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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500(29)자유~자업자득~자비~작업~장로~전도~점심~조계종~조사선
393. 자유 (自由) ☀불교에서 나온 말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독립자존(獨立自存)의 상태, 이를 자유라 한다.
범어 ‘Avavam svavam-bhuvah'의 번역이다.
자유와 같은 개념으로 ‘자재(自在)’ 나 ‘무애(無碍)’가 있다.
두 용어 모두 자유롭지 않음이 없고 장애 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394. 자업자득 (自業自得), 업 (業)
1) 업(業)은 범어(梵語) karman, 음역은 갈마(羯磨). 뜻으로 번역하면 행동(行動)ㆍ작용(作用)ㆍ의지 등
신심 활동으로 짓는 것을 말하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선성(善性)과 악성(惡性)이 반드시 고락(苦樂)의
과보를 받으므로 업인(業因)이라 하며 현재를 현업(現業)이라 한다.
인간의 행위는 일반적으로 신체적 행위인 신업(身業), 언어적 행위인 구업(口業). 의지적 행위인
의업(意業)의 삼업으로 나눈다. 그 모든 행위와 그것에 의해 초래되는 잠재적인 힘을 업이라 하고,
그 선악의 업에 근거하여 고락의 결과를 감수하는 것을 인과응보라 한다.
⌾<별역잡아함경(第三)>에 “일체 중생들은 다 죽고, 수명은 반드시 끝이 있어 생전에 지은 업에 따라
선악의 과보를 받음이 각각 다르니 선을 닦은 사람은 천상에 나고, 악을 행한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니
도를 닦아 생사를 끊어 열반에 들어가라”고 하였다.
⌾<숫타니파타> “인간은 결코 그의 신분에 의해서 비천해지거나 고귀해지지 않는다. 인간을 비천하고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신분이 아니라 그 자신의 행위다.” 라고 하였다.
2) 자업자득 (自業自得) ☀불교에서 나온 말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를 다시금 자기가 받는 것을 말한다.
‘그토록 욕심을 내어 일을 망하게 했으니 자업자득이다’
스스로가 지은 선(善)과 악(惡)의 업(業)은 반드시 자기가 스스로 받게 되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을 이르는 말이 바로 자업자득이다.
3) 삼업 (三業)
① 신(身三)ㆍ구(口四)ㆍ의(意三)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 삼업(三業).
② 받는 과보의 내용이 복인가 죄업인가에 따라 복업(福業)ㆍ비복업(非福 業)ㆍ부동업(不動業)[색계ㆍ
무색계에 태어날 인(因)인 선업(善業)].
③ 받을 과보의 시기에 따라 순현업(順現業)ㆍ순생업(順生業)ㆍ순후업(順後 業)의 삼시업(三時業)을
들기도 하고,
④ 행업(行業)의 내용이 선인가 악인가에 따라, 선업ㆍ악업ㆍ무기업(無記 業): 악(惡)도 선(善)도 아닌 것.
⑤ 행업을 일어키는 심리 내용에 따라 곡업(曲業:아첨에서 일어남)ㆍ예업 (穢業:진심(嗔心)에 의함)ㆍ
탁업(濁業: 탐욕(貪慾)의함).
☀ 과보(果報): 범어(梵語) vipaka. 보과(報果), 응보(應報)라고 번역한다. 인(因)으로서의 업(業),
곧 업인(業因)으로 말미암아 얻는 결과다. 또 삼시보(三時報)가 있다.
① 순현보(順現報)는 현보(現報)라 하며, 금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다.
② 순생보(順生報)는 생보(生報)라 하며 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과보다.
③ 순후보(順後報)는 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생을 넘어 다음 다음생 이후에 받는 과보를 말한다.
395. 자비 (慈悲) ☀불교에서 나온 말
본래 불쌍히 여긴다는 의미의 범어 ‘maitri'에서 나온 자(慈)와 동정심, 공감 등 함께 슬퍼한다는 뜻의
범어 ’karuna'에서 나온 비(悲)가 합쳐져 된 말이다.
<다음백과>:
자(慈)는 사랑의 마음으로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말하는데, 산스크리트 마이트리(maitrῑ)는
벗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 미트라(mitra)에서 유래한 말로서 진실한 우정을 뜻한다.
비(悲)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으로, 산스크리트 카루나(karunā)는 공감, 동정, 연민, 함께 슬퍼함 등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세계를 대하는 태도로서 지혜를 바탕으로 하는 자비의 정신을 강조하여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와 무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인 자비를 베푸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자비심을 일으키는 단계에 따라 중생연자비(衆生緣慈悲)ㆍ법연자비(法緣慈悲)ㆍ무연자비(無緣慈悲)의
3연자비(三緣慈悲)로 구분된다.
① 중생연자비: 중생의 개별적인 모습을 보고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고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생각하여 베푸는 자비로서 범부나 아직 번뇌를 끊지 못한 이가 행하는 자비이다.
② 법연자비: 일체제법(一切諸法)이 5온(五蘊)의 화합하여 생겨난 공(空)한 것임을 깨닫고 베푸는 자비로 번뇌가 끊어진 성자(聖者)가 일으키는 자비이다.
