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다로운 사이시옷
세계에서 제일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는 우리 한글. 그러나 바로 쓰기는 상상외로 어렵다. 한라산을 오르며 나눈 대화 중에도 이런 불평이 튀어 나왔다. 한글 맞춤법은 왜 자주 바꿔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배운 대로 쓰다보면 자녀나 손주 녀석들까지 틀렸다고 난리다. 예를 들어 우리 때는 이가 아프면 칫과에 가고 배가 아프면 냇과에 갔다. 학교 가는 길은 등교길이고 요즘처럼 장마철에 내리는 비는 장마비이다. 그런데 이것이 모두 틀린 표기란다. 치과, 내과, 등굣길, 장맛비가 맞단다.
지금 쓰는 한글맞춤법이 개정된 것은 1989년 3월 1일이다. 그러니까 벌써 17년이 지난 셈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 백성이 아둔해서 일까. 물론 세월이 흐르면 말도 변한다. 꼴찌의 말처럼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므로 자연히 글도 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어진 백성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바르게 써야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아서 걱정이다.
그래서 오늘은 사이시옷의 쓰임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알아보았다. 한글 맞춤법 제30항에는 사이시옷 표기에 관한 규정이 있다. 우리가 ‘회’ 먹는 ‘집’을 [회찝/??찝]으로 발음하면서 ‘횟집’으로 적고, ‘나무’의 ‘가지’를 [나무까지/나묻까지]라고 소리 내면서 ‘나뭇가지’로, ‘수도’에서 나오는 ‘물’을 [수돈물]로 말하고 ‘수돗물’로 적는 것이 바로 이 사이시옷 규정에 의한 표기이다.
이렇게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 이유는 두 명사가 결합되어 하나의 합성 명사를 만들 때 두 말 사이에서 생기는 발음의 변화를 표기에 반영하려는 의도이다.
그럼 어떤 경우에 사이시옷을 적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사이시옷은 순우리말끼리의 결합과 순우리말과 한자어의 결합에서만 붙일 수 있고, 한자어 합성어에는 6개의 예외 이외에는 붙일 수 없다.(예외: 횟수, 숫자, 찻간, 셋방, 곳간, 툇간)
순우리말끼리의 결합과 순우리말과 한자어의 결합에서 앞말이 모음에서 끝나고 뒷말이 된소리가 날 때 사이시옷을 붙인다.
예 : 귓밥(귀빱), 나룻배, 나뭇가지, 잿더미, 햇볕, 등굣길, 귓병, 아랫방, 전셋집, 장맛비……
결합된 두 말 사이에 ‘ㄴ’소리가 덧나는 말에는 사이시옷을 붙인다.
예: 콧날(콘날), 아랫니, 뒷머리, 잇몸, 아랫마을, 수돗물, 곗날, 훗날……
이렇게 쓰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말끼리의 결합과 우리말과 한자어의 결합에서 뒷말이 겹소리로 발음되거나 ‘ㄴ’소리가 붙여 날 때, 사이시옷을 붙여 적는다는 것이다. 한자어끼리의 결합은 위에 든 여섯 가지 외에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다. 참고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 성판악코스로 한라산을 오르며
제주에 살면서 한라산을 줄잡아 10번 이상 오른 것 같지만 성판악코스로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9.6km의 긴 장정인데다 시간도 왕복 10시간 이상이 필요하여 당일 산행으로서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이 코스를 택한 것은 등반로 전체가 숲으로 덮여있어 시원하고 경사가 완만하여 안전하기 때문이다.
아침 날씨지만 더위가 예사롭지 않다. 예보로는 30도가 웃도는 더운 날이 될 것이란다. 그러나 한라산은 구름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성판악에 거의 도착할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래와는 딴판인 세상이다.
모이는 시간을 한 시간 앞당기고 궂은 날씨임에도 성판악 주차장에는 친구들이 벌써 모여 있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남산네를 포함하여 모두 열세명이다. 다들 기대에 찬 밝은 얼굴들이다. 이정표를 보니 정상까지는 너무 멀고 잘하면 사라악 대피소(5.6km)정도가 우리의 한계인 것 같다. 표를 사고 등반로에 들어섰다. 그 동안 크고 작은 오름에서 갈고 닦은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라산 오르는 길은 넓고 시원하다. 다른 등반로가 1차선이라면 여기는 서너 명이 한꺼번에 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다.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띄엄띄엄 넓게 계단을 놓아 무릎에도 무리가 덜 갈 것 같다. 주위에는 자연림이 울창하여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안개까지 낀 숲은 컴컴하게 느껴진다. 그렇다 우리는 구름 속을 걷고 있구나. 한참 을 걸으니 옷이 축축이 젖었다. 엊그제 분 태풍으로 나뭇가지가 많이 찢기고 꺾인 모습도 보인다.
