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지금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계4:1-5)
혹시 여러분이 성경을 읽다가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과 이 성경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또 오늘의 본문이 있는 이 계시록의 내용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생각해 보신적이 있나요?
많은 이들이 성경말씀이나의 현실과 상관없이 아주 먼 훗날에 일어나는 일로 생각하고 오직 눈앞에 당면한 것만 현실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왜 현실을 무시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현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단지 지금의 현실보다 더 중요한 미래의 현실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주간에 노회 목사님 부친께서 갑자기 췌장암으로 소천하셔서 장례식장을 다녀왔습니다. 암을 발견하고 3개월 만에 별세하셨다고 합니다. 죽음이라는 현실은 멀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지금 이 세상은 현실은 현실인데 너무도 짧은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주어질 삶이 더 중요하고 영원하고 지속적인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 현실이 천국과 지옥은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이 짧은 현실에서 아무리 떵떵거리고 살아도 영원하고도 지속적인 현실에서 너무나 고통스럽고 보잘것없는 삶을 산다면 여기서 큰소리 치고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항상 미래의 현실을 더 중요하게 취급하고 더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이것을 준비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계시록은 성경의 마지막 책인데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1장~3장까지로 요한 당시의 현실에 관한 내용으로 지금 있는 일, 즉 당대 교회의 상황에 관한 내용이고, 6장-22장까지는 장차 일어날 미래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위치한 4-5장이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연결해서 볼 수 있는 그런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지요. 4장과 5장이 계시록 전체에서 중요한 이유는 지금의 현실과 장차 될 일인 미래를 주관하는 곳이 어디이며 그 일을 주관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1. 오늘 본문은 그 지금의 현실과 미래의 현실을 주관하는 곳이 하늘 보좌이고 또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믿음으로 살기가 만만치 않은 어려운 한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주관하는 하늘의 보좌를 바라보면서 힘을 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성경에 보좌라는 단어가 총 92회 나오는데 신약44회 그 중에 요한 계시록에만 35회, 특별히 오늘 본문에도 보좌가 언급되는데 이 보좌라는 단어가 계시록이해 뿐만아니라 우리 인생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중요한 단어 보좌는 권력자의 자리입니다. 그 당시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자는 로마 황제입니다. 당시 로마황제의 권세는 가히 절대적인 권세였고 신적인 권세였습니다. 어는 누구도 이 권세를 거부하면 죽음을 면할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 권세 앞에서 성도와 교회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처럼 보였고 요한 만이 아니라 수많은 성도들이 이 세상의 권좌 앞에서 시달림과 박해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지금 로마황제 가이사의 보좌에 의해 밧모섬에 귀양살이로 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환상 중에 요한 앞에 펼쳐진 그림은 로마황제의 권좌보다 더 높은 보좌로 땅에 있는 보좌가 아니라 하늘에 배설된 보좌였다는 것입니다. 2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요한과 이 편지를 보는 모든 성도들은 이 보좌와 그 보좌에 앉아 현재와 미래의 일들을 주관하시는 분을 보면서 자기 눈 앞의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선명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요한 당대의 로마황제의 권좌처럼 절대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지요. 그리고 그 절대적인 권세 앞에 믿음과 양심과 정직과 신의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하늘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아무 말 없이 이 땅에서 인생들이 하고 있는 것을 다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약한 자들이 고통당하는 것도 보고 계시고 힘 있는 자들이 그 힘을 자랑하고 잘난 체 하는 것들도 다 보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교만한 자들을 가만히 비웃고 계시는 동시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내가 반드시 승리를 줄 테니까 조금만 더 참고 싸우라고 말씀으로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눈을 들어서 이 하늘의 보좌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귀를 열어 그 위에 앉으신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그래서 이 땅에는 인간들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위에 절대적인 분이 계시며 그분에 의해 세상의 모든 것이 주관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면 한 해의 시작이 달라지고 한 해의 계획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위에 절대적인 분이 계시며 그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보고 있다(신전의식) 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때는 달라집니다. 그 분에 의해 나의 현재와 영원한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 사람의 태도는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 ! 성경 다니엘서는 사실 세상관, 역사관, 가치관에 관한 책입니다. 다니엘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야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친구가 그렇게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당당하게 신앙으로 서 있을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역사관 세상관, 가치관이 확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믿을 때 그들은 세상을 이기는 자로 선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고 하나님을 믿음과 따라가며 살아간다면 우리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고 담대함도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자가 계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기준과 가치관으로 볼 때는 이런 사람이 답답하고 미련해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야 말로 지금 현재 온 세상을 주관하는 분이 누구이며 그의 영원한 미래를 결정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런 세계관으로 눈을 들어 이 하늘의 보좌를 바라본다면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로 승리한 교회와 승리한 성도의 자리입니다. 4절 “또 보좌에 들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하나님의 보좌를 이십사 장로들의 보좌가 둘러 있습니다. 이십사 장로는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로 대표되는 신구약교회의 대표들입니다. 이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앉아 있습니다. 이들이 흰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썼다는 것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승리한 교회와 승리한 성도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지상에는 로마황제의 보좌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권세로부터 성도들이 핍박을 받습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지상에서는 로마의 권좌가 교회를 이기고 성도를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더러운 옷을 입고 고통을 당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고 적은 능력을 가지고 충성했던 자들이 승리하고 이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흰옷을 입고 가장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하나님과 더불어 앉아 있습니다. 이것이 승리한 성도의 영광입니다. 이 영광을 누가 누리는 자들은 이기는 자들입니다. 계2장과 3장의 일곱 교회에게 주님이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는데 하나는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이고 또 하나는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이었습니다. 모든 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이기라고 요구했습니다. 영원한 미래의 영광을 위해서 현재를 믿음으로 잘 싸워서 이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4장에 와서 그렇게 이기는 자들이 앉아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여러분, 눈을 들어 하늘의 보좌를 바라보십시오.
세상은 이곳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갑니다. 이 땅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그 걸음걸음이 전부 죄짓는 것이고 자기를 영원히 죽이는 삶을 삽니다. 그러나 하늘의 보좌를 바라보고 그 보좌 주위에 흰옷을 입고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는 이십 사 장로들의 보좌를 바라보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살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영원한 보좌는 힘을 다해 하나님을 기쁘게 하여 이긴자들의 것입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여기서 온 힘을 다 쓴 사람은 하늘의 보좌 앞에서 받을 기쁨과 영광이 없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부자가 지옥에 갔을 때 아브라함이 그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너는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을 다 받았기 때문에 여기서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모든 좋은 것을 다 누리고도 얼마든지 천국에서도 영광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가짜복음, 복음에 대한 왜곡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만 바라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성경은 비현실적이라고 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보좌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보좌 위에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이 앉아 계시면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주관하시고, 구원과 심판을 주관하고 계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자세를 낮추며 말씀에 순종하면서 이긴 자들, 주님이 입혀주신 의의 흰옷을 더럽히지 않고 이긴 자들만이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는 이십 사 장로들의 보좌에 앉게 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의 현실을 더 믿음으로 살 수 있고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한해를 맞이하면서 여러분의 눈에 이 보좌가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