③ 무연자비: 온갖 차별된 견해를 여읜 절대평등의 경지에서 제법의 진여실상(眞如實相)을 깨달은 큰 보살과 부처가 행하는 자비이므로 대자대비라고 한다.
자비의 정신은 자(慈)·비(悲)·희(喜)·사(捨)의 4가지 무량한 마음을 일으키는 사무량심(四無量心)으로도
표현되는데, '무량'은 무량한 중생을 대상으로 하며 무량한 복을 가져온다는 의미가 있다.
① 자무량심: 선한 중생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가짐으로 번뇌에 얽매여 괴로워하는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② 비무량심: 악한 중생을 보고 슬퍼하여 그들의 괴로움을 없애주려는 마음이다.
③ 희무량심: 청정한 수행을 닦는 중생을 보고 기뻐하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처음에는 친근한 사람에
대해 희무량심을 불러일으키고 점차로 다른 사람에게 널리 미치도록 한다.
④ 사무량심: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아 자타(自他)·애증(愛憎)·원친(怨親) 등의 모든 차별을 없앤
마음으로 처음에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로 친한 사람과
미운 사람에 대해 이 마음을 일으키도록 한다.
사무량심은 보살도를 행할 때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마음가짐으로 자비심(慈悲心)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대시킨 것이다.
396. 자자 (自恣) ☀불교에서 나온 말
자자는 보통 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에 스님들이 모여서 자기 스스로 지난 안거 기간 동안 자신에게 범계(犯戒)등의 허물이 있었다면 무엇이든 지적해 달라고 동료 스님에게 청하는 의식이다.
포살(布薩)이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대중 앞에 드러내 고백하는 참회의 절차라면, 자자(自恣)는
대중 앞에서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드러내는 즉 자신의 잘못이 대중 앞에 폭로되는 성격을 갖는다.
즉 포살(布薩)이 자발적 참회를 위한 것이라면 자자(自恣)는 타인에 의한 나의 참회가 요구되는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포살(布薩) 의식이 우기 즉 안거를 제외한 여타의 기간 동안에 행해졌다면 자자(自恣)
의식은 우기 즉 안거와 때를 맞춰 행해졌다.
<사분율>에 따르면 자자(自恣)는 자자가 행해지는 날 상좌가 ‘오늘 대중이 자자를 합니다.’ 고 알린 후
모두 모여 꿇어 앉아 합장하고 상좌가
다음과 같이 대중에게 말한다.
“대덕이시여 대중이 오늘 자자를 하는데 나 아무 비구도 자자를 합니다. 보았거나 들었거나 의심되는
죄가 있거든 대덕께서 나를 사랑하시어 말씀해 주시오 내가 만일 내 죄를 발견한다면 법답게
참회하겠습니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말한 후 자자를 마친 자는 바로 앉아도 되는데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며
신입 비구에 이르기까지 다 마쳤을 때 비로소 자자의식은 끝난다.
포살(布薩)과 자자(自恣)는 교단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아름답고 숭고한 의식이다.
이를 통해 수행자들은 상호간에 믿음을 갖고 신뢰할 수 있는 승가공동체를 만들며 이런 이념이 깃들어
대중공사의 근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97. 자장율사 (慈藏律師)
통도사를 창건(創建)하신 자장대사는 신라 진골(眞骨)출신으로 소판(蘇判)벼슬을 지낸 김무림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국가의 중요한 관직(官職)을 지냈으나 자녀가 없으므로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천부관음(天部觀音)에게 자식을 두게 해달라며 “만일 아들을 낳으면 시주하여 불교의 지도자로
만들겠습니다.”하는 축원 끝에 그의 어머니의 꿈에 별이 떨어져 품안에 들어오더니 이로 인하여
태기가 있었다.
부처님과 같은 날에 태어났으므로 이름을 선종랑(善宗郞)이라 하였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자,
20대 초반에 논과 밭을 희사하여 원령사(元寧寺)를 짓고 불가(佛家)에 귀의(歸依)한 후
자장(慈藏)이라 했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卷4, 자장정율조(慈藏定律條)에는
<조금 피곤함이 있으면 방안을 가시로 둘러 움직이면 가시가 찌르도록 했고, 머리를 천장에 매달아
졸음을 물리치는 고골관(枯骨觀)이라는 엄격한 계율을 몸소 실천하며 수행에 전념했다.
이처럼 그의 피나는 고행은 계속되었으나 당시 조정(朝廷)에서는 수행중인 자장을 대신(大臣)의 자리에 오르라는 왕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거듭된 거절에 왕은 조정(朝廷)의 관리(官吏)로 취임하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고 했다.
이에 자장은 “나는 차라리 계(戒)를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파계(破戒)하고 백년(百年) 살기를
원(願)하지 않는다 (오령일일지계이사 불원백년파계이생:吾寧一日持戒而死 不願百年破戒而生)”하였다.
이 말이 위에 들리니 王은 그의 출가를 허락했다. 이에 바위 사이에 깊이 숨어사니 꿈에 천인이 와서
오계(五)戒를 주므로 비로소 산골짜기에서 나왔다.
향읍(鄕邑)의 사녀(士女)들이 다투어 와서 계(戒)를 받았다.
