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의 최고 스타는 다비드 비야도 리오넬 메시도 아니었다. 바로 ‘점쟁이 문어’로 이름을 날린 ‘파울’이었다. 이 문어는 월드컵 기간 내내 대다수의 경기 결과 예측에 성공해 주가가 치솟았다. 우승국 스페인의 명예시민이 되기도 했고 몸값은 10만 유로(약 1억 5,700만 원)까지 오르는 등 인기가 대단했다. 나는 이 문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저런 거 한 마리 있으면 부자될 텐데.’
그깟 문어 녀석이 나보다 비싼 몸값이다. 젠장, 세상에 문어에게 부러움을 느끼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하지만 마냥 부러워하고 싶지 만은 않았다. 이건 정말 부러우면 지는 거 아닌가. 그래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나도 한 번 준비해 봤다. 이번 U-20 여자 월드컵에서 4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의 4강전 결과 예측을 위해 특별 손님을 초대했다. ‘파울’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비슷하게는 생긴 놈이다.
‘파울’보다 신통한 녀석을 찾기 위해 가까운 마트로 갔다. 나와 ‘얄리’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제일 힘 센 놈으로 주세요.” 가까운 대형 마트로 가 낙지를 샀다. 대부분의 주부들이 손질된 낙지를 구입하고 있었지만 나는 살아있는 싱싱한 녀석으로 두 마리를 구입했다. 한 마리만 사도 됐지만 그러기에는 무척 창피한 노릇이었기 때문에 18,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낙지 두 마리를 손에 넣었다. 점원은 “비닐 봉지에 물과 함께 넣어 놔 세 시간은 살 수 있을 것”이라면서 낙지를 건네줬다.
‘파울’은 두 개의 칸막이에 있는 홍합 중 하나를 골라 먹는 것으로 경기 결과를 예상했지만 나는 홍합보다 저렴한 보리새우를 먹이로 택했다. 낙지 판매대 근처에 보리새우를 팔고 있었고 실험이 끝난 뒤 새우 볶음밥을 해 먹으려는 계획이었다. 보리새우 3,120원 어치와 낙지 18,000원 어치로 모든 실험 재료 준비는 끝났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낙지에게 ‘파울’과 같은 근사한 이름을 지어주려 고민하다 결국 ‘얄리’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얄리’는 내가 아주 작을 때 나보다 더 작던 내 친구다.
격하게 주인을 아끼는 ‘얄리’는 내 손을 덥썩 물었다.
살짝 고민이 되긴 했다. 만약 ‘얄리’가 한국의 승리를 택할 경우 자칫하면 설레발(?)이 될 수도 있고 그렇다고 4강전 상대인 독일을 택한다면 그것도 영 찜찜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 탓에 일단 시도부터 해보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얄리’의 수조부터 세척에 들어갔다. ‘고무 대야’라면 느낌이 살지 않는 빨간 ‘고무 다라이’를 오늘 실험 장소로 정했다. 어머니께서는 화장실에서 혼자 낙지를 살펴보는 나에게 “저 놈이 얼마나 친구가 없으면 이제는 낙지를 자기 친구로 만들 모양”이라면서 혀를 끌끌 차셨다.
그리고는 한국과 독일이라는 글자 밑에 두 개의 보리새우를 내려놓고 ‘얄리’를 비닐봉지에서 꺼냈다. 점원의 말처럼 ‘얄리’는 힘이 셌다. 빨판으로 내 손가락을 빨아들였다. 아픔을 느낄 정도였다. ‘얄리’를 물이 가득한 ‘고무 다라이’에 풀어줬다. 이제 ‘얄리’가 선택만 하면 되는 순간이었다. 낯선 수돗물에 들어와 다소 긴장한 듯했지만 ‘얄리’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어느 쪽의 보리새우를 집어 먹을지 긴장감이 밀려왔다.
‘얄리’는 한국의 승리를 선택했다. 나는 화장실에 쭈구리고 앉아 쾌재를 불렀다.
‘얄리’는 조금씩 움직이더니 한국 쪽에 있는 보리새우를 선택했다. “한국이 이긴대. 야호.” 화장실에서 혼자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어머니가 화장실 문을 여셨다. “아이고, 이 놈아. 이상한 짓 그만하고 얼른 세무소가서 종합소득세 신고나 해. 도대체 연체료가 얼마인 줄 알아?” 어머니는 지금 한국의 U-20 여자 청소년 월드컵 결승 진출 신화에 대해서 모르시는 모양이었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세무소가 웬 말이고 종합소득세가 웬 말이랴.
‘얄리’는 한국의 승리를 택했다. 아무리 형편없는 조건에서의 예측이라지만 독일을 택한 것보다는 나은 결과였다. 만약 독일을 택했다면 찜찜함을 감출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반나절에 걸친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것 같아 무척 흐뭇했다. ‘얄리’의 예측대로 한국이 승리를 거둘 경우 ‘얄리’도 ‘파울’처럼 유명해지는 건 시간 문제 같아 보였다. 나도 이제 낙지 한 마리로 인생 역전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그런데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한 달 정도 된 곰국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나는 ‘얄리’를 슬쩍 쳐다봤다. 며칠 전 소래포구에서 먹었던 싱싱한 산낙지 생각이 절로 났다. “얄리야, 너도 그런 맛을 가지고 있겠지?” 그리고는 몸값이 1억 원도 더 넘을지 모르는 ‘얄리’를 도마 위로 가져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얄리’와의 짧은 만남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그래도 너의 경기 결과 예측은 한 번 믿어볼게.’
‘얄리’는 굶주린 나의 배를 채워준 고마운 친구다. ‘얄리’의 선택이 사상 처음으로 FIFA 주관 대회 결승 진출을 노리는 U-20 여자 청소년 대표 선수들에게도 기분 좋은 징조가 되길 빈다. ‘얄리’는 비록 내 뱃속으로 들어갔지만 태극 여전사들은 ‘얄리’의 선택도 하나의 좋은 징조라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경기에 임했으면 한다.
한국 여자 청소년 대표팀이 4강전에서도 이런 모습을 많이 보여주길 기원한다. ⓒ연합뉴스
세계 랭킹 2위 독일이 8강전까지 4경기 동안 무려 14골을 뽑아내는 가공할 만 한 득점력을 선보이며 위력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우리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 우리도 조별 예선에서 세계 랭킹 1위 미국과 맞붙어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네 경기를 통해 11골을 기록하면서 독일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선보였다. 6골로 득점 2위를 달리고 있는 지소연(한양여대)이 7골로 득점 1위를 기록 중인 알렉산드라 포프(FCR 뒤스부르크)를 제압할 수 있는 기회도 맞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세계 4강 신화를 이뤄낸 여자 청소년 대표팀이여, 운명의 한판을 앞두고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의 실력도, ‘얄리’의 선택도 한 번 믿어보자. 우리는 할 수 있다.
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