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9일자로 쓴"이승만, 분단의 원흉이고 한낱 미국의 괴뢰였나?" 라는 글에서 광복과 동시에 찾아온 우리민족의 분단 상황에 대해 나는 분명히"백범 김구의 단정반대론도 옳았고 우남 이승만의 단정론도 옳았다!"고 명확히 지적-주장한바 있다. 오늘의 이글은 누구들처럼 무슨 역사학자도 아니고 교수나 박사도 아닌 필자가 도대체 어떤 근거 혹은 논거를 가지고 그런 과감한 주장과 해석을 하게 되었는지를 보충 설명하는것이 독자 ,특히 젊은세대들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쓰게 된것이다. 우리 역사 특히 지금의 우리와 직결되어있는 조선왕조 5백년동안 당시의 국가 공식기록상으로뿐만아니라 지금까지도(한국역사가 존속하는한 앞으로도 영구히) 충신-열사로 추앙되는 위인들도 많지만, 천하의 간신-역적-매국노로 낙인찍혀 있는 인물들도 결코 적지않다는것은 온국민이 익히 알고 있는 史實 이다.
조선왕조 5백년 동안은 그 이전의 어느왕조때보다 더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국난이 몇번이나 있었고 가장 큰 위기는 다름아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었다는 것 역시 온국민이 익히 알고 있다.
이쯤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역사에 결코 씻지못할 三田渡의 치욕으로 남아있는 병자호란 당시, 조선왕조 16대국왕인 인조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청태종을 당해내지 못하고 남한 산성에서 고립되어 수십일을 버티다가 결국, 치욕스러운 항복의식을 치르고 난후에야 가까스로 사직을 보전할수 있었던 과정에서, 君臣이 전원 玉碎를 각오하고 라도 끝까지 항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청나라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격다가 처형당한 홍익한.윤집.오달제[三學士]의 충절과 기개는 천추만대에 길이 빛날 만고충신-열사로 추앙되는것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싸우자니 힘이 부치고 감히 화의하자고 못하다가 하루 아침에 성이 무너지고 위아래가 어육(魚肉)이 되면 종사를 어디에 보존하겠느냐”는 입장에서 강화를 주장하였던 최명길[崔鳴吉 ]을 가리켜 그당시와 조선왕조 내내는 물론, 지금도 역적이니 간신이니 매국노라고 규정하거나 기록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것과 유사한 경우와이치가 바로, 강대한 외세들에 의해 가까스로 찾아온 해방과 함께 들이닥친 남북한 분단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누구도 병자호란때의 崔鳴吉을 역적-매국노라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병자호란당시에 임금과신하모두가 전원 歿死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항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三學士도 옳았고 , 현실적으로 잠시의 치욕을 당하더라도 우선 종묘사직을 보전한 다음 후일을 도모하는것이 옳다고 주장한 최명길도 옳았듯이 남한만의 단독정부는 절대 안된다고 주장했던 백범 김구도 옳았고 , 현실적으로 남한 단독정부가 불가피 하다고 역설 하였던 우남 이승만도 옳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개관해보면 중국역사상 가장 文治가 발달하고 평화적인 왕조였던 송나라는 결국 文弱에 빠져 휘종.흠종황제父子가한꺼번에 금나라의 포로로 끌려가는 만고에 드문 치욕을 당했으며, 온세계를 제패했던 몽골민족의 大元帝國을 패망시키고 漢族中原을 되찾았던 大明帝國조차 마지막 황제 의종(조선왕조의 인조와 동시대 제왕)은 망국의 군주로서 치욕을 참지못하고 황후와함께 자결까지 했으나 우리의 인조임금은 물론, 단순히 역성혁명도 아닌 이민족에게 나라가 완전히 멸망했음에도 고종-순종어느 임금도 자결한 임금이 없었음에도 중국의 왕조들 보다 우리왕조들의 수명이 최소한 2배이상이나 길었던 것은(신라-고구려 -백제는 말할것도 없고 고려까지도)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해야 할것이나 분명한것은 병자호란 당시의 최명길이, 일국의 國母가 섬나라 오랑캐(導夷)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1895년의 을미왜변 이래 을사늑약과경술국치에 이르는 동안 이완용.송병준.박제순등의 만고역적-매국노들이 보여준 행적들과는 어떤면으로도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크게 다르기 때문에 최명길이 비록 청태종에게 바치는降書까지 썼음에도 당시나 후대의 어느누구도 최명길을 가리켜 역적이라느니 매국노라고 규정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간악무도하기 이를데없는 왜놈들에 의해 무려 한 세대이상이나 노예로 살아가는 만고에 없는 치욕을 당하다가, 수십년만에 그 사슬에서 놓여나기는 했으나 불행하고 원통하게도, 自力이 아닌 강대한 외세들의 他力에 의해 가까스로 해방된 나라에서 이승만이든 누구든 어느 한국사람-어느 조선사람이 무슨 대단한 힘이 있어서 분단을 결정하고 말고 할수가 있었단 말인가?
