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들의 업무량은 결코 만만치 않다. 사업의 직접적인 실천과 서류업무를 담당자 혼자서 처리해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족한 재원으로 인해 인력보충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보다 나은 복지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두 분 선생님의 가치와 열정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래서 난 어떻게 그런 실천이 가능한지를 조심스럽게 여쭈어 보았다. 두 분 선생님이 들려준 공통적인 대답은 바로 ‘진정성’이었다. 진정으로 참된 사회복지를 실천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만 있다면 해답은 현장에서 하나 둘 발견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동안 나름의 노인복지를 실천해왔지만 진정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를 해오지는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 아픔만큼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뜨거운 열정이 솟아올랐다.
그래서 내가 센터에서 담당하고 있는 사업 중에서 적용해 볼만한 프로그램을 그 자리에 모인 선생님들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함께 고민한 결과 ‘목욕마실’이라는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당시 우리 센터는 스스로 목욕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한 달에 한 번 대중목욕탕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들의 목욕을 도와드리고, 목욕이 끝난 후 지역사회의 식당의 후원으로 외식을 지원해드리는 방식으로 목욕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년간을 지속해오다보니 몇 가지 문제점이 발생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목욕봉사자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목욕이 필요한 어르신들은 점점 증가함으로 인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거기에다 어르신들의 의존성이 증가함으로써 이전에는 당신들이 직접 할 수 있었던 부분까지 도움을 요청하게 되어 봉사자들이 지쳐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후원을 하고자 하는 식당이 한정되어 있어 외식 메뉴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어르신들이 드시고 싶은 음식을 드실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예로 하루는 다른 메뉴가 드시고 싶었던 어르신께서 식당사장님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하셨으나, 너무나 바쁜 나머지 그 부탁을 들어 드릴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요청했던 어르신이나 그 요청에 부응할 수 없었던 사장님,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까지 모두가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먼저 어르신들께 여쭈어 보았다. 외식메뉴를 선택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여쭈어보았더니 사실 드시기 싫을 때도 있지만 공짜로 먹는 음식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드시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렇게 어르신께서는 그 순간만큼은 (대접해 주시는 마음은 고맙지만) 주체성을 내려놓고 주는 대로 먹고 마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를 여쭈니 어르신들께서는 당신들이 직접 메뉴를 정하고 만들어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반찬재료비는 어르신들이 3,000원씩 회비를 내어 마련하기로 했다. 바야흐로 어르신들의 주체성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어르신들과 함께 ‘목욕마실’의 기본 뼈대를 완성한 후 나는 목욕봉사자분들을 만나 뵈었다.
우리센터에는 지난 6년 간 늘 변함없이 어르신들의 목욕을 도와주시는 든든한 ‘선산비봉적십자봉사회’가 함께하셨다. 봉사회원들을 만나 조심스럽게 목욕마실의 취지를 설명드렸다. 부탁한 내용의 핵심은 봉사자가 목욕과 반찬 만들기 등을 도울 때 다 하지 말고, 목욕이나 반찬 만들기 중 어르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잘하시게 돕자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봉사자들이 지금도 힘든데 더 힘들어질까봐 싫다고 하셨다.
두 번째 만남을 통해 다시 설명을 드렸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No”였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앞서 배운 진정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세 번째로 선산비봉적십자봉사회 박미자 회장님을 찾아뵙고 간곡히 부탁을 드렸다.
그랬더니 회장님을 비롯한 봉사자 분들도 그 진정성을 이해하고 동참하겠다고 약속해주셨다.
그리고 나름의 원칙을 세웠는데, 어르신들의 잔존기능을 보존하고 의존성을 감소하는 한 편, 봉사자분들이 지치지 않을 수 있도록 어르신들이 스스로 하실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달 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2011년 4월 19일, 드디어 첫 “목욕마실”이 실시되었다!
난 아직도 그 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거동이 불편하여 잘 걷지 못하는 어르신 한 분은 목욕마실을 위해 쌀과 참기름을 내어놓으셨고, 뇌졸중으로 인해 좌반신이 마비된 어르신은 나머지 한 손과 입을 이용해 나물을 다듬기 시작하셨다. 비록 가난하고, 불편하지만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시고, 잔존기능을 최대한 살리기 시작하시면서 목욕마실의 주인이 되어가고 계셨다. 그렇게 당당함을 회복하신 어르신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나눔을 실천하기 시작하셨다. 당신들보다 더 어려운 마을 어르신들을 초청해 함께 식사를 나누기 시작하셨고, 자체적으로 회장과 총무를 선출하고 회칙을 만들어 목욕마실 어르신들 중 혹 누가 입원을 하게 되면 자체회비에서 위로금을 전달하셨으며 목욕봉사자의 아들 결혼식에도 방문하여 축의금을 전달하셨다.
또한 평상시에도 서로 안부를 묻고 연락을 나누는 등 사회적 관계망이 확장되기 시작했고 목욕탕이 쉬는 달에는 자체적으로 회의를 해서 당신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나들이를 다녀오시는 등 이젠 명실공히 목욕마실의 완전한 주인이 되셨다. 게다가 처음에 부정적으로 반응하셨던 목욕봉사자들도 힘을 얻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이 잔존기능을 최대한 살리실 수 있도록 목욕을 도와드린 결과, 어르신들의 의존성이 점점 감소되었고, 이젠 어르신들이 목욕봉사자들의 등을 밀어주기도 하는 등 따뜻한 정을 나누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놀라운 변화를 보면서 그동안 힘들어했던 봉사자들은 목욕마실 하기를 참 잘했다며 기뻐들 하신다.
그리고 지역사회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노인복지를 실천하면서 가장 힘든 점 중에 하나가 어르신들이 받기만 한다는 지역사회의 편견인데 목욕마실 어르신들이 이처럼 주체적으로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며 지역사회 주민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이 반찬재료를 사러 오시면 조금씩 깎아 주고, 가끔씩 식사대접을 하기도 하면서 응원을 보내고 있다.
'돈'보다 '사람다움'을 지향함이 이렇게도 당사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질 높은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뒤가 든든합니다.
와!! 현장의 감동이 느껴집니다. 사람다움을 쫒는 일. 사람이 중심인 일. 감사합니다.
자연주의사회복지실천은 사회복지사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메말라가던 저를 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정체성을 잃고 힘들어 하는 또 한 명의 사회사업실천가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사람다움과 사회다움을 지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이 만남이 감사합니다~!
진정성을 품은 이상훈 선생님~^^
앞으로의 사회사업실천도 지지합니다~!
마지막에서 두번째 단락
노인복지를 실천하면서 가장 힘든 점 중에 하나가 어르신들이 받기만 한다는 지역사회의 편견인데...
와닿는 부분입니다. 편견을 줄여가고 어르신들의 자주성을 되살리는 소중한 실천 사례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뒤늦게 읽었네요.
오랜만에 노인복지 게시판에 글이 올라와서 참 반갑고 좋습니다.
이상훈 선생이 지금은 어디에 계시나요? 성심노인복지센터엔 안 계시는 것 같은데...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연락해볼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