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천변에서
구월 첫째 일요일 새벽에 잠을 깨니 할 일이 한 가지 기다렸다. 전날 벌초를 다녀온 길에 고향의 흙내음이 나는 푸성귀를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고구마 잎줄기도 있었다. 고구마는 간식으로 삼는 뿌리가 유용하지만 잎줄기도 허투루 하지 않은 소중한 찬거리다. 거실 바닥에 보자기를 펴고 고구마 잎줄기 껍질을 까 놓았다. 이후 반찬이 되어 식탁에 오르는 과정은 내 소관이 아니다.
고구마 잎줄기를 손질해 놓고 이른 아침 식후 날이 밝아오는 여명에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교 삼거리로 나가니 자투리 공원 체육 시설엔 새벽잠이 없을 몇몇 노인이 몸을 단련했다. 서로들은 주택지 사는 이웃 간이라 얼굴을 잘 아는 사이일 듯했다. 창원천 산책로를 따라 천변으로 내려가니 맑은 물이 시원스레 흘렀다. 가을 들머리 잦았던 비 영향이라 여겨졌다.
천변의 무성한 풀은 여름을 거쳐오면서 한두 차례 예초 작업을 마쳐 길섶이 단정했다. 여러해살이로 새로 움이 돋은 금계국은 노란 꽃을 피웠다. 여뀌가 꽃을 피우는 가을이면 사촌쯤 되는 고마리도 꽃을 피웠다. 봄날이면 꽃창포가 자라던 냇가에 고마리가 무성해 임무를 교대한 듯했다. 지난번 폭우에 불어난 냇물이 냇바닥을 할퀴고 지나 상처를 입었던 천변 생태계는 복원되었다.
수크령이 이삭처럼 보인 꽃을 피웠고 곁에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연분홍 꽃이 화사하게 피어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꽃대감 친구가 가꾸는 꽃밭에 지금 한창 피는 꽃범의꼬리였다. 내가 호랑이를 실물로 봤던 기회는 에버랜드 사파리 클럽 말고는 없었던지라 범 꼬리를 가까이서 유심히 못 봐 서로 간 유사성을 비교 확인하긴 어려웠다.
천변을 따라가니 물이 고인 냇바닥엔 노랑어리연이 둥근 잎을 펼쳐 동동 떠 있었다. 이 역시 지난번 불어난 냇물에 휩쓸렸다가 다시 기운을 차려 꽃송이까지 달고 나왔다. 노랑어리연의 개화도 수련과 같은 원리라 낮에는 꽃잎을 활짝 폈다가 저녁엔 오므려서 이른 아침엔 아직 꽃잎을 열지 않은 상태였다. 예초기 칼날을 용케 피한 갈대와 물억새는 이삭 같은 꽃이 피는 즈음이었다.
지귀상가가 건너다 보인 창원천2교를 지나자 길섶에는 무더운 여름날 꽃을 피운 황화 코스모스가 제 임무를 다하고 시들어갔다. 명곡교차로를 앞둔 어디쯤에서 봉지에 뭔가를 뜯어 담는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길섶에 자란 비름나물의 잎사귀를 따 모으는 중이었다. 야생으로 자란 비름나물은 찬거리로 채집하는데 시기적으로 조금 억세진 때라 할머니는 부드러운 잎만 따 모았다.
명곡교차로에서 파티마병원과 홈플러스를 지나 창원대로를 지하도를 건넜다. 대로변 가스 충전소 무인 매장에서 냉커피를 뽑으려니 얼음은 기다려도 제빙이 되지 않아 커피만 받아 마셨다. 철도 객차와 전차를 만들어 나라 밖으로 수출하는 현대 로템은 휴일이라 생산 라인이 멈춰 있었다. 천변 냇바닥에는 어지러이 헝클어진 갈대 속에 제철을 맞은 삼잎 국화가 노란 꽃을 피웠다.
창원천이 남천과 합류해 갯벌을 이룬 봉암에 이르니 물때가 밀물이라 해수가 밀려들었다. 노변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워 운치가 있었고 갯벌 건너편 천변 습지는 무성해진 갈대가 숲을 이루었다. 날이 더운 때가 아니라 내친김에 남천을 거슬러 걸었다. 공단 배후 도로는 자동차가 다니질 않고 벚나무와 은행나무 가로수가 그늘을 드리워 산책엔 어려움 없어 땀이 흐르지 않았다.
어느 공장 정문 앞에는 경비가 정성 들여 가꾼 천사의 나팔꽃과 란타나가 예쁜 꽃을 피웠다. 여러해살이지만 실외에선 겨울을 나지 못하는 란타나가 피운 꽃에는 암끝검은표범나비가 앉아 움직이질 않아 사진을 남겼다. 삼정교와 덕정교를 지나 공단을 가로지른 찻길 보도 따라 내동 유허지 빗돌을 지나 교육단지로 향했다. 폴리텍대학 캠퍼스를 관통해 원이대로를 건너 집으로 왔다. 23.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