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서북방언으로 채운 기억의 곳집
표준어와 모더니티에 맞서는 듯한
원초적 언어는 시집의 속살 그 자체
조붓한 생활공동체의 풍경을 기품있게 그려
그 화자와 주변 사람들의 피와 살을 구성하는 변두리언어의 생채로 기억의 곳집에 담긴 한 지방의 풍경을 기품 있게 그려냄으로써, 백석의 ‘사슴’은 한국문학사가 결코 누락시킬 수 없는 시집이 되었다. |
시집 ‘사슴’(1936)이 출간된 것은 백석(1912~1995)이 고향의 밤 풍경을 담백하게 그려낸 ‘정주성(定州城)’으로 문단에 얼굴을 내민 지 다섯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렇다는 것은 이 시집에 실린 서른세 편의 작품 가운데 상당수가 시인의 등단 이전에 쓰였다는 뜻이겠다. 소월이나 미당 같은 천재들처럼, 백석도 이미 10대에 우뚝한 시인이었던 듯하다.
‘사슴’의 공간 상당 부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시인의, 더 올바르게는 서정적 자아의 유년 기억이다.
그 유년의 공간 속에서, 화자는 “오줌 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까만 대가리 새까만 눈알이 들여다보는 때 이불 속에서 자즈러붙어 숨도 쉬지 못하”(‘고야(古夜)’)는가 하면, “오지항아리에는 삼춘이 밥보다 좋아하는 찹쌀탁주가 있어서 삼춘의 임내를 내어가며 나와 사춘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어먹었다”(‘고방’). 인용된 구절들에서, ‘조마구’는 난쟁이를 뜻하고 ‘재밤’은 한밤을 뜻한다. ‘임내’는 ‘입내’, 곧 흉내일 것이다.
‘고야’의 어린 화자에게 조마구는 설화 속의 무서운 존재다. 조마구는 부유하지만 기이한 외모를 지녔고, 성질이 고약할지도 모른다.
한밤중에 오줌이 마려워 잠이 깼는데도 귀신을 만나게 될까 겁이 나 잠자리에서 망설이던 기억은,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화장실이 실내로 들어오기 전에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또래와 어울려 몰래 어른 흉내를 내보는 것 역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다.
그러나 그런 공감에 이르기 위해 독자는 우선 언어의 장벽을 헤쳐 나가야 한다. 인용된 시의 ‘조마구’나 ‘재밤’도 한 예지만, ‘사슴’의 공간 둘레에는 서북방언의 울타리가 높다랗게 쳐져 있기 때문이다.
당대 독자들도 고향이 서북지방이 아닌 경우라면 ‘사슴’이 술술 읽히지 않았겠지만, 오늘날의 독자가 ‘사슴’을 읽어내는 것은 각주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고등교육을 받은 이 시대의 어떤 사람에게는, 현대 영시를 읽는 것이 ‘사슴’을 읽는 것보다 되레 수월할지도 모른다.
시집 ‘사슴’이 유년의 공간인 만큼, 거기 방언이 너붓거리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방언은 학교에서가 아니라 가족에게서 배운 언어, 가장 원초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백석의 방언은 이런 미적 정당화 바깥에서도 다분히 전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전략의 마음자리는 ‘국어’에 대한 대타의식이었을 것이다.
거기서 ‘국어’는 식민지 시절의 ‘고쿠고(國語)’ 곧 일본어이기도 했을 것이고, 조선어학회가 서울 중류계급에게 특권을 부여하며 설정한 표준한국어이기도 했을 것이다. 요컨대 방언의 난무로 도드라지는 ‘사슴’의 전통 지향은 서북 변두리 출신 시인이 모더니티에 맞서 수행한 싸움의 한 양태였을 것이다.
김기림은 시집 ‘사슴’을 높이 평하는 자리에서 “그 외관의 철저한 향토 취미에도 불구하고 주책없는 일련의 향토주의와는 명료하게 구별되는 모더니티를 품고 있”다고 말한 바 있고, 오장환은 ‘사슴’을 격렬히 비판하는 자리에서 백석을 “스타일만을 찾는 모더니스트”로 규정한 바 있다.
이 두 사람은 제각기 다른 입각점에 서서 ‘사슴’을 영미 이미지즘 계열의 모더니즘과 연관시킨 듯하다. 이런 관점에 이해할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넷 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며 줄곧 시각을 자극하다가 마지막 행에서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고 슬쩍 이야기를 집어넣어 그때까지의 눈 호사를 문득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흰 밤’ 같은 걸작 소품을 포함해, ‘사슴’의 시들은 감정 토로를 절제하며 묘사에 치중하는 영미 회화시를 종종 연상시킨다.