⌾ 인평(仁平) 3년 병신(丙申, 636년) 칙명(勅命)을 받고 승(僧) 실(實)을 위시하여 10여명의
문인(門人)들과 함께 서쪽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자장율사는 중국 계율종(戒律宗)의 본산(本山)인
종남산(終南山)과 오대산(五臺山)에 머물렀다.
여기서 문수보살의 현신(顯身)을 만나 석가모니가 입던 가사(袈裟) 한 벌과 바리때 하나, 부처님의
정수리 뼈와 치아사리 등을 받은 자장율사는 643년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요청으로 귀국하였다.
귀국 후 스님으로서는 최고 자리인 대국통(大國統)에 임명된 자장율사는 전국의 승려들에게 계(戒)를
내려 규율(規律)을 단속하고 사신들을 파견하여 지방 사찰을 순회 감독하게 하는 등 대대적인 불교
정비에 나섰다.
아울러 불교를 통치이념(統治理念)으로 국력의 신장과 국론의 통일을 꾀하고 신라 불국토사상
(佛國土思想)을 전개하여 불교의 토착화(土着化)에 공헌(貢獻)하였다.
이러한 자장율사의 사상적 구심점은 바로 삼국통일의 염원(念願)이 담긴 황룡사 9층 목탑의 건립과
계율근본도량(戒律根本道場)인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의 건립에서 보다 구체화되었다.
즉, 중국에서 모셔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위의 두 곳에 봉안(奉安)함으로써
신라사회(新羅社會)와 모든 불교세력(佛敎勢力)을 규합(糾合)할 수 있었다.
예로부터 통도사와 신라 최대의 거찰(巨刹) 황룡사를 형제 사찰이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98. 자재 (自在, vasita)
자기가 원하는 대로인 것, 생각한대로, 마음 대로인 것, 자유자재로 어떠한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원하는 대로의 경지 등의 뜻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에 따르게 하는 초자연적인 힘이다.
중국의 규지법사(窺基法師)는 반야바라밀다심경유찬(般若波羅密多心經幽贊)에서 자재의 뜻을
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열 가지 자재력은 무수한 세월을 수행하여 얻어지는 현대업론지(現大業論紙)에 기록된 것으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수자재(壽自在): 수명을 자유 자재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수명을
늘이고 싶으면 늘이고 줄이고 싶으면 줄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② 심자재(心自在): 마음을 자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어떤 곳에
가더라도 생과 사를 초래하는 번뇌에 물들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③ 재자재(財自在): 재물을 자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재물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을
뜻하며 이러한 것은 보살이 오랜 세월 동안 보시를 한 공덕으로 얻어진 것이다.
④ 업자재(業自在): 업력을 자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오직 선업(善業)만을 구비하고 남에게도
마음대로 선행을 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⑤ 생자재(生自在): 출생을 자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마음대로 원하는
장소에 가서 출생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계율을 잘 지킨 공덕으로 얻어진다고 한다.
⑥ 승해자재(勝解自在): 수승한 이해를 자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잘 이해하며
상대를 잘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인욕을 잘 지킨 공덕으로 얻어진다.
⑦ 원자재(願自在): 원력을 자재하게 세우는 것을 말한다. 보살은 무엇이든지 보고 좋아한 것은 모두
이루어진다. 이는 곧 근면하게 생활하고 정진을 잘 한 공덕으로 이루어진다.
⑧ 신력자재(神力自在): 부사의한 신통력을 자유자재하게 발생하는 것을 뜻한다.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며 몸과 마음의 힘을 최상으로 자유롭게 발휘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선정을 닦아 얻어진 것이다.
⑨ 지자재(智自在): 지혜를 자유롭게 발생하여 사리를 정확하게 아는 것을 뜻한다. 말을 듣고 음성을
관찰하며 삼라만상의 성질을 진리롭게 관찰하는 것을 뜻한다.
⑩ 법자재(法自在): 교법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잘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과거에 지혜를 닦아 얻은
결과이다.
이상과 같이 십자재(十自在)는 과거세에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실천하여 얻은 결과이다.
보살의 혜관(慧觀)은 제일 먼저 십자재를 성취한다는 말과 같이 바라밀다를 수행하면 필연적으로
자재력(自在力)을 얻게 된다고 한다.
규기대사는 자재(自在)를 종임(縱任)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종임은 마음 대로라는 뜻이 있다.
보살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399. 작업 (作業) ☀불교에서 나온 말
“발굴조사 작업으로 마구 파헤쳐진 채…”
“서로를 파악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 중…” 일상생활에서 빈도 높게 사용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작업이다. 이 말이 불교수행의 용어에서 나온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작업은 ‘깨달음을 위한 수행’의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정토교(淨土敎)의 용어로, 보다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왕생(往生)을 원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실천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작업(作業)은 범어“kaman"을 의역한 것으로 ‘업을 만드는 행위’를 의미한다.
즉 신체와 말에 의한 행위를 나타낸다.
