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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묵묵부답 원문보기 글쓴이: 묵묵부답
글을 적었던 동기 (머리말)
한 달 후면 또 추석입니다.
추석을 맞이할 때마다 제사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고민이 됩니다.
저는 제사와 상관이 없고 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지만
제사 때문에 가족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는 분이 아직도 많은가 봅니다.
그래서 그들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에 고민이 됩니다.
옛날에는 제사에 참여 하지 않으면 사람 대접도 못받고 집안에서는 완전히 왕따 당하였지요.
항상 피해자 입장에서 당하기만 했던 기독교인들의 제사문제.....
물론 지금은 개성이 강한 시대가 되었고, 여성 상위시대가 된 느낌마저 들 정도가 되었으니까 옛날 보다는 많이 완화 되었습니다.
또한 세상 구조가 엄청 복잡하게 된 것도
제사를 굳게 주장 하던 사람들에게 그 의지를 꺾는데 한몫 했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억지로 제사 참여를 강조 하지 않고
차라리 등을 돌려 버리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서로 원수처럼 지낸다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추석이 다가올수록 또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금년에도 이름이라는 내용물을 제시 해 봅니다.
아래의 글을 적었던 근원지
10여 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안티와의 토론 중에 제사와 기독교의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생각한 결과
“이름”이라는 것이 서로 간에 이해할 수 있는 공통점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고민한 보람이 있었던지 안티의 수긍 정도는 받아내었지요.
그 일이 있은 후, 추석이 다가올 때마다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종교 토론방에 제사와 관련된 여러 편의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거기는 불교를 비롯하여 여러 종교인들이 토론을 펼쳤던 곳이지요.
그 사이트를 방문 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하여 올린 내용도 있고
또 불자나 다른 교주들을 향하여 쏘아댄 내용도 있습니다.
지금 그 사이트는 거의 황폐 되었지만.....
형상은 용납할 수 없지만 그 대신 “이름”은 있습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을 고안하여 우상 만드는 일을 심심찮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상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그래도 무슨 대상이 있어야 섬길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대상을 이름 안에 다 담아 둔 것입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형상을 깎아 만든 우상이 없는 대신에
이름이라는 무형(無形)의 대상이 있습니다.
아마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신 분이니까, 저급한 형상으로 하나님을 대신 하는 것을 미워 하시고, 이름이라는 무한한 무형의 이름을 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성경에는 “이름”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름이라는 단어를 무심코 넘겨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도전 받은 제사에 대한 대안 제시
고인(故人)에게 절하고 제사를 하는 대신
고인을 생각해 주는 어떤 지혜를 고안해 내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가령, 시숙이 제사를 주장한다면
남편에게 고인의 업적을 물어서 예쁘게 기록을 하는 것입니다.(고인의 업적을 뭐라하지요? 막내로 자라서 전혀 모르는 상태임)
물론 남편으로 하여금 형과 의논 하도록 해서 적합한 내용을 수집 한 것이지요.
아무리 보잘것없는 인생이라도 적을 내용은 많을 것입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고생했다거나 이웃에게 작은 호의라도 베푼 내용등....
유산적인 교훈으로서 후손대대로 보관할 수 있는 보관함 같은 것을 준비 하면 더 좋구요.
왜 그런 것을 만드느냐고 윗어른 중 누가 물으면
“제사란 기억케 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딱 못 박아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해도 제사에는 불참 통보가 된 것이고, 10%만이라도 이해를 시켰다면 성공한 것입니다.
그 10%의 틈은 곧 100되기 때문입니다.
조상을 기억 하는 데는 더 효과적이고
특히 한두 번 기억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기억하는 것 같으니까 정성은 더 베어 있는 것입니다.
머리와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식구라면 이해를 할 것입니다.
물론 평상시에 개떡 같은 며느리거나 제수라면 효과는 없겠지만......
제사에 대한 상식이 없다 보니 별 희안한 발상을 만든 것 같습니다.
사실 제사상만 보아도 겁나고 거부감을 일으키는 사람이 해결 방안까지 제시한다는 것부터 어불성설이지만
만약 제 입장에서 제사에 대한 도전을 받는다면 이런 방식을 강하게 고수할 것 같습니다.
아무 대안도 없이 단지 인내하라. 견뎌라. 기도하라. 주님이 알아주신다. 하는 것으로 떼우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한번도 실험한 것이 아니지만 도전 받는 사람은 함 시도해 봅시다.
