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인 브랜드 관리를 위해서는 자사의 브랜드가 롱런(long run) 가능한지 정확히 파악하고, 롱런이 어렵다면 최적의 교체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롱런(long run) 브랜드, 즉 수명이 긴 브랜드를 만드는가’ 하는 것이다. 특정 브랜드가 롱런하면 새로운 브랜드로 교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신규 브랜드 출시(launching)에 따른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 해외의 유명 브랜드를 보면 대부분 롱런 브랜드들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마케터들은 브랜드 관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롱런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생각은 타당한 것일까?
롱런 브랜드에 대한 열망
해외의 자동차 브랜드들은 대부분 롱런 브랜드다. Chevrolet, Dodge 등과
같은 패밀리 브랜드는 물론, Corvette, Cavalier, Viper 등 개별 브랜드들도 수십년 이상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국내의 자동차 시장을 보면 현대자동차의 소나타, 아반테 승용차나
포터 등 몇 종류의 트럭을 제외하면 대부분 신차가 나올 때마다 브랜드를
바꾼다.
또, 해외의 화장품 시장을 보면, Lancome, Dior, Estee Lauder와 같은 고급
브랜드나 Loreal, Olay 같은 중급 브랜드들 모두 수십년 동안 장수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이자녹스, 설화수 등 몇 개의 고급 브랜드들만이 장수하고 있을 뿐이다. 중급 화장품 브랜드들은 대부분 4-5년 사용하다가는 폐기하고 새로운 브랜드로 교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최근, 이런 추세를 벗어나서 중급 브랜드 중 일부 대표 브랜드들이 기존의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리뉴얼 했으나 소비자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은 편이다.
의류 업계에서도 해외 유명 브랜드는 롱런하고 있지만, 국내 브랜드 중에서
실질적인 수명이 10년을 넘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중저가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더 수명이 짧다. 이런 사례들은 우리에게 몇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왜 국내에서는 롱런 브랜드를 만들기가 어려운 것일까? 국내 브랜드가 롱런하지 못하는 것은 국내의 마케팅 역량이 외국에 비해서 낮은 수준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가? 왜 중급 이하 브랜드는 고급 브랜드에
비해 롱런 가능성이 낮은가? 일부 고급 브랜드의 롱런 성공을 벤치마킹하여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면 중급 브랜드들도 롱런시킬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에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궁극적인 질문은 ‘롱런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라는 것이다.
한편, 지금부터의 논의는 국내 소비재 시장의 개별 브랜드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해외 시장에서의 브랜드 전략이나, 국내의 산업재 브랜드, 기업 브랜드 등은 논의의 범위를 벗어난다.
롱런 브랜드의 기본 조건
브랜드가 롱런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가? 마케팅, 특히
브랜드에 관한 학자들은 흔히 기업의 일관성 있는 브랜드 전략이 롱런 브랜드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기업의 브랜드 전략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롱런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브랜드 전문가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서구의 사례에서는
브랜드 전략의 일관성이 롱런 브랜드 형성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기업이 일관된 브랜드 전략을 견지하는 것만으로
롱런 브랜드가 만들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관된 브랜드 전략에 앞서 롱런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전제 조건이 먼저 충족되어야 한다.
그 조건으로서 필자가 가설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브랜드의 상대적 위상(status)이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적 수용 범위(acceptance
zone) 내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롱런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시장 내에서 자사 브랜드의 위상이 다른
브랜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어야 한다. 그래야 고객은 자신이 선택한 브랜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상대적 위상이 낮은 브랜드는 일관된 브랜드 전략을 펼치더라도 롱런 브랜드로 정착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브랜드의 상대적 위상
브랜드의 상대적 위상은 기본적으로 브랜드의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고객이 수용할 만한 브랜드의 위상을 쉽게 풀어보면, ‘이 정도 브랜드라면 자부심을 갖고 사용할만하다.’라는 수준을 의미한다.