<불교 인도사상사전>에서는 “정토문에서 안심(安心)을 얻은 뒤에 신, 구, 의(身口意)로 오념문(五念門), 오정행(五正行) 등을 행할 때 이것을 경책 수행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불교는 수동적인 종교가 아니다. 주체적인 노력으로 업(業)을 개선하는 작업을 하는 불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400. 장로 (長老) ☀불교에서 나온 말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번역 과정상 이 단어를 선택해 이젠 마치 기독교 용어인양 인식되고
있지만 장로는 어디까지나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범어 ‘avusmat'의 번역으로 상좌(上座,) 상수(上首), 수좌(首座)라고도 한다.
불교사전에는 존자(尊者) 또는 구수(具壽)라고 번역하고 있다.
지혜와 덕이 높고 법랍(法臘)이 많은 비구를 가르키는 단어로 젊은 비구가 나이든 비구를 높여 부르는
이름이다.
장로에는 세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불문에 귀의한지 오래된 법랍(法臘)이 높은 스님을 가리키는
기년(耆年)장로, 교법에 정통하고 덕이 높은 스님을 일컫는 법(法)장로, 그저 이름뿐인 작(作)장로 등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개신교 쪽에서 장로라는 용어를 ‘독차지’ 하고 있다. 1893년 선교사들이
‘장로회선교공의회’를 조직했던 것이 개신교 쪽에서 장로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부터이다.
1962년 선포된 조계종 최초종헌에는 장로원(長老院)을 종법기구로 두고 있었다. 지금의 원로회의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1978년 4월 28일 종헌을 개정하면서 원로회의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은 장로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401. 장생표 (長生標)
신라, 고려시대에 사령(寺領)을 표시하기 위하여 사찰 주변에 세웠던 표지물로써 장생표(長生標)는
재질에 띠라 목장생(木長生)과 석장생(石長生)으로 구분한다.
기록에 있는 최초의 장생표(長生標)는 통일신라시대인 759년(경덕왕 18년) 전남 장흥의 보림사에
세워진 것이며, 그 밖에도 청도 운문사에 12개, 원주 봉은사에 1개, 오대산 월정사에 1개 등 여러 곳에
장생표(長生標)가 세워졌다.
이러한 여러 장생포 중에서 통도사의 12국장생에 관한 기록이 비교적 상세하게 전하여지고 있는데,
이 국장생은 통도사측의 요청에 의하여 1085년(선종2년)에 호부가 첩문을 내려 건립하게 한 것으로서,
사찰 입구에는 2개의 석비형과 4개의 석적형 장생이 있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하북면 답곡리의 솔래천(省伋川이라고도 함)에 세워졌던 석장생표(石長生標)가 현전하여
보물 제74호로 지정되어 있다.
402. 장승 (長丞)
장승(長丞)은 원래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웠다.
나무로 만든 것은 ‘목장승’ 돌로 만든 것을 ‘석장승’이라고 한다.
장승은 서 있는 장소에 따라 보통 세 가지로 구분한다.
① 마을 장승 : 마을 입구나 동제를 지내는 성스러운 장소에 세워진 마을 을 수호하는 장승이다.
② 사찰 장승 : 사찰입구나 사방 경계에 세운 장승이다.
③ 공공 장승 : 지역간의 경계, 성문, 병영, 국도 등에 세운 공공의 장승 이다.
특히 사찰 장승(長丞)은 사찰의 보호, 사찰의 경계표시, 이정표, 잡귀를 방어하는 등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찰 장승은 단순한 이정표 구실이나 경계 표시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절에 오는 사람을 악귀와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수호해 주며 소원도 성취해주므로 신앙의 대상으로도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장승을 함부로 건드리거나 손대지 않는다.
장승의 생김새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대략 다음과 같이 나뉘어진다.
① 인면장승 (人面長丞: 사람의 얼굴을 닮은 장승)
② 귀면장승 (鬼面長丞: 귀신의 얼굴을 닮은 장승)
③ 미륵면장승 (彌勒面長丞: 미륵보살을 닮은 장승)
④ 남근형장승 (男根形長丞: 남근을 닮은 장승)
⑤ 문무관장승 (文武官面長丞: 문관과 무관을 닮은 장승)
소나무나 참나무로 만든 장승들은 모두 삭아서 없어지고,
돌로 만든 장승만이 몇 군데 남아 있을 뿐이다,
승주 선암사의 목장승은 비바람에 너무나 많이 상해서 원형대로 그 모습을 새로 복원했다.
창녕 광룡사 입구의 돌장승은 사찰 장승 중 드물게 쌍으로 서 있는 장승이다.
403. 재(齋) 와 재일(齋日)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기도드리는 모든 의식이다.
그 어원은 ‘우포사다(uposadha)'에서 유래된 스님들의 공양의식을 뜻한다. 대개 스님들에 대한 공양은 집안의 경사(慶事)나 상사(喪事), 제사 때에 이루어졌으므로 나중에는 제사의식으로까지 전환되었다.
원래 재(齋)는 스님들에게 공양 올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간단히 불전의식을 하고 공양을 했다.
그것이 점차 큰 법회의식으로까지 발전하여 나중에는 산사람이나 죽은 사람을 위해 베풀어지는 일체의 행사를 통칭하는 말로 되었다.
요즈음은 기도ㆍ불공ㆍ시식ㆍ제사ㆍ낙성ㆍ기타 법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재(齋)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 재일(齋日)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기도드리는 날이다. 재(齋)란 ‘목욕재계할 재’로서 재기(齋祈)의 줄인 말이다.