-일제치하에서의 김일성이 김구 .이승만과 맞먹는 저명한 항일지사 였다고?-
따라서 그러한 상황이었음을 번연히 -익히 알면서도, 적어도 對外 정책과노선에 관한한 그 이후의 어떠한 정권도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했을만큼 강력하고도 일관된 자주노선을 유지하였던, '대한민국 건국 초대대통령' 이승만박사와 미국에게만 한반도의 민족분단 책임을 왼통뒤집어 씌우면서" 민족분단의 원흉"이라느니 "미국의 괴뢰 였다"고 악착같이 폄훼하고 물어뜯어대기를 멈추지 않는것은 반만년 민족역사상 전무후무한 반민족적=반민중적=반문명적 사이비 종교집단의 首魁에 불과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敎 狂信徒들=치졸하고도 해괴한 돌팔이 민족주의자들의비열하고도 악랄한 역사왜곡행위이자 실로 가소롭고도 가증스러운 명명백백한 반역행위인것이다.
언필칭 진보(대체 어디를 향한 뭔 진보?)좌파(지구상 어디에 평양집단같은 말도 안되는 사상최악의 돌팔이 좌파가 어디에 또 있나?) 진영의 소위 역사학자(^^)를 자처해온 강정구.한홍구.김기협류들이 더 한층 가증스럽고도 가소로운것은 그런자들은 하나같이 입만열면 1912년생에 불과한 김일성(본명 김성주!)이 일제치하에서 이미 조선의 민중들에게 이승만-김구와 맞먹을정도로 명성을 떨쳐온 3대 해외독립운동가중에 하나였다는 것이다.
그런자들류의 김일성교광신도들의 주장이 과연 역사적 史實과 앞뒤가 맞아떨어지고 부합되는 펙트(fact)일까?
-1875년생으로 상해 임정 초대대통령을 지낸 이승만과1876년생으로 윤봉길.이봉창의거를 주도했고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는 이미 신분과행적과 프로필이 선명했을뿐아니라 식민지 조선은 물론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실상부한 최고위급 독립운동가였던 반면, 여러명의 동명이인이 등장했던 김일성은 도무지 실체조차 불분명했다는 史實 !-
간단히 말해서 1937년에 발생했던 소위 보천보전투라는것이 해방직후에 불과 33세였던 , 우리가 말하는 평양의 김일성이 25세의 항일유격대의 일원으로 감행했던 항일무장투쟁이었던게 史實 =펙트(fact)라는 것만은 백-천번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김성주가, 일제치하 당시 1930년대 이전부터 이미 만주지역일대에서 축지법을 쓴다는 소문까지 났을정도로 신출귀몰하면서 일본군을 혼내주었다는 전설적인 백전노장의 그 김일성장군은 결코 아닌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일본 육사출신의 보천보 항일투쟁의 주역 김일성 장군,본명은 김광서(함경남도 북천군태생 1887 ~1937년 11월 전사)
바로 그때문에 해방직후에 소련군장성들에게 둘러싸여 평양공설운동장에 처음 등장했던 귀때기 새파란 김일성을 보고 평양시민들이 "저게 무슨 김일성 장군이냐? 저건 가짜다!"라고 웅성거렸다는 증언들이 아직도 도처에 남아 있게 된것이며 , 일설에는 1887년생으로 1937년에 이미 전사한 ,함경남도 북천군태생이자 일본 육사출신인 본명 김광서장군이야 말로 일제치하에서 조선 민중들의 신화적존재였던 진짜 김일성 장군이었다는 학설이 아직도 유력하게 전해지고 있을 정도이니, 1912년생에 불과한 김성주(1970년대 초에 한국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영접했던 김일성의 친동생의 공식이름이 김영주였다!)가 나중에 그 어떤 필요나 계기에 의해 김일성으로 개명했을망정, 일제치하 조선민중들의 전설적 우상이었던 그 김일성은 아닌것이 분명한것이다.
문제가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맹랑한것은 그나마 김일성이 진짜라느니 가짜라느니 하는 따위의 논쟁자체가 실은 아무런 의미조차 없게되버린지가 이미 오래임에도 임진강이남의 김일성교 狂信徒들은 그동안의 역대 남한정부와정권과 학계에서하나같이 김일성이 약간의 항일무장투쟁을 했다는 최소한의 사실조차 인정해주지 않아왔었다는 약점(?)을 아직도 집요하게 꼬투리 삼아 "김일성은 위대한 항일 독립투사"였던 반면 "이승만은 분단의 원흉이자 미제의 괴뢰" 였으며 "박정희는 독립군을 토벌하러 다녔던 일본군 출신 친일 매국노" 였을뿐만 아니라 한홍구-김기협같은 자들은 심지어 "김일성은 20세기형 민족주의자"이고 "박정희는 이디아민이나 보카사에 못잖은 야만적-폭압적인 악랄한 독재자이자 국헌 문란의 수괴"였다고 규정해온것은 그런따위의 해괴하고도 치졸유치한 궤변과요설의 종결편으로 내놓은
그러나 싸이코 패스나 다를바없는 그들 김일성교광신도들이 제아무리 도저히 주체할길이 없을만큼 흘러넘치는,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초절정 오르가즘^^>에 겨워 거품을 물고 별의별 요설과궤변을 뇌까려 봤자 그나마의 김일성 진위 논쟁조차도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라는 것이다.
