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곡정보
symphony O5 e minor op95
From The New World
(신세계로부터)
제1 악장 : 소나타 형식, Adagio Allegro molto, 마 단조, 4/8→2/4박자
제2 악장 : 론도 형식, Adagio, 내림라 장조, 4/4박자
제3 악장 : 스케르초 형식, Allegro, 마 단조, 3/4박자
제4 악장 : 소나타 형식, Allegro, 마 단조, 3/4박자
♣연주악기
[목관악기] 플루트, 오보에, 잉글리쉬 호른, 클라리넷, 바순
[타악기] 팀파니, 트라이앵글, 심벌즈
[금관악기] 호른, 트럼펫, 트롬본, 튜바
♣악곡 별 감상문
제1 악장
확실히 귀에 익은 듯한 멜로디였다. 영화나 만화에서 오프닝으로 자주 들어본 듯 하다. 팀파니의 웅장함과 플룻과 오보에의 경쾌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베토벤의 운명과 같이 어두운 느낌은 아니고 밝은 느낌의 경쾌한 웅장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흑인 영가 풍의 악장이라고 들었는데 토속적인 느낌도 간간히 느낄 수 있다. 뒷부분 플룻 독주는 곡의 경쾌함을 더해준다.
제 2악장
1악장을 늘여놓은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분위기 자체는 1악장의 경쾌한 웅장함과는 대조적으로 상당히 차분하고 고요한 느낌을 준다. 거기에 잉글리쉬 호른의 평온하고 아름다운 선율은 2악장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흔히 말하는 보헤미안 풍의 리듬이다. 잉글리쉬 호른 뿐 아니라 플룻과 오보에 협주도 평온한 느낌을 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1악장에 비해서 좀 힘빠진 느낌이다.
제 3악장
2악장과는 대조적으로 상당히 스피디하고 경쾌한 느낌이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점점 더 빨라진다. 1악장의 분위기를 다시 되찾은 듯 경쾌하고 웅장한 면으로 전개된다. 플룻과 오보에가 여기서는 경쾌한 스피드함을 표현해주고 있다. 3악장을 듣던 중 시간이 끝나 3악장 일부와 4악장은 듣지 못했다.
제 4악장 (집에서 들어봄)
제1 악장보다 확실히 더 귀에 익는다. 첫 부분은 영화 죠스에 삽입된것 같은 데 확실히는 모르겠다. 초중반부는 스페인 풍의 격렬하면서도 웅장한 리듬이 계속된다. 제1악장보다도 비교할수 없을만큼 훨씬더 웅장하며 긴장감이 계속된다. 4악장의 개성이 너무 강해 오히려 여타 악장은 너무 묻혀버린듯한 느낌이다. 트럼팻과 호른의 행진곡 풍 연주는 곡의 흐름과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진다.
♣전체 감상문
드보르작하면 가장 떠오르는 곡이 유모레스크이다. 집에 클래식 CD가 있어서 중학교때 가끔듣곤 했는데 아직도 생각이난다. 사실 신세계로부터라는 제목은 생경했다. 감상시간에 처음들었는데 제 4악장은 집에서 들어보니 너무나도 귀에 익었던 곡이었다. 이렇게 들어는 봤는데 제목을 몰라서 기억속에 묻혀버린 곡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깝다.
1악장의 경쾌한 웅장함과 뒤이은 2악장의 잔잔하고 고요함. 힘을 되찾은듯 다시 경쾌하고 스피디 했던 3악장까지 비교적 순탄한 진행을 해왔다. 하지만 제 4악장은 마치 잘짜여진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만큼 순탄하던 곡의 흐름을 순식간에 뒤바꿔 놓았고, 본래 많이 들어봐서 그런지 몰라도 친근한 느낌마저들었다.
유모레스크가 전반적으로 우아하고 잔잔한 것에 비해 이 곡, 특히 제 4악장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4악장 뿐만아니라 이 곡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었던 악기가 호른과 트럼팻이라고 생각한다. 호른과 트럼팻이 자아내는 웅장하고 둔탁하며 어두운 느낌은 이 곡에 마치 날개를 달아준 듯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자아냈다고 평하고 싶다.
앞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이 곡이 나오더라도,
"어 어떤 곡이였더라?" 가 아니라
"아, 이 곡!"
이라고 바로 말할수 있을것 같아 뿌듯하다. 좋은 곡을 접할때 마다 느끼는 기분이다.
♣작곡가 정보
Antonin Dvorak (드보르작) [1841~1904] 체코
체코 작곡가. 프라하 근교 넬라호제베스 출생. 여관과 푸줏간을 경영하는 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1857년부터 오르간학교에서 2년 동안 공부하였는데, 극장이나 음악회를 찾아다니며 베를리오즈·리스트·바그너의 음악을 들을 기회도 가졌다. 졸업 후 레스토랑 등에서 비올라연주자로서 생활하다가 60년대 초 체코슬로바키아 가설극장 관현악단에 입단, 62년부터 10년 동안 비올라연주를 담당했다.
이때에 그는 많은 오페라작품을 접할 수 있었으며, 또한 66년 그곳의 지휘자로 부임한 B. 스메타나의 영향을 받아 당시 고조되던 체코 민족운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드보르자크의 이름이 비평가의 주목을 끌게 된 최초의 작품은 민족적인 제재를 다룬 애국시 《백산(白山)의 후계자들》에 의한 합창찬가로서, 이것은 73년에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74년 성 아다르베르트교회의 오르간주자가 되었고, 단막 오페라 《완고한 자들》로 가설극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나, 생활은 여전히 궁핍하여 이 해부터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해마다 작품을 제출하였다.
그러던 중 77년 심사위원인 J. 브람스에게 높이 평가되어 베를린출판사에서 작품이 출판되고 그의 이름도 국내외로 퍼지게 되어 이 때부터 지휘활동도 시작하였다. 84년부터 9회에 걸친 영국 방문에서 대환영을 받았으며, 91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92년 뉴욕내셔널음악원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원 원장 및 작곡교수로 있었으며 이때 아메리카대륙에서 받은 강한 인상은 교향곡 제 9 번 《신세계》와 첼로협주곡 등의 걸작을 낳았다.
95년 귀국하여 프라하음악원 작곡교수가 되었으며, 그 뒤 교향시와 오페라 작곡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1901년 오스트리아 종신 상원의원으로 추대되었으며, 프라하음악원 원장에 취임하는 등 많은 영예를 얻었으나 1904년 5월 1일 신장병으로 사망하였다. 드보르자크는 슈베르트와 비견되는 다작(多作)의 천재로서 샘솟는 듯한 악상으로 거침없이 써내려간 작곡가였다. 그의 초기의 작품에서는 베토벤·슈베르트의 영향을 볼 수 있으며, 바그너와 리스트에 열중했던 시기에는 민족적인 것을 상실한 듯한 경향을 보인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