따라서 재일이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불보살님들께 공양하고 기도드리는 날’을 뜻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특히 많이 지켜지고 있는 재일은 18일의 지장재일(地藏齋日)과 24일의 관음재일
(觀音齋日)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지옥중생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지장보살과 중생들의 모든 소망을 들어주는 관세음보살이 대중과 긴밀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404. 전도 (傳道) ☀불교에서 나온 말
깨달은 바의 도(道)를 다섯 사람의 동료에게 최초로 전하신 사건을 초전법륜(初傳法輪)이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의‘전도활동(傳道活動)’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적극적인 ‘전도의 개시’를 당부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전도선언’이다.
“그대들은 이미 해탈을 얻었다. 이제 모든 천인과 인간들 속에서 그들을 제도하라.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안락을 위해서 그리고 세상에서 구하는 미래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서 가도록 하라.
마을로 들어갈 때는 혼자 갈 것이요. 두 사람이 한 곳으로 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대들은 많은 사람을 연민하고 섭수하여 이치에 맞게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법하라. 나도 우루벨라의 병장촌으로 가서 설법, 교화하겠다.”
또 다른 뜻의 전도는 “도리(道理)를 세상에 널리 전함”, “주로 교회에서 그 교지(敎旨)를 전하여 신앙을
갖도록 인도하는 일” 대부분의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전도의 내용이다. 기독교에는 전도사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이다. 많은 이들이 전도를 기독교에서만 사용하는 단어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전도는 불교에서 먼저 사용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널리 전하라”는 내용의 당부를 했는데,
이는 전도의 길을 떠나라는 것이다. 전도는 도(道)를 전(傳)하는 일이다.
도(道)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타내며, 전(傳)은 이를 널리 펴는 일이다. 불교 경전에서는 전도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도를 전수하고 넓히는 것” <선원청규>4권, 당두시자(堂頭侍者)에 실린 내용이다.
405. 점심 (點心) ☀불교에서 나온 말
낮에 먹는 식사를 점심이라 하지만 본래의 의미는 선종(禪宗)에서 밤참을 들기 전에 먹는 약간의 음식(小食)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음에 점을 찍듯이 작은 점(點)을 찍을 만큼 간단하게 요기를 때운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세속으로 내려오면서 한낮의 식사란 의미로 바뀌었다.
점심(點心)이란 말속에는 적은 양의 음식을 먹는 것 뿐 아니라 마음에도 깨달음의 점(點)을 찍어야 한다는 발원이 담겨있다. 깨달음은 중생과 함께 할 때 빛이 난다.
406. 점안 (點眼) ☀불교에서 나온 말
점안식은 불교 신앙의 대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의식을 말한다.
불상ㆍ불화ㆍ만다라ㆍ석탑ㆍ불단 등을 조성하거나 새롭게 개수할 경우 대상에 공양하고
불구(佛具)의 근본 서원을 개현하게 하는 의식을 말한다.
봉불식(奉佛式)은 부처님을 새로 모셨을 때 삼신불에게 생명력을 갖춘 불상으로서의 증명을 받아
귀의의 대상으로 모시는 의식을 말한다.
봉불식도 크게는 점안식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점안식의 절차를 밟으며 점안식, 봉불식은 모두
불교의 불구를 신앙의 대상으로 격상시키는 의례인 것이다.
안지호 강백이 1931년에 편찬한 <석문의범> 점안편에 불상점안과 나한점안ㆍ시왕점안ㆍ천왕점안ㆍ
조탑점안ㆍ가사점안 등 7-8가지가 나온다.
불상(佛像)이나 탑은 종이, 돌, 천, 나무의 천연물에 불과하다. 자연물에 조각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을 하면 일종의 예술품이다.
신앙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불보살의 위신과 영감(靈感)을 불어넣게 되면 같은 돌, 나무, 천이라 할지라도 부처님의 영험과 신통력이 들어가게 되어 있다.
불상(佛像)의 점안에는 팔부신장을 청하여 도량을 옹호하게 하고 시방(十方)의 불보살님께 오늘의 불상, 탱화에 대한 내력을 설명한다.
도량을 청정히 한 다음 부처님부와 연화부, 금강부 등을 초청하여 오늘 이 도량에서 점안을 거행함을
아뢰고 증명해 주실 것을 간절히 청한다.
이후 육안ㆍ천안ㆍ혜안ㆍ법안ㆍ심안ㆍ무진안을 원만 성취하도록 권공 예배한다.
오색실을 이용해 부처님의 천안통과 천이통ㆍ타심통ㆍ신족통ㆍ숙명통ㆍ누진통ㆍ신통력ㆍ용맹력ㆍ
자비력ㆍ여래력이 청정하게 성취되기를 기원한 뒤 불상의 눈을 붓으로 그린다.
407. 정근 (精勤)
정근(精勤)이란 선(善)을 더욱 자라게 하고 악(惡)을 멀리하기 위해 부지런히 수행한다는 뜻이다.
이는 염불과 같이 한마음으로 불, 보살의 지혜의 공덕을 찬탄하면서 그 명호를 부르고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산만해 지기 쉬운 마음을 안정시켜 편안하게 하며 마음이 흔들림 없이 맑고 밝아지도록
만드는데 그 의미가 담겨있다.
