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팽이, 룸펜(Lumpen)의 기원과 변천 ― ‘천 조각’에서 사회학 개념으로]
오늘날 ‘룸펜’이라는 단어는 마르크스주의 사회학 개념(루프트프로레타리아트: Lumpenproletariat)과 함께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 뿌리는 의외로 매우 일상적이고 물질적이다. 원래 룸펜은 독일어 Lumpen, 즉 ‘해진 천 조각’, ‘누더기’에서 시작된 말이다. 영어의 rag(해진 천, 누더기)에 대응하는 독일어였고, 16~17세기 독일 문헌에서 이미 가난한 이들의 누더기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등장한다.
이 평범한 단어가 어떻게 거대한 사회 정치적 개념으로 확장되었을까. 그 전환점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의 유럽에서 시작된다.
19세기 유럽 도시 빈민층 가운데는 일자리가 불안정하거나 아예 없는 부랑자, 실업자, 경범죄자, 깡패, 걸인, 사창가 주변부 노동자 같은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들은 당시 노동운동이 조직하고자 하던 ‘산업 노동자 계급’(정규 임금을 받는 노동자)과는 전혀 다른 집단이었다.정식 직업도, 계급적 조직성도, 정치적 의식도 없었으며 때로는 체제 유지 세력과 결탁하거나, 반대로 폭동과 약탈에 가담하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도시의 ‘아웃사이더 집단’이었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 지식인들은 이들을 지칭할 별도의 용어가 필요했다.
그때 마르크스가 선택한 말이 바로 Lumpen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집단을 Lumpenproletariat(룸펜프롤레타리아트)라고 부르며 매우 신랄하게 묘사했다.
그들의 정의에 따르면 룸펜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정규 노동 시장에서 배제된 주변부 계층
조직화나 계급 의식 부족
이념 없이 그때그때 이익을 따라 움직임
권력자에게 매수되기 쉬움
사회 변혁의 동력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혁명의 적”이 될 수 있는 존재
마르크스는 1852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이들을 “부랑자, 도둑, 사기꾼, 포주, 사창가 하층민, 깡패, 퇴역 군인, 전과자, 무직자, 그리고 도시의 모든 부유물들(der Abhub der Gesellschaft)”이라고 규정했다. 원래 ‘천 조각’이라는 뜻이었지만, 마르크스는 이를 사회의 ‘자투리’, ‘부스러기’라는 은유로 확장한 셈이다.
20세기 이후 ‘룸펜프롤레타리아트’라는 개념은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부에서도 평가가 크게 갈렸다. 혁명 가능성이 없는 집단으로 본 마르크스와 달리, 프란츠 파농 같은 이들은 식민지·피지배 사회에서 룸펜이 억압에 반발하는 격렬한 투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사회학에서 Lumpen은 다음 의미로 확장되어 쓰인다.
정규 시장에서 배제된 주변부 계층
범죄, 비공식 경제, 불안정 노동과 연관된 집단
정치·경제적 제도와 느슨하게 연결된 사람들
이처럼 한때 ‘천 조각’을 뜻하던 단어는 현대 사회의 복잡한 주변부 계층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 되었다.
Lumpen이라는 말은 그 시작은 누더기였지만, 그 확장은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제도 밖으로 밀려난 이들의 삶을 포착하는 시도였다.
오늘날에도 경제 불황, 비정규 노동, 사회적 배제 문제를 이야기할 때 ‘룸펜화’라는 말이 다시 등장한다. 원래는 해진 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사회 구조가 부랑하는 사람들을 계속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시각 중 하나다.-펌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