“나는 생각날 때마다 아버님의 교훈을 새겨욧@!! 하고 강하게 밀어 붙이는 것입니다.
이혼할란다 하는 것 보다는 부드러울 것입니다.
사실 고인으로부터 인생교훈을 배운다는 것이 좋은 일이지요.
고전(古典)속의 인물이나 조상들의 사생활은 뭐 별것 있나요? 다 거기서 거기지요.
인생이란 아무리 살펴보아도 머리에서 발까지가 전부입니다.
그럼 이름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지요?
찾을 수 있는 내용 중에서 몇 편을 간추려 보았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이해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생소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작명이나 제사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한번도 점치는 사람을 찾아간 적도 없으며 생각만 해도 소름 치는 사람임을 밝히며, 성경을 묵상 하는 중에 생각한 내용입니다.
사실 누구나 잘 아는 내용을 나열해 본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읽는 사람들은 시간을 낭비 하는 일이며 또 짜증스럽게 할 뿐입니다.
새로운 양식을 준비 하려는 자세도 잊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어떤 내용은 2여 년 전에도 몇 군데 올린 적이 있습니다. 중복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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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와 이름
이번 추석을 맞이하여 뭐 줄 것은 없고 ......... 그래도 안티 노릇 한다고 피곤한 기독교 안티 군사들을 위하여 추석 선물 하나 준비 했습니다.
선물이 뿌아 지지 않도록 고향 도착 시까지 취급주의 하시길 바람!!
추석에 있어서 차례나 제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저는 이러한 내용에 대하여서는 님들과 같이 잘 모릅니다.
제사의 목적은 많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조상을 기억 한다는데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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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에 대하여 간단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름에는 그 존재의 인격과 생명과 명예와 재산 등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가까운 예를 들면 홍길동이가 아이디(이름)를 정하여 컴퓨터에 들어오면 자신이 지은 그 아이디에 자신의 모든 것이 들어 있지요.
그러니까 어느 누가 자신의 아이디(이름)를 향하여 칭찬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욕을 하면 화를 내고 혈압도 실제 올라가기도 합니다.
홍길동이라는 자기의 이름에 똥 세례를 받지 않으려고 조심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처럼 잘난 체 하는 것은 이름이 훌륭하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죠.
이름은 곧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도회지에서 서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도 서로 모르기 때문에 각자의 얼굴이 이름을 대신합니다.
운행 중에는 자동차와 운행 태도가 그 사람의 이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이름은 자신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죽은 후에도 항상 소유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죽은 조상에게 제사 지내기 위하여 모임을 가질 때도 그 조상의 이름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
조상의 이름을 기억해 냄으로 조상의 생전 모습과 업적을 생각하고 기리게 되는데,
조상의 생전이 좋았다면 자손에게도 이름이 빛날 것이고, 나빴다면 자손들도 별 볼일 없어 하고 조상의 이름을 부끄러워 할 것입니다.
사실 조상의 친일 사상과 행실이 부끄러워서 그 무덤을 다 파헤친 후손들이 있었지요?
자신의 이름 속에는 자신의 모든 것이 들어가 있으므로 자신의 이름을 빛나게 해야 함은 인생에 삶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제사의 절대성이 많은 힘을 잃었지만 앞으로도 제사의 필요성은 더욱 더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의 아이들이 몇 십 년 후에 조상을 위한 제사를 깍듯이 할 것 같습니까? 어른들도 "빨리 먹고 치우자!“ 라고 말할 정도니 ............@#%@ 그것을 본 아들이 이담에 차례를 준비해 놓고는 여러분들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 줄 것 같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그런 착각적이고 실망증후군적인 기대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이로울 겁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지금 살아있을 때 하나님을 제대로 잘 믿게 되면, 여러분의 아들과 그 후손들도 하나님을 잘 믿게 되어 조상인 여러분을 항상 기억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잘 믿게 되면, 후손들이 하나님을 잘 믿은 조상(회원 여러분)의 이름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스럽게 생각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제사는 일년에 겨우 한두 번 기억해 주고는 “땡”하고 끝납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기 바쁩니다.