정근(精勤)을 할 때는 다른 생각을 다 버리고 오직 평온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한없는 공덕을 믿고
일념으로 정진해야 한다. 불보살님의 명호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정근에 장애가 된다.
음성도 너무 크거나 작지 않게 자신이 편안한 소리로 해야 한다. 정근을 하면서 염주를 돌리거나
절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다.
정근(精勤)할 때 부르는 명호는 석가모니불ㆍ관세음보살ㆍ나무아미타불ㆍ지장보살 등의 여러 종류가
있으며 법당(法堂) 부처님과 일치하는 명호를 부르는 것이 좋다.
408. 정병 (淨甁)
정병은 깨끗한 정수(淨水) 또는 감로수(甘露水)를 담는 병을 말한다.
『법화경,法華經』에 관정의식(灌頂儀式)에서나 스님의 필수품(必需品)인 18지물(持物)의 하나로 쓰이는 귀중한 불구(佛具)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점차 그 용도가 변하여 불전(佛前)에 바치는 깨끗한 물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정병은 부처님 앞에 바치는 공양구(供養具)로써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상징하는 지물의 기능도
함께 하고 있다.
불교의식을 인도하는 승려(僧侶)가 솔가지로 감로수를 뿌림으로써 모든 마귀(魔鬼)와 번뇌(煩惱)를
제거(除去)할 때에도 사용된다.
409. 정진 (精進) ☀불교에서 나온 말
오로지 정성을 기울여 노력하고 매진한다는 의미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범어 ‘virya' 의 번역으로 성불(成佛)하려고 노력하는 보살(菩薩)이 수행하는 육도(六道)의 하나다.
다음은 <대백과사전>:
불교에서는 해태(懈怠)와 방일(放逸)하는 태도를 악법(惡法)으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이와 같은 해태심과 방일심을 없애 능히 무량한 선법(善法)을 일으키고 증장(增長)하게 하는 것을 정진이라 하였다.
이 정진은 무조건의 노력이 아니라 정진의 대상이 선이냐 악이냐의 가치를 충분히 생각하고, 진리적
가치관을 확립하여 선법을 부단히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 정진은 5종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5종정진은 피갑정진(被甲精進)ㆍ가행정진(加行精進)ㆍ무겁약정진(無怯弱精進)ㆍ무퇴전정진
(無退轉精進)ㆍ무희족정진(無喜足精進) 등으로 분류된다.
ㆍ피갑정진은 병사가 갑옷을 입고 진지에 들어가 전투를 하되 추호의 공포심이 없이 대위세(大威勢)를
보이며 싸우는 것과 같이, 어떤 일을 하든지 이와 같이 중생을 구제하고 악을 제거하면서 보살행(菩薩行)을 실천하는 것이다. 매사에 굴복함이 없이 당당하고 충만된 힘으로 그 용감성을 발휘하므로 이를
유세정진(有勢精進)이라고 한다.
ㆍ가행정진은 유근정진(有勤精進)이라고도 하는데, 견고하고 용감한 자세로 더욱 근면하고 자책하여
목적한 바의 과업에로 매진하는 노력을 뜻한다.
ㆍ무겁약정진은 진리를 구하고 중생과 사회를 위함에 있어 비겁함을 모두 버리고 용감히 정진하는
것으로, 이런 뜻에서 유용정진(有勇精進)이라고도 한다. 또, 이를 무하정진(無下精進)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인간이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거나 경시하거나 비하하지 않으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일하는 태도를 말한다.
ㆍ무퇴전정진은 진리를 전파하거나 중생을 위하여 봉사할 때 기후조건이 맞지 않거나 도중에 병고가
엄습해도 이에 굴하지 않고 참으면서 후퇴하지 않는 결심을 뜻한다.
ㆍ피갑정진과 함께 무퇴전정진은 개인을 떠나서 오직 중생만을 생각하고 중생이 잘살 수 있는
낙토(樂土)를 건설하는 데 모든 힘을 기울이는 것을 뜻한다. 이 무퇴전정진을 견맹정진(堅猛精進)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중생을 위하여 더욱 의지를 굳건히 하고 열심히 수련하여 어떠한 고난에도 퇴굴하지 않고 책임을 완수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ㆍ무희족정진은 인간이 평소에 비록 작은 선행이라 할지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실천하고, 그 뒤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큰 선행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진은 단순한 노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수행에서는 물론, 이타적(利他的)인 보살행으로 사회정화의 선두에 서서 모든 고난을 무릎쓰고 끝까지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단호한 정신력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보살의 정진에는 수많은 장애가 따르므로 신라의 원효(元曉)는 정진에 앞서, 또 정진중에라도
참회(懺悔)로써 제악업장(諸惡業障)을 없애고, 권청(勸請)으로 바른 진리를 비방함이 없게 하며,
수희(隨喜)로써 남을 누르고 이기고자 하는 질투심을 막고, 회향(廻向)으로 모든 파멸할 운명에 있는
일체의 것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우리 나라의 선문(禪門)에서는 교문(敎門)에서의 이와 같은 정진과는 달리 천진함을 유지하는 것을 제1의 정진으로 삼고 있으며, 정진을 하면서 정진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는 것이 정진의 제일 큰 병이라고 보아 왔다.
