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일기(山中日記) 이후
도연명의 귀전원거(歸田園居) 이후의 일상은 어떠했을까? 자연으로 돌아온 그는 농사일에만 관심을 가질 뿐 속세의 일에는 생각을 끊었다. 그래서 남산 아래에 콩을 심고 새벽 일찍 일어나, 콩밭에 가서 김을 매다가 저녁에 달빛을 띠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이슬을 맞아 옷을 적시기도 하였으나, 소원은 오직 콩이 잘 자라는 것이었다. 그런 후 동네 황폐한 언덕길을 넘어 옛사람이 살던 곳에 가보기도 하였으나 너무 오래된 일이라 아는 이가 없어, 서글픈 생각에 잠겨 집으로 돌아오다가 산골 맑고 얕은 물에 발을 씻기도 하였다. 인생도 이같이 변화무쌍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집으로 돌아와, 새로 익은 술을 걸러 닭을 잡아 이웃을 청하여 밤새 즐기기도 했다. 이런 풍경이 그의 귀전원거(歸田園居) 1수(首)에서 5수(首)까지 이야기이다.
그 이후 그는 유명한 대표작 ‘음주(飮酒)’ 20수(首)를 노래했다. 산중에서 귀농한 선비가 할 일이 무엇이 있었을까? 낮에는 들에 나가 일하고 저녁에는 술 마시며 시를 짓는 신선의 일 외에 달리 뚜렷한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음주(飮酒)’ 서시(序詩)에서 그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심경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나는 한가히 사노라니 기쁨이 적고 겸하여 요즘은 밤도 깊다.
우연히 유명한 술이 있어 저녁마다 마시지 않는 날이 없다.
내 그림자를 돌아보면서 혼자 다 마시어 문득 또 취한다.
이미 취한 뒤에는 문득 시 몇 귀를 지어 스스로 즐긴다.
이렇게 짓다 보니 여러 수(首)가 되었지만 잘 정리해 놓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냥 친구더러 다시 정서해 달라고 했다.
그것은 다만 같이 기쁘게 웃을 거리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余閑居寡歡 兼比夜已長, 여한거과환 겸비야기장
偶有名酒 無夕不飮, 우유명주 무석불음)
顧影獨盡 忽焉復醉 , 고영독진 홀언부취
旣醉之後 輒題數句自娛, 기취지후 첩제수구자오
紙墨遂多 辭無詮次 지묵수다 사무전차
聊命故人書之 以爲歡笑爾. 요명고인서지 이위환소이
매일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그의 심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속세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와 한가롭게 사는 그에게 무슨 기쁨이 그리 많을 수 있겠는가? 소박한 전원생활이 주는 즐거움이란 도시의 북적거리는 환락과는 다른 것이다. 오직 느리게 찾아오는 자연의 질서를 음미하며 즐기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리고 겨울이 가까워 밤이 길어지고, 그 긴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술 한잔에 시 한 수가 적격일 것이다.
한편 이곳 산동네로 옮겨온 이후, 저녁 식탁에서 포도주 한잔이 일상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떠 창문을 열면 차가운 산 공기가 상쾌하게 반긴다. 낮에는 봄 풍경에 이끌려 들로 개천으로 산으로 공원으로 산책을 한다.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üskind)의 ‘좀머(Sommer)씨 이야기’의 주인공이 배낭을 짊어지고 이상한 지팡이를 쥔 채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걸어 다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느리게 여유롭게 그렇게 다니고 있다. 이즈음 지천으로 핀 봄꽃이 서로 보아달라고 손짓한다. 들길에서 만나는 들꽃은 너무 예쁘다. 그 들꽃을 보며 내게도 과연 저리도 아름다운 날들이 있었는가를 되묻게 된다. 해 질 무렵이면 개천에서 노니던 오리와 왜가리도 제집으로 돌아간다. 이러할 때 으레 있어야 할 풍경을 기억한다. 주위가 으스름하게 땅거미가 다가오는 시간이면 시골 초가집 지붕 위로 저녁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가장 평화로운 순간이 그리워진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온 가족이 그날의 노동을 마감하고 몸을 씻은 후 식탁에 둘러앉아 즐거운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그널 뮤직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타이거’(Tyger)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타이거 인 더 나이트’(Tiger in the night)이다. 저녁 6시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으며 포도주 한잔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살아있음을 소박하게 누리는 시간이다.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라는 지혜의 말씀이 있다.
도연명이 마신 술이 유명하다고 했는데 어떤 술인지 궁금하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서민의 술인 곡주인 황주(黃酒)였을 것이다. 황주는 증류주인 백주(白酒)에 비해 알코올 농도가 덜 강하기 때문에 서민들이 매일 즐겨 마신 술이었다. 그리하여 도연명은 그 황주를 매일 마셔도 그리 취하거나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음주’ 20수 중, 제11수인 ‘나그네가 천금으로 몸을 꾸몄지만, 죽은 뒤엔 그 보배로운 몸도 사라지는 법’(客養千金躯, 객양천금구 臨化消其寶, 임화소기보)이란 시구를 양계초(1873-1930)는 7천 권의 대장경과 맞먹는 명언이라고 하였고, 소동파는 이 시구와 제5수인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꺾고, 아득히 남산을 바라보며’(采菊東籬下 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 유연견남산)와 제7수의 ‘동쪽 처마 밑에서 휘파람 불며 오만해 보니, 에오라지 이 멋진 삶을 다시 얻는가 보다’(嘯傲東軒下, 소오동헌하, 聊復得此生, 요부독차생))라는 세 시구를 도를 터득한 경지의 시구라고 언급하였다. 이처럼 도연명에게 술, 국화, 시는 불가분의 존재였다.
그가 지금 이 땅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자가격리하는 경우 어떻게 일상을 보내게 될는지 궁금하다. 술은 마시겠지만 어떤 술을 마시며 멋진 시를 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