조상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섭섭하게 해 드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꾸 그러면 “ 참 아니꼽고 더러워서 안 받아 먹겠다”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믿고 죽은 조상의 이름은 예수 이름 안에 있기 때문에 후손들의 마음에 항상 새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 되어 있는 믿음의 조상들을 수 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름을 앙망하듯이
믿음 안에서 죽은 조상 여러분들을 항상 기억하며 이름을 기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맘껏 드리는 제사입니다.
돈도 필요 없고 장소도 필요 없고 복잡한 절차도 필요 없습니다. 소주 한잔도 필요 없어요. ㅋ
기독교의 제사는 이름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님들의 제사는 왜 그리 복잡합니까? 집안마다 제사 절차가 다 달라요.
자손에게 제삿밥 못 얻어먹을까봐 머리 굴려 그렇게 만든 겁니까? ㅋ
이번 제사 때도 고생고생하면서 또 기름값에다.... 참 고생 좀 하시겠습니다. 그려 ㅉㅉ
과거에 하나님을 잘 믿어 성경에 기록 된 사람들과 또 성경에는 기록 되지 않았어도 순교하거나 믿고 죽은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 같은 하나의 믿음입니다.
이들의 이름은 믿는 후손의 마음에 항상 살아 있어서 영원한 교훈과 믿음의 표본이 되는 것입니다.
쉬는 시간에도 그 이름이 생각나고 밥 먹을 때와 누워 잘 때도 생각나고 심지어 운전할 때도 믿음의 조상들을 생각하면 엔돌핀이 팍팍 잘 돌아가는 제사이므로 운전도 잘 됩니다.
이 제사가 바로 후손들이 복 받게 해 주는 최고의 유산입니다.
사랑하는 안티 형제자매 여러분!
조상께 제사 드리기 위한 수고가 얼마나 많으십니까!
하나님을 믿으면 그런 제사 제물도 준비할 필요 없어요. 예수 이름만 마음에 달랑 있으면 제사상으로는 짱이라오.ㅋㅋㅋ
그러나 여러분은 돈 걱정에 시간 소비......그것도 언제 종 칠지 모르는 불확실한 제사를 남겨 주려고 참 고생 하십니다.
그게 자손에게까지 줄 수 있는 복이 되겠습니까?
적은 수고로서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기독교의 제사를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요?
죽어서는 먹지도 못할 제삿밥 얻어먹으려고 하는 것 보다는, 살아 계신 예수님 안에서 항상 기억해 줄 수 있는 제사를 물려주는 것이 더 나은 제사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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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기독 안티들에게
조상제사에 대한 문제는
명절 때만 되면 불거지는 문제로서 금년에도 기독교 방송에서는 어김없이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나의 견해를 여러 동상들에게 펼치고자 한다.
명절을 맞이하여 뭐라도 줄 형편은 못되지만
행님의 성의로 여기고 잘 받아들이기를 바랄 뿐이다.
집안 전체가 기독교인이라면 제사에 대한 문제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의 모든 것이 이름 안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0장 20절, 요한계시록 3장 5절 )
그래서 믿고 죽은 사람은 누구든지 성경에 기록 되어 있는 믿음의 선배들과 같이 받들어도 무방한 일이다.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라도 믿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 하나만 달랑 있어도 되니까!!
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인가!
돈 소비 해 가면서 일년에 겨우 한두 번 힘들게 제사를 준비 하는 것과
돈 한 푼 안 들이고 언제 어디서라도 조상에 대한 믿음의 제사(기억)를 드릴 수 있는 제사하고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물론 여러분들이 말했듯이 기독교인 중에서도 추도예배라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죽은 날을 기억하여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이 행님으로서도 퍽 맘에 안 든다.
무슨 날을 기념 하여 살아 있는 사람끼리 만나서 절을 하는 것은
살아 있기 때문에 공경 하는 뜻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추도예배는 죽은 자에 대한 숭배 같은 기분이 들어서 영 맘에 안 든다.
하나님을 믿고 죽은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거한다는 것을 알고 추도예배라는 것도 정확히 없애야 할 것이다.
그런데 추도예배 정도가 아니라
가족들의 종교가 서로 달라 분쟁을 일으키는 가정이 큰 문제다.
동상 여러분들의 가정 중에서도 상당수 해당될 것이다.
그래서 행님 왈,
제사 문제가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행위의 힘 보다는 약하다는 말이다.