410. 제석천 (帝釋天 Indra)
제석천왕(帝釋天王)의 원래 명칭은 석가제환인드라이다. ‘석가’는 능(能)의 뜻이고, ‘제환’은 천(天)의
뜻이며, ‘인드라’는 주인(主人)의 뜻이다. 즉 ‘능히 하늘의 주인이다’는 뜻이다.
제석천(帝釋天)은 벼락을 신격화한 것으로, 모든 신을 주재하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며,
대지를 윤택하게 하여 작물이 자라게 하는 신으로 널리 믿어왔다.
제석천(帝釋天)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난 뒤 감화를 받아 불교에 귀의하여 도리천(忉利天)의
주인으로서 수미산의 꼭대기인 선견성(善見城)의 수승전에 살면서 범천과 함께 불법 수호의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도리천중과 사천왕(四天王)을 권속으로 삼고 있다.
불법(佛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옹호하며 백면(白面)의 보살상(菩薩像)으로 조성된다.
또한 제석천(帝釋天)의 형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몸에는 각종 영락(瓔珞)을 걸치고 금강저를 잡고 있다 ‘독고저(獨股杵)를 든 동자형이다.’ ‘갑옷을 입고 보관을 쓰고 손에 막대를 들었다.’ 라는 등 다양하며,
제석천은 일반 신장들과 같이 예배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411. 조계종 (大韓佛敎曹溪宗)
대한불교조계종은 한국불교의 전통과 정통을 이어받은 장자종단으로서 우리나라에 선법을 최초로
들여온 도의국사(道義國師)를 종조(宗祖)로 모시고 있다.
도의국사는 조사선을 실질적으로 정착시킨 육조 혜능(六祖慧能) 조사의 법을 이어 받아 이 땅에 선의
뿌리를 내리게 했다. 다시 말해 도의국사로 말미암아 부처님과 달마 조사, 혜능조사, 마조조사로 이어지는 법맥이 우리나라에 면면히 이어진 것이다. 조계라는 명칭은 혜능 조사가 주석하던 중국 소주(소州)
조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계종의 종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근본 교리를 받들어 배우며 바로 마음을 보아 부처가 되어 법을
널리 전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
(자각각타 각행원문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自覺覺他 覺行圓滿 直指人心 見性成佛 傳法度生)"이다. 부처님의 교법을 배워 자기 마음을 바로 보아 성불하여 법을 널리 전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조계종의 근본 뜻이라는 것이다.
조계종의 소의경전은『금강경』과 '전등법어'이다 전등법어 중에서『육조단경』『마조록』『임제록』『벽암록』등이 대표적이다. 기타 경전의 연구와 염불, 지주(持呪) 등을 제한하지 않고 여러 가지 수행법을 포섭하고 있다.
이 땅에 선법(禪法)을 처음 전한 도의국사는 선덕왕 5년(784)에 당나라로 건너가 혜능조사가 설한
『육조단경』의 설법처인 보단사(寶壇寺)에서 계를 받고 선종의 스님이 되었다.
이후 강서 개원사(開元寺)로 가서 혜능 조사의 정맥인 남악 회양 조사의 뒤를 이은 마조 대사의
법제자인 서당 지장(西堂智藏)조사의 문하에서 정진하여 법을 인가 받았다.
다시 조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라는 말씀과 청규로 유명한
백장 선사를 찾아가 법요(法要)를 전해 받으면서 "강서의 선맥이 모두 동국으로 가는구나."라는 찬사를 받았다.
도의국사는 37년 동안 당나라에서 치열한 수행을 한 후 헌덕왕 13년(821) 선법(禪法)을 가지고
귀국하여 설악산 진전사에 주석하면서 염거 선사에게 법을 전하여 현재 우리 조계종의 근원이 되는
가지산문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조계종을 다시 천명한 중천조(重闡祖) 보조 지눌(普照知訥,1158~1210)국사는 8세에 출가하여 1158년
예천 하가산 보문사에서 선의 가르침을 체험한 후, 팔공산 거조사에서 정혜결사를 하면서
'권수정혜결사문'을 발표하여 선풍을 새롭게 하고자 하였다. 그 뒤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3년 동안 참선
정진하던 중『대혜어록』을 보고 깨침을 얻었고, 1200년 길상사(현 순천 송광사)에서 간화선을 최초로
소개하는 등 선법을 널리 폈다.
태고 보우(太古普愚,1301~1328)국사는 신라 이래 고려를 거친 5교 9산의 전통을 통합하면서 조사선의
정통 선맥을 계승한 조계종의 중흥조이다. 보우국사는 13세에 출가하여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萬法歸一 一歸何處)."라는 화두에 전념, 의문을 품었으며,
이후 다시 '조주무자'화두를 타파하였다. 1346년 임제의현 선사의 18대 법손인 석옥 청공 선사를 만나
인가를 받고 귀국하여 왕사가 되어 구산선문을 통합하여 조계종을 중흥시켰다.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청허 휴정(淸虛休靜), 부휴선수(浮休善修)스님 문하에서 선맥이 전승되어 왔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경허(鏡虛)스님과 용성(龍城)스님의 선원 재건운동으로 전국에 선풍이 일기 시작해
청정한 수행풍토가 조성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 있다.
