최 상병과 정 상병은 성적이 좋았다고 포상휴가를 가게 되었고, 가장 친한 공 일병만 왼쪽 다리가 부러져서 기브스를 하고 있었다. 맹 사장도 당시 일병이었는데, 공 일병과 너무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서로 사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당시 맹 일병과 가깝게 지내던 동료는 공 일병과 이 일병이 있었는데, 세 사람이 너무 붙어 있어, 사람들은 ‘맹꽁이’ 삼형제라고 불렀다. 세 사람의 성씨가 ‘맹, 공, 이’라서 그런 것이었지만, 실제로 세 사람은 군대에서 고문관 역할을 할 정도로 맹꽁이였음은 틀림없었다.
그래서 세 사람이 붙어 있으면 고참 병장들이 지나가다가 맹꽁이 삼형제 머리를 주먹으로 세 대씩 세게 내리쳤다. 그 이유는 두부에 충격을 주어야 뇌세포가 활성화되어 우매한 맹꽁이에서 지혜로운 개구리로 진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고참 병장들은 맹꽁이 삼형제가 빨리 개구리로 신분 상승되지 않으면, 사랑하고 아끼는 맹꽁이들의 머리를 자신들이 제대한 후 다른 고참들이 계속해서 때리고 주물럭거리면 개구리는 커녕 늙어빠진 올챙이로 전락할 것을 심각하게 걱정했다.
맹 일병이 미워하고 증오하던 상병 두 사람은 아무 일이 없고, 공 일병만 사고를 당한 것을 보고, 맹 일병은 이 세상에는 정의도 없고, 하나님도 믿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오로지 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고, 힘없는 사람은 다리가 부러진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래서 맹 일병이 기절해서 유격훈련을 중단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마귀와 사탄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주고 보살펴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맹 사장은 군복무를 마친 다음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같은 교회에서 청년부 여신도를 성추행한 사실로 교회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었다.
맹 사장은 전방에서 매복 수색임무를 오랫동안 담당하였다. 최전방 철책선 안에 들어가서 풀밭에 가만히 앉아서 밤을 새운다. 저녁 식사를 한 다음, 얼굴과 손을 숯검댕이로 까맣게 칠하고, 무장을 하고 들어가 앉아서 매복을 시작한다. 혹시 침투해오는 적군이 있는지 감시하고 수색하는 것이다. 그런 매복은 정말 힘이 들었다.
봄이나 가을에는 괜찮지만, 한 겨울 추운 동지섣달에 벌판에 한 밤에 장시간 앉아 있으면 견디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때는 차라리 조용히 호흡이 멈추고 심장 박동이 정지하고, 뇌세포가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래서 고통 없이 편안하게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한 여름에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오듯 흘렀다. 군복을 입고 철모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무더위는 3배로 증폭되었다. 맹 일병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고생하고 있는데, 모기는 종족의 증식을 위해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맹 일병의 피를 빨아먹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깜빡 졸다가 한 놈에게 물렸으면 그만 이지 다른 부족의 모기들이 줄을 지어 달라들었다. 그렇다고 매복에서는 침묵과 무소음이 철칙이기 때문에 모기를 손바닥으로 쳐서 때려잡을 수도 없었다. 소리가 나면 적에게 위치가 노출되어 사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적의 총에 맞아 죽는 것보다는 모기에게 물려 혈액의 극소량을 제공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맹 일병은 이렇게 많은 모기에게 피를 주느니, 차라리 적십자단체에서 하라고 하는 헌혈을 많이 하고 군에 올 것 그랬다고 후회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