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도란 (유2-1) 2023년 7월1일(토요일)
찬양 : 충만
본문 : 유1:1-2절 ☞ https://youtu.be/huQanpqEuDw
6월을 마감하고 7월이 시작되었다. 한 달을 마감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5-6월은 정말 힘겨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주님의 붙드신 은혜로 또 넘어왔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늘 주님의 마음으로 함께하시는 모든 후원자와 동역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주일을 준비하고, 팀 수련회를 준비하는 7월의 첫날, 겸손히 오늘도 주님 앞에 선다. 오늘부터 유다서 묵상을 시작한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유다서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의 영적 공동체는 우리의 육체만큼이나 병에 걸리기 쉽다.,, 육체가 병들거나 상처를 입으면, 고통이 우리의 주의를 끈다. 그리고 우리는 신속하게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영적 공동체 안에 침투한 위험하고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은 채 잠복해 있을 수 있다. 육체를 치료하는 의삭 필요한 만큼, 영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사람은 더욱 필요하다.’
영적 공동체도 육체처럼 병에 걸리기 쉽다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지적은 매우 공감이 간다. 아울러 이것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큰 울림을 받는다. 영적 지도자의 자리가 바로 이런 자리가 아닐까?
주님, 이 종이 영적 공동체인 교회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종이 되게 하소서. 한 교회 한 교회 방문하여 말씀을 전할 때 영적 공동체의 질고들이 진단되고 치료되게 하소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아침이다.
유다서는 공동 서신으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와 같이 특정 교회에게 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내용으로 기독교의 정통 신앙을 논하는 서신서이다.
25절의 짧은 서신이지만 ‘교회를 깨우는 불의 십자가’라고 불릴 정도로 당시 교회에 침투한 거짓 선생들의 정체와 그들의 악행들을 낱낱이 폭로하며, 거침없는 논리로 논박하고 있는 아주 강렬한 서신이다.
1-2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
저자는 자신을 야고보의 형제로 표현하고 있다. 야고보가 자신을 주의 형제 야고보라고 표현했는데, 유다는 야고보의 형제로 표현했다.
유다는 자신을 <종>이란 표현과 <야고보의 형제>란 표현을 사용했을까? 야고보처럼 주의 형제라고 표현하면 여러 가지로 유익했을 것인데 ~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세상적으로 무엇이 유익한가를 따지기 이전에 본질적인 자리를 찾아간다는 사실이다. 유다는 지금 자신의 본질적 자리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주의 형제가 아니라 주의 형제인 야고보의 형제라고 겸손히 표현한 것이다.
당시의 종이란 생사여탈권이 주인에게 있는 완전한 노예였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예수님의 형제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것이 진심이다.
목사로 사는 내게 유다의 이런 고백이 울림을 준다. 나는 <주의 종>이란 이름을 생사여탈권을 주님께 드린 겸손함의 표현이 아니라 <나 주의 종이야> 하는 권위나 교만의 표현으로 사용한 것은 아닐까 ~
주님의 형제 유다는 <나 주님의 형제야~>라고 말하면 훨씬 더 존중받으며, 복음을 전하는 유리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 유리함을 버리고 오히려 자신은 예수님의 종이라고, 야고보의 형제라고 자신을 밝히고 있다.
영적으로 병드는 일은 너무도 쉽게 다가온다. 주님의 종이란 자리를 착각하고, 모든 것을 내가 유리한 방향에서 처리하려한 내 모습을 자백한다. 주님 ~
주님, 이 종의 영적 삶을 진단케 하시고 치료케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종의 모습을 자백합니다. 이 종을 치료하사 온전히 주님을 전하고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종이 되게 하소서.
이어서 유다가 바라본 성도의 아름다움이 이 아침 나를 다시금 깨운다.
본문에서 유다는 성도를 세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 부르심을 받은 자,
-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은 자,
-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라는 표현은 표준 새번역 성경에서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주시는 이들>
유다는 성도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성도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자가 아무도 없기에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왕이 부른다는 것은 곧 특별한 사명을 위해 부르는 것이기에 매우 영광스러운 것이다. 주여, 이 종을 불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은 자라고 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 반복적으로 예전부터 지금까지 사랑이 지속되는 그 사랑안에 있는 자가 곧 성도라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버지가 사랑하시는 자이기에 당신의 꿈에 나를 초대하셨을 뿐 아니라, 선한 목자가 되셔서 사랑으로 인도해 가신다. 할렐루야 ~
마지막으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주시는 이들이다.
유다의 믿음의 시선속에 성도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지켜주시는 이들이라고 한다. 이 고백이 오늘 아침 큰 감동이 된다. 나의 수많은 실수와 약함으로 인해 진작에 끝나야 할 웨이브리즈 온라인 플렛폼 사역이었다.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으로 지켜주시는 자이기에 5월 6일 광야의 한 가운데도 끝나지 않고 다시 일어서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를 지켜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어린 시절 암송한 구절이 생각난다. 23: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단은 우리로 이 고통이, 이 환경이, 이 과정이 나를 넘어뜨릴 것이라 외치며 오늘이란 자리가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라고 착각하게 하지만, 이곳은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창조하는 기적의 공간일 뿐이다. 주님이 지켜주시기에 잃어버린 진정한 찬양을 회복하여 드리는 아름다운 성소일 뿐이다.
유다서를 열고 짧은 한 구절에 멈춰 묵상케 하시며 내 삶을 진단하시고 치유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올려드린다. 나는 종이다. 아울러 나는 부름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사랑안에 있는 자이며, 주님이 지켜주시는 자이다.
이 고백을 올려드리며 내 속에서 힘이 솟아오른다. 주님 찬양합니다. 오늘 부른 찬양의 가사가 생각난다. <고난 중에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주의 계획 믿기 때문이라 실패하여도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예수 안에 오직 나는 승리함이라 난 예수로 예수로 예수로 예수로 충만하네>
주님,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나를 당신의 종으로 부르사 영광스런 꿈에 참여케 하시고 아버지의 사랑안에 거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저를 지켜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종으로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흔들렸음을 회개합니다. 다시 나의 자리를 찾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로 힘을 내어 주님이 부르신 그 꿈을 향해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나를 따르게 하심을 믿기에 당당하게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주여, 영광을 받으소서.
<중보기도 제목>
1. <웨이브리즈> 온라인 플렛폼 출시가 속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2. 라마나욧선교회가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춘 탈바꿈이 있어 작은교회와 후원자들과 긴밀한 라포가 형성되어 하나가 되게 하소서.
3. 진행되는 사역을 통해 진짜목사들이 세워지고 다음세대가 일어나게 하소서
4. 100명의 새로운 후원자가 세워져 재정이 공급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