☀ 조계종 법계
⌾ 법계법
불기2520 (1976)년 03월 02일 제정공포
불기2545(2001)년 09월06일 개정 불기2545(2001)년 09월10일 공포
불기2552(2008)년 03월20일 개정 불기2552(2008)년 04월07일 공포
불기2555(2011)년 03월10일 개정 불기2555(2011)년 04월01일 공포
불기2557(2013)년 03월20일 개정 불기2557(2013)년 04월01일 공포
⌾ 법계는 다음 종별로 한다.
1.비구법계 - 가.대종사 나.종사 다.종덕 라.대덕 마.중덕 바.견덕
2.비구니법계-가.명사 나.명덕 다.현덕 라.혜덕 마.정덕 바.계덕
⌾ 전형방법
① 대종사와 종사 법계는 특별전형으로 한다.
② 종덕과 대덕 법계는 고시전형 또는 특별전형에 의한다.
③ 중덕과 견덕 법계는 고시전형에 의한다.
④ 비구니법계의 전형 또한 비구 전형에 준한다.
⌾조계종 통일가사의 품계는 법계에 따라 조의 수(數)로 구분된다.
‘법계법 시행령’에 따르면,
대종사(명사)법계는 25조, 종사(명덕)법계는 21조,
종덕(현덕)법계는 19조, 대덕(혜덕)법계는 15조,
중덕(정덕)법계는 9조, 견덕(계덕)법계는 7조, **( )안은 비구니.
법계를 수하지 않은 사미(니)는 단일 조로 이뤄진 만의를 수하게 된다.
⌾비구법계
법계명 | 승 랍 | 자 격 요 건 |
대종사 종사 종덕 대덕 중덕 견덕 | 40년이상 30년이상 25년이상 20년이상 10년이상 10년미만 | 종사법계 수지자 종덕법계 수지자 대덕법계 수지 및 1급 승가고시에 합격한 자 중덕법계 수지 및 2급 승가고시에 합격한 자 견덕법계 수지 및 3급 승가고시에 합격한 자 4급 승가고시에 합격한 자 |
412. 조동종 (曹洞宗)
석두희천ㆍ약산유엄ㆍ운암담성ㆍ동산양개 선사(禪師)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싹이 튼 것이 조동종이다.
조동종의 종풍은 “세밀한 가풍과 언행의 상응으로 근기에 따라서 중생을 이익케 한다.”이다.
조동종은 조동오위(曹洞五位)를 통해 진수를 설파한다.
본래 자성청정을 감추고 있는 미혹의 단계 정중편(正中偏), 미혹에서 자성청정을 추구하는 편중정
(偏中正), 본래의 자성청정 발견 정중편(正中), 동적인 편위의 독립을 전제로 본체와 현상의 동일성에
이르는 겸중지편(兼中至)과 정의 상호원융 자성청정과 미혹의 상호일치 불이무애의 실상에 대한
깨달음을 설하는 겸중도(兼中到)등의 가풍은 조동종 선사들의 지향을 담아내고 있다.
조동종의 법계는 운거도응 제자들에 의해 중흥된다.
운거도응 선사(禪師)의 문하에서는 동안도비ㆍ동안관지ㆍ양산연관ㆍ대양경현 등이 배출됐다.
대부형태로 법맥을 이은 투자 의청의 문하에서는 부용, 도해 등 9명의 선사(禪師)들이 나왔다.
동산양개 선사(禪師)는 입적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구도자들은 덧없는 것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기로 되어있다. 그리고 바로 이 무집착에 진정한
수행자의 삶이 있다. 사는 것은 일하는 것이고 죽는 것은 쉬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퍼하고 통곡할 필요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413. 조사선 (祖師禪)
깨달음을 증득하는 선가에서도 깨달음의 경지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황벽희운선사, 규봉종밀선사 등 많은 선사(禪師)들은 조사선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돈오적이고 당하에 바로 이루기 때문에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어문자를 초월하여 직지인심 하는 것이다”
“초불월조(超佛越祖)하여 구체적이고 완선(完善)한 인간의 성취를 최고 이상으로 삼는다.”
“부처는 중생 자신의 자심(自心)가운데 있다”
좁은 의미의 조사선은 혜능선사의 선법과 기본적인 혜능선법의 풍격을 가진 선승들의 선법이다.
이 부류에 속한 대표적인 선승들은 하택신회와 대주혜해선사다.
넓은 의미의 조사선은 혜능이 세운 선법을 가리키며 남악계와 청원계를 거치는 오가분등의 선법을
포괄한다.
조사선(祖師禪)에서 조사(祖師)는 달마 이후의 다섯 조사들을 포함하고 있다.
한월법장선사의 조사선(祖師禪)에 대한 개념을 들어보면 더욱더 명쾌해 진다.
“조사선(祖師禪)은 십법계(十法界) 밖을 뚫으며 여래의 헤아림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격을 벗어난다.
조사선(祖師禪)은 다시 부처의 정수리에서 나와 격의를 뛰어넘으며 또한 양종선사와 외도를 뛰어넘는다.”고 조사선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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