자동차의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중형 승용차 정도면 어디에
가든지 무시 당하지 않을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형 승용차를 타면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 정도 등급의 차를 계속 타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품질에 대해서 매우 만족하는 경우라도 상대적 위상에 대해서는 만족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식의 체면 의식이 바람직하냐를 떠나서 현실은 분명히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롱런 브랜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브랜드 로열티를 가진 고객이 많아야 하는데, 많은 고객들이 자신이 타고 있는 자동차의 위상 자체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다면 브랜드 로열티 형성은 요원한 일이 된다.
즉, 고객이 구매한 브랜드의 위상이 스스로 선택한 것(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경우(강요된 선택) 브랜드
로열티는 형성되기 어렵다.
브랜드 위상의 수용 범위
고객은 특정 수준의 브랜드 위상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범위에 속하는 브랜드 위상이면 받아들인다. 이것이 수용 범위이다. 그런데 이
수용 범위는 고객 개개인에 따라서, 국가에 따라서, 또 상품의 종류에 따라서 크게 다른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어 똑 같은 중급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어떤 고객은 ‘이 정도 브랜드라면 자부심을 갖고 사용할만하다’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고객은 ‘창피한 수준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어떤 고객은 중급 승용차 브랜드를 자신의 수용 범위 내에 올려놓지 못하지만, 중급 의류 브랜드는 수용 범위 내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
이 같은 수용 범위의 차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
중요한 몇가지를 살펴보자.
● 상품 카테고리의 관여도
브랜드가 속한 상품 카테고리의 관여도가 낮은 경우에는 고객이 상대적 위상 수준을 잘 모르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즉, 관여도가 낮은 상품의 경우 고객은 상품의 상대적 위상에 대해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그게 그거’라는 식으로 인식할 수 있다. 따라서 수용 범위가 넓어진다.
예를 들어 밀가루는 관여도가 낮은 상품이다. 이런 경우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고객은 이 밀가루 브랜드가 특별히 수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밀가루나 식용유와 같은 생필품(commodity)에서도 유기농 재료의 고가품이 등장하고, 시장이 고가품 위주로 재편되면 상대적 위상이 낮은 상품은 수용 범위에서 탈락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은 밀가루 자체가 저관여 제품에서 고관여 제품으로 변화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수용 범위도 변화하게 된다.
장기적 관점에서 자사 상품 시장의 고관여화와 같은 시장 변화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브랜드가 롱런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한편, 자동차, 의류, 유아용품 등과 같이 관여도가 높은 상품에서는 고객들이 상대적 위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며 수용 범위는 좁아진다.
● 상품 카테고리의 위상
특정 상품의 경우 카테고리 자체가 고급이거나 희소성이 있어 매우 위상이
높은 경우가 있다. 보석, 모피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같은 고급 상품 카테고리의 경우, 그 카테고리 내에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더라도 고객들은 받아들일 만한 상품 위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즉, 이런 상황에서는 브랜드의 수용 범위가 넓어지게 된다.
그러나, 상품 카테고리의 위상은 쉽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모피가 흔치 않을 때는 모피라는 카테고리에 속하기만 하면 어느 브랜드나 상대적 위상이 고객이 받아들일 만한 범위 내에 있었다. 그러나 모피가 대중화되면서 고객의 수용 범위는 좁아지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브랜드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상품 카테고리의 현재 위상
뿐만 아니라 변화 방향까지도 세심히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
● 소비 문화
고객이 속한 사회의 소비 문화는 브랜드의 수용 범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시적, 모방적 소비 경향이 강하다. 이는 카테고리 내에서 상대적으로 고급 브랜드에 대한 선호 경향을 높이고, 브랜드 수용 범위를 좁히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될 경우 수용 범위 내에 들지 못하는 중급
브랜드는 롱런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우리나라에서 중급 이하의 롱런 브랜드를 찾아보기 어려운 데에는 이 같은 소비 문화의 특성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 고객의 생활 전반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큰 경우 브랜드 수용
범위는 좁아진다.