무슨소리이고 왜냐?
-그나마의 김일성 진위 논쟁조차도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인 까닭!-
백보-천보 정도가 아니라 만보를 양보해서 그들이 입만벌리면 혀가닳도록 그토록 찬양해마지 않는 소위 '보천보전투'의 주인공이 바로 광복직후 소련군대위출신으로 소련군의 군화발에 묻어 들어왔던, 당시 33세의 김일성(본명 김성주!)이었던것이 100% 사실이라해도, 소규모 게릴라전에 불과했던 예의 '보천보전투' 하나로 구한말이래의 모든 항일무장투쟁은 애오라지-모조리 김일성 혼자서 다 한것처럼 심지어 "가랑잎을 타고 대동강을 건넜다"^^느니 "솔방울로 총탄을 만들어 쐈다"^^느니 하는 따위로 무려 반세기 이상을, 실로 상상을 초월해서 어마어마하게 뻥튀기^^ 해온것으로 종신독재를 넘어 말도 안되는 부자세습도 모자라 3대세습병정놀이까지 획책하는 떨거지들에게, 이제와서 김일성이 진짜니 가짜니 하는 논란따위는 아무런 의미조차 없는 것이다. -김구.이승만.안중근.김일성.조만식.김좌진.안창호.윤봉길.이봉창.유관순등등의 수많은 애국선열들과 항일투쟁지사들이 비록 아무리 숭고하고 위대하고 훌륭해도 애시당초 망국의 치욕을 당하지 않은것보다 훨씬 못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각골명심해야!- 간단히 말해서 20대중반시절의 김일성이 그깟 일제 파출소 하나 잠시 습격하는 항일게릴라전을 한두번 혹은 기껏해야 서너번정도 한것이 사실이라한들, 그정도 항일 투쟁경력을 골백번 인정해준다한들, 그게 대체 무슨 대수냐?하는 것이다.
쓰다보니 또 길어져버린 오늘새벽의 이글을 이쯤에서 일단 마무리 하고자 하거니와 이글을 읽는 독자-네티즌 제위들 가운데서도 특히 청년세대들에게 필자가 진실로 당부하고 또 당부하고 싶은 말은 , 압록강이남의 우리 겨레모두가 특히 임진강 이남의 우리 모든 한국인들이... 21세기하고도 첫 10년이 이미 지나가버린 아직도 , 대체 언제 끝이날지 기약조차 할수 없도록 이런따위의, 김일성이 진짜니 가짜니 이승만이 분단의 원흉이라느니 아니라느니 박정희가 위대하다느니 아니라느니 하는따위에 목숨을 걸다시피 死鬪를 벌이는 우물안 개구리떼와 한치도 다를바 없는 아귀다툼=자중지란을 무슨 至高-至純의 명제나 되는것처럼 밑도끝도 없이 반복하고 하고 있는한... 압록강이남 우리 겨레 모두의 장래는 참으로 암울하기 이를데 없는 절망 그자체라는 것이다.
왜 그렇다는 것인가?
-백년전의 우리조상들처럼 오늘의 우리마저 또다시 못난 조상으로 기록되고 말것인지를 더 늦기 전에 명확히 선택해야 시점이 바로 지금!-
중국.미국.일본.러시아가운데 어느 한두나라의 對한반도 정책이 실패로 귀결되더라도 그들나라는 한쪽 팔다리가 부러지는 정도의 일시적 부상으로 끝날것이나, 신라3국통일이래 가장 중차대한 민족사적-세계사적 고비이자 전환점에 처해있는 한국의 對北정책= 對4强 정책과전략과 노선이 실패로 귀결되버리면 종국에는, 남북한 모두가 이번에야말로 두번다시는 재기할수 없는 치명상을 입고 처참하게 동반몰락하게 되고 말것이 너무도 명확관화 하다는 것을 역사는 이미 여러번 반복해서 웅변으로 증명해왔고, 역사로 부터 배울줄모르는 국가민족은 패망과 자멸을 반복 할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그야말로 천행으로 어찌어찌해서 또다시 동족상잔의 참극(全面戰)이 되풀이 되지는 않는다 해도 남북한이 동반몰락의 길로 들어선것이 누구의 눈으로도 분명해 질때는 이미 백명의 안중근.천명의 이승만.김구가 환생해와도 돌이킬수 없게 된다는 것을 하루라도 빨리 명확히 직시해야할 시점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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