돌과 침목으로 된 길이 한없이 이어진다. 안개에 싸인 숲도 언제까지나 이어진다. 비슷한 경치가 한 두 시간 계속 이어지니 약간 지루하다. 이따금 컹컹 노루 짖는 소리가 숲에 변화를 준다. 250m에 한 개씩 서있는 위치표시 말목이 유일한 위안이다. 4-1부터 시작하여 4-30 이상까지 이어지겠지. 우리의 목표는 4-20 정도까지로 해야겠다.
4-5 조금 지나서 처음 쉬었다. 은하수표 독새기와 복분자 술로 힘을 북돋우기 위해서이다. 꼴찌가 올린 사진을 보면 점잖은 양반들이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독새기를 까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찮은 독새기 한 알에 이렇게 열심인 것을 보면 먹는 것에는 반상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복분자 술 세 병도 순식간에 동났다.
표고 700m 정도에서 시작해서 900m까지 왔으나 주변의 식생은 큰 변화가 없다. 두 번째 쉬었던 장소인 속밭 근처에는 삼나무가 울창하다. 자연적인 식생은 아니고 인공조림이 분명하다. 한라산 900고지 이상까지 인공조림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생각하면 1100도로에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도 이보다 높은데 정상까지는 아직도 까마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판악에서 5km 정도를 가자 사라악 대피소가 나온다. 건물은 낡아서 위급할 때 사람들의 피난처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붕 위에 얹은 송이에 파랗게 낀 이끼가 인상적이다. 9시 조금 넘어 출발하여 4시간이 거의 되었다. 이젠 힘들어 더는 갈 수가 없다. 이 부근에서 점심을 먹고 내려가야지.
▲ 꿈속에 나타난 아름다운 호수
안개 속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숲이 우거진 산속이다. 돌연 독일병정 같이 보이기도 하고 밴프리트 장군처럼 생기기도 한 노인이 나타나 길을 안내한다. 우리는 구세주를 만난 듯 정신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혹은 가지 밑을 기기도 하고 타고 넘기도 하며 산을 올라갔다. 한참 오르니 싱그러운 물 냄새가 나는 듯도 하다. 간신힌 숲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모두 환성을 질렀다.
“와! 산정호수다.”
숲이 우거진 둥그런 화구호에 물이 넘칠 듯 넘실거린다. 이런 물은 물찻오름에서 본 후 처음이다. 거기보다 물빛이나 호수의 크기가 더 커 보인다. 모두들 호수에 손을 담갔다. 올챙이가 먹이인줄 알고 가까이 와서 손가락을 간지럽힌다. 때마침 떨어지는 빗방울이 호수에 수 많은 동그라미를 그린다. 노인을 따라 호수를 돌았다. 물이 불어서 물에 잠긴 나무들도 많이 보인다. 안개를 시도 때도 없이 몰려와 호수를 감싼다. 조릿대가 호수 주위에 가득하다. 구름 가득한 호수에서 우리들은 모두 신선이 되어 하늘로 승천한다. 호수 너머 아득한 능선에도 조릿대가 가득하다. 노래가 절로 나온다.
“낮에 낮에나 밤에 밤에나 쌍사랑이로구나~”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간다.
꿈에 본 산정호수를 뒤로하고 서둘러 내려오기 시작했다. 올라 올 때 4시간 이상 걸렸으니 이제 내려 갈 일이 걱정이다. 일단은 개별 행동으로 능력에 따라 내려가서 헤어지기로 했다. 먼저 간 친구들이 주차장에 도착했다고 전화 온 것이 6시가 되기 전이었는데 꼴찌네와 우리는 7시가 되어서야 겨우 성판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장 10시간의 강행군이었다. 다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하지만 일생에 다시 못 볼지 모르는 꿈속의 산정호수 정말 좋았다. 내려오는 길에 라디오를 들으니 오늘이 금년 들어서 가장 더웠다나 어쨌다나 우리는 시원한 숲속에서 가끔 안개비를 맞으며 시원한 하루를 보냈는데..... (2006. 7. 13)
첫댓글 힘든 산행때마다 꼴찌네 때문에 미안해서, 이 번에도 빠지려 했는데... 빠졌더라면 정말 생전에 한이 될뻔 했습니다. 친구들 특히 햇살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빠지면 안 되지. 윗세오름 오른 실력들인데, 그러나 힘든 곳을 안내한 소직이 안스럽네요. 내려오는 길이 오히려 힘들어 고생들 했지요? 끝까지 동행한 햇살네의 아름다운 우정과 배려에 경의와 감사를 보냅니다.
우현이 엄마, 철웅이 엄마 후탈 없었는지요? 이번도 장거였습니다. 어쩌면 다시 가기 어려운 코스 답사에 자족하며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산행보고에 부제 하나씩 곁들여, 이번에 화두였던 사이 ㅅ을 검색하며 다루어준 수고에 진실로 고마움을 표합니다. 언젠가 말했던 것 처럼 평생학습의 계기도 돼서 더욱 그런 생각입니다. 두번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