평소에 행동이나 좀 똑바로 하고 제사를 반대한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당장에는 천지가 깨질 듯이 야단들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상들의 올바른 행위에 모든 것은 고개를 숙이고 마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동안 동상들의 행위가 올바르지 않았다면 차라리 절이나 하고 제사 지내라. 하나님도 양다리 걸친 믿음 생활을 인정 하시지 않으니까 가정이라도 깨지지 않도록 제사 잘 지내라.
평상시에 제사와 관련된 분들에게 못 해 주었으니까 내가 한 말이다!!
무슨 기념일에 선물 공세라도 미리 했는가 말이다.
전화 하나 안 해 주다가 미운*이 정작 제삿날에는 똥고집까지 피우니 사이가 더 나빠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가족들에게 행위는 개떡 같이 하면서도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밤 12시에 제사나 잘 지내고 설날이 지난 1월 31일 0 시부터는 언동(言動)을 고치고 하나님을 잘 믿어라.
한달 두 달, 일년 이년 세월이 지나 “과연 예수 믿는 * 되었다”라는 평가를 얻었을 때,
“이젠 제사 안 한다”고 말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고향 내려갈 때 모두들 운전 조심하구.........
동상들을 사랑 하는 행님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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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명
사람에게도 이름이 있고 모든 생물과 모든 개체들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새로 발견될 별에게도 이름이 주어지고 곤충이든 미생물이든 이름이 다 있습니다. 태풍에도 이름이 주어지고 무슨 사건에도 이름이 주어집니다. 형이상(形而上)학 적인 것에도 이름이 다 있습니다. 천지에는 수많은 이름으로 가득 합니다
성경에는 “이름”이라는 단어가 1000번정도 나옵니다. 생각 보다 많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내용이 있고 또 기도를 마칠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마침으로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그 이름의 의미대로 인생이 결판나는 것만 보아도 이름이 부여하는 의미는 대단 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세상 최초의 작명가는 아담이었습니다. 대단한 작명가였습니다. 하나님도 감상(?)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창2:19)
그러나 미래까지 포괄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말의 능력은 점점 상실되기 시작하다가
야곱과 유다 이후부터는 거의 상실하였으므로(사실 아담 타락 때 뿌리가 뽑힌 일이므로 아직도 작명을 좋아 하는 사람은 한물 간 사람이고 구시대적 사람입니다) 이제는 새롭게 주신 예수 이름으로만 복 받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름을 짓는다고 해도 그 이름 따라 복이 굴러들어 오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름이야 부르기 좋은대로 작명하면 될 뿐이고 이제는 가지고 있는 이름 안에 축복을 담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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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1. 사람의 이름에는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인격과 명예와 재산 등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즉“에디슨”하면 [그는 전기를 발명했고 역사상 최고의 공헌자)라는 생각을 해 내는 것과 같습니다.
작명(作名)된 이름에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인격 명예 재산 얼굴 언동 가정 직업등등)들로 인하여 반영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유한 것으로 인하여 이름이 광나기도 하고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반사되기도 합니다.
2. 사람의 이름은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 번 시시각각 변합니다. 행위로 얼굴로 소문이나 재물이나 출세 등으로 시시각각 변합니다.
그래서 못난 이름도 있고 잘난 이름도 있습니다.
3.사람들마다 이름을 바라보는 각도가 다 다릅니다. 천차만별(千差萬別)입니다.
4.이름은 시공을 초월하여 효과가 나타납니다.
5.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6.이름 중에서 최고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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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인생
인생이란 장난감이다.
돈이든 명예든 건강이든....... 우주속의 작은 점보다 보잘것 없는 그러한 것들을 가지고 아웅다웅 거리는 모습이 애기들 놀이와 다를 바 무엇인가.
인생을 영원이라는 무한에 비하면 물거품이요 사라지는 연기에 불과할 뿐이다.
문화로 치장하고 만족하며 위로 받고 의지하려고 하는 삶은
속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인생 투자를 예수이름이라는 보따리에 담아야 한다.
자신이 만드는 이름을 버리고 예수이름으로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
그러지 아니하면 자신의 인생 모두는 꿈으로 끝난다.
만물의 조물주와 인류의 구원자를 기억하자.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을 얻을 것이다 (계22: 1 - 4)
자신의 인생을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오직 이 방법 외에는 없다.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 수준의 생명을 주신다는 것인데
그 분의 이름을 부여 받는 길 밖에 없다.
오직 그 분의 이름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만이, 그 분의 이름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