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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자손 예수여
누가복음 18:35-43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예루살렘에 가서 잡혀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에 맞아 죽을 것이며 삼일 만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지 못했습니다(31-34). 예수님께서 잡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응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오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올라가시는 길에 여리고를 지나 가셨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리고가 있습니다. 여리고는 ‘향기’라는 뜻으로 요단강을 건너 첫 번째 성으로 지형이 낮고 따뜻하여 여러 가지 꽃이 많이 피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러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길을 여리고 사람들이 튼튼한 성을 쌓고 대적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앞서고 백성들은 뒤따라 성을 하루 한 번씩 엿새를 돌다가 일곱째 날에는 성을 일곱 번을 돌고 큰 소리를 외쳤을 때 그 성은 무너졌습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누구든지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수6:26)고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여리고는 저주 받은 성읍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리고에는 팔레스틴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여리고를 둘러보았는데 유대인들이 사는 지역은 깨끗하고 정리가 된 것과는 달리 여리고는 잡초가 많고 지저분하고 사람들은 게으른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난 비유’를 하셨던 것처럼 여리고는 타락한 세상을 상징하는 성읍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소에는 여리고에 들리신 일이 없지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여리고를 지나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신 이유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19:10).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을 찾아 구원하시려고 여리고를 지나가신 것입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행하신 일들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많은 사람들이 나왔습니다(19:3).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잃어버린 자 두 사람을 만나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두 사람은 길 가에 앉아 구걸하는 맹인 바디메오(막10:46)와 세리장 삭개오(눅19:9) 입니다. 이 두 사람을 예수님은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바디메오는 맹인으로 길 가에 앉아 구걸하는 거지요, 삭개오는 사람들로부터 죄인취급을 받는 세리장이요 부자입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여리고를 지나가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맹인 바디메오를 중심으로 말씀을 하겠습니다. 바디메오는 ‘디메오의 아들’입니다(막10:46). 언제부터 맹인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날 때부터 맹인이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맹인으로 태어난 바디메오는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아 구걸을 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구걸하는 사람의 지혜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 가에 자리 잡고 가능한 불쌍하게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디메오는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였습니다. 맹인의 특징은 귀가 밝습니다. 그의 밝은 귀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알아차립니다. 어린이나 노약자가 지나가면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잠잠하다가 신사나 귀부인이 지나가면 크게 소리쳐서 한 푼을 얻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낫 선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무리가 서로 주고받고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가는데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 무든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37)고 알려주었습니다. 맹인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10:47)라고 외쳤습니다.
바디메오가 얼마나 크게 소리를 쳤든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꾸짖어 잠잠하라.’(막10:48)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9) 하고 소리쳤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잠잠하라는 말을 듣고서도 더욱 크게 소리친 것은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맹인으로 구걸하는 거지지만 예수님에 대한 놀라운 신앙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밝은 눈으로 예수님을 보고 나사렛 예수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맹인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사렛 예수여’라고 부르지 않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냥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맹인으로서 구걸하는 거지지만 눈을 뜬 많은 사람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마음 속 깊이 숨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리고에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고 ‘나사렛 예수’로만 알았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일찍부터 율법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구원할 자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서도 메시야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했을 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5,46)고 말했습니다. 나다나엘도 ‘나사렛 예수’라고 했을 때 나사렛에서 선한 그리스도가 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그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 메시야가 아닌 인간적인 예수라는 말입니다. 여리고에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을 보고 나사렛 예수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분명히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맹인은 비록 눈은 어두워 볼 수 없었지만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자손 예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디메오는 맹인이라서 다른 사람들처럼 랍비에게서 율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구원하실 분을 알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문둥병자도 고치시고 중풍병자도 고치시고 하물며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은 선지자가 예언한 다윗의 자손 이심을 알았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고 성난 파도도 꾸짖어 잠잠하게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바디메오만 들은 것은 아닙니다. 여리고에 많은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과연 어떠한 분이신가를 보고자 해서 나와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세렛 예수’로만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는 유대인이요 베들레헴에서 나셨고 나사렛에 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많은 병자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신 분이라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과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는 것도 압니다. 이러한 것들을 아는 것은 예수님을 인간 예수, 역사적인 존경하는 ‘나사렛 예수’로 아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란 인간 예수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존경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로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곧 나사렛 예수니라’(요1:45)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기록되고 선지자가 말한 ‘다윗의 자손 예수’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일찍 선지자들은 이새의 아들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야가 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는 말씀에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였습니다. 맹인은 지나가시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사렛 예수’나 ‘다윗의 자손 예수’는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닌 똑같은 예수지만 의미는 다릅니다. ‘나사렛 예수’로 아는 것과 ‘다윗의 자손 예수’로 아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입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자와 구원받을 수 없는 자가 됩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아십니까? ‘나사렛 예수’로 아신다면 구원이 없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로 아시고 믿어야 구원이 있습니다.
맹인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맹인은 잠잠하지 않고 더욱 크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잠잠하라고 꾸짖어도 더욱 크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긴가 민가 했더라면 사람들이 꾸짖을 때 잠잠하고 물러섰을 것입니다. 부끄럽게 여기고 구석으로 물러나 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크게 소리친 것은 예수님에 대한 조금도 의심이 없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맹인의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던 길을 머물러 서서 ‘그를 명하여 데려 오라’(40)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를 부르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맹인에게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부르신다는 말을 듣고 바디메오는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로 나아왔습니다(막10:49,50). 겉옷은 그의 전 재산입니다. 구걸 할 때는 깔 자리요, 잘 때는 덮는 이불이요, 외출할 때는 겉옷입니다. 전 재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다는 말을 듣고 겉옷을 내버렸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믿음의 행위입니다. 예수님께 가면 더 이상 겉옷은 필요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겉옷을 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본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큰 변화가 있고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맹인은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구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은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실 분이심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확실히 알고 믿었다는 고백입니다. 맹인은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말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 ‘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구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구했던 것처럼 예수님께 ‘한 푼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다’고 구했습니다. 이렇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은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디까지 믿습니까? 전능하신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합니까? 우리의 기도를 분석해 보면 ‘한 푼’을 구할 뿐입니다. ‘한 푼’ 정도는 사람들에게 구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맹인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 푼’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보기를 원하나이다.’,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것은 사람에게 구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을 구해야 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 이런 것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보기를 원하는 맹인에게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4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보라’는 말씀과 동시에 곧 바로 맹인은 보게 되었습니다. 눈을 뜬 바디메오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길 가에 앉아 구걸하던 맹인 바디메오는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 구원해 주셨습니다. 바디메오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로 알았던 여리고에 많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도 ‘나사렛 예수’로 아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로 믿고 고백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습니다. 바디메오는 맹인으로서 괴로운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부터 눈을 뜨게 해 주심으로 그동안의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구원의 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믿습니까? 나를 구원하시는 다윗의 자손 예수로 믿어야 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찾아오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칩시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는 말씀을 듣고 구원의 받아 천국에 가서 바디메오를 만나 예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립시다.