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성도는 스스로의 영적 훈련을 통하여 신앙의 독립성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웃시야가 형통 할 수 있었던 비결을 말해 주는 것임과 동시에, 한편으로 그의 한계를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그는 일찍이 여호야다에 의해 보좌에 앉게 된 요아스가 그러했던 것처럼(24:17이하) 스가랴라는 영적인 스숭이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형통할 수 있었지만, 그가 죽고 나자 이내 정도를 이탈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서 요아스나 웃시야가 탁월한 영적 지도자로부터 오래도록 지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진리의 길을 갈 수 있는 원칙과 신앙의 체계를 가지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고 철저한 말씀 연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적 훈련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요아스나 웃시야는 영성은 가지고 있었지만, 스스로 신앙을 키워가려는 영적 훈련은 결여하였기에 마치 달이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뛰어난 스승이 있을 동안에는 그 영향으로 믿음의 길을 갔지만, 그 빛이 사라지자 이내 어둠의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성도들 가운데에도 이러한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즉 적지 않은 성도들의 신앙이 의존적인 신앙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교회 안에 있을 때는 교역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믿음의 모습을 보이지만,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면 이내 어지러운 세상 풍조에 휘둘려 길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오랫동안 성경 공부를 해왔으면서도 성경의 중심과 원리에 따른 이해 없이 피상적 수준에 머물기 때문에, 이단들의 교묘한 논리에 쉽사리 넘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에 기록된 초대 교회를 보면 당시는 사도와 일반 평신도의 구분이 없다고 할 정도로 평신도들의 영적 수준이 높았습니다. 그리하여 스데반은 사도들 못지않은 영적 능력으로 많은 표적을 일으키며 유대인들의 불순종을 책망하는 셜교를 하였고(행 6:7 이하), 빌립 역시 에디오피아의 고관에게 말씀을 해석하여 가르치며 직접 세례를 베풀기도 했습니다(행 8:26-40).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평신도임에도 불구하고 아볼로와 같은 대학자에게 정확한 복음의 도를 가르침으로써, 전도와 선교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행 18:24-26). 따라서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초대 교회에 그토록 복음이 흥왕하고 교회가 성장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모든 교회는 이러한 점들을 생각하며 좀더 깊은 반성과 각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단순히 제자도(discipleship) 를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교회와 세상에서 주도적인 영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리더십과 사도 정신 (Ieadership and apostleship) 까지 가르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도들 역시 단순히 피상적 수준의 말씀을 배우는 초보적 단계를 넘어, 심도 있는 성경 연구와 치열한 영적 훈련을 통해, 어디에서도 온전한 빛과 소금이 되는 성숙한 성도로 자라가야 할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