그러나 시가 가장 섬세한 언어예술이고 시인이 언어의 파동에까지 마음을 쓰는 예술가라면, ‘사슴’에서 좁은 의미의 모더니즘을 읽어내는 것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사슴’을 깔끔한 현대 표준 영어로 번역해 놓는다면, 아니 ‘사슴’에서 나부끼는 숱한 서북 방언들을 표준한국어로 바꿔놓는다면, 그 번역 텍스트를 놓고 모더니티나 모더니즘을 운위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번역된 텍스트는 이미 백석의 ‘사슴’이 아니다.
서북 방언은, 호고(好古)취향과 함께, ‘사슴’의 코스튬이 아니라 그 속살에 속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는 깔끔히 번역되기 어려운 문학 장르지만, 특히 ‘사슴’은 번역이 불가능한 텍스트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사슴’은 화자와 시인, 그 둘레 사람들의 주체를 세우는 대가로 보편성을 희생한 텍스트다.
‘사슴’의 특수성은 보기에 따라 민족주의에도 미치지 못하는 특수성이다. 시집의 방언이 당대 ‘고쿠코’만이 아니라 표준조선어에까지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 특수성은 일종의 지방주의라고 할 만한 것이다. 그래서 ‘사슴’을 민족주의 코드로 읽어내는 것은, 백석에게서 ‘민족시인’의 전형을 찾아내려는 독자들에게는 유혹적이겠지만, 헛수고일 공산이 크다.
이 시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인 ‘모닥불’만 해도, 그 모닥불의 상징을 조붓한 생활공동체의 합일의례로 해석하는 것 정도는 몰라도, 거기서 식민지 체제의 부당성에 맞서는 결기를 읽어내는 것은 과도하다.
활자화된 텍스트 ‘사슴’도 그렇지만, 낭독되는 텍스트 ‘사슴’을 상상해보면 이런 판단이 더 또렷해질 것이다. 민족구성원 대다수에게 낯선 어휘로 조직된 ‘사슴’의 텍스트를 강한 서북방언 억양에 실어 읽을 때, 그것을 민족의 보편적 텍스트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슴’이 품어 안는 공동체가 조선민족 전체와 곧바로 등치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시집의 약점이 될 수 없다. 그 화자와 주변 사람들의 피와 살을 구성하는 변두리언어로 기억의 곳집에 담긴 한 지방의 풍경을 기품 있게 그려냄으로써, ‘사슴’은 한국문학사가 결코 누락시킬 수 없는 시집이 되었다.
지나는 길에, 사슴을 낭독하는 일은 삼가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이 텍스트에는 일체 구두점이 없을 뿐 아니라 백석 시의 한 스타일은 끝없는 열거여서, 작품을 곧이곧대로 내처 읽다가는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
‘사슴’의 유년 공간을 채우는 것은 사람들 못지않게 동식물과 먹거리다. 먹거리에 대한 시인의 집착은 간혹 독자들의 입에까지 침이 고이게 만든다. 사실, 우리들 유년의 어떤 기억이 황홀하다면, 그 황홀함은 대체로 맛과 관련돼 있다.
특히 백석에게 미각은 기억의 주(主)회로였던 모양이다. 이웃에 살던 한 할머니를 정겹게 회상하는 ‘가즈랑집’이라는 작품에서만도, 화자는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는가 하면,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산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글레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사슴’은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시집이다. 이 시집을 휘어 감는 언어의 생채(生彩)를 통해, 1920년대 정주와 그 언저리는 입체감 넘치는 홀로그램을 얻었다.
그러나 백석의 더 큰 문학적 성취가 ‘사슴’ 이후의 떠돎 과정에서 생산된 이른바 북방 시편들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경 너머에서, 백석은 서북 방언의 울타리를 차차 걷어내며 사무치는 향수를, 삶의 우수와 비의를, 그것들을 가로지르는 희망을 한결 높다란 경지에서 노래했다.
그것은 백석이 첫 시집이 가장 뛰어난 시집이 되는 대다수 시인들에게 속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시인이 해방 뒤 고향에 정착해 ‘북의 시인’이 되어버린 것은 그래서 더욱 아쉽다.
북의 백석은 그 체제와 불화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읽을 만한 시들을 쓰기도 했지만, 1962년 이후 창작 활동을 완전히 접었다. 그것이 정치적 이유에서였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역사의 가정만큼 부질없는 일은 없다. 그러나 만주에서 해방을 맞은 백석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젊은 시절 한 때를 보낸 서울로 돌아왔다면, 그리고 남쪽에서 시작 활동을 했다면, 그의 문학행로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그는 남쪽에서도 정권과 긴장을 빚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옥살이까지 했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타의로 글쓰기를 접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가 북쪽에 남음으로써, 한국문학사는 ‘정치적으로도 올발랐던 미당’을 가질 기회를 잃었다.
▲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새끼오리: 새끼줄 오라기
**갓신창: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끈
**재당: 육촌젓?> **갓사둔: 새사돈
글: 고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