예를 들어, 호주나 캐나다와 같이 아웃도어 레저 활동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고급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낮고 브랜드 수용 범위가 넓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들 국가의 소비자들은 생활에서 ‘무엇을 하느냐, 어떻게 즐기느냐’를 중요시하며, ‘무엇을 사느냐’라는 소비 행위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반면,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 사람들은 별다른 취미 생활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비 생활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자신이 사는 물건이 곧 자기
자신의 가치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급 패션 브랜드나 화장품 브랜드, 최고급 양주 브랜드 메이커들에게 호주나 캐나다는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전략 시장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을 훨씬 더 중요한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바로 소비 문화의 차이 때문이다.
수용 범위 내의 성공 포인트
지금까지 브랜드가 롱런하기 위한 기본 조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브랜드의 상대적 위상이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적 수용 범위에 들어야 한다’는 기본 조건이 충족되면 브랜드는 쉽게 롱런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수용 범위에 들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본 조건에 불과하다.
같은 가격대의 브랜드로서 수용 범위 내에 있다고 하더라도 고객에게 전해주는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가 없다면 그 브랜드는 재구매로 이어질 수 없고
롱런할 수 없다. 즉, 브랜드가 롱런하기 위해서는 명확하고 일관성 있는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수용 범위 밖의 서바이벌 포인트
브랜드의 위상이 고객의 수용 범위 내에 들지 못하는 경우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기존 브랜드를 단기적으로만 사용하고, 새로운 브랜드로
교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새로운 브랜드니까 더 좋다는 느낌을
고객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롱런 브랜드가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는 브랜드는
모두 조기에 교체해나가야 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상대적 위상이
수용 범위에 속하지 못하는 브랜드도 여러가지 여건을 고려해 볼 때 브랜드를 교체 하는 것보다는 유지하는 쪽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브랜드 교체 비용, 기업의 인지도, 고객 교체 주기, 경쟁 강도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 브랜드 교체 비용
산업이나 상품의 특성상 신규 브랜드 출시에 소요되는 비용이 브랜드 교체로 인한 이익보다 큰 경우에는 기존 브랜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 기업의 인지도/신뢰도
특정 브랜드를 생산, 판매하는 기업에 대해 고객이 잘 알고 있고 좋은 감정을 갖고 있으면 새로운 브랜드로 교체하더라도 고객들이 신규 브랜드에 쉽게 익숙해질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브랜드를 교체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기업의 인지도나 신뢰도가 낮아서 신규 브랜드로 교체했을 때 기업
브랜드로부터 지원(endorsement)을 전혀 받을 수 없다면, 기존 브랜드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할 가능성이 높다.
● 교체 주기
산업 혹은 상품의 특성상 고객들의 재구매율이 높고, 제품 교체 주기가 짧다면 오래된 브랜드는 교체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재구매율이 낮고 교체 주기가 길다면 기존 브랜드를 유지하는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소형 승용차처럼 재구매 주기가 매우 길고, 대부분의 고객들이
만족도에 관계없이 다음에는 중형 승용차를 구매하는 경향이 강하다면, 굳이 많은 비용을 들여서 새로운 브랜드로 교체할 필요가 없다. 기존 고객들은 어차피 재구매를 잘 하지 않을 것이며, 신규 고객에게는 기존 브랜드의
진부함이 상대적으로 덜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화장품과 같이 재구매 주기가 짧아서 기존 고객의 재구매가 매우 중요한 업종에서는 고객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 적당한 시점에 브랜드를 교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 경쟁 강도
시장 지배적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굳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쓰면서 신규
브랜드로 교체할 필요가 없다. 시장 지위, 기존 브랜드의 인지도 등을 바탕으로 제품 개선 등 실체적 측면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브랜드의 롱런은 브랜드 관리자의 꿈이다. 그러나 모든 브랜드가 롱런할 수는 없다. 롱런할 수 없는 브랜드는 억지로 롱런 시키는 것보다 적당한 시기에 교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현명한 브랜드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관리하는 브랜드의 롱런화가 가능한지 정확히 파악하고, 교체해야
한다면 최적의 교체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
